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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7/05/17 15:16:12
Name
깐딩
Subject
[일반] 동물의 고백(18) + 외전(2)
[어느 날의 일(2)]
선배의 일이 많아 같이 야근을 하며 도와주던 어느 날이었다.
밤 9시가 다 돼 갈 때쯤 슬슬 마무리하고 정리 중이었다.
나는 그때도 여자와 정신없이 카톡을 하고 있을 때였다.
"누구야?"
선배가 카톡하고 있는 나를 보며 묻는다.
"친구예요."
건성건성 대답했다.
"어떤 년이야?"
깜짝 놀랐다.
진짜로 워딩이 저랬다. 어떤 년이냐니...
"요즘 어떤 년한테 정신이 팔려서 자꾸 회사에서 사라지고 카톡하고 그러는 거야?"
"아니 선배 년이냐뇨. 하다못해 '여자' 또는 '분'이라고 해주세요."
"여자긴 한가 보네?"
유도심문에 걸렸나 보다.
"사진 보여줘."
라고 하며 내 휴대폰을 뺏어가려고 한다.
"아니 선배! 왜 남의 연애사에 관심이 많아요. 썸 타는데 보태주셨어요?"
"그냥 어떻게 생겼나 궁금해서 그러지. 빨리!"
"싫어요. 여자친구도 아니고 아직 썸인데 어떻게 보여줘요."
"나도 내 남자친구 사진 보여줄게."
"아, 됐어요. 관심 일도 없어요."
끝까지 안 보여주자 선배가 삐진 흉내와 말투를 내뱉는다.
왜 저래 진짜.
선배가 포기한듯 말을 내뱉었다.
"배 고프다. 밥이나 먹으러 가자."
이 시간까지 밥도 안 먹고 일하는 중이었다.
둘이서 근처 닭갈비 집으로 들어갔다.
적당히 메뉴를 시키고 카톡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또 선배가 꼬치꼬치 캐묻기 시작했다.
"어떻게 만났어?
어디서 만났어?
며칠이나 됐어?
뭐 하는 사람이야?
나이는?
키는?
이름은?"
회사에서 하던 질문이 집요하게 여기에서도 이어졌다.
끝까지 대답 안 하고 있자 이제 협박까지 한다.
"너 말 안 해주면 맨날 부장님한테 인원 추가 요청해서
카톡 할 시간도 없게 야근시키고 외근 가게 할 거고 그런다!"
내 진짜 더럽고 치사해서 대충대충 말해줬다.
오~ 음~ 하면서 내 이야기를 듣고 있던 선배가 연이어 물었다.
"예뻐?"
어이가 없어서 대답했다.
"선배도 얼굴 따져요?"
"눈이 달렸는데 어떻게 얼굴을 안 봐?"
"저는요 예쁜 사람만 만나요. 선배보다 한 4.5배는 예쁠걸요?"
"이게 죽을라고!"
그렇게 농담을 주고받으며 낄낄거리고 있는데 선배가 말했다.
"나한테 고마워해야 하는 거 아니야?"
영문을 몰라서 대답했다.
"뭘 고마워해야 돼요?"
"내 덕분에 살 뺀 거잖아."
순간 얼어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하긴 내가 작년에 선배를 도와줄 때 너무 티 나게 행동하긴 했다.
오히려 모르는 게 이상할 정도였으니.
"뭘 선배 덕분이에요! 제가 열심히 해서 뺀 거지!"
그렇게 대답하자 선배가 뿌듯한 표정으로
"내가 다이어트의 길로 인도해준 거잖아! 배은망덕아!"
라고 대답한다.
"그걸 알고 있던 사람이..."
나한테 남자친구 자랑을 그렇게 하면서 비수를 꽂아요?
라고 말하려던 걸 꾹 참았다.
"잘해봐. 진짜로 잘 됐으면 좋겠다."
닭갈비를 오물오물 씹으며 대답했다.
"감삼돠. 고맙슴돠."
정말 고마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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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비가 올 듯 말듯한 날씨였다.
점심시간에는 다행히 비가 오지 않아 맨손으로 스파게티 집으로 갔다.
회사 주위에 스파게티 가게가 생긴 게 처음이어서
미리 가서 자리를 맡아놓지 않았다면 한참을 기다렸을 것이다.
가게 안으로 여자가 들어왔다.
스파게티 둘, 피자 한판을 시켜 나눠먹었다.
또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다 내가 화제를 돌렸다.
"여기저기서 벚꽃축제한대요."
"진짜요? 벌써 그렇게 됐구나."
"어디더라, 에버랜드에서는 튤립축제도 한대요.
그래서 요즘 엄청 놀러 다닌대요."
"에버랜드요? XX 씨 놀이기구 타는 거 좋아하세요?"
"그럼요! 제가 아직도 노는 걸 좋아해서 놀이기구도 잘 타요.
근데 같이 갈 사람이 없어서 못 가본 지가 벌써 8년이나 됐네요."
"와! 저도 스물두 살에 마지막으로 가고 못 가봤어요! 똑같네!"
여자가 화제를 돌린다.
벚꽃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같이 놀러 가자고 하려 했는데 의외로 쉽지 않다.
저번에 놀러 가자고 했던 거도 시간이 꽤 지났는데도 대답을 못 들었고...
안되겠다. 오늘은 대놓고 말해야겠다.
어? 가게를 나오는데 비가 내린다.
이런 우산 안 챙겨왔는데 어쩌지...
"우산 안 챙겨오셨죠?"
여자가 우산을 내밀며 말했다.
"같이 쓰고 가요."
좁은 우산 아래에 몸이 밀착되었다.
어깨가 자연스럽게 맞닿았다.
우산을 잡고 있는 반대편 손으로 여자의 어깨를 감싸고 싶었지만
너무 긴장돼서 그럴 수 없었다.
내 기분이 전해졌는지 여자도 말없이 걷고만 있다.
사거리 쪽으로 다 와갈 때쯤 내가 입을 열었다.
"시간 괜찮으실 때 꽃구경같이 가요."
여자가 또 고민을 한다.
"음... 이번 주는 약속이 있는데... 일정 좀 보고요."
"저는요..."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사실 꽃구경 같은 거 가든 안 가든 상관없어요.
OO 씨랑 놀고 싶어서 그런 거예요.
저랑 노는 게 싫다면 쿨하게 거절하셔도 됩니다.
저도 제가 좋다는 사람이랑 놀고 싶거든요."
내 말에 여자가 크게 당황하며 대답했다.
"아, 아니... 싫은 건 아니고 진짜 약속이 있어서 그런 건데...
시간 보고 연락드릴게요."
그렇게 여자는 다음에 연락하자는 말을 하고 헤어졌고
그 후로 연락이 끊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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