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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6/06/06 16:51:08
Name 王天君
Subject [일반] [스포] 시카리오 A/S
http://redtea.kr/?b=3&n=1743

1. 이원론적 세계에서 선과 악의 상호대등한 투쟁을 출발점으로 놓고 보면 이 영화를 오독할 수 밖에 없다. 악의 거대함을 부각시키기 위해 선을 어떻게든 굴리거나 비범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함정에 갇히게 된다. <시카리오>가 이걸 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 꼭 투쟁에 모든 초점이 맞춰져있는 것도 아니다. <시카리오>는 오히려 하나의 세계에 갇혀있던 인간이 다른 세계를 발견하고, 자신의 세계를 다시 발견하게 되는 시야의 이야기다. 투쟁과 극복불가의 절망으로 구성되는 대결의 방정식이 아니란 뜻이다. 무지했던 자의 각성에 반드시 역동적인 저항이 수반될 필요가 없다. 이 영화에서 케이트가 날뛰면 날 뛸 수록 영화의 주제는 박살나고 만다. <시카리오>는 선과 악의 부등호를 가지고 싸우는 세계가 아니다. 이 영화에서 상호대등한 대결의 장면이 단 한 번이라도 나오는가? 오로지 제압하고 제압당하는 힘의 공식이 이미 붙박혀있는 세계다. 그러니까 케이트란 한 개인이 세계를 흔들 수 있는 조건은 전혀 필요치 않다. 이 인물이 영웅적어서는 "절대로" 안된다.

2. 승패의 관점으로 선과 악을 다루려하다보면 케이트가 처음부터 허섭호구로 보일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보다는 각 세계의 대표자 중 한명으로 케이트를 바라봐야 한다. 그는 시야가 좁은 이다. 그가 아는 세상에서 카르텔은 악이고, 그는 법으로 이를 깨부술 수 있다고, 혹은 그래야 한다고 믿는다. 그는 점점 들어간다. 이 영화의 핵심은 싸움질이 아니다. 영화가 러닝타임을 할애하는 것은 "이동"이다. 케이트는 계속 어디로 움직인다. 소노라 카르텔의 간부 집으로 맨 처음 들어가고, 그 다음에는 후아레즈로 가고, 땅굴로 들어간다. 바라보는 눈으로서 점점 시야를 넓힐 뿐이다. 눈이 무슨 싸움을 하는가? 케이트는 이 영화의 주먹이 아니다.

3. 관조와 액션의 사이에서 과연 어느 정도가 적절할지는 다른 영화의 캐릭터가 정답이 될 수 없다. 셰잌스피어의 말을 좀 빌려보자. 캐릭터가 곧 운명이다. 감독이 눈으로 설정한 케이트 머서라는 인간은 그렇게 생겨먹었다. 그는 시야를 넓히면서 점점 무력해지는 자신을 발견하지만 그래도 뭔가를 해보려고는 한다. 그는 초반부터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가지고 있다. 동료들이 사망하고, 본인도 죽음의 문턱을 거의 넘을 뻔 하고, 무엇보다 벽 너머 감추어진 시체들을 보면서 여태 몰랐던 죽음의 세계를 보고 세계관을 넓혔다. 그런데 작전 수행을 위해 초빙한 외부 인사가 쪼리나 신고 까딱거리면서 자신을 발탁한다. 애초에 관내로 들어갈 때도 옆에 있는 레지가 수상쩍다고 표현한다. 후아레즈에서 말도 안되는 폭압작전이 끝나고 나면 그는 항의한다. 그러면서 그 세계에 적응해간다. 그리고 불법이민자들에게 정보를 얻을 때는 레지와 함께 적극적으로 의문을 표한다. 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냐고. 그리고 땅굴 침투 작전에서는 대놓고 무시당한다. 기껏 자기 목숨을 지키기 위한 소극적 액션만 취할 뿐, 케이트는 내내 관조만 한다. 그리고 관조만 하도록 영화 내 권력이 그를 소외시킨다. 이 작은 반항도 하지 않으면 우리가 이 인간을 대표자로 세우고 악을 향한 최소한의 정의와 양심을 어떻게 느낄 수 있단 말인가? 다큐멘터리면 아예 다큐멘터리로 가야 된다는 극단적 이분법은 리얼리티를 추구하는 모든 영화를 그래봐야 가짜, 라는 식으로 구분지을 뿐이다.

4. 케이트를 증인으로 내세우는 맷의 내적 논리는 전혀 이상하지 않다. 일단 <시카리오>는 FBI를 CIA와 결탁한 집단으로 그리지 않는다. 맷이 CIA에서 어떻게 굴러먹었고 이 집단의 국제적 불법이 어떻게 자행되어왔건, 그것은 공공연한 것이 아니다. 그러니까 공모자들이 널리고 널린 것이 영화 속에서는 "당연한 현실"이 아닌 것이다. 작전 도중 케이트와 레지는 자신들의 상관에게 항의한다. 지금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고 이거 합법인거 맞냐고. 상관도 이야기한다. 높은 데서 압력이 들어왔으니까 나도 뭘 어떻게 할 수가 없다고. 맷과 CIA의 과거를 추정한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영화 내에서 FBI 라는 집단의 타락한 연결고리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무튼 저 멍청하고 순진하고 어느 정도 추정은 해도 증거가 없어서 뭐라고 하지도 못하고 자기들보다 힘도 약한 집단에서, 적당히 쓸 만한 놈을 하나 골라 뽑아야 하는 셈이다. 그래서 FBI에서 케이트를 추천하며 이런 저런 가정사도 밝히지 않는가? 이혼했고, 애도 없다고. 능력은 둘째 문제다. 죽어도 별로 시끄러울 인간이 아니고, 지 몸 정도는 적당히 굴릴 줄 아는 용감한 인간이 맷은 필요했던 것이다. 맷이 보기에는 딱 봐도 "열심히" 밖에 모르는 케이트가 써먹기에 아주 안성맞춤인 순진한 이등병이다.

그러니 케이트한테 맷과 그 조직이 매달리는 게 아니다. 여차하면 제압할 수 있을 정도로 손쉬운 인물인 것이다. 귀찮고 피곤하다고? 그 정도야 이미 다 예상범주 안에 들어가있다. 맷은 일부러 케이트를 골랐다. (오히려 나는 이 영화에서 케이트의 활용에 대해 "여성성"을 폭력의 먹잇감으로만 활용한다고 비판하는 사람과도 다툰 적이 있다. 이제는 그의 해석이 좀 이해가 가긴 하지만)

5.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이자 결점은 알레한드로의 복수극으로 귀결되는 하이라이트 시퀀스다. 그러나 이를 화자의 연속성으로만 두고 단점으로만 취급할 수는 없다. 이것은 영화 속 케이트의 "이동"과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케이트는 미국이라는 지역과, 그의 시야가 허락하는 좁은 세계 안에 머무른다. 그는 후아레즈로 들어간다. 이후에는 땅굴로 파고 들어간다. 케이트의 시야가 맞닿는 표현은 점점 그 깊이와 어둠을 더해간다. 이 영화는 진실 안으로 한 인간이 계속 "꺼져들어가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땅굴에서 알레한드로를 쫓아갔다가 케이트는 총에 맞고 거기서 연결선이 끊긴다. 이는 더 이상 케이트가 들어갈 수가 없는 진실인 것이다. 그러나 영화는 어찌됐든 이야기를 계속 보여줘야 한다. 여기서 화자를 갈아타고 관객은 한번 끊겼던 이동선을 다시 따라들어간다. 여기부터가 어쩌면 "진짜"이자 가장 밑바닥의 이야기인 셈이다. 파고파고 들어가서 마지막까지 가다보니 거기에는 도저히 파낼 수 없는 벽이 있다. 여기서 감독은 친히 영화적 꼼수로서 그 벽을 휙 뛰어넘어버리게 한다. 그러니까 알레한드로로 화자가 치환이 되는 것은 자연스럽기도 한 것이다. 이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가장 밑바닥에서, 가장 진하게 응축되어있는 감정을 관객은 고스란히 느껴야한다. 거기에는 타락해버린 선이 있고, 법의 손을 벗어난 정의가 있다. 절망을 완성하는 것은 또 다른 절망이다. 이제까지의 절망이 관조자로서의 무력함이라면, 이제는 행위가 새롭게 완성시키는 절망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 이야기는 애초부터 세계를 밝혀내는 관찰기인 동시에, 한 인간의 복수극이기도 하다. 관객은 그 특혜를 맛보며 고스란히 이 세계의 미시와 거시를 맛본다. 줌아웃으로는 악의 시스템을, 줌인으로는 한 인간의 나락을 들여다본다.

이 영화의 시점이동은 분명히 갑작스럽다. 그 부분에서 분명히 일관성이 깨지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나레이터에서 벗어나 관객의 시점에서는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복수극을 상정해두고 포커스를 조정해들어간다. 들어가고, 들어가고, 들어가서 보게 되는 것은 한 인간의 시커먼 증오다. 커다랗게 보이던 세계를 파헤치다보니 결국 인간이 나온다.

6. 그렇기에 이 영화의 에필로그 부분인 엔딩은 케이트의 현실과 알레한드로의 현실이 "만나는" 지점이다. 케이트의 현실이자, 알레한드로의 현실로서 둘이 만나 비로서 한 세계를 완성하는 것이다. 케이트가 어찌할 수 없는 권력의 세계가, 알레한드로가 어찌할 수 없는 절망의 세계를 만들었고 이제 그 인과는 뒤집혀서 순환한다. 알레한드로의 세계는 케이트의 세계를 굴복시키고 자신의 영역으로 편입시킨다. 여기에서 관객은 다시 "케이트"의 절망을 느낀다. 동시에 알레한드로가 저럴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이해한다. 이 세계의 잔인함은 미시와 거시가 만나 뫼비우스의 고리를 만든다. 이를 두고 알레한드로의 사연으로만 보면 그것은 아마 케이트에 이입하지 못하는 개인적 편향의 탓이 더 클 것이고.  

7. 이 영화는 완벽한 영화가 아니다. 감독도 그걸 알고 있다. (드뇌브가 언제는 정합적인 디테일들로 1000 피스 퍼즐을 짜맞추는 식의 영화를 만들었던가?) 그럼에도 이 영화는 성취한 부분이 있다. 이를 두고 자꾸 본말전도로 가치를 흐리는 건 전혀 생산적이지 못하다.

@ 도대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도, 캐릭터도 전혀 다른 세계의 인물들이 어떻게 <시카리오>의 대안이 될 수 있는지. <시카리오>의 케이트가 <모스트 원티드 맨>의 권터 같은 캐릭터여야 한다는 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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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나통이밴댕이
16/06/06 19:25
수정 아이콘
편두통이 있어서 일단은 대략적으로 봤는데,
잘 쓴 리뷰에 대해서는 리뷰감상도 일종의 감상이 될 수 있다는 걸 또 한번 느끼게 해 주는 글이네요.
잘 봤습니다. ㅠㅠ
16/06/06 23:41
수정 아이콘
https://pgr21.co.kr/?b=8&n=65580&c=2573124

늘 느끼지만 항상 필요이상으로 공격적이시네요... 구밀복검님의 리뷰에 반론하고 싶으셨으면 그 밑에 리플을 달면 되지 굳이 새 글을 파실 이유가 있나요? pgr 규정에도 위배된다고 생각합니다,.
쇼미더머니
16/06/07 00:40
수정 아이콘
영화 좋아해서 왕천군님의 글에 늘 들어와 보기는 하는데..
16/06/07 02:23
수정 아이콘
전 둘다 맞는 의견이라고 보는데 케이트가 극중에서 애매하게 나와서 영화의 개연성이나 흐름을 망치는건 분명 있습니다.. 차라리 아에 관조적인 케릭터였다면 더 물흐르듯이 영화가 흘러갔을거 같습니다. 이건 영화를 보고나서 확실히 느꼈어요.

다만 케이트가 정말 이도 저도 아닌 케릭터로 나왔기에 더 가깝게 대중들에게 와닿았고 시사하는 바가 커졌죠.

둘 중 뭐가 옳은 것인지? 물은다면 취향차이라고 말하고 싶네요.. 제 개인적인 취향은 미묘한 감정선을 더 느끼고 싶어 후자를 택할 것 같지만요.
MoveCrowd
16/06/07 12:51
수정 아이콘
물흐르듯흘러가는건 필수적인게 아니니까요.
케이트가 이런 캐릭터가 아니라면 시카리오만의 미묘한 감정과 시각이 나올 수 없었겠죠.
16/06/07 10:26
수정 아이콘
리뷰 잘 봤습니다.
yangjyess
16/06/17 00:13
수정 아이콘
영화 오늘 봤습니다. 왕천군님 의견에 공감이 더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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