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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9/02/14 18:50:45
Name Farce
Subject [일반] (수필) 사람 조각
사람 조각

0.
“On the contrary, a thousand different sentiments, excited by the same object, are all right:
Because no sentiment represents what is really in the object.
반면에 한 가지 사물에서 느껴진 천 가지 다른 느낌은 모두 옳다.
느낌이란 사물의 내용물과는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

David Hume - Of the Standard of Taste
데이비드 흄 - 취향의 기준에 대하여

1.
재활용도 못 하는 놈이 있냐?

서걱, 사각.
일회용 플라스틱 컵이, 쌓여있던 종이 팩을 짓누르면서 쓰레기통 안으로 밀려들어 갑니다.

타코벨에선 7달러가 안되는 돈으로 세트를 사서, 한나절을 배부르게 먹을 수 있습니다.
부리또 포장지, 감자튀김 상자, 작은 소스 통, 플라스틱 음료 컵을 아무렇게나 쥐고,
쓰레기통 위로 힘을 주어서 누르면 어떤 쾌감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미국에서는 사람들이 재활용을 잘 하지 않습니다.

정해진 규칙이 지켜지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종량제도 아닌, 상점에서 적당한 사이즈로 파는 비닐봉지가 모이는,
거대한 덤스터(Dumpster)는 대부분 단순히 쓰레기(Trash)라고 적혀있습니다.
그리고 쓰레기는 음식물 쓰레기와 구분하기 위해 있는 개념에 불과합니다.

몇달전만 해도, 저는 집에서 쓰레기를 세 곳에 나눠서 담았습니다.

하나는 먹는 배를 담던 오렌지색 택배용 종이상자였습니다.
아침에 일어난 제가 현관 밖에서 식탁 위로 올리는 신문을 포함해서,
여러 가지 고지서, 편지, 광고지, 쓸모없어진 강의 유인물이 내던져졌지요.

또 하나는 대부분의 재활용 쓰레기가 모이는 흰색 플라스틱 바구니였습니다.
시간이 널널한 오후가 찾아오면, 귀찮아도 더 무거워지기 전에 1층으로 내려갔습니다.
소주병은 소주 마대에, 플라스틱은 중앙에 있는 거대한 봉지에,
다른 종류의 유리병은 또 따로 모으는 것 같고, 맥주캔은 다른 캔과 구겨서 한 곳으로!

나머지 하나는 항상 새로운 종량제 봉투를 씌우는 것이 힘들어서,
애를 먹어야 했던 거실의 오래되서 조금 깨져있는 보라색 쓰레기통이었습니다.

몇 달 후라면, 저는 다시 한국에 돌아가서 저에게 익숙한 행위를 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 전에, 다시 더 몇 달 전으로 돌아가 보도록 하지요.

“머저리 새끼들! 재활용도 못 하는 놈이 있냐?”

혹시 어떤 장난감을 원하는 꼬마에게 전혀 다른 장난감을 손에 쥐여준 적이 있으신가요?
혹시나 그러면 그 아이가 그만 울고, 그만 토라지길 바라면서 말이지요.
대부분의 경우, 건방진 아이는 엉뚱한 장난감을 집어 던지게 되어있습니다.
그것도 부아가 치밀어서 아주 멀리 말이지요.
그러면 엉뚱한 장난감이었던걸 이미 알았던 삼촌이 그걸 지켜보곤,
느껴지는 크나큰 분노에 동참해서 애 뺨따귀를 때리지요.

대대의 쓰레기처리장이 담당 청소 중대가 바뀔 때마다 개판이 되는 이유는,
아마 대부분의 사람이 짐작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바뀌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요.

취사반 그놈들을 욕하면서, 내용물이 있는 채로 흩어진 요거트 껍데기를 플라스틱에 모으고,
장갑을 파고드는 부서진 나뭇조각을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합니다.
우유팩 내용물은 적당히 처리하고 모아서 납작하게 한구석에 쌓아야 합니다.

“아이 씨, 취사지원도 아닌데 뭐 이리 짬내가 나는 거야.”

하나의 연극에 불과했습니다.
막은 올랐고, 배우는 대사를 다른 배우에게 말하지요.
모든 대사를 관객을 쳐다보면서 할 수는 없잖아요?

“머저리 새끼들! 재활용도 못 하는 놈이 있냐?”

제 기숙사 방문 옆에 두 개의 꽉 찬 쓰레기 봉다리가 놓여져있습니다.
제 룸메이트는 큰 쓰레기통이 꽉 차면 이곳에 옮겨놓고, 새로운 봉투를 씌웁니다.
제 역할은 이제 다음에 방을 나갈 때 이걸 한 손에 하나씩 잡아 덤스터에 던지는 것이지요.

방에는 두 개의 쓰레기통이 있습니다.
하나는 음식물 쓰레기 표시, 하나는 재활용 표시가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덤스터는 여러 개가 있지만, 한 가지 종류 밖에 없습니다.

2.
에나멜을 바른 혼의 무게

세상에 잔인한 일은 왜 존재하는 것일까요?
그리고 왜 자꾸 그런 이야기를 글로 써서 세상에 더하는 것일까요?

저는 제 글이 일본 소설 같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

저는 제가 처음 읽는 소설의 제목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에나멜을 바른 혼의 무게”라는 소설이었지요.

어릴 적에 친척 집을 내려가 봤더니, 사촌 형의 방에는 그 책이 꽂혀있었습니다.
왜 하필이면 그 책을 재밌을 걸로 생각했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제목을 보고 달콤한 카라멜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부모님께서는 어릴 적부터 책을 읽는 것을 워낙 좋아하는 저를 칭찬해주셨습니다.
저는 꼬마일 때, 동화책을 좋아했습니다. 뭐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었거든요.
토끼가 걸어 다니며, 여우가 사자와 대화하는 이야기를 하는 책을 보면서,
도대체 작가들은 뭐 하는 사람들이기에 이렇게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책으로 적나 궁금했어요.

그래도 만들어진 이야기가, 그 전혀 말도 안 되는 세상이 재밌어서 크게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런 터무니없는 소리가 계속 만들어지고, 사람들이 또 돈을 주고 사는 것이었겠지요.

“에나멜을 바른 혼의 무게”를 읽는지는 꽤나 오랜 시간이 지났습니다.
2007년 책이니까요. 아마 저는 중학생이었을 겁니다. 질풍노도의 시기였겠지요.

어렴풋하게 기억이 나기로는...
책이 식인을 하는 여자 고등학생에 대한 이야기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자꾸 시간이 지나면 자기가 누군지 기억이 안 나서, 다른 사람을 찾아서 죽이고,
그 기억을 쥐고 조금 지내다가, 또 다른 사람을 죽여야 하는 뭐 그런 이야기였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여고에 왕따당하는 다른 학생을 구하게 된다는 내용이었나 그렇습니다.

재미있으라고 쓴 이야기가 아니었다고 말하고 싶지만,
지금 기억하기에도 적어도 이야기를 끝까지 읽을 만큼 흥미로운 내용이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다만 얼마나 크게 결말에서 대였는지, 다시 찾아 읽을 가치는 못 느끼고 묻어두고 있습니다.

나중에 저는 고등학교에 다닐 때, 인생의 두 동반자, ‘락 음악’과 ‘영어’에 빠지게 되었지요.
얼마나 “마릴린 맨슨”에 빠졌는지, 그 사람이 쓴 영어 자서전을 아마존으로 사서 읽었습니다.

‘맨슨’은 어릴 적, 할아버지와 같이 살았던 시절을 떠올리면서,
할아버지가 숨겨놓은 지하실의 방으로 숨어서 들어갔던 일을 말해줬습니다.
온갖 외설적인 사진들과 여러가지 성인용품이, 방의 책상 위와 서랍 속에 가득했지요.

‘맨슨’은 제 고등학생 시절의 영웅이자, 뛰어난 락커였습니다.

저는 음침한 주제와 괴상한 이야기, 그리고 상상 속의 괴물에 대해 떠들기 좋아하는
이상한 꼬마로 10대를 보냈습니다.
저 스스로가 그런 제 모습을 받아들이는 것에는 20대가 어느 정도 흘러가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3.
죽음의 조각

할아버지께서는 담배를 많이 피우셨습니다.
어느 날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다면,
그 이유는 폐암일 것이라고 모두 알고 있었습니다.

할아버지 당신께서는 폐암에 걸리셨습니다.

세상에는 두 가지 사람이 있다고 말합니다.
산 사람과 죽은 사람입니다.
그 중간에 무언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정말 끔찍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그런 중간 단계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보지 않습니다.
뭔가 크게 잘못되지 않는다면, 그런 중간은 없다고들 넘어가지요.

할아버지께서는 폐암에 걸리셨습니다.
여기서 걸리셨다는 것은, 어폐가 있습니다. 암은 그렇게 작동하지 않습니다.
정확히는 당신께서 폐암을 진단받으셨고, 양가 친척 모두가 알게 된 것입니다.

그분께서 영원히 사실 수 없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었습니다.
이야기의 결말은 정해졌습니다. 한 단계에서, 다른 단계로 넘어가는 것입니다.

저는 그 소식을 듣자마자,
제가 알고 있는 할아버지가 어떤 분인지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습니다.
마지막 순간에, 그리고, 그 순간이 영원히 멈출 순간에, 그분을 그리워하고 싶었어요.
왜냐면 저는 할아버지를 정말 좋아했거든요.

항상 조금 찡그려진 표정을 하고 계시다가 (그러나 가끔 웃으실 때는 또 크게 웃으셨지요),
남의 말을 길게 듣고는, 짧게 군산 사투리로 요점을 찌르시던, 시커먼 피부의 단단한 뱃사람.
외진 곳까지 내려왔다고 욕봤다며, 항상 병어를 세꼬시로 직접 썰어서 내어주시던 그분을,

병원 침대에서 주무시는 것으로만 몇 번 뵈다가, 드디어 퇴원하셨다고 하시기에,
입대를 앞두고 한번 찾아뵈었는데, 왜 이미 계시지 않으시던지.

암은 전이되는 것이라고, 폐암이 바로 뇌로 올라가서,
찡그리시지도 않고, 웃지도 않으시고.
말을 들으셔도 대꾸가 없으시고, 아무도 없는데 혼자 뭐라 하시고.

훈련소에서 편지를 받아들었습니다.
백일휴가 그다음 휴가 때, 저는 용기를 내어서 부모님을 따라갔습니다.
한 개의 도자기가 당신의 사진을 붙이고 있었습니다.

눈물이 이미 어디선가 흘렀어야 했는데.

군 병원에 있을 때,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환자들끼리는 온갖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고는 했습니다.
백 명이 하나의 강당 같은 병실에서 지내니,
지금 전쟁 나면 진짜배기 시체에 밀려서 깔려 죽을 것이라는 농담도 해봤고,
그나마 국군수도병원은 시설이 좋아서 이 정도는 아니라고 말해주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아 그러면 지낼 만 했었겠네요?
그런데, 바로 옆은 아닌데, 근처에서 밤에 소리가 들려요.
아 머리가 너무 아파. 죽고 싶어. 죽여줘. 라고
듣자 하니까 특전사에서 훈련하다가 머리부터 떨어졌다고 하더라고.
막 밤에 깼는데. 죽여줘. 너무 아파. 막 이런 소리가 나니, 잘 수가 있나.
그러면 또 지낼 만 했던 것도 아니네요.

살아있으니까 그런 소리를 내는 거지.

저는 술을 많이 마십니다.
어느날 제가 죽는 순간이 온다면,
그 이유는 알코올 때문일 것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죽음의 조각
4.
(단편) 웬디고

캐나다에서는 부모님들이 아이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준다고 한다.

만일 어느 눈이 많이 내리는 겨울날,
혼자 집에 남아 다른 사람을 기다릴 때.
밖에서 텅. 텅.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거든.
누구세요? 라고 물어보렴.

“나야. 나. 네가 기다리는 그 사람이야.”
이라고 대답한다면,
창밖으로 내려다보고 확인하고 열어주렴.

그런데, 밖에서 텅. 텅.
소리가 나는데, 창밖에서 기다리는 사람이 보이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텅. 텅. 문만 두드린다면.

귀신을 본 것이니. 커튼을 내려서 창문을 막고.
이불 속으로 들어가서, 눈을 가리고 깊게 자렴.
내일 아침 눈이 그칠 때. 사람들이 소식을 전해줄 거란다.

겨울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나는 내가 어딘가 아프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겨울은 얼어 죽은 악령의 목소리를 속삭인다.
사람의 귀에서 미련이 속닥속닥 소리를 낸다.

어쩌면 어떤 방법이 있을지 몰라.
어쩌면 이렇게 끝나지 않아도 될지 몰라.

길을 잃은 사람.
너무나 추운 사람.
죽고 싶지 않은 사람만 겨울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겨울의 요정은 모든 소원을 들어준다고 한다.
하나씩. 하나씩.

이 눈바람 속에서 빠져나가는 방법을 알려줘.
가장 근처에 사람이 사는 곳이 어디야? 가고 싶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눈보라 밖의 사람이 보이게 해줘.
눈 위를 빠르게 성큼성큼 걸어서, 이곳을 나가고 싶어.
지나가는 늑대와 곰이 나를 해치지 못하게 만들어줘.
눈이 내 몸에 무겁게 쌓이지 않게, 두꺼운 털옷을 가지고 싶어.
쓰러지지 않고 나무를 붙잡고 헤쳐나가게 발톱을 줘.

오늘 아침에 나를 말리지 않은 그 녀석을 찣어버리고 싶어.
아무도 추운 겨울날에 함부로 돌아다니지 못하게 해줘.
왜 하필 나인 거야? 왜 나야? 왜? 다른 사람은

텅. 텅.

5.
웃긴 사람들

“완전 웃긴 사람들이지?”
휴가를 나오면 동생에게 징징거릴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얼마나 어른다운지, 동생에게는 별별 이야기를 다 할 수 있었지요.
여기서 별별 이야기란, 전부 사람 이야기였습니다.
아 인생이여. 가까이서는 비극이고, 멀리서는 너무나 희극이어라!

그러면 일정 시간 동안 가만히 듣고 있던 동생은,
“나는 말이야.”라면서 차례를 바꾸자는 신호를 보냅니다.

오케이, 저는 말 없이. 구워진 양꼬치 몇 개를 동생 앞 그릇에 옮겨주고,
제 오른손 쪽으로 살색 양꼬치가 막 나온 흰 접시를 조금 당기었습니다.

세상의 보편진리.
먹는 사람 따로 있고. 굽는 사람 따로 있습니다.

“응. 응. 그래. 공장은 어때?”

(칭다오 넘어가는 소리)

“미친 XX들 투성이지.”

“아이고. (놀란 소리보다는. 더 말해보라는 식의, 끝이 살짝 올라가는 소리)”

“그딴 XX들은 정말 일상생활이 가능한지 모르겠다니까.”

“그런데 심지어 벌써 결혼을 했어요. 뭐 어디서 또 지같은거 주워왔겠지. 쿵짝. 쿵짝. 엉?”

“아니 근데 결혼을 했으면. 다른 한 사람이랑 말할 때 뭔 지장이 없다는 뜻이잖아.”

“뭐만 말하면. 토라지고. 일은 개판으로 하면서. 나중에 꽁해서 말실수로 사람 속이나 긁고.”

“어우. 정말 다니기 힘들겠다.”

“그래도 걔처럼 오래 나와주면 다행이야. 누가 이 일을 해. 나도 때려치우고 싶은데.”

“손을 매일 염산에다가 몇 시간씩 담고 있는 일인데. 몇 주 나오면 오래 나오는 거지.”

“고기. 잘 먹겠습니다. 여동생님! 오빠 놈은 월급이 오르기 전에, 전역이나 하렵니다~.”

뒹굴고 있던 방이 어두워지자, 저는 침대 옆 전깃불 스위치를 튕겼습니다.
그러자 마침 일을 마친 룸메이트가 방에 들어왔습니다.

“욕봤어. 오늘 강의는 어땠어?”

“강의는 괜찮은데. 타코벨에 웃긴 사람이 너무 많아.”

“오늘은 어떤 이상한 놈이, 지가 주문 잘못해놓고,
지 타코가 이게 아니라며 조금씩 뜯어서 나한테 던지는 거 있지?”


6.
인터넷에 사람이 있다고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시네)

제 화면에서 글자가 모이고 흩어집니다.

글자가 모이는 현상은 매우 아시아적입니다.
한글은 자음과 모음과 받침이 한 곳에 쌓입니다.
가나는 잠시 변환 과정에서 영어가 쌓이나 싶더니 간지와 가나로 뿅 하고 바뀝니다.
간체를 쓸때는 주음부호나 병음이 잠시 보이다가, 뭉쳐서 원하는 한자가 됩니다.

반면 알파벳은 절대로 모이지 않습니다.
뭉텅뭉텅 잘려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쌓일 뿐입니다.

하지만 어느 나라 말이 되었든 간에,
흰 바탕에 검은 선이 불어나고, 어떨 때는 화면을 전부 뒤덮어버립니다.

이걸 살아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주는 것에는,
엄청난 상상력과 감수성을 필요로 합니다.

손가락으로 키보드를 두들기는 행위는,
작은 쟁반 위에 손가락을 올리고, 조금씩 잘라서 쌓는 행위와 비슷합니다.
내가 보기에는 너무나도 익숙하게 공들여 이어붙인 덩어리가.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기괴한 꿈틀거림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저는 저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하는 것을 꺼립니다.
오해는 필연입니다.
저는 그래서 최대한 자기소개를 재미있게 하고 싶어 합니다.

되도록 오해 없이 한가지 방향으로 편하게 읽을 수 있는 글.
하지만 제가 놓친 재밌는 요소나, 미처 정리하지 못하고 느낀 흘림이 있다면,
또는 전혀 다른 남의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면 같이 떠들고 공유하고 싶은 그런 글.
저의 인터넷에서의 목표는 바로 이것입니다.
저는 저만의 책을 활자로 출판한다고 생각하며, 매 ‘작성’에 임합니다.

하지만 그거 아시나요?
이 글을 읽으시는 그 어떤 분도 제가 쓰는 내용을 믿으실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글 속의 진짜 단서들을 모아서, 제가 어디 사는 누구인지 알아내신다면,
저는 당연히 화를 낼 것입니다. 그건 규칙 위반이니까요.

인터넷에 다양한 세계가 있는 이유는.
우리가 이미 한 세상에 갇혀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다양한 세계는 당연히 온전한 세계가 아닙니다.
컴퓨터 게임을 해보셨다면 다 아시잖아요.

몇몇 부분은 필요한 부분만 존재하면 되는 것이지요.
인터넷 게시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게시판에서 수십 명의 일상을 재구성하려고 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특히 자신이 세상에서 해야 할 다른 일이 있다고 느끼는 사람일수록 말입니다.

하물며, 제가 스마트폰을 켜는 순간, 또는 컴퓨터의 전원 버튼을 누르는 순간.
저는 제가 체험할 수 있는 것보다 더 큰 세계로 연결됩니다.

다 신경 쓰라고요? 미쳤습니까, 휴먼?
생물학적인 인시(Man-hour)가 상대성이론에 따라서 피할 수 없는 죽음을 향해 흐릅니다.
그런 일개 인간에게 체험할 수 있는 것보다 더 큰 세계란 그림의 떡에 불과합니다.

오히려 필요한 것은, 소화 가능한 작은 골방입니다.
사람들의 광장이 아니라, 나만의 작은 밀실입니다.
광장에서 소문과 과자 한 봉투를 사서,
(가끔 아주 친한 친구를 하나 부르거나,) 홀로 골방에서 뜯어먹는 것이,
인간의 존엄성이자 여가생활입니다.

사진 하나. 캡처 이미지 하나. 발언 하나. 기사 하나면 배가 부르다 못해 터집니다.
며칠은 배부르게 포식할 수 있습니다.
왜냐면, 그것은 자신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마음껏 조절할 수 있는 나만의 아늑한 방이란 정말로 매력적인 개념이며,
애석하게도 현실세계에서는 구하기가 매우 힘든 물건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방장은 방의 합당하고도 전지전능한 주인으로서, 이렇게 선언할 권리가 있습니다.
“불편하기 짝이 없군! 이 방에서 유일하게 살아있는 사람은 나뿐인 것으로 아는데!”

제가 좋아하는 어떤 ‘인터넷 사람’은 저에게 이런 조언을 했습니다.
‘포럼 (또는 커뮤니티)’을 절대 쓰지 말라고요.

진심과 열심을 다 쏟아붓는 사람이 상처를 가장 많이 받고,
남에게 상처를 주고 싶고, 관심 없는 사람이 가장 덜 상처 받는 괴상한 공간이라고요.

“어떻게 트윗 하나가 인생을 망가트릴 수 있는가 How one tweet can ruin your life”
TED 강의 비디오 중 하나의 제목이 이렇습니다.

제가 정말 인상 깊게 기억하는 강의 영상이기도 합니다.
트위터에서 유명해지고 싶은 한 미국인은 트위터에 가끔 농담을 올리곤 했습니다.
어느 날 한 농담이 너무나도 성공하고 말았지요.
그것도, 남아공으로 여행을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 말입니다.

11시간 뒤. 인터넷이 다시 연결되자. 인터넷은 그 불쌍한 여자를 물어뜯고 있었지요.
부적절한 사람. 인종차별주의자. 관심종자. 무식한 인간 등등… 다양한 표현으로요.
별로 진지하지 않게 한 마디씩 거드는 사람도 많았고,
아주 진지하게 부모님의 안부를 묻고,
앞으로 그녀의 일상에서 튀어나와 욕을 할 사람도 있었지요.


누군가가 저에게 관심을 이런 식으로 줄 수 있다는 두려움이 담긴 글만 쓰고 싶습니다.

7.
불편한 농담

“이건 좀 불편한 (Inappropriate) 농담인데.”
매주 화요일은 아시아계 미국인 친구와 놀러 나가는 날입니다.

“걱정 하지마. 나 정치적인 농담. 불편한 농담. 정말 좋아해.”

“무슬림들은 아시아계 미국인에게 정말 감사해야 한다니까.”

“계속해봐.”

“9.11 테러가 일어났을 때. 미국은 모든 무슬림을 잡아 가두지 않았어.”
“사실 한번도 안 해봤으면. 한 번 해보고 싶어서. 해볼 수도 있는거 거든.”
“근데. 이미 한번 해봤으니까. 못해볼 짓이라는 걸 알고 안 한거야.”

“진주만 공습 때. 일본계 미국인을 전부 잡아 가둔 걸 말하려고 하는 거야?”

“암. 캘리포니아에 남아있는 수용소 유적지만 해도 몇 군데 되지.”
“이게 바로 미국의 역사에서 특이한 점이야. 한국의 역사였다고 생각해봐.”
“네가 전에 말한 것처럼, 한국인들의 흥망성쇠가 특정 공간에 모여있잖아.”

“훌륭한 궁궐. 식민지 총독부. 일본과의 전쟁 유적. 식민지 항쟁 유적. 다 한반도에 같이 있지.”

“하지만 미국의 역사는 그게 안 되고. 취사선택을 하게 된단 말이야. 이게 재밌는 건데.”
“백인들 유적이야. 온갖 종류가 다 있지. 근데 일본계 미국인의 유적은 수용소야.”
“샌프란시스코에 일본식 정원 있지. 있는데. 이건 일본 경제가 잘 나갈 때 이야기란 말이야.”
“응 그래. 너희 날생선 먹는 거 미개하다고 안 하고. 스시라 불러주고. 먹어줄 게 뭐 그런거고.”
“일본 피가 흐르는 미국인하고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지. 그냥 일본인이라면 몰라도.”
“너 혹시 ‘‘노노 보이 (No-No Boy)’라는 소설 들어본 적 있어?”

“처음 들어보는데. 한국에서도 들어본 적이 없어.”

“수용소에서. 징병과 (미국에 대한) 충성서약에 둘 다 거부한 일본계 미국인 이야기야.”

“산호세 (San Jose)까지 들려서 칙필레 (Chick-Fil-A) 햄버거 사줘서 고마워. 맛있다.”

“이 근처에서 자라나서, 내가 잘 알지. 이 가게가 그나마 맛있어.”

같은 날 저녁.
이제 강의로 지친 몸을 침대에 던지려고 하니, 카톡이 카톡거립니다.
저의 저녁은, 한국의 점심시간이니까요.

일하는 와중에서도 계속해서 연락해주는 고마운 친구가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너무나도 말이 잘 통해서 정말 막역하게 지내는 친구입니다.
특히, 저는 제가 살면서 천재를 본 적이 있냐고 누군가 물어본다면,
이 친구를 양손으로 한 손가락씩 펴서 가리킬 생각이 있습니다.

“야. 요즘 게임 재밌는 거 하나 하고 있어. 중국어 공부에도 딱이다. 딱.”

제가 게임 소식, 그리고 역사 이야기라고 하면 사족을 못 쓰기에,
친구가 제가 좋아하는 이야기에 대해서 말하겠다는 이런 카톡을 보면,
하던 과제도 아주 바쁘지 않은 이상 내팽개치고 바로 답장을 하게 됩니다.

“내 동북아 역사 선생님께서, 그렇게 싫어하는 중국어 공부를 하시고 별일이십니다.”

“중화민국에서 매우 중요한 2월 28일이 다가오는 건 알아? 아주 중요한 날짜지.”

이 친구가 저와 매우 가까운 친구인 것이 다행인 점을 말하자면,
뜬금없이. 특정 날짜나 사건을 같이 던지는 일이 잦다는 것입니다.

이날은 일본에서 누가 총리이던 시절에 이런 사건이 있던 날.
이날은 어느 덴노 생일이었기에, 그때 이런 일이 있었다.
오늘 이런 일이 한국에서 일어난 이유는, 조선총독부에서 편찬한 이 서류를 보면 알 수 있다.

단언컨대, 이 친구가 서울에서 유명한 대학교 사학과에 들어갈 수 있던 이유가 있습니다.

“2월 28일은 또 무슨 날인데?”
“2.28 사건. 국부천대한 국민당과 외성인이 본성인 시위를 유혈진압 한 사건.”

또 갑자기 이런 유혈낭자한 주제를 갑자기 집어드는 익숙한 대화가 이어집니다.

“그러면 그 뭐냐…  4.3 사건 같은 거야?”
“아니. 4.3 그거는 좌익의… 너랑 나랑은. 다 좋은데,
정치적인 입장이 너무 달라서, 가끔 대화가 힘들다니까.”

그리고. 아는 게 많은 친구여서 그런지, 입장도 참 확고합니다.
하지만 서로 존중하면서 친구로 떠들어서 망정이지,
만일 서로 친선토론회라도 연다면, 제가 저 친구에게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얼씨구나. 또 가까운 우정보다 더 먼 이념 또 이런 소리 하려고?”
“그게 아니라. 雨港基隆 (우항기륭)이라고 네가 좋아하는 스팀에도 있는 게임이야.”
“아니, 뭐야. 검색해보니 미연시잖아.”
“그게 아니라 ‘화려한 휴가’겠지.”

“야. 카톡으로 이런 말 하지 마. 내가 지금 미국에 있지만. 진짜. 카톡은 안전하지 않아.”
“아니 그러니까. 이 작품도 얼마나 자세히 사건에 대해서 3명의 등장인물의 시선을 통해서…”
“차라리 스냅챗을 쓰거나, 텔레그렘. 아니 아니 디스코드로 메세지 해!”
“뭐가 그리 무서운데 도대체.”

8.
(단편) 야광귀가 일 만 시간의 법칙을 읽는다면
명절날, 온 가족이 모여서 떠들다 보면, 쉽게 밤까지 늦어지게 된다.
달의 음기가 가득해서, 귀신이 모인다는, 정월대보름이 빨간날이 아닌 것에는,
혹여나 자정에 때를 맞춰서 내려온 귀신을 보지 말라는 배려가 있지 않을까?

늦은 밤, 여느 때처럼 전화기를 손에 꼬옥 쥐고, 잠을 못 이루고 있는데,
현관 앞이 소란스럽다. 마치 어느 신발을 신어야 할지 몰라서 갈팡질팡하는 것처럼.
신발이 신발장으로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가는 소리가 난다.
따닥, 따닥. 구두, 슬리퍼, 운동화, 밑창이 자꾸 현관 바닥을 때린다.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서. 방문을 무작정 당겨 열고, 현관으로 달려나갔다.
그러니까 우리 집 고양이도 아니고, 옆방 내 동생도 아닌,
어떤 처음 보는 꼬마가 소리에 갑자기 놀라서 눈이 동그래져있는 것이 아닌가.
아니. 도대체 남의 집에는 어떻게 이렇게 태연하게 들어온 거지.
도어락이 어쩌다가 안 잠겼나?

이런 내 생각의 찰나의 꼬리를 손으로 끌어 잡듯이, 잠깐 놀란 듯한 꼬마는
손주먹을 위아래로 붕붕 내지르면서 반가운 표정을 가득 짓더니,
내가 얼떨결에 내민 손의 손목을 보기보다 강한 힘으로 낚아채서 악수하듯 흔들었다.

안녕하세요 아저씨! 저는 야광귀라고 하는데요!
요즘 하도 세상이 빨리 바뀌어가지고.
제 일을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니까요!
야광귀. 야광귀라? 요즘에는 거의 잊혀졌지만, 사람 집을 찾아오는 요물인 것은 대강 알겠다.
하지만. 악명과는 달리, 나를 당장 해코지할 수 있어 보이지는 않아서, 호기심이 먼저 생겼다.
생긴 걸 보자니, 회색에 검은색으로, 다리에 선도 그어 있는 걸 보니, 딱 애들 체육복인데.

무슨 산타 같은 거야? 아니면, 네가 주는 게 아니라 받아가는 거니? 헌신발 줄까?

아. 체는 이미 들고 있어요! 요즘 집주인분들이 도통! 가지고 계시질 않아서요.

목소리 자체가 큰 것은 아니었는데, 어딘가 엄청나게 신난 느낌으로 대답했다. 참 애 말투답다.

그 녀석은 마치 탬버린처럼 등 뒤로 손목을 접어 숨기고 있던 체를 왼손으로 흔들어 보였다.
빈 곳에서 보통 철사보다 가는 것이 방충망처럼 은빛으로 흔들리는 것을 보니 새것 같았지만,
그 애의 손이 멈추자, 나무로 된 듯한 색의 가생이는 까만 것도 많이 묻고, 깨진 곳도 있었다.

그리고 탁탁, 정말로 탬버린처럼 체를 잡지 않은 다른 손바닥으로 쳐 소리를 만들며 말했다.

오늘 아저씨한테 행운을 나눠주려고 왔어요. 원래 이런 건 안 보여주고 다 하는 건데.
하도 안 보여주고 일했더니, 사람들이 도통 고마워해 주지를 않아서.
존재 자체가 간당간당해요!

존재가 위험하다면, 그렇게 촐랑거리면서 간당간당을 발음할 것은 아닌 것 같지만,
워낙 신나게 체를 탁탁거리니, 나는 좋은예감 밖에 들지 않았다.
마치 장사꾼이 손뼉이나, 비닐로 팔린 물건을 포장하는 소리, 세일 가격을 외치는 것으로,
바로 옆에 있는 손님을 홀리는 듯한, 숙련된 동작이었다. 이 꼬마 귀신. 대단한데?

아저씨 근데, 일 만 시간의 법칙이라고 책 읽어봤어요?
말콤 글래드웰의 아웃라이어. 완전 권장도서인데.

아니 그런 책 안 읽어봤는데. 요즘 귀신은 영어로 된 책도 읽어?

아 그럼 또 설명해줘야 하네! 봐봐요! 여기 왼손 체 보이죠? 그리고 이게 오른손에!

무슨 작은 전구라도 꺼내 들듯이, 녹색 같기도 하고, 노란색 같기도 한 불빛이 오른손에 보였다.
아주 센 빛은 아니라서, 현관 불이 아직 꺼지지 않았기에, 꼬마 손에 살짝 색을 더하는 정도였다.

이게 아저씨 한 해치 운이야!
이걸 왼쪽의 체에 부어놓고 털어내는 거예요. 눈금 따라서 알아서 잘 가겠죠?

아니 잠깐만! 한 해치 운이라니? 새해도 아니고 이런 걸 한다고?

나야 달만 보고 사는 요괴니까. 정월에 따지지 좀 말아요. 이게 내 일 년이니까.

그러면서 체 위에서 오른손을 털듯이 하니, 옅은 빛이 구멍을 따라 내려가서는,
고운 가루가 되는지, 다양한 색깔을 작게 반짝이처럼 내더니 사라졌다.
적어도 바닥에 쌓이는 것 같지는 않았다.

이게 다야?

네! 그럼 저는 옆집에 마저 배달하러 갈게요! 내년에 봬요!

그리고서는 태연하게, 띠링 소리가 나게 도어락의 정확한 버튼을 누르고,
문손잡이를 쥐고서는 돌려서 나가려는 것이 아닌가.

잠깐. 이게 무슨 운인지는 설명해주고 가야지.
연애운이야? 재물운이야? 오래 산다는 거야 뭐야?

그건 제가 결정하는 게 아니에요!

아까 일 만 시간의 법칙 이야기 했잖아요! 아저씨가 평소에 뭘하고 지냈는데요.
무단횡단 맨날 하면 차에 치일 거고, 조심하면 내년까지 두고 봐야죠
게임만 맨날 하면 잘하게 될 거고, 운동을 안 하면 병이야 걸리는 거죠.

그러면 이걸 하는 의미가 전혀 없잖아?

원래 안 보여주고 밤사이에 다 하는 건데 뭘 바래요!
아저씨가 죽어서 집에서 아저씨 신발이 다 빠지는 그 날까지. 난 계속 올 거거든요!

9.
(부록) 아주 개인적인 연표.

1951년 전봉래. 예술.
1958년 존스타운 인민사원. 기독교.
1970년 미시마 유키오. 파시즘.
1984년 미셸 푸코. 철학.
1987년 프리모 레비. 증언자.
199X년 XXX 출생
1991년 안승준. “살아는 있는 것이오”
1991년 소련. 공산주의
1994년 커트 코베인. 락 음악.
1995년 리치 에드워즈. 락 음악.
1995년 도쿄 지하철. 신흥종교.
1996년 유나바머. 반기술주의.
1997년 IMF. 자본주의.

0.
의미.

술 마신 김에. 고향 이야기나 해줘.
내 고향 이야기도 할게.

펀자브 이야기는 하기도 싫어,
마을 사람들 모두 약에 절어있어.
아무도.
아무것도 될 수 없으니까.
도망가려면, 멀리 가야 해.

폴란드 이야기가 듣고 싶다고?
모두 떠나고 싶어 하는 곳이야.
하지만 젊은 사람이 시골에 간다고 하면 돈을 많이 줘.
결국 아무도 안 가지만.

불가리아도 정말 비슷해.
정말 아름다운 곳이지.
산도 있고, 백사장도 있고, 강도 있어,
하지만 사람들은 거기서 뭘 해야 할지 몰라.

한국/은/도/그런 곳이야/그래/어때/?

글쎄.
뭐라고 말해야 할까.
한국 사람들도 뭔가가 되고 싶어 하지.

사람이라면 다 그런 거니까.
의미가 되고 싶은 사람이 많아 보여.

사람들이 막 의미가 있어 보이는 단어를 말해.
근데 나는 그 의미들 뒤에서 뒤처진 느낌이 들어.
도저히, 내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

아마,
배가 침몰해서 사람이 죽고,
대통령이 바뀌었는데,
나는 그곳에 없었으니까. 죗값을 치르는 걸 거야.

내 친구는 이미 죽은 정치인들에 대해서 떠드는 것을 좋아해.
하지만 이미 죽은 정치인도 아닌 사람들에 대해 수업에서 떠드는 나를 이해하지 못하지.

정말 이상해. 나는 한국을 생각할 때마다.
나이 든 사람이 모두 나이 들어 죽는 것 보다.
젊은 사람이 모두 나이 들어 죽는 게 더 빠른 이상한 이미지가 떠올라.
절벽이 있고. 나는 거기로 걸어가고 있어.

거기도 결국 우리 같은 사람이 할 일이 없어?

아니. 내가 지금 미국에서 너희와 술에 취해있긴 하지만,
나는 내가 분명 거기로 돌아갈 것 같다는 확신이 들어.
아니면 내가 좋아하는 주인공처럼 중간에 바다에 들어가던가.

한반도, 거기는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나 이상한 곳이야.
사람들이 뭔가를 말하고 있어.
뭔가를 말하는 말풍선이 너무 많아서,
사람이 밑에 깔려있는지도 의심스럽고.
사실 이미 나 같은 어린 사람들은 뼈마디만 바스락거리면서 쌓여있는 거 아니야?
내가 오만하게도. 살아있는 최후의 남한 사람은 아닐까? 웃기지 않냐? 응?
이미 머리에 핵폭탄을 얹고 사는데, 그것도 썩 나쁘지 않은 결말이잖아?

샌프란시스코에 가서, 한국 갈빗집이 백인들에게 고기를 내어주는 걸 이미 본 나는,
왜 그 좁은 곳에서 그렇게 의미가 많은지. 나는 그 웅덩이에 머리를 집어넣기 싫은 거야.
그래서 여기 미국까지 와서 이렇게 술에 취해있는 거야. 응? 괜찮은 가설 아닐까?

어차피, 난 곧 돌아갈 사람이잖아. 여기 뭐 박을 뿌리가 뭐가 있나.

나는 하나의 깊은 의미를 품고 살고 싶은 사람인데,
내가 나중에 죽었을 때, 이런 기똥찬 생각을 가진 놈이 있었다고,
적힌다고 생각하면 아주 기분이 좋아지는 야심 찬 놈이거든?

근데,
내가 알기로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깊은 의미를 가졌단 사람들은 다 죽었어. 아주 비참하게.
나도 내가 무슨 말 하고 싶은지 모르겠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다 같이 마시자고 한 건데.

아무튼 시간 보소. 내 고향 이야기는 여기서 끝!
90 프루프 버번 위스키, 미합중국, 그리고 우리 룸메이트들 땡큐. 이제 Zaz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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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14 19:15
수정 아이콘
피폐해진 심신이 푹 잠겼다가 갑니다. 감사합니다.
19/02/15 06:03
수정 아이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최근에 상당히 야심차게 계획한 글이 완성되서 기쁩니다. 못 끝마칠줄 알았어요!
19/02/15 10:38
수정 아이콘
비판을 의도한것도 아니고, 비판으로 듣지 않아 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만은, Farce님의 글을 읽으면 자주 무슨 이야기지... 하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마치 포스트 모더니스트들 작품처럼 그런 느낌이에요. 이번 글도 그렇네요.
19/02/15 13:00
수정 아이콘
esotere님께 이 부족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음... 제가 글을 피지알에서 쓸 때 말입니다. 이미 지나간 이야기, 다른 사람이 주인공인 이야기, 공허한 단어와 규칙만 오가는 역사글과 정치글에서만 '말이 통하는' 글이 나온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거기에 오히려 일상적인 글에서는 다른 사람과 '소통'이 안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타국에서 보내는 진짜 '일상'은 말할 것도 없었고요.

그래서 작정하고 '일상'과 '대화'라는 소재로 짧은 수필을 여러 개를 써본 것이 이 글의 시작이었습니다.
천천히 자기소개를 하고, 관심이 있는 주제, 주변 환경 등등 신변잡기로 가득한 '따뜻한' 글을 써서, 제 글 안에 겹치는 주제나 소재가 있는지 스스로 탐구해보는 글이었습니다. 제 글에 대한 하나의 연구처럼요.

제 입장에서는 글을 적고 읽으면서 꽤나 재밌었습니다. 거기에 예상 외로 평상시 생각을 한번 적어본 짧은 글끼리도 어떤 통일성도 가진 것 같아서, 몇 이야기는 고쳐쓰거나 빼보면서 골라보는 맛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특히 마지막에 들어가고 끝나야할 이야기가 가장 정리가 안 되더군요. 마지막에 하고 싶은 말을 고르기가 너무 힘들었습니다.

엄청 정치적인 이야기가
길게 이어지는 식으로도 써봤습니다만, PGR에 개인적인 정치적 입장에 대해 밝히면서 올라온 글도 이미 몇개 있었고, 대부분은 비꼼과 댓글싸움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지요.

그런데 제 입장에서는 최근에 올라오는 정치글이 많이 올라왔는데, 거기에 참여를 안 하고 있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기도 했지만, 또 한 쪽에서는 찝찝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그냥 느끼는대로 털어놔봤습니다.

제 개인적인 희망으로는 마지막 글만 제가 아니라면 정말 이해가 되지 않을 내용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나머지 글은 오히려 그런 마지막 글조차도 조금 저에 대해서 친근해지고 익숙해지고 예상가능해서 공감을 해주실 수 있겠으면 좋겠다고 털어 놓은 것들에 가깝고요.

제가 쓴 글은 정말 다른 사람을 배려 안하는 글인가봐요. 분명 읽힐 것도 생각하고, 글을 올릴 것을 예상하고 쓰는 글인데...
더 열심히 갈고 닦겠습니다.
19/02/15 13:35
수정 아이콘
Farce님의 글은 굉장히 특이해요. 마치 여러 개의 직소 퍼즐처럼 생각의 편린들이 부분부분 펴져 나타나는데, 작은 퍼즐 조각 하나가 많은 정보를 담지 않고 있는 것처럼 작은 생각의 편린들이 넓게 퍼져있어 맥락을 유추해내기 쉽지 않죠. 제가 너무나 셩격이 급한 건지, 휘리릭 읽고 지나가다보면 자주 길을 잃고 맙니다.

쉽지 않은 글이 나쁜 것만은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맛도 있죠. 배려 따위 안 하면 어떻습니까. 결국 본의 아니게 비판이 된 것 같아 죄송스럽습니다.
19/02/15 13:38
수정 아이콘
(수정됨) 아닙니다!

제가 앞으로 나아가야할 방향, 그리고 제가 있는 지금 수준과 위치가 어디인지를 일러주시는 정말 곧은 이정표 같은 덧글이었습니다.

이런 댓글을 받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다음에는 좀 더 한 점에 모인 글이 만들어지길 원한다면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무난무난
19/02/15 15:08
수정 아이콘
보통 소설처럼 하나로 길게 연결된 느낌보다는 짧은 수필 여러개를 조각보처럼 이어붙인 느낌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추천 받으세요 흐흐
TheLasid
19/02/16 06:46
수정 아이콘
(수정됨) 흥미롭네요.

어째 이야기보다는 이야기 구조에 더 신경이 쓰이는군요.
처음에는 각기 다른 퍼즐에 속한 조각을 여럿 모아서 하나의 퍼즐로 만드셨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몇 번 읽어 보니 단순히 1에서 10으로 순차적으로 짜 맞춘 글은 아니라는 기분이 드네요.
3D 퍼즐 느낌이라고 해야 할는지, 배열을 바꿔 보면, 옆이 아니라 위에서 보면 흥미로운 결과물이 나올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0번은 평소의 Farce님 답지 않게 퍽 친절한(?) 안내문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

말이 되느냐 아니냐, 의미 전달에 성공하느냐 아니냐는 사실 별로 중요한 문제는 아니겠지요.
흄 말마따나 사물 속에 든 것을 (그런 게 있기나 하다면) 나타내는 외부에서 관찰할 수 있는 느낌은 없을 테니까요. (뭐 따져보면 있긴 하죠. 그딴 건 아무래도 좋다는 문제가 있긴 해도요.)
전달이 되더라도 (우리 모두 안 된다는 거 알지만) 모든 의미는 결국 실패한다고 더 시니컬하게 말할 수도 있을 거고요.
그렇게 본다면 결국 중요한 것은 열망이 아니겠습니까?
의미를 전하고 싶다는 열망이나, 그것을 실현하는 기술도 중요하겠지만,
의미를 받아들이고 싶다는 열망이나, 그것을 실현하는 기술이 더 중요하겠지요.
그런 노력이 없다면 Shaka, When the Walls Fell,
Commnication was not possible이란 말에 역접 조사를 덧붙일 방법이 앞으로도 영영 없을 것이고,
이 글을 더 읽어본들,
제 입에서 Temba, his arms wide라는 말이 나올 리는 없겠지요.

최근에 누가 <헤테로게니아 린기스티코>라는 만화를 알려줘서 재미 있게 읽었습니다.
의사소통에 고민이 많으시다니, Farce님께서도 좋아하실지도 모르겠네요.
사실 역사를 좋아하는 Farce님이라면 분명 익히 보신 커뮤니케이션 방식일 텐데,
10대를 이상한 꼬마로 보내셨던 Farce님께는 이런 방식을 택하지 못하게 하는 무언가 깊고 오래된 열망이 있는 것일까요?
주사위를 reroll한다면 Farce님의 유년기에는 뭐가 걸릴까요? 그것도 흥미롭겠네요.
근데 주변을 보면 100번 굴리면 80~90번 정도는 nobody가 나올 것 같은데,
weird kid 정도면 제법 잘 뽑으셨다는 생각이 들긴 합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글을 읽으니 (읽긴 한 걸까요? 과연?) 재미있었습니다.
다만 얼마간이라도 이해하고, 조금이나마 이해받고,
최소한 이해했다는, 받았다는 착각이라도 하고,
뭐랄까, 기적 같은 순간이죠. 행복인 줄 아는 순간이고요.
사실은 삶이란 고통에서 아주 잠깐 마비되는,
인간이란 불행을 아주 잠깐 망각하는,
나를 죽이는 시간을 역으로 한번 죽여보는,
아프지 않아서 행복처럼 느껴지는,
쓸 데라곤 아무 데도 없는 행복 따위보다 만 배는 나은 순간이라고 할까요?

글을 잘 읽었다는 말씀은 못 드리겠습니다.
그래도 뭐 나름 무언가를 읽긴 읽은 것 같습니다.
시간이 조금 지난 다음에 다시 읽어볼게요.
운이 좋으면 그때는, 좋은 글 잘 읽었다는, 건방진 소리를 할지도 모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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