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어렸을 적 히어로 하면 막연하게 슈퍼맨과 배트맨을 떠올렸었습니다. 빨간 보자기를 메고 담벼락에서 뛰어내리다가 엄마한테 등짝에 자국이 남을 정도로 혼났던 기억도 나고, 배트맨 영화를 보면서 무서워서 벌벌 떨었던 기억도 납니다. 어두컴컴한 분위기가 그땐 무섭게 느껴졌던거 같아요.
그리고 브라이언 싱어의 엑스맨,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맨을 보며 마블이라는 회사도 처음 알게 됐습니다 (KBS에서 해주던 스파이더맨 애니메이션 시리즈도 봤었는데 그땐 마블이고 디씨고 이런 개념을 모르던 시절이라...) 2000년도 초반에 집에 마블과 디씨 히어로의 피규어와 영어 원문 만화책을 쌓아놓던 이웃집 친구네에 놀러가선 '일본 만화 말고도 서양 만화는 이렇구나' 라는걸 알게 됐죠.
그리고 2008년, 히어로 프렌차이즈를 영원히 바꿔놓은 그 작품, 아이언맨이 찾아왔죠. 기존엔 자신의 정체를 절대 노출해선 안되는 히어로의 고뇌를 막판 '내가 아이언맨입니다'라는 대사로 날려버린 참신함. 쿠키에서 다음 작품에서 더 큰 사건이 일어날 것을 암시하는 새로운 개념 등등 (이전에도 쿠키라는 개념이 있었는지 모르겠네요)
아이언맨 이후 캡틴 아메리카, 토르 1 (친구들한테 '앞으로 어벤져스라는 영화가 나오는데, 그거 이해하려면 이거 봐야함' 이렇게 설득해서 보러갔다가 욕 뒤지게 먹었습니다)을 거쳐 어벤져스 1을 극장에서 처음 보던 순간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네요.
그리고 십년에 가까운 세월에 거쳐 마블 히어로 영화 프렌차이즈는 젊은 세대에게 있어서 새로운 신화가 됐습니다. (DC가 그걸 따라가려다가 삽질한 그린랜턴 이후 DCEU의 슬픈 역사도 다른 의미로 신화가 됐죠...)
그런데 이젠 세상에서 볼만한 히어로 이야기는 다 나온게 아닐까요? 조세프 켐벨의 영웅의 여정 이후로 영웅 서사 구조는 이제 너무 식상해진 게 아닐까요?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재작년과 작년에 큰 인기를 끌었던 아마존 프라임의 '더보이즈'는 자본주의에 지배당하는 폭력적이고 비도덕적인 히어로라는 참신한 시각을 새롭게 우리에게 선사했죠. (사실 이걸 히어로라고 불러줘야 할진 모르겠네요, 직업상 히어로라고 불러야 하나?)
그리고 얼마전 아마존 프라임에서 공개한 인빈시블은 더 보이즈와는 또 다른 충격을 저에게 선사해줬습니다. 그래서 전에 넷플릭스의 미첼가족과 기계전쟁과 같이 추천하는 글을 쓰기도 했죠. (https://pgr21.co.kr/freedom/91651?category=1) -가정의 달, 강추 신작 애니메이션 2편(프라임비디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인빈시블은 디씨, 마블이 아닌 이미지 코믹스라는 만화 회사의 만화 인빈시블을 원작으로 삼은 애니메이션으로 워킹데드의 원작자인 로버트 커크먼 작품입니다. 의외로 애니메이션 치곤 성우진도 빠방한데
주인공 인빈시블의 성우는 워킹데드의 스티븐 연 주인공 어머니의 성우는 샌드라 오 주인공 인빈시블의 아버지 옴니맨의 성우는 J.K 시몬스 (위플래쉬의 사이코 선생, 스파이더맨 편집장님)입니다.
로튼 토마토 평론가 지수 98%라는 꽤 높은 점수를 자랑하기도 하고요. 아이러니하게도 이 애니메이션은 추천하기가 참 까다로운게 내용을 설명하면 재미가 반감된단 말이죠. (충격적인 스토리가 제맛인데 그걸 알고보면 재미가 좀 떨어지죠)
------------------------------------------------------------------------------------------- 1. 이 밑에서 부턴 인빈시블의 핵심 내용 및 스포일러를 담은 영상 클립과 글이 있습니다.
2. 영상 클립엔 피와 피 그리고 더 많은 피와 내장이 튀기는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3. 댓글에도 스포일러가 달릴 수 있습니다. -------------------------------------------------------------------------------------------
사실 1화 중반까진 그렇게 특출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진 않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제가 가진 첫인상은
[뭐야? 이 짝퉁 저스티스리그는?]이었거든요.
가디언즈 오브 글로브 라는 히어로 단체가 쌍둥이 악당으로부터 백악관을 지키는데,
히어로 구성 부터가
워우먼 (원더우먼?), 아쿠아러스(아쿠아맨?), 레드러쉬 (플래쉬네....), 마샨맨(마샨맨헌터에서 헌터만 뺐냐...) 그린고스트 (그린랜턴에다 마샨맨 합친거잖아...??), 다크윙 (낮은 목소리에 검은 망토를 휘날리는 자경단? 이거 완전 배트맨 아니냐??) 외 2명이거든요.
주인공은 마크 그레이슨, 주인공의 아버지는 놀런 그레이슨, '옴니맨'이라는 이름으로 지구 최강의 히어로로 활동하고 있고 완벽한 히어로이자 자상한 아버지,아내에게 헌신하는 남편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버지인 옴니맨은 빌트럼이라는 행성에서 지구로 찾아온 외계인입니다. 빌트럼은 완벽한 문명을 이뤄냈고, 그들은 슈퍼맨처럼 하늘을 날아다니고 힘도 어마어마하게 세고, 빠르고, 튼튼한 종족이죠. 옴니맨은 은하계의 덜 발달한 종족을 돕는 빌트럼인의 사명에 따라 지구로 찾아와 지구를 수호하다 주인공의 어머니를 만나 주인공을 낳은 겁니다.
옴니맨 : 한번에 이해하긴 어려운 이야기겠지만, 너도 반은 빌트럼인이란다. 나중에 커서 사춘기가 오면 목소리도 갈라지고, 여드름도 나고, 이상한데 털도 좀 나고, 초능력도 생기겠지.
나중에 사춘기가 온 주인공 마크에게 드디어 그 날이 옵니다. 정말 말 그대로 초능력이 생기거든요. 아버지는 그런 아들에게 비행레슨을 해주고, 히어로로서 가져야 할 마음가짐을 가르쳐주고 거기다가 슈퍼 히어로 수트까지 선물로 챙겨줍니다.
사실 이렇게만 이야기가 진행되면 짝퉁저스티스 리그 소리를 듣기 딱이겠죠.
그리고 충격과 공포의 1화 엔딩이 찾아옵니다.
[아니, 1화 내내 가디언즈 오브 글로브 캐릭터 배경 소개를 해놓고 이런 짓을 해버린다고???? 미친거 아니냐????]
유튜브에 Invincible episode 1 reaction 비디오 찾아보시면 해외 유튜버들 리액션이 참 찰집니다 크크크크크.
그리고 대망의 8화로 바로 스킵해버리면 (2~7화는 알아서 확인하십쇼 크크크)
아버지인 옴니맨은 인빈시블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슈퍼 히어로가 된 아들에게 진실을 이야기해줍니다.
(39초부터) 아버지가 말한 빌트럼 행성은 평화와 사랑의 종족이 사는 곳이 아니었거든요. 빌트럼인들은 철저한 약육강식의 논리로 강자만 살아남고, 살아남은 소수의 빌트럼 인들이 무력으로 다른 행성들을 정복하는 제국주의 종족이었습니다.
제국이 너무 커져서 빌트럼인만으로 침략 활동이 어려워지자 그들은 전략을 바꿨습니다. 훈련된 요원 1명씩을 행성에 첩자로 보내 오랫동안 스파이 활동을 하다가 행성을 약화시키고 집어 삼키는 거였죠.
옴니맨은 이제 아들인 인빈시블에게 빌트럼 제국의 동포를 위해 지구를 갖다 바칠때가 됐다고 말합니다. 완벽한 히어로인 아버지를 믿은 아들은 멘붕에 빠져 그럴리가 없다고 말하죠. 아빠는 엄마를 사랑하고, 나도 사랑하잖아요. 라고
그런 아들에게 옴니맨은 말합니다. 빌트럼인이 얼마나 오래 사는지 아냐고. 빌트럼인은 수천년을 사는 장수종족이었습니다. 지구에 찾아와 20년 가량 활동한 것은 옴니맨에게 있어 찰나에 순간에 불과했던 거죠. 그리고 아들을 설득합니다. 앞으로 네가 30살처럼 보이기도 전에 지구 문명은 멸망할거라고. 거기에 한마디를 덧붙이는데, 이게 가관입니다.
'내가 네 엄마를 사랑하는 건 사실이야, 하지만 엄마는 나한테..... [애완동물] 같은 거란다'
엄마를 애완동물이라고 부른 것에 충격받은 주인공은 아버지에게 전력으로 저항합니다. 그리고 그 싸움의 여파로 어마어마하게 많은 사람들이 잔혹하게 죽어나가죠. [맨 오브 스틸? 그건 애들 장난이에요, 더 보이즈요? 진라면 순한 맛이죠]
애초에 아버지에게 상대가 되지 않는 주인공은 정말로 고기덩어리가 되기 직전까지 옴니맨에게 구타당합니다.
옴니맨 : 지구가 빌트럼 제국의 일원이 되면 비약적으로 발전할 거다!, 전쟁도 없고, 배고픔도 없에고, 의료 기술은 몇 세기 앞서 발달할거야 인빈시블 : 만약 사람들이 저항한다면요? 옴니맨 : 이 행성 사람들을 위해 죽겠다는거냐? 그래 그렇게 하자! 17년만 더 기다리면 되지, 애는 또 낳으면 되니까!
........... 그래서 어떻게 해결되냐구요? 그건 직접 확인하시는게 좋을거 같습니다.
이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제가 그동안 가졌던 히어로물을 보는 관점이 뒤틀리거나, 혹은 완전히 바뀌어버렸습니다.
1. 일단, 히어로들은 그렇게 쉽게 죽지 않는다 (플롯 아머라고 하죠) 라는 개념을 알루미늄 호일 구기듯이 바스라지게 하거든요. 피와 피, 내장과 뼈가 보이는데요 덜덜덜....
2. 역사 책에서 제국주의의 해악 이런걸 글로 읽는 것보다, 위에서 말한 옴니맨의 논리를 들었을 때 왜 제국주의가 무서운 것인지
마치 심장 옆에 꽂힌 칼처럼 차갑지만 소름돋을 정도로 정확하게 이해되더군요. 역사속에 적힌 과거에 일어났던 일들은 옛날일이니까... 하고 넘어갔는데 옴니맨의 말을 듣고 있자니
'만약 지구인보다 더 강한 외계인이 저런 식의 논리로 무력 통치를 하려고 하면 어떻게 막지?' 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3. 이 애니메이션을 보고 나서 든 또 다른 생각은 '이거 완전 렉스 루터가 좋아할 만한 애니메이션 아니냐?' 였습니다. 선량하고 정의로운척 했던 외계의 강력한 히어로가 만약 우리를 배신한다면 어떻게 막을 것인가? 이게 핵심 주제니까요. 이제보니 아마존 프라임의 물주님인 제프 베조스가 대머리 세계 2등 부자인걸 보면 렉스 루터의 현실판 버젼 아닌가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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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 보고 싶은데 하필 아마존프라임..
그건 그렇고
샌드라 오가 그레이 아나토미의 샌드라 오가 아닌 [기생충이 아카데미 상을 탈때 울먹이던 분]으로 먼저 얘기 된다는 게..
뭐 그레이 아나토미는 지금도 방영되고 있지만 샌드라 오는 이미 예전에 하차하기도 했고 한국에서 예전의 인기는 없으니..
그레이 아나토미를 엄청 재밌게 봤던 팬으로서 참 안타깝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