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깔을 나타내는 영어 단어 green에는 "덜 익은"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이것은 물론 실제 현실세계에서 대부분의 과일들이 아직 덜 익었을 때는 푸른색을 띤다는 것으로부터 파생된 의미일 것입니다. 일단 "덜 익은"이라는 뜻이 파생되고 난 후 추가적으로 거기에서 다시 "성숙하지 않은"이라는 뜻도 파생되어 나오게 됩니다. 이렇게 처음에는 단순한 색깔을 의미하는 단어에 "덜 익은"과 "성숙하지 않은"이라는 뜻이 추가되게 되는 거지요.

만약 이러한 과정이 언어의 경계를 뛰어넘어서 보편적인 것이라면 한국어의 "초록"에도 "덜 익은"과 "성숙하지 않은"이라는 의미가 나타나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에 한국어의 색깔을 나타내는 "초록"에는 이러한 의미들이 들어가 있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과일들은 잘 익으면 빨간색을 띱니다. 그렇다면 앞서 green의 경우처럼 영어 단어 red에는 "잘 익은"의 뜻이나 또는 그로부터 파생된 "성숙한"이라는 의미가 생길 것도 같은데 실제 red라는 단어는 그런 뜻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같은 언어라고 하더라도 한 단어에 여러 가지 의미가 더해지는 과정은 같은 방식으로 일률적으로 진행되는 것 같지는 않네요.

독일어 단어 blau(파란)에는 "술 취한"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하지만 영어 단어 blue에는 그런 뜻이 없고 한국어 단어 "파란"역시 그런 뜻은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독일어, 영어, 한국어 어디에도 "술이 깬"이란 뜻을 의미하는 색깔 단어는 없습니다. 왜 어떤 과정은 나타나고 그런 과정이 나타났다면 당연히 나타날 것만 같은 다른 과정은 나타나지 않는 걸까요? 언어라고 하는 놈은 참 신기한 것 같습니다...

(그냥 아침에 심심해서 써 보는 잡설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