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언론사 직원입니다. 작년에 김영란법 시행 직후라서 닉네임을 이렇게 바꿨어요. 오늘 다시 바꾸기 전에 기념 삼아, 글 하나 적어 두려고요.

김영란법이 기자들 생활 많이 바꿨습니다.

비싼 밥 못 얻어먹고, 공짜 출장 사라졌어요.
혼란은 있었죠. 선배들은 시행되기 직전에 "앞으로 이런 건 못 얻어먹는다"며 고급스런 밥집에서 약속을 많이 잡았어요. 기자생활 올해로 N년찬데 딱 그 시기에 비싼 집에 제일 많이 따라갔던 것 같아요. 쑥스럽네요.

솔직히 원안대로 시행될 줄은 몰랐습니다. 기레기들이 누굽니까. 불리한 거 그냥 안 놔둡니다. 그런데 워낙 여론의 힘이 셌습니다. 기자님보다 기레기로 불리는 게 더 익숙해진 지 오랩니다. 덕분에 식사 3만원, 선물 5만원, 돈 10만원으로 2016년 9월28일 시행을 맞았습니다.

법 시행 직후 첫 저녁 자리 기억이 생생합니다.
중앙 부처 실장과 저희 팀의 저녁 약속이었어요. 인원은 7명쯤이었고 그럭저럭 괜찮은 곳에서 술과 안주로 화목하게 저녁을 마무리했습니다. 음식값은 인당 3만원에 조금 못 미쳤습니다. 계산할 때는 1급 공무원부터 1년 차 막내 기자까지 줄 서서 10원 단위까지 n분의 1로 각자 카드를 긁었습니다. 계산하시던 음식점 사장님의 표정이 잊히질 않네요.

한동안 그랬습니다. 철저하게 n분의 1을 지켰습니다. 부처 출입이든, 업체 출입이든 다 똑같았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원칙이 흐려지긴 흐려졌습니다. 법 시행 반년쯤 지났나. XX 대변인이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더니 인당 3만 원을 분명히 넘는 메뉴를 주문하더군요. 밥 먹고 으레 신용카드를 들고 줄을 서려니 "됐다"고 합디다. 익숙하면서도 불안한 기분이었습니다. 그렇게 사적인 자리에서는 많이 느슨해졌습니다. 그리고 이제 3만 원 안 넘는 메뉴는 예전처럼 그냥 얻어먹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처음처럼 원칙 철두철미하게 지킵니다. 잘나가는 금융업체 사장과 우리 부장이 만난 밥 자리. 2만9천700원짜리 메뉴를 시켰는데 밥이 너무 적었어요. 근데 추가 밥을 못 시킴.. 밥이 1천 원이라..올 초 박영수 특검과 출입기자단 간담회에서도 밥값을 딱딱 나눠냈다고 하죠. 그때 중국집 동보성에 기자가 한 40명 정도 왔습니다.

공짜 출장은 싹 사라졌어요.

해외 출장은 대체로 2종륩니다. 더럽게 빡세지만 현장에서 쓰는 기사의 가치가 큰 출장. 기사 가치가 거의 없고 유유자적한 출장.

빡센 출장은 회사에서 회사 돈 내고 기자를 보냅니다. 월드컵·올림픽 같은 스포츠 이벤트가 대표적입니다. 스포츠기자들 존경합니다. 대통령 전용기 타는 출장도 그렇습니다. 전용기 공짜 아닙니다. 회사에서 돈 냅니다. 타는 사람은 마일리지도 쌓입니다. 승무원은 군인들이라고 하네요.

어떤 행사는 기사 가치가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행사 주최자나 참가자가 이 행사를 뉴스로 알리고 싶을 때가 있죠. 예전엔 이럴 때 업체나 부처에서 기자들을 모시고 다녀왔습니다. 비행기 태워서 좋은 밥 먹여주고 재워주고. 언론사에서는 그럴듯한 기사로 뻑적지근하게 보답했습니다. 이젠 그런 거 없습니다. 일부에서는 선착순이니 제비뽑기니 이런 식으로 출장 가는 기자를 뽑는다고 하더라고요. 원랜 업체에서 맘에 드는 기자, 영향력 있는 매체를 골라서(혹은 순번에 따라) 데려갔는데 이젠 좀 공정해 진 거라고 할까요.


김영란법 누가 만들었나 참 잘 만들었습니다. 기자 중에는 얻어먹기를 부끄러워할 줄 아는 자들이 늘었습니다. 저도 처음엔 얻어먹기가 너무 당연했는데 법 시행 덕분에 이제 부끄럽습니다. 명절이면 어디어디서 선물 보내겠다고 주소 묻는 전화에 ○○시 ○○구.. 작년엔 무슨 낯짝으로 줄줄 불었는지 모르겠어요.

부끄럽습니다. 김영란법 아니었으면 부끄러운 줄 모르고 구태에 길들여졌겠죠. 솔직히 나쁜 기자들 많아요. 저도 그렇게 됐는지도, 혹은 그렇게 될지도 몰라요. 하지만 늘 부끄러워하려고요. 김영란법 덕분이에요. 김영란법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