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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5/02/25 11:34:01
Name 라덱
Subject [일반] 에미야 물 좀 다오
#그 어떤 언어학적 배경 지식은 전혀 없습니다.




외국에 나와서 살다보니까 하루종일 한국말을 한마디도 안 할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나와 살고 있는 입장에서 오히려 더 한국어에 대한 감정이 애틋...하다고 할까요.

예전에는 아무 의식없이 그냥 쓰던 말들이 뭐랄까 다시 한번 더 곱씹게 되고

그런 일들이 많아요.

맞습니다. 그냥 쓸데없는 시간낭비일 뿐.





1.

일본에서 살고 있습니다.

처음 일본에 왔을 때는 히라가나 한마디도 모르다가

조금씩 이제 일본어를 배워나가면서 들리고 말하고 쓸 수 있는 단계에 접어들수록

참으로 신기한 일본어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お(오)"라는 접두사인데요,

어떤 단어 앞에 붙여서 같은 단어라도 좀 더 공손한 표현이 되는...뭐 그런 건데요,

사실 많이들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오차(お茶), 오카네(お金), 오시고토(お仕事), 오뎅와(お電話), 오미즈(お水) 등등..

그냥 차, 돈, 일, 전화, 물 등

일상적인 단어에 붙여서 상대방에게 표현할 때 좀 더 공손한 느낌이 나게 됩니다.

그 말은 무엇이냐. 사실 "없어도" 뜻은 통한다는 말이지요.



이 없어도 되는 접두사를 거추장스럽게 붙이는 이유는 대체 무엇인가 라는

정말 쓸데없는 고민에 휩싸이던 중, 이러한 고민은 한국어에도 과연 이렇게

없어도 되는데 어감상, 뉘앙스상 쓰고 있는 단어는 없을까 라는 생각까지 전개되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이러한 단어가 하나 있더라구요.

바로

"좀"

입니다.


물 주세요

보다는 물 좀 주세요

여기 봐주세요

보다는 여기 좀 봐주세요

그거 줄래?

보다는 그거 좀 줄래?

등등


"좀" 이 있고 없고에 따라서 뜻은 같지만 어감상 살짝 다른 그런 단어.

아 물론 앞에 예를 든 일본어의 "お"와는 다른 개념이겠지만 어디까지나

있거나 없거나 뜻은 같지만 있는 편이 더 나은 그런 느낌의 차원에서..




2.

이 역시 일본어를 처음 공부할 때 생각했었던 건데요,

くれる(쿠레루) 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무언가를 주고 받는 표현을 할 때

그 시점이 1인칭일 때 쓰이는 표현인데요, 일반적으로 貰う(모라우) 라던지 쓸 수 있는 표현이 있는데

왜 이런 표현을 굳이 써서 나를 헷갈리게 하는가 라는 고민은 또 다시

아니 한국어에도 혹시 이런 식의 표현이 있을까 라는 쓸데없는 뇌속의 오지랖이 펼쳐집니다.

그런데, 있더라구요.


예)

A : 야 그거 빨리 줘

B : 아 기다려봐

A : 아 빨리 달라고!!



달라고? 달라고?? 오 이건 1인칭에서밖에 쓸 수 없는 용도 아닌가?

그래 무의식중에 쓰던 한국말중에 이런 표현도 있었더랬지.

그런데 저 달라고!! 의 동사의 기본형이 무엇이지?? 아 왜 난 이런 쓸데없는 고민을 하고 있지?




달다 [달ː다]                 
[동사] 말하는 이가 듣는 이에게 어떤 것을 주도록 요구하다.
[보조동사] 말하는 이가 듣는 이에게 앞말이 뜻하는 행동을 해 줄 것을 요구하는 말.
유의어 : 청구하다


이야, 저 달라는 표현의 기본형은 달다 라는 것이었네요.

뭐 평생 살면서 저 표현을 기본형으로 쓸 일은 단언컨데 한번도 없을 것 같지만.








이렇게 외국에 살다보니까 전에는 무의식적으로 쓰던 한국어가

이런 혼자만의 생각주머니에서 가지고 놀 수 있는 아주 좋은 도구가 된다는 것에 다시 한번 새삼

국뽕에 취합니다.


아무튼 그래서 저 위의 두 표현을 동시에 내재한 문장이 바로


에미야 물 좀 다오


가 되는군요.


그냥 웃길려는 댓글이 아니었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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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e Shake Hide
15/02/25 11:36
수정 아이콘
Emiya Muljomdao
강동원
15/02/25 11:58
수정 아이콘
Emiya Shiro
15/02/25 17:35
수정 아이콘
http://goo.gl/wof8Mp 아래 스피커 클릭.
이외에 독일어 헝가리어 추천합니다
스테비아
15/02/25 12:17
수정 아이콘
mokmalla motsalgetda.
15/02/25 12:35
수정 아이콘
Abuzi Mohashino
에리x미오x히타기
15/02/25 13:30
수정 아이콘
gundamipnideo
절름발이이리
15/02/25 11:37
수정 아이콘
emiya mulzomdao 얘기를 꺼내시니
nigagara hawai나 mora kano 등의 배우들도 생각나네요
15/02/25 12:02
수정 아이콘
Take iteasy
Socceroo
15/02/25 12:06
수정 아이콘
타케 이테아시!!
15/02/25 12:36
수정 아이콘
odaga gogisawa
15/02/25 13:01
수정 아이콘
Honganji 에서 일한다는 소문도..
흘레바람
15/02/25 11:39
수정 아이콘
이런 생각주머니같은 글 아주 좋아요!
15/02/25 11:42
수정 아이콘
Just saying.... "말이 그렇다는 거지"
This is not what you think it is! "오해입니다 여러분"

등의, 아주 자잘한 뉘앙스를 표현하는 말들을 하나씩 획득하는 게 외국어를 배우는 즐거움 중 일부 아닌가 싶습니다.
15/02/25 12:08
수정 아이콘
You know...
15/02/25 11:46
수정 아이콘
와우. [애미]가 아닌 [에미]라고 표기하시는 분은 보기 힘든데.. 이상한 곳에서 감동하고 갑니다.
흘레바람
15/02/25 11:50
수정 아이콘
Emiya는 에미야 죠~
성기사는용사
15/02/25 11:46
수정 아이콘
Emiya Googizzada
Leeroy_Jenkins
15/02/25 11:47
수정 아이콘
저도 도일해서 일본어 배울 당시 글쓴분과 비슷한 경험 하며 지냈습니다.전혀 다른 언어 2가지를 비교하면서 머릿속으로 가지고 노는게 공돌이 입장에서도 꽤 재밌는 일이더군요.그러면서 어느순간 생각의 한계치가 넓어진다고 해야하나?그런 느낌이 들더군요.
둥글레차
15/02/25 11:55
수정 아이콘
어디서 본것 같은데
어떤 언어학 교수님이 강의 시간에 " 세상에 언어중에 부정 + 부정은 긍정이 될 수 있지만 "
"긍정 + 긍정이 만나서 부정적으로 바뀌는 경우는 없습니다" 라고 하자
한 학생이 나즈막하게 "[참 잘도 그러겠다] 라고 했다던 이야기가 문득 생각나네요 ^^

번외편으로 [참 자알~한다!] 도 있었던것 같구
여자언어로 [니가 하고 싶은데로 해] -> 이건 그대로 해석하면 큰일나는 언어라며
15/02/25 11:57
수정 아이콘
자매품으로 [잘도 그러겠다]도 있습니다.
둥글레차
15/02/25 12:02
수정 아이콘
글곰님 말씀이 원글이였던것 같아서 급히 수정했어요. 감사합니다.
홍승식
15/02/25 15:16
수정 아이콘
문법적으로 잘도 그러겠다는 반어법 아닌가요?
긍정 + 긍정이 만나서 부정적인 표현이 된게 아니라요.
히히멘붕이넷
15/02/25 11:56
수정 아이콘
맞아요. 외국어는 처음에 배울 때부터 동사의 기본형을 보게 되는데 모국어는 활용형부터 익숙해지다보니까, 구어체에서 많이 쓰는 동사의 기본형이 생경하게 다가올 때가 많지요.
王天君
15/02/25 11:57
수정 아이콘
으크크킄크크크 통찰이 있는데 결론이 왠지 개그스럽네요
오스카
15/02/25 12:05
수정 아이콘
달다 라는 기본형이 있었군요. 이런 글 좋아요 크크
푸른봄
15/02/25 12:16
수정 아이콘
'데리다'도 데리고 와, 데리러 갈게 등등의 활용형으로 많이 쓰지 단독으로는 정말 쓸 일이 없을 것 같은 말 중 하나인 것 같아요. '달다'를 보니 같이 생각나네요. 흐흐
세이밥누님
15/02/25 13:03
수정 아이콘
데리다는 원형 그대로 안쓰는 걸로..
abyssgem
15/02/25 12:17
수정 아이콘
'달라고'의 기본형이 '달다'라니! 인생 헛 살았군요. '달라고'는 단순히 관용어구이고 '달라고 하다'가 기본형이라고 생각했는데.
Galvatron
15/02/25 12:19
수정 아이콘
お宅、お仕事같은 경우는 존경어이지만 お皿、お野菜、お米이런부류는 자신을 더 기품있게 보이게하기위해 쓰는 미화어입니다.
특히 이게 여성들의 경우 남용이 심한 편이라서 가정생활에 쓰이는 물건이나 음식에 붙는 경우가 많죠.
현대에는 이런 미화어의 남용을 자제하려는 경향이 강하고 실제로 뉴스방송이나 신문같은 매체에서 불필요한 미화어는 배제합니다.
그런데 미화어가 필요한가 아닌가도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애매한데 예를 들면
새해에 최고낙찰가 참치를 스시집에서 들여와서 손님들이 먹어보려고 줄을 섰다 같은 경우는 お客가 적합해보이지만,
음주운전차량이 음식점을 들이박아 고객을 포함해 5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런 경우에는 客가 적합하다는거죠.
물만두
15/02/25 12:30
수정 아이콘
아이유가 일본에서 공연할 때 미즈 (물)라고 말하니 관객들이 오미즈 라고 고쳐주는 걸 영상으로 본 적이 있는데 이것도 그런 케이스인가요?
에리x미오x히타기
15/02/25 13:32
수정 아이콘
아이유님께서 드실것이니 당연히 팬들 입장에선 お가 붙겠지요. 크?
신중에신중을기한
15/02/25 12:54
수정 아이콘
달다 신기하네요 한번도 생각 안해봤는데... 유의어가 청구하다인걸 보니 달아놓다도 생각나네요
루크레티아
15/02/25 12:58
수정 아이콘
아 진짜 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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