당시의 나는 그냥 대학생 1학년의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같이 교양수업을 듣던 여학생과 요즘 말로 썸도 있었던 것 같으나 당시의 나에겐 관심사가 게임밖에 없었다. 하는 게임으로는 카운터 스트라이크를 즐기고 보는 게임으로는 스타크래프트를 즐겼다. 와우가 오픈베타를 시작하기 전 (온라인RPG에 관심이 없던 나로서는 그 게임이 나의 삶을 그렇게까지 바꿀줄은 몰랐지만), 그때의 나에게 즐겨찾는 커뮤니티는 나리카스와 디씨인사이드의 스타크래프트 갤러리였다.
첫 만남은 신입생 겨울에 스갤을 눈팅하던 중 듣게 된 음원이었던 것 같다. 그것은 항즐이님의 명문을 음성으로 녹음한 것이었다. 지금 다시 찾아보려고 노력했는데
https://pgr21.co.kr/humor/8791 이 흔적밖에 찾지 못하였다. 그 계기로 방문한 PGR21은, 기억은 흐릿하지만, 현재처럼 아재사이트는 아니고 게임덕후 사이트라는 느낌이었던 것 같다. 전자기기 덕후, 게임덕후였던 그 당시의 나에게 즐겨 찾는 하나의 사이트가 더 생기게 되었다.
많은 세월이 지났다. 대학교 1학년이던 학생은 한 집의 가장이며 아빠가 되었다. 많은 커뮤니티가 없어지고, 생겼다. 인생을 쏟아부었던 카스, 와우 사이트는 사라졌고, 카오스 카페는 롤 카페가 되었다. 그럼에도 PGR21은 남아있었다. 처음에는 그냥 한 번씩 들리던 사이트가 이제는 인터넷 시간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일과 육아를 병행하면서도 글 리젠을 따라갈 수 있는 사이트는 사실 많지 않다. 예전부터 존댓말하는 디씨라는 평도 있었고 독불장군들도 많이 등장하지만 그럼에도 토론의 형식이나마 볼 수 있는 인터넷 사이트는 거의 남지 않았다.
가끔 인터넷에서 싸움을 보다 지칠 때 생각나는 글이 있다. 다시 찾아보려고 자유게시판을 검색했다가 나오지 않아 기억이 잘못되었나 생각했을 때 게임 게시판에서 글을 찾을 수 있었다. (
https://pgr21.co.kr/free2/19912) 게임게시판과 자유게시판이 분리되기 전에 봤던 글은 다름과 틀림에 대한 우화였다. 그때와 지금의 PGR은 같지는 않지만 비슷하다. 그때와 지금의 나는 같은가? 사실 디씨인사이드에 유동닉으로 올렸던 온갖 뻘글들을 찾을 수도 없음에 감사한 생각이 든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한다. 그 10년이 2번이 지났다. 아직까지 사라지지 않고 유지되는 PGR21에 큰 감사와 축하를 보냅니다.
# 사실 인터넷도 PGR21도 주로 눈팅하거나 댓글만 다는 편인데, 입상같은 건 생각지도 않고 PGR21의 20주년을 축하하고 싶어 글을 적었습니다. 글 자체를 오랜만에 적어봐 재미없고 두서없는 글이지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