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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6/08/07 23:28:11
Name 불꽃이대세
Subject [일반] 독서 초보의 고전 감상 - 죄와 벌
안녕하세요. 10여년 전 송병구 선수를 응원하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쭉 눈팅만 해오던 20대 중반 청년입니다. 작년 여름쯤에 회원가입은 했지만, 가입 인사도 하지 않고 계속 눈팅만 하다가 첫 글을 가입인사 겸 올립니다. 피지알러 여러분 반갑습니다!

학교 졸업도 다가오고, 사회로 나갈 날은 가까워져 오는데, 학교에서 배웠다고 할만한 것이 생각나지 않아 이번 여름을 계기로 고전을 한 권씩 읽어나가고 있습니다. 본래는 독서 모임을 하려고 했으나, 주변 사정이 여의치 않아 독서 모임은 실패하고 혼자 시작하게 됐습니다. 우선은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읽어 나가는 것도 어려울 뿐더러 책을 읽고 나서 머릿 속에 들어오는 것은 많은데 제대로 정리는 되지 않아 힘이 들더라구요. 그래서 제 생각도 나름 정리하고, 많은 피지알러 여러분의 의견, 감상 등을 듣고 이야기해보면 어떨까 싶어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아직 고전을 제대로 이해할만한 깜냥이 되지 않아 그저 일기 수준의 감상이 되겠지만, 그래도 많은 관심과 조언 부탁드립니다.

죄와 벌 - 죄는 무엇이며, 벌은 무엇인가.

처음으로 읽어볼 고전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입니다. TV프로그램이나 가요에서도 많이 인용될 정도로 유명한 작품이죠. 하지만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진 것에 비해서는 실제로 읽어 본 독자는 상대적으로 많이 없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아무래도 작품이 굉장히 세심한 문체로 쓰였기 때문에 내용을 이해하기가 다소 어려워, 선뜻 다른 사람들에게 책을 권하기 어렵습니다. 저 역시 책을 읽어 나가며 등장하는 많은 인물과 사건, 그리고 세밀한 묘사를 제대로 읽지 못해 다시 책의 앞부분을 찾아보는 일이 잦았습니다. 하지만 이야기를 모두 읽고 머리 속에 남는 메세지는 생각보다 단순합니다. '죄와 벌은 무엇인가.' 작품을 읽으며 생각해볼 많은 가지가 있지만 오늘은 제가 작품을 읽으며 가장 크게 느낀 죄, 그리고 벌에 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첫 번째 궁금증인 '죄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은 이야기 초반에 던져집니다. 지식인 라스꼴리니꼬프는 영웅은 인류 보편의 나은 행복을 위해 사회 악과 같은 존재를 처단할 권리와 책임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돈이되는 일은 하지 않고 생각에만 몰두하느라 생활고에 시달리던 라스꼴리니꼬프는 가난한 사람들을 괴롭혀 자신의 배를 불리던 악덕 전당포 주인을 살해하고, 그 과정에서 동생까지 살해한 후 도망쳐 나오게 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라스꼴리니꼬프의 행동 혹은 사상을 죄라고 부를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하게 됩니다. 실제로 범죄를 저지른 후부터 이야기가 끝날 때 까지도 라스꼴리니꼬프는 자신의 행동을 정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라스꼴리니꼬프를 보며 "비범인(영웅)이 인류 보편의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을 때 그것을 이루기 위해 조금의 희생을 감수하는 것은 정당한가?", "그렇다면 발전과 희생의 정도는 어느 정도가 되어야 하며, 그 정도는 누가 판단할 수 있는가?" 와 같은 질문을 하게 됩니다. 조금 더 보편적으로는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이며(인간 보편의 발전), 그것을 누가 판단(발전을 이뤄낼 가능성이 있는 개인)하는 것이 옳은가"라는 질문이 되며 결국 독자는 저마다의 "죄는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생각하게 됩니다.

이어지는 두 번째 궁금증은 '벌이란 무엇인가?' 입니다. 라스꼴리니꼬프는 자신의 행동을 정당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이전과 같이 생활하지 못합니다. 자신의 행동이 들키게 될까 전전긍긍하며,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도 알리지 못합니다. 이는 단순히 자신의 행동이 들키게 되었을 때 사회적으로 받을 처벌을 두려워하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라스꼴리니꼬프의 행동을 살펴보면 그가 두려워하는 것은 사회적 처벌보다는 자신의 행동이 밝혀진다는 사실인 것처럼 느껴집니다. 여기에서 "과연 벌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않는 범행에 대한 형벌이 죄에 대한 벌이라는 생각이 먼저 떠오릅니다. 하지만 섬세하게 묘사된 라스꼴리니꼬프의 의식을 따라가다 보면, 진정으로 두려워하는 것은, 마음 깊숙한 곳에 자리한 옳지 못한 일을 저질렀다는 죄책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라스꼴리니꼬프는 이러한 죄책감을 가지고 거리를 돌아다니다, 소냐라는 소녀를 만나게 됩니다. 라스꼴리니꼬프는 이 순수한 소녀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둘은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이후, 라스꼴리니꼬프는 모든 것을 이 소녀에게 털어놓고싶은 충동을 느끼고 결국 자신의 범죄 사실을 소냐에게 다 털어놓고맙니다. 소냐는 그 말을 듣고 눈물을 흘리며 두려움에 몸을 떨지만, 이윽고 라스꼴리니꼬프를 안아주며 그를 용서합니다. 그리고는 그에게 '모든 땅과 시민들에게 절을 하며 용서를 구하고, 벌을 받은 뒤 다시 시작하자'는 말을 합니다. 과연 벌은 무엇이기에, 소냐는 자신이 이미 그를 용서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벌을 받으라고 하는걸까요? 결국, 벌이라는 것은 자기가 자기 자신을 용서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결국 라스꼴리니꼬프는 자수를 하고 그의 평소 행실을 고려하여 상대적으로 짧은 징역형이 주어지게 됩니다. 그는 징역형을 받는 중에도 역시 자신의 생각은 옳다고 믿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벌을 받고있는 상황에 좌절하여 삶의 의욕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하지만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는 소냐를 보고 결국 다시 삶의 이유를 찾으며 이야기는 마무리됩니다. 혹자는 지식인의 세계에 대한 도전이 결국 종교적인 사랑으로 마무리지었다고 비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결국 사랑이야.'라는 이야기의 마지막은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라는 끊임없는 질문 끝에 찾아낸 도스토예프스키의 답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드네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종종 서툰 감상으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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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이 왕이다
16/08/08 00:10
수정 아이콘
죄와 벌... 중딩 때 범우사판으로 중간까지만 세 번 읽고 던져버렸던 기억이 나는군요.
읽으면서 '이 자식아, 생각 좀 그만해! 말도 그만!' 이랬더랬죠...
16/08/08 00:13
수정 아이콘
완독을 하셨다는것 자체에 추천을 드립니다!
Deadpool
16/08/08 00:14
수정 아이콘
제목부터 "난 심오해"라는 인상을 저에게 주던 책이라서 조금이라도 읽어볼 생각을 못했었습니다.
이 게시물을 들어왔을 때도 길거나 어려우면 그만 보고 나갈 생각이었는데 한 화면에 다 들어오기에
읽어봤습니다. 주인공의 이름 등의 어려움으로 멀리 했던 고전들을 다시 한번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평이군요.
서툰 감상이라고 표현하셨는데, 어쩌면 그렇기에 가까이 다가오는 감상인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기대됩니다.
yangjyess
16/08/08 00:15
수정 아이콘
라스콜리니코프가 자신의 살인을 정당하다고 생각했다기보다는,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던 거죠. 근데 아무리 그러고 싶어도 사실은 정당하지 않다는걸 뻔히 알고 있으니까 계속 괴롭고, 자신이 정면으로 응시하기 싫은 답을 소냐가 보여줄거 같으니까 신경질적으로 소냐를 괴롭히고.. 위악적으로 굴죠. 그런데 결국 소냐의 무한 보살핌에 굴복하고 만겁니다. 하지만 이건 패배가 아니에요. '나의 로쟈는 이렇지 않아'라면서 죄와벌의 결말을 비판하시는 죄와벌 팬들이 많은데.. 제생각엔 마지막에 소냐의 무릎을 안고 흐느낄때에 가서야 라스콜리니코프는 처음으로 자기 자신에게 솔직해졌다고 봅니다. 그 전까진 비겁자였죠. 비겁해도 열정적이고 도전적이고 치열했기 때문에 매력은 있었지만. 죄와벌은 중2병 걸린 라스콜리니코프를 친구 라주미힌의 참된 우정, 수사관 포르피리의 노련한 타이름, 소냐의 남녀간의 사랑을 뛰어넘는 포용성, 어머니와 두냐의 가족애로 치유하는 소설입니다. 민음사에서 죄와벌을 번역한 김연경씨가 번역 후기에 이런 얘기를 했는데 개인적으로 핵공감이었습니다. [로쟈가 두려워했던 말은 '넌 나쁜 놈이야'가 아니라 '넌 웃긴 놈이야' 였다.]

아... 그리고 쓰신 내용 중에 '거리를 돌아다니다 소냐를 만나고 사랑에 빠진다' <- 이거는 좀... 아닌거 같습니다. 로쟈가 소냐를 알게 되는건 살인 이전에 술집에서 마르멜라도프를 만나 이야기를 듣게 되면서이고 직접 소냐의 얼굴을 보는건 마르멜라도프가 사고를 당했을 때 로자가 부축해서 집에 들어가서였는데 그때도 사랑에 빠지고 어쩌고하고는 거리가 멀었죠.. 로쟈와 소냐와의 관계는 남녀간의 로맨스 이런게 아니었어서...
제이쓴
16/08/08 01:26
수정 아이콘
제가 읽은 거랑 결말이 조금 다르네요. 오래전이라 기억이 잘나지는 않지만 라스콜리코프가 자수하는 장면에서 이야기가 마무리 된걸로 기억하는데.

죄와 벌에 기반한 웹툰이 있는데 추천드립니다. [살인장난감] 이라는 웹툰에서도 자신을 영웅으로 생각하며 살인을 서슴치 않게 하는 주인공이 나옵니다. 웹툰의 시작도 죄와벌을 읽는 장면이 나오고요.
yangjyess
16/08/08 01:36
수정 아이콘
자수하는 장면으로 끝나고 에필로그로 그 이후 상황이 서술되는데 그부분이 빠진 책이었나 봅니다.
제이쓴
16/08/08 01:38
수정 아이콘
아 에필로그가 있었나요?크크 제가 읽다 지쳐서 급히 덮었었나 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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