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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9/10/21 10:44:22
Name aurelius
Subject [일반] [역사] 러일전쟁에 대한 짧은 이야기 (수정됨)
지금으로부터 105년 전, 1905년 5월 27일,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 일어났습니다.
러시아의 막강한 발틱함대가 열등한 황인종의 나라 일본에게 전멸당하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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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일전쟁에 대한 관점은 정말 다양합니다.

20세기의 시작을 알린 최초의 "현대전"으로서의 러일전쟁

한반도의 병탄을 완수한 침략전으로서의 러일전쟁

황인종 대 백인종 간의 전쟁으로 황인종이 승리한 성전으로서의 러일전쟁

일본의 군국주의화를 가속화시킨 사상전으로서의 러일전쟁

러시아 제정을 붕괴시킨 촉매제로서의 러일전쟁


러일전쟁이라는 것은 정말 역사적으로 매우 흥미로운 사건임에 분명합니다. 
그럼 이 러일전쟁이 일어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1. 먼저 러시아 제국의 "동방진출"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러시아는 겨울에도 얼지 않는 부동항이 필요했고 그러한 부동항을 중국으로부터 또는 조선으로부터 확보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러시아는 영국과 전 지구적인 차원에서의 냉전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1885년 러시아는 조선의 불안정한 상황을 이용해서 조선의 영흥만을 조차하려는 시도를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시도는 영국의 개입(거문도 점령 사건)으로 무위도 돌아갑니다. 영국은 조선의 거문도를 점령하면서 러시아와 조선 정부 모두에게 경고를 한 셈이죠. 


러시아는 동아시아에 효과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하려면 '철도'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프랑스로부터 차관을 들여와 시베리아 횡단 철도를 건설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철도를 통해 육군을 수송하고 부동항을 확보하여 해군도 주둔시키는, 즉 유럽과 극동아시아 두 지역에서 각각 세력을 떨치고자 했습니다. 그 의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도시가 바로 블라디보스토크, 번역하자면 "동방의 정복자"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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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문제는 역시 '부동항'. 어떻게 부동항을 획득할 것인가가 문제였죠. 

이때 청일전쟁은 러시아에게 좋은 구실을 주었습니다.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청나라에게 거액의 배상금과 함께 요동반도 할양을 요구합니다. 그런데 러시아는 프랑스와 독일등의 국가를 꼬드겨서 일본에 압력을 행사하게 됩니다. 프랑스는 러시아와의 동맹 그리고 러시아 시베리아 철도의 최대주주로서 입장으로 러시아를 지지했고 독일은 러시아의 관심을 계속 극동지방에 고정시키고자 러시아를 지지했습니다. 

그 결과 일본은 전쟁에서 승리했음에도 불구하고 전리품을 얻지 못했고 요동반도를 청나라에게 반환하라고 했던 러시아는 오히려 자신이 청나라와의 밀약을 통해 요동반도를 점령했습니다. 

일본은 그러한 러시아의 행동에 대해 엄청난 분노를 느꼈습니다. 

하지만 일본은 러시아를 매우 두려워했습니다. 

1891년 러시아의 황태자 니콜라이 2세가 일본을 방문했을 때 그에 대한 암살미수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이때 일본은 러시아와의 마찰을 피하고자 온갖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메이지 천황이 직접 니콜라이 황태자를 위문하고 일본인들은 수만통의 편지를 보내면서 사죄하고, 어떤 여인은 심지어 자결을 하면서 일본인을 용서해달라고 빌기까지 했습니다. 예전 우리나라에서 리퍼트 미국대사가 습격당했을 때의 일화가 생각나는 대목이죠. 어린이들이 리퍼트 대사의 쾌유를 비는 공연을 하는 등... 

그러나 조선을 발판으로 대륙에 진출하고자 했던 일본의 입장에서 삼국간섭 이후 러시아의 행보는 직접적인 안보위협이었고 러시아의 시베리아 철도 계획은 일본인들로 하여금 엄청난 위기의식을 심어주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러시아의 철도가 완공되기 전에 러시아를 쳐야 한다는 주장을 스스럼없이 내놓기도 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신문들도 반러감정에 편승해 러시아의 위협에 대해 시종일관 보도했습니다.

일본 매스컴은 특히 의화단 사건에서 러시아군이 보여준 군기문란과 청나라인들에 대한 학살을 보도하면서 일본인들로 하여금 러시아를 증오하도록 부추겼습니다.   

물론 국력의 격차는 현격했습니다. 

일본이 제 아무리 청나라에 승리한 동아시아의 강국이라고 한들, 러시아와 같은 유럽열강에 비해서는 한주먹거리도 안되는 열등한 나라였던 것이죠. 

2. 그럼 일본은 어떻게 개전을 결심할 수 있었을까요?

일본은 자국의 열악함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이를 보완할 방책을 찾고자 했습니다. 그 결과가 영일동맹이었습니다.

당시 일본의 정치인들은 국제정세를 읽는 데 탁월한 식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영국과 러시아 간의 갈등을 잘 알고 있었고 영국이 러시아를 견제할 동맹국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영국은 청나라를 통해 러시아를 견제하고자 했지만 청일전쟁에서 청나라가 보여주었던 무능, 그리고 의화단 사건에서 보여준 무능은 영국을 대단히 실망시켰습니다. 

그리하여 일본은 영국의 유력자들을 설득할 수 있었고 영일동맹을 체결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영일동맹은 처음부터 러시아를 겨냥한 동맹으로 영국과 일본 간의 '군사정보교환' 등도 명시하고 있었습니다. 

영일동맹이 체결되자 일본은 축제의 분위기가 되었습니다. 


수천명의 군중들이 영국 국기를 흔들면서 거리로 나왔고 일본이 영국과 대등한 동맹을 체결했다는 사실에 몹시 흥분했습니다. 

당시 영국에서 유학중이던 나쓰메 소세키는 이러한 상황을 전해 듣고는 이렇게 평했다고 합니다. "마치 가난한 집의 딸이 부잣집 아들과 결혼을 해서 너무 기쁜 나머지 가난한 집안에서 동네방네 떠들면서 춤을 추는 모양새다" 



물론 영일동맹만으로 안심할 수 없었습니다.

영국이 러시아와 대신 싸워주는 것은 아니었으니까요.

그렇기 떄문에 일본에서도 주전파와 협상파가 나뉘게 되는데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이토 히로부미는 대표적인 협상파였고
야마가타 아리토모, 고무라 쥬타로, 가츠라 타로 등은 주전파였습니다. 

주전파는 단기전으로 러시아를 격파하고 강화를 할 수 있다면 승산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토 히로부미의 협상이 실패한 후 개전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3. 최초의 현대적 총력전으로서의 러일전쟁

러일전쟁은 단순한 전쟁이 아니었습니다. 20세기의 서막을 알린 최초의 현대전이었습니다. 

국가의 모든 역량이 하나의 전쟁에 투입된 총력전이었습니다. 일본은 동원 가능한 인력을 총동원해서 전쟁에 임했고 공장들은 총과 총알을 생산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전쟁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일본의 외교관들은 영국과 미국에 가서 치열하게 협상을 했었죠.

사실 차관을 확보하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영국 정부나 미국 정부의 의지와는 달리 은행가는 엄연히 '민간업자'였기 때문에 전쟁에서 질 거 같은 상대한테 돈을 빌려주길 꺼렸기 때문이죠. 하지만 유대계 미국인 은행가는 야곱 쉬프는 유대인을 대량 학살했던 러시아 제국에 대한 반감 때문에 일본에 돈을 빌려주기로 했습니다. 


JAKOB SCHIFF

 다른 한편 러일전쟁은 나중에 1차 세계대전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참호를 파고 서로 사지로 진격하는 참호전의 탄생을 보여줍니다. 서로 참호를 파고 현대적 야포와 현대적 기관총으로 요새화된 곳에 진격했고 이에 따라 사상자는 엄청났습니다. 한 시간만에 수천명이 도륙당하는 상황이 최초로 펼쳐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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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으로 203 고지 전투에서는 고지를 점령하기 위한 단일 전투로 3만명이 넘는 일본군이 사망했습니다. 

그런데 전쟁은 전투현장에서만 벌어진 게 아니라 정말 전방위적으로 전개되었습니다.

일본은 영국과 미국의 호의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 엄청난 규모의 '프로파간다'를 했었고 전쟁의 프레임을 '문명(일본 外 영국, 미국)' 대 '야만(러시아)'으로 잡았고 러시아는 반대로 전쟁을 '백인종' 대 '황인종'의 대결 구도, 즉 황화론(Yellow Peril) 구도로 프레임하려고 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일본은 현대적 의미의 첩자를 운용했는데 그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이 "아카시 모토지로"라는 사람입니다. 그는 탁월한 어학실력을 인정받아 일찍이 해외무관으로 명성이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러일전쟁이 임박하자 그는 육군본부로부터 1백만엔을 위탁받았는데 이는 일본 정부의 일년 세입 중 1/250에 달하는 거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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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시 모토지로(1864~1919)


그는 그 거금으로 러시아, 영국, 독일 등지에서 활동하면서 반러시아 세력을 규합하고 폴란드, 핀란드의 민족주의자들을 부추겼고 심지어 블라디미르 레닌 또한 그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이토 히로부미는 후일 그가 "10개 사단도 못하는 일을 해냈다"고 칭송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후일 제7대 대만총독으로 부임하게 됩니다. 

4. 러일전쟁에서 일본의 승리의 충격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했다는 사실은 전 세계에 충격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그 누구도 일본이 승리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고, 쓰시마 해전에서 일본해군이 발틱함대를 전멸시킬 것이라고는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기 때문이죠. 

중국 혁명의 아버지는 쑨원은 이를 두고 다음과 같이 평했습니다.

"일본이 러시아에게 승리한 그날로부터 전 아시아의 민족은 유럽을 타도하고자 독립운동을 일으켰습니다. 이집트에서 독립운동이 일어났고, 페르시아나 터키에서도 독립운동이 일어났으며, 아프가니스탄이나 아랍에서 독립운동이 일어났고 인도 사람도 이 시기부터 독립운동을 일으켰습니다. 이런 이유로 일본이 러시아에 승리한 결과로서 아시아 민족의 독립이라는 커다란 희망이 생긴 것입니다" (1924, 쑨원)

인도의 독립운동가 발 간다하르 틸라크도 러일전쟁을 사례로 들면서 사람들을 고무했고 미얀마의 국가주석이 된 바모도 러일전쟁 승리의 감동에 대해 "버마인은 영국의 통치 하에 들어선 이래 처음으로 아시아 한 국민의 위대함에 대해서 들은 것이다. 그것은 우리에게 새로운 자부심을 주었다. 역사적으로 보면 그 승리는 아시아가 자각하는 발단이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한 헝가리 학자는 "일본인의 승리가 보도되자 아시아, 아프리카의 시장과 여관에서 화제에 올랐고, 열광적인 이슬람교도는 러시아의 완전한 패배를 열망하였다"고 말했습니다.

러일전쟁의 승리 이후 폴란드의 민족운동가들도 일본을 찾아왔고, 중국의 지식인들도 일본에 기댔고 베트남의 민족운동가들도 대거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심지어 이집트에서도 <떠오르는 태양>이란 책이 발간되면서 일본처럼 아랍인들도 각성해야 한다는 주장이 널리 퍼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일본은 이들의 기대를 모두 배신해버렸습니다.

일본은 조선을 합병하였고 중국에 21개조항을 요구하면서 중국 민중을 모욕하였고 베트남이나 미얀마 유학생들을 멸시하고 나중에는 이들의 귀국을 강요했습니다. 그리고 러일전쟁에서의 승리에 지나치게 고무된 나머지 일본 국민은 그 어떤 상대도 이길 수 있다는 허황된 믿음을 품게 되었고, 러일전쟁을 직접 경험하지 못한 후세대 장교들은 더욱 무모해졌고 광신적이게 되었습니다.

러일전쟁은 일본을 열강의 반열에 올려놓은 동시, 파멸의 길을 열어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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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taljet
19/10/21 11:28
수정 아이콘
불과 7년전의 미국-스페인 전쟁에서만 해도 총에 맞아 전사한 군인보다 황열병으로 죽은 군인들이 많았는데 러일전쟁에서는 이게 완전히 바뀝니다.
'현대전'으로서의 러일전쟁에서 나타난 기관총의 무시무시한 살상력은 그야말로 의미심장한 것이었죠.
정작 서구권에서는 지구반대편에서 이류 문명국들이 벌인 야만적 해프닝으로 치부하고 별다른 교훈을 얻지 않은 결과...
19/10/21 11:33
수정 아이콘
이 당시의 일본은 진짜 미친것 같긴 해요;;
능력자들이 즐비한 느낌이라고 해야하나.. 솔직히 한일합방과 연결되기때문에 곱게보이진 않는데, 대단하다는 생각은 많이 듭니다.
-안군-
19/10/21 11:43
수정 아이콘
그렇게 승전뽕을 거하게 마신 일본은 훗날 미국의 싸대기를 냅다 갈기게 되는데...
류지나
19/10/21 11:46
수정 아이콘
일본 입장에서는 엄청난 쾌거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러일 전쟁에서 일본은 잘못된 것들을 배우게 됩니다.

[1] '결전'을 준비해서 승리하면 어떠한 강국이라도 거꾸러뜨릴 수 있다.
쓰시마 해전의 대승으로 지지부진하던 전황에 종점을 찍고 승리를 가져간 경험으로, 일본은 이러한 착각에 빠지게 됩니다. 그 결과 총력전이라는 개념을 뒤늦게나 깨닫게되지요. 해전 한 방으로 다른 나라를 항복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일본이 깨달은 건 필리핀 해전이 끝난 뒤........

[2] 공세는 중요하며, 가열찬 공격중심의 교리로 장비와 화력의 열세를 메꿀 수 있다.
러일 전쟁 때도 일본은 이미 양국의 격차를 알고있었지만, 상대적으로 공세로 나온 것은 일본, 수세로 나온것은 러시아였습니다. 그 결과 일본은 부족한 장비와 물자, 열세인 화력과 장비 그리고 기술력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말하는 '정신력'으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에 이 교리를 그대로 대입한 결과, 중국이나 러시아군과는 비교도 안되는 강군을 만나자마자 이 교리는 산산조각으로 부서지게 되지요...
BERSERK_KHAN
19/10/21 12:02
수정 아이콘
러시아도 내부 사정만 좋았더라면 전세를 유리하게 끌고 나갔을텐데 피의 일요일 사건으로 촉발된 내란이 러시아를 협상장에 나오게 만들었죠. 영미 차관을 받아가며 싸웠음에도 육전에선 러시아가 패해도 교환비를 유리하게 가져가는 피로스의 승리가 계속됐으니까요. 물론 가정은 의미 없고 당시 일본이 유능했음은 변함없습니다. 그리고 지적해주신 바와 같이 결전 사상과 정신론같은 러일 전쟁의 그릇된 교훈이 결국 일본을 파멸시켰죠.
꼬마산적
19/10/21 13:08
수정 아이콘
그 피의 일요일 사건에 위의 아카시 모토지로 가 관여햇다는 설이 많더라고요
거의 정설이라던데 잘은 모르겟네요
19/10/21 12:29
수정 아이콘
첫끝빨이 개끝빨..
크레토스
19/10/21 12:34
수정 아이콘
뭐 일본이 영국의 지원을 받고 나름 준비를 철저히 해서 이겼지만.. 한끝 차이로 힘들게 이겼을 뿐더러 원하던 배상금은 한푼도 못 받은 걸 생각하면 정신차렸어야 했죠
사실상 일본에겐 개전자체가 국운을 건 도박이었던 걸 감안하면 얻은게 리스크에 비해 매우 적은 전쟁이었는데...
이겼다는 결과에만 집중해서 반성을 안한게 결국 폭주를 불러온거 같아요.
꼬마산적
19/10/21 13:09
수정 아이콘
러시아 땅덩어리 보소 와!!
독일은 저걸 다 먹으려고 햇다니 덜덜
위너스리그
19/10/21 13:31
수정 아이콘
크 재밌습니다 추천추천!!
닭장군
19/10/21 13:31
수정 아이콘
(수정됨) 이번에도 단기적으로 격파하면 쫄아서 강화협상하겠지?
- 어떤 곶 아니 만을 공격하며...
세로가로
19/10/21 14:32
수정 아이콘
당시 일본에서는 신병들이 뤼순으로 배치받으면 가족들이 눈물 바다가 되었다고 하죠. 총 사령관의 아들 2명도 뤼순에서 전사하고, 사령관 본인도 결국에는 자살하고, 전투의 지옥도가 베르됭과 솜에 견줄만 했을텐데, 여기서 승리한 것이 일본에 엄청난 자신감을 준 것 같습니다. 일본의 가공할 희생 앞에, 세계 어느 열강도 감히 조선에 개입할 엄두도 못 내게 되는 것은 덤이고요.

차라리 뤼순에서 일본과 러시아가 건곤일척의 승부를 펼칠 때, 일본의 뒷통수를 쳐서 보급을 끊어버리고, 일본군이 패하게 만들거나, 아니면 아예 사단급 규모의 조선군을 일본의 동맹군으로 출병시켜셔, 전투 경험을 쌓게 하고 전투의 공을 인정받았더라면, 나중에 합병까지 가는 일은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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