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병생활을 하다보니 스트레스가 차올라서 배설 비슷한 글을 뱉어내게 됐습니다. 글 구조는 대충 아버지의 투병생활 관찰기로 시작해서 안락사 반대자들을 비웃는 형태로 흘러가겠네요. 도입부가 제목의 뒷부분과 좀 다른 얘기라서 뜬금없을 수도 있으시겠지만 나름 재미있을 거에요. 다 쓰고 읽어보니 그럭저럭 수기 같은 맛이 나는 것 같네요. 뒷부분은 냉소적이며 어그로가 강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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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투병기

올해로 60세인 제 아버지는 간암 말기입니다. 간은 침묵의 살인자라고 하던데 참 그말이 맞더군요. 간암이 참 난데없이 찾아오더라고요.

작년 겨울 무렵부터 아버지가 이따금씩 설사를 하기 시작하더군요. 동네의 조그만 내과에서 별 진단을 내리지 못하길래 큰 병원에 가볼 것을 권유했습니다. 하지만 다니고 있는 내과면 충분하다고 큰 소리를 치더군요. 노인 특유의 고집이죠. 익숙한 길만 고집하는 버릇이요. 그 길이 지옥으로 직행하는 길일지라도 익숙하면 그게 최고라는 식이잖아요. 가족들도 삶과 일에 지쳐 있었고 억지로 데려갈 방도가 없었습니다. 본인이 싫다는 데 어떻게 하겠습니까. 애초에 저희 가족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설사에서 암을 떠올려 낼 지식이 있을 리 만무했구요.

그리고 아버지는 2개월 후에 미량의 피가 섞인 혈변을 누기 시작했고 가족들은 억지로 아버지를 대학병원으로 데려갔습니다. 대학병원 진단 결과 간암 말기 판정이 나왔지요. 설사 말고는 아무 전조도 없었음에도 뜬금없이 말기랍니다. 1기도, 2기도 아닌 말기요. 도저히 손써볼 방법이 없어서 항암치료고 이식이고 할 게 없습니다. 그냥 고통이라도 덜 겪게 혈관에 좋은 약이나 항생제, 진통제나 몇알 먹이는 게 다죠. 그 뒤로 몇주는 그럭저럭 멀쩡하더군요.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혈변이 통제가 안되는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아버지는 중환자실로 직행해야 했어요. 그 뒤의 삶은 참혹했습니다.

5분에 한번씩 피똥이 나오더라구요. 아버지는 성인용 기저귀를 차야 했고 괄약근이 통제가 안되서 시트 사방팔방에 대변 자국이 튀었습니다. 그걸 치우는 건 가족의 몫이었지요. 피를 나눈 형제라고 해도 감당할 일이 아니었습니다. 삼촌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적당한 걱정의 말을 남길 뿐이었죠.

혈변을 받아내는 과정을 자세히 설명해볼까요. 아버지가 벌떡 일어나서 말도 없이 바지를 내립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기겁을 했습니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바지로 혈변이 퍼부어질 테니까요. 저는 황급히 달려들어 잘 벗겨지지 않는 기저귀를 억지로 뜯어내고 좌식 변기를 들이밀어야 했죠. 그럼 피똥이 쏟아져 나옵니다. 그 다음엔 바닥에 튄 자국을 물티슈로 지워내고 몸을 가누지 못하는 아버지에게 억지로 기저귀를 입힙니다. 무슨 움직이지 않는 두꺼운 통나무를 들어내는 느낌이죠. 더러운 걸 떠나서 무겁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아요. 간신히 기저귀를 채우고 나선 침대에 눕힙니다. 그 뒤엔 변기를 세척해야 하지요. 그걸 5분에 한번씩 해야 했어요. 그런 일을 반나절 하고 가족과 교대하니 몸살이 오더군요. 하지만 몸살이 오건 말건 삶은 계속되는 것이죠. 저는 다시 똥을 받으러 가야 했어요.

얼마 뒤 혈관 수술을 해서 피가 항문으로 쏟아져 나오는 증상은 막아낼 수 있었습니다. 상태가 호전되서 어떻게 퇴원은 할 수 있었죠. 하지만 혈변이 전부가 아니었어요. 아버지의 배에 복수가 차오르기 시작했습니다. 혈변 증상 이전에도 복수는 어느 정도 차 있는 상태였지만 퇴원 시기에는 심각할 정도로 배가 부풀어 올라 있었지요. 임산부의 배보다도 더욱 부풀어오른, 그저 커다란 덩어리였어요. 바늘을 톡 꽃으면 둑이 터지듯 물이 쏟아져 내릴 기세였습니다. 차오른 복수의 압력 때문에 장이 꼬여서 복통이 생길 정도였죠.

때문에 아버지는 배에 카테터를 삽입하고 호스로 연결된 500ml 비닐 백으로 복수를 3L씩 뽑아내야 했지요. 복수는 참 노랬고 비릿한 냄새가 났습니다. 시도때도 없이 차올랐고 수도 없이 뽑아야 했어요. 그저 얌전히 복수를 뽑아내는 것뿐이라면 할 만한 일이었겠죠. 비린 냄새 나는 역겨운 액체가 손에 몇방울 묻는 정도니까요.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암세포가 온몸에 퍼져 허약해진 재생력 때문인지 카테터 삽입구에서 끝없이 복수가 새어 나왔어요. 새어 나온다고 하면 한방울씩 찔금찔금 나온다고 생각하실 수 있을텐데 환자복 바지가 흠뻑 젖고 시트가 엉망이 될 정도였죠. 그걸 처리할 방법은 마땅치 않았습니다. 흠뻑 젖은 거즈를 떼어내고 소독약을 바른 뒤 새 걸 더 두껍게 붙이는 방법 밖에 없었어요. 아버지는 복수 때문에 퇴원과 입원을 반복하며 병원을 들락날락 거려야 했습니다.


2. 자업자득

하지만 저는 아버지를 그다지 동정하지 않습니다. 평소에 아버지의 행태를 경멸해 온 것도 있었지만 그걸 떠나서 지금 이 꼬라지로 죽게 된 것은 순전히 아버지의 잘못입니다. 니코틴 중독이거든요. 혈변을 쏟아내고 복수가 터져 나오는 순간에도 아버지는 담배를 피우겠다고 난리를 쳐댔습니다. 담배를 피우면 간 상태가 더 악화될테니 잠깐 참아내야겠다는 자제심 따위는 기대할 수 없습니다. 히로뽕 중독 말기 환자의 몰골과 비슷하다고 해야 할까요. 피우고 싶으면 피워야 하고 막으면 죽자고 난리를 피니 거의 짐승의 지경이죠. 인간은 미래의 일을 계획하고 인내할 수 있어야 인간이잖아요. 순간적 저열한 욕구만 머리에 가득 찬 것을 어떻게 인간이라고 할 수 있겠어요. 그건 개죠.

간호사들 말로는 그나마 가족들이 있을 때나 통제가 되는 수준이지 가족이 잠시라도 자리를 비우면 담배를 달라며 개판을 친다고 합니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욕지거리를 해댔다나요. 때문에 온갖 참혹한 환자를 다 받아내는 요양병원에서도 감당이 안되서 하루만에 쫓겨났습니다. 지금은 보호자가 붙어 있을 수 있는 지역 종합병원에 겨우 눈칫밥 먹으며 들어간 상황이지요. 아버지는 하루에 몇 번이고 비루한 몸을 질질 끌고서는 주차장으로 내려가 담배를 뻑뻑 피워댑니다. 담배를 피우고 나면 타르 색 같은 검누런 가래가 끓어오르고 죽을 것 같은 기침이 터져 나오거든요. 흡연으로 인해 호흡기까지 맛이 가서 산소마스크 비슷한 걸 쓰고 연기를 들이마시는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담배를 피워댑니다.

아버지는 하루가 다르게 쇠약해져 갔습니다. 85kg였던 몸무게가 60kg으로 곧이어 51kg으로 떨어질 정도였으니까요. 피부는 가뭄에 타들어간 논처럼 말라 비틀어지고 팔다리는 젓가락처럼 앙상합니다. 일어서면 두 다리가 후들거리죠. 볼과 입가는 무슨 만화적 기아 표현을 연상시킬 정도로 움푹 들어간 채고요. 배만 터질 듯이 불룩합니다. 그런 아버지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것도 기운이 빠져서 바닥에 한참이고 주저앉아야 했습니다. 서 있을 힘마저 없는 겁니다. 그렇게 기력이 없어진 아버지는 화장실에 간다고 거짓말을 하고는 칸막이 안으로 숨어들어가 담배를 피우는 꼼수를 부렸습니다. 화재경보기가 울리니 간호사들이 기겁을 할 수밖에 없죠. 환자에게 말해봐야 개보다도 말을 알아먹지 못하니 보호자에게 하소연할 뿐입니다.

기력이 다 빠진 가족들이 애원을 합니다. 지금 당신이 담배 때문에 죽게 생겼는데 꼭 이래야 하냐고. 지금 당신 뿐만 아니라 우리가 다 죽게 생겼다고. 우리는 간병인을 쓸 여력이 없다, 담배만 끊어내면 요양병원에 들어가 간병인의 도움을 싸게 받을 수 있고 우리도 한숨 돌릴 수 있으니 생각을 다시 해보자고 간곡하게 말을 합니다. 하지만 들은 척도 하지 않습니다. 요양병원은 약이나 시설이 시원찮느니 의사가 변변찮느니 온갖 핑계를 댑니다. 실은 담배를 피우고 싶은 것 뿐이지요. 중독자의 눈에는 밤을 새며 옆에서 쪽잠을 자는 가족의 모습 따위 보이지도 않는 것입니다. 그런 것에는 관심이 전혀 없어요. 담배만 피우게 해주면 그만이고 안 해주면 죽일 년놈들이 되는 것이죠.

이렇게 아버지를 혐오하는 제가 하루종일 달라붙어 극성으로 병간호를 한다는 게 참 인생의 아이러니죠. 딱히 이유는 없습니다. 제가 간병을 하지 않으면 다른 가족들이 더 고통을 받는다는 책임감 말고는 전혀 다른 이유가 없어요.


3. 치명타

간에 생기는 병은 참 사람을 추악하게 만들더군요. 아버지에게 온갖 합병증이 찾아오기 시작했고 몰골은 더 추해져 갔습니다. 간경변, 복막염에 이어 장 천공인지 뭔지가 찾아오네요. 장에 구멍이 뚫리는, 고 신해철 씨가 돌아가시게 만든 그 병입니다. 간헐적으로 끔찍한 복통이 일어났고 아버지는 얼굴을 있는 대로 찌푸리며 신음을 흘려댑니다. 진통제를 맞아도 잠시 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