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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글곰입니다. 항상 여러분을 위한 실용적인 여행기, 도움이 되는 여행기, 진지한 여행기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여행기라고 말씀하시는 데 그거 다 거짓말입니다. 그럴 리 없어요. 다들 농담도 잘 하시지. 까르르르.
각설하고.
일본 전역에 있는지 오키나와에만 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오키나와에는 유니온이라는 마트가 있습니다. 돌아다니다 보니 동네마다 보이더라고요. 요즘 엔화가 상당히 떨어져 있는지라 마트에서 쇼핑하기가 좋습니다. 특히 일본은 우리나라의 3배에 달하는 내수시장을 바탕으로 한 소비재 산업 기반이 튼튼한 편이라 마트에서 살 수 있는 물건 대부분이 우리나라보다 저렴한 축에 속합니다.
그럼 이 마트에서 뭘 사야 하느냐......
왜 물어보십니까?
이렇게 술과 함께 하루가 저물었습니다. 참고로 사진 우측의 펩시 스트롱이라는 녀석은 완전히 트림 제조기입니다. 한 모금만 마시면 바로 트림으로 가스가 배출됩니다. 콜라 한 잔 마시고 아내 얼굴에다 뿜어주면 백 퍼센트 확률로 등짝을 후드려맞을 수 있습니다. 이런 실용적인 지식을 알려주는 여행기를 읽어본 적 있으신가요? 없으시죠? 거 봐요. 얼마나 도움이 됩니까.
이튿날에도 오키나와는 여전히 흐렸습니다. 그러나 한국인은 그깟 날씨 따위에 굴하지 않죠. 아내가 정한 일정에 따라 차를 몰고 출동합니다. 하지만 그 전에 밥은 먹어야겠지요.
권위 있는 여러 기관에 따르면 호텔 조식 뷔페를 구분하는 데는 두 가지 기준이 있습니다. 사실 돈 내고 익혀야 하는 지식이지만 여러분께는 공짜로 살짝 알려드릴게요. 그 기준이 뭐냐 하면
1) 음료의 가짓수
2) 베이컨의 존재 여부
입니다. 꼭 메모해 두세요. 그러면 어디 한 번 볼까요?
네 종류의 주스에 두 종류의 차. 우유. 그리고 사진에는 없지만 뜨거운 커피. 좋습니다. 교양 있는 현대 한국인의 필수품인 콜라가 없는 건 좀 아쉽지만 이 정도면 합격점을 줄 만하죠.
그리고 베이컨이 어디 보자......
왜죠? 왜 베이컨이 없는 거죠? 저는 진심으로 화났습니다. 이런 쓰레기 같은 형편없는 호텔에 제가 묵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군요. 당장 서울로 돌아갈 항공권을 끊어야겠습니다. 베이컨이 없는 여인숙급 호텔 따위에 단 하루도 더 묵고 싶지 않군요. 이딴 저주받을 호텔의 주방장 따윈 밥주걱으로 낫토나 퍼먹다가 폭풍설사를 하게 될 겁니다. 베이컨이 없다니.
어?
음. 이건 보아하니 샐러드 위에 뿌리는 토핑용으로 잘게 썬 베이컨이군요.
좋아요. 어쨌든 베이컨은 베이컨이죠. 저거 2/3쯤 덜어내어 제 접시에 담아 돌아왔습니다. 이걸로 지온은 10년은 더 싸울 수 있어요.
딸아이의 나이는 일곱 살입니다. 하지만 스스로 만든 설정에 따르면 세 살배기 아이 피카츄를 키우고 있는 스무 살 된 엄마입니다. 지금은 감자튀김을 먹이고 있네요. 뭔가 지나치게 일찍 낳은 아이 같지만, 세 살에게 감자튀김을 주면 안 될 것 같지만, 그보다 자식의 종족이 인간도 아닌 것 같아 꽤나 신경이 쓰이지만, 아무튼 귀여우니까 넘어갑시다.
이렇게 식사를 마치고 정말로 출동했습니다. 첫 번째 목적지는 요미탄 도자기마을이라는 곳입니다. 저는 별 관심이 없지만 아무튼 저렴한 가격에 도자기나 그릇을 살 수 있다고 합니다. 차에 시동을 걸고 출발. 그리고 도착한 곳은 왜인지 귀신 일가족이 거주할 만한 분위기가 나는 으스스한 동네였습니다.
그러나 굴하지 않고 쇼핑에 매진하는 장모님과 아내. 저는 도자기 밑에 깔린 도마뱀 따위를 구경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싸다고 하더니 딱히 싸지도 않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도 자질구레한 물건 좋아하는 딸아이를 위해 삼백팔십 엔짜리 술잔을 하나 사 주었습니다. 그게 제일 쌌거든요.
쇼핑을 마친 후 유명하다는 카페로 갔습니다. 하지만 카페는 문을 닫았네요. 주인 아주머니가 어디 가셨나 봅니다. 혹시 제주도라도 놀러가신 건 아닐지? 아무튼 빗방울은 쏟아지고 카페인은 필요하니 다른 곳을 찾아봅니다. 다행히도 근처에 또다른 카페가 하나 있네요.
이곳의 이름은 ‘킨조메이코(金城明光)’. 비가 와서 급하게 찾아 들어간 곳인데, 나중에 찾아보니 꽤 유명한 곳인 것 같습니다. 물론 당연한 일입니다. 요미탄 도자기마을에 카페는 달랑 두 개밖에 없는 것 같으니까요. ‘젠자이’라는 오키나와 전통 디저트가 주력메뉴인데 차가운 걸 시키면 팥빙수고 뜨거운 걸 시키면 팥죽입니다. 팥빙수와 팥죽이 동일한 음식이라니 이게 말이 됩니까? 그럼 붕어빵이랑 붕어매운탕도 같은 음식이겠네?
아무튼 뜨거운 젠자이에다 커피와 코코아를 시켰습니다. 아주머니는 성격이 좋고 느긋하고 선한 인상입니다. 이게 무슨 뜻인가 하면, 손놀림이 엄청나게 느긋하십니다. 커피 시켜 놓고 기다리다 지쳐 오키나와 바다에 뛰어들고 싶을 지경이 되어서야 겨우 주문한 음료가 나왔습니다. 뜨거운 젠자이는 묽은 팥죽이고요. 커피는 묽은 커피고요. 코코아는 한강물에다가 코코아 한 티스푼을 부어 휘휘 저은 후에 떠서 끓은 것 같습니다. 전체적으로 엄청나게 묽어요. 그런데 맛은 괜찮습니다. 희한하네요.
저는 이 카페에 평균 이상의 점수를 주겠습니다. 일단 아주머니가 참 좋으시고, 앙큼한 고양이 한 마리가 있는데 귀엽더라고요. 이름은 미유라고 합니다. 아주머니가 자신을 한 번 삿대질하더니 다시 저를 한 번 삿대질하면서 Me & You를 의미하는 미유라고 설명해 주셨습니다. 설명해 주신 건 참 감사한데 저희가 그런 사이는 아니잖아요, 아주머니.
아무튼 고양이를 향해 미유쨩~ 하고 부르니 흘깃 돌아본 후 제 갈 길을 가더군요. 귀여운 동물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딸아이가 쭐레쭐레 따라가 머리를 한 번 쓰다듬고 왔습니다. 그리고 대가로 할큄을 당했네요. 살짝이라 다행이었습니다.
(냐오오옹.)
(헤에에, 고양이다아.)
(감히 날 할퀴다니, 어른이 되어서 복수하겠어!)
그렇게 오전 여행을 마치고 이제는 오키나와 중북부로 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