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요즘 코로나때문에 많이 답답하시지요.
관종끼가 있어 또 종알종알 일상썰을 풀러왔습니다.

1.
최근 제 삶에 있어 낙장불입의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사실 그동안 인생의 중요한 확장팩을 열까말까 꽤 오랫동안 고민을 해왔습니다.
이 확장팩을 여는 순간 저와 제 남편의 인생은 완전히 바뀌어버리기 때문이지요.

[System]
새로운 맵에 진입하시면 난이도가 [이지]모드에서 [헬]모드로 바뀝니다.
- 1년내로 경제적인 어려움이 60%상승합니다. 매해 조금씩 더 상승합니다.
- 여가시간이 90% 감소합니다.
- 집안일이 200% 늘어납니다.
- 이동의 제약이 생깁니다.
- 잠을 제대로 잘수없게됩니다.
- 영구적으로 걱정거리가 생깁니다.
- 1년간 육체적인 고통이 수반됩니다.
- 매우 낮은확률로 당뇨, 실명, 죽음 등 영구적인 장애를 얻을 수 있습니다.
보상: 귀여움, ???
일단 시작하시면 이전 모드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시작하시겠습니까? [YES]/[NO]

물론 이것보다 더 다양한 변화가 있겠지만, 제게는 보상에 비해 치뤄야할 대가가 너무나 큰것이라고 느껴서 엄두를 내지 못했던 부분입니다.
그런데 반면 이 맵을 안열고 죽는다면, 인생의 중요한 걸 경험해보지 못하고 죽는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 이 맵에 대한 호기심을 거두지는 못해왔습니다.
대체, 이것이 뭐길래 사람들이 다들 하는 것인가? 저 보상의 '귀여움'은 별로 좋아보이지 않은데 일단 저 보상을 얻은 사람들은 더이상 이전으로 돌아가지 못하겠다고 하는 것인가?

이런 등등의 고민이 있어 새로운 맵이 열리는 가능성을 계속 열어는 두었습니다.
새로운 맵이 열리려도 선행 퀘스트들을 해야하고, 선행 퀘스트를 해도 맵이 열린다는 보장도 없으니까요.

그런데요,

진짜 열렸습니다.

아아아아! [절규]


2.

사실 처음부터 [맵]이 열렸다고 알지는 않았습니다.

계속 머리가 아프고 열이나고 으슬으슬 한기가 돌았지만, 시국이 시국인지라
' 코로나인가? 아냐 인후통이나 기침은 나오지 않아. 감기인가? 아니면 요즘 코로나 때문에 사람들이 코로나 증후군을 앓는다던데 나도 그런건가?'
를 계속 생각하면서 지내왔지요.
남편에게 가서 혹시 열나는지 재달라고 남편 손을 제 이마에 가져다 대면 남편은 머리를 절래절래 저으며 이마를 때려줬지요.
싸움을 걸면 나도 응수해야죠. 등짝을 툭탁툭탁 때려줬습니다.
나중엔 애교인줄 알더이다.
머리를 쓰다듬어 주더군요.

그리고 어느순간부터 두통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두통은 찌릿! 거리는 편두통과는 달리 머리 전체적으로 욱신욱신거리는.. 마치 막걸리 4병과 와인2병을 소주에 섞어먹고난 다음날의 숙취같은 느낌과 유사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 열나고, 두통에, 으슬거림에 컨디션도 별로고.. 코로나인가? 기침은 안나오는데.'

컨디션이 별로니 일하는 것도 죽을 맛이더군요. 집중도 잘 안되고 머리도 너무 아프니 속도 메스껍게 느껴지고요.
위염증상도 강화되더군요. 계속 속이 아프고 소화도 안되고 입맛도 없습니다.
남편에게 상의했더니 남편은 근엄하게 고개를 끄떡거리며 말했습니다.
" 회사가기 싫지?"
" 응."
" 그래서 그래."

넵. 갑자기 학교가기 싫어 배가 아프다가 정말로 배가 아프게 된 어린애 취급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양치하다 토한 이후로 설마, 하고는 테스터기를 사용해보았습니다.

넵. 두줄.


3.
사실 그동안 내가 임신을 하면 남편이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궁금해왔습니다.
뭐 어디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는 것처럼 크게 기뻐하지는 않을건 알고있었습니다.
애라는 것에 대한 부담감은 양쪽이 다 가지고 있었고, 그래도 아예 안가지는 것이 맞을까에 대한 확신도 없었기에 둘다 열어는 두되, 그렇다고 너무 노력하지도 말자의 주의였으니까요.

멘붕하려나?
정도의 느낌으로 남편에게 물어봤습니다.

" 남편, 나 임신하면 어떨꺼 같아?"
" 뭐 어떻하긴, 낳아야지."
" 좋을거 같아?"
" 좋긴 뭐가 좋겠어. 걍 그런가보다 해야지."

그래서 남편을 데리고 방으로 들어가 쫄레쫄레 테스터기를 보여줬습니다.
처음엔 그게 뭔지 이해를 잘 못하더라고요.
그래서 확인사살을 해줬습니다.

" 두줄."
" 아.."
" 임신일지도 몰라."
" 병원가서 의사소견을 물어봐야겠네."
" 응 그래야할듯."

넵. 단백하게 끝났습니다.

그런데 이후 남편이 날 보는 표정이 묘하더군요.
어디서 많이 본 표정입니다.

아. 어디서봤는지 기억이 났어요.

강아지가 임신해서 배가 불러있을때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강아지보며 짓는 표정입니다.
[기특+측은]

에라이!


4.
일단 현재상태는 막걸리 4병과 와인2병을 소주에 섞어먹고난 하루종일 토하고난 다음날의 상태와 같습니다.
저는 설마 지하철에서 멀미를 느낄것이라고 생각은 한번도 못해봤습니다.
예전 회사에서 임신한 여직원중 한명이 지하철 멀미가 심해 회사를 못다니겠다고 퇴사했을때 좀 오버아닌가, 생각한적이 있는데 그 심정이 드디어 이해가 갑니다.
친구중 한명이 임신기간 내내 택시타고 다녔다고 했는데 출근거리가 짧다면 저도 해봤을것 같습니다.

살면서 멀미는 요동치는 배에서 느껴볼까 말까한 정도였는데 말이지요.
출퇴근 시간이 1시간 10분정도로 서울에서는 꽤 양호한 정도인데도 불구하고 지하철을 탄 이후부터 중첩데미지가 올라갑니다.
30분까지는 버틸만한데 1시간가까이 되서는 아 언제 내려서 토해야하나, 고민해야하는 단계입니다.

출근하다 처음으로 회사 엘베에서 엘베올라가는 시간을 못버티고 토한 이후로 아침은 못먹고 출근합니다.
(마스크 쓰고 토해보신적 있나요...벗을 시간도 없거군요. 디아블로의 저주받은 어미같이 토가 나옵니다. 노빠꾸더라고요. 다행히 먹은게 거의 없어 치우기도 쉬웠습니다...일찍 출근했기에 망정.. 씻고 치우는데 30분은 걸렸습니다.)

거의 빈속이면 토를 좀더 길게 누를 수 있어요. 회사가서 화장실에서 토하거나 도착해서 가라앉힐수 있습니다.
앉아서 눈감고 가면 좀더 낫습니다. 요즘 코로나라 사람이 상대적으로 적어 가끔은 앉아가는데 그럼 확실히 좀더 나아요.

코로나라 절반은 재택, 절반은 출근인게 너무나 감사한 일이지요.


5.
아직은 회사에 말은 못했습니다.
임신=퇴사인지라.
작은회사라 대기업같은 복지는 당연히 없습니다.
하지만, 제인생의 변화도 아직 다 못받아들였는데 아직 수입이 절반 줄어드는 것까지 받아들이긴 조금 어려워서 조금만 더 있다가 이야기는 할 예정입니다.

옆자리 담배피는 신입 (제 부사수라 계속 혼자 우기는)의 담배냄새가 슬프지만 너무 잘 느껴집니다.
둔한편이라 그동안은 크게 느끼지 못했는데 임신하니 왜이리 역겨운걸까요.
담배를 막 피고 자리에 오면 저는 조용히 자리를 피하고 회의실가서 30분정도 일하다 옵니다. 하지만 문제는 몸에 벤 담배냄새때문입니다.
담배피는게 죄는 아닐지언데 몸에 벤 담배냄새때문에 속에서 신물이 계속 올라오니 죽겠습니다.

2시간마다 쿨타임으로 토가 나오길래 1시간 30분마다 적당히 노트북들고 회의실가서 일하며 가라앉히며 오기는 하는데 매번 그러기도 어렵기도 하고 같이 일하는 프로젝트도 있어서 힘들더군요.
어제는 신입이랑 1시간 회의하고 나와서는 화장실가서 토하고 왔습니다. 좁은 공간에 있으니 쿨타임도 빨라지더군요.

하루에 몇번씩 토하는 것도 참 곤욕이더라고요. (뭘 제대로 먹지를 못하니 신물만 토하지만)
앞으로 어떻게 회사를 다녀야 하나 고민이 많습니다.
일단 코로나 덕에 돌아가면서 출근하는데, 앞으로 신입이 나오는 날은 출근을 좀 피해보는 방법으로 버텨봐야겠습니다.

길에서도 담배피는 사람들 너무 많습니다.
지하철 1시간 타고 올라와서 바로 맡으면 바로 안에서 올라오더군요.
지하철 근처와 횡단보도 앞에서 담배피우는 사람이 그렇게 많은지 이제야 알았습니다.



6.
산부인과에 가면 퀘스트가 어마어마하게 많습니다.

다음 방문할때 기형아 검사를 해야하는데 여러종류가 있고, 태아보험을 들어야하고, 국민행복카드를 신청해야하고 보건소에도 임산부 등록을 해야한다 합니다.
정말 시작마을에서 퀘스트 받듯, 퀘스트가 넘쳐나더군요. 사실 당장받는 퀘스트 말고도 해야할것들이 앞으로 더 많아지겠지요.

여행다닐때도 시간단위로 엑셀표로 정리해서 다니는 타입인데 갑자기 알아봐야할것이 너무 많아지니 아예 놓아버리게 되었습니다.
일단 주말에 하자하고 일단 퀘스트는 받을 수 있는 만큼 받아서 거실 테이블위에 늘어놨습니다. 뭐부터 해야하는지 엄두가 나지 않더군요.

곧 공략집을 위해 결국 맘카페에 가입해야겠습니다.

남편은 반짝거리는 얼굴로 말합니다.
" 맘카페 가입하면 나 아이디 알려줘. 플스 나오나 보게."


7.
초음파를 보고 심장소리를 듣고왔습니다.
새끼손톱보다 조그만한 녀석이 심장이 있다고 심장뛰는 소리가 들려오는데 왠지 눈물이 나오더군요.


의사가 말합니다.
" 입덧때문에 힘드시죠?"
" 네.. 조금요."
" 이제 시작이라 앞으로 더 심해질거에요."
" 네."
" 물만 마셔도 토하는 산모님들이 계신데, 애는 괜찮으니 걱정마세요."
" 네."


아직 물만 마셔도 토하는 단계는 아니라 다행인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여기서 더 심해진다니 얼마나 더 힘들게 될까 기대(?)도 됩니다.


8.
아직 안정기가 되려면 한달은 넘게 남았습니다.
아직 조그마한 녀석이지만 사라지면 너무 슬플것 같습니다. 부디 별탈없이 뱃속에서 잘 커줘야할텐데 말입니다.

아직도 수시로 메스껍고 밥도 제대로 못먹고있지만 그나마 뱃속에 잘 있다는 신호같아서 기쁩니다.
가끔 메스꺼움이 가라앉으면 오히려 걱정이 조금 들정도입니다.

모성애고 뭐고 아직은 아무것도 없는 것 같지만, 그래도 뱃속의 이녀석이 부디 건강하게 잘 지내기를 기원할 뿐입니다.
부디 이상없이 건강하게 태어나길 빌어주세요.

그리고 고랩분들의 조언은 항상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