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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3/06/09 20:56:01
Name 자이체프
File #1 창덕궁_희정당_필터_사진.jpg (32.8 KB), Download : 57
File #2 창덕궁_부엌_사진.jpg (2.69 MB), Download : 4
Subject [일반] 창덕궁 구석구석 답사기






토요일 오전에  창덕궁을 다녀왔습니다. 사실 창덕궁은 열 번 넘게 가 본 곳으로 답사기를 쓸 필요가 없는 곳이죠. 하지만 신기하게도 매번 갈 때 마다 전에는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였습니다. 이번에도 몇 가지 색다른게 보였습니다.
첫번째 사진은 정조 임금이 정사를 돌봤던 희정당입니다. 사실 어떤 장소가 역사가 되는 이유는 그곳에 살던 사람 혹은 거기서 벌어졌던 사건 때문입니다. 임진왜란 이후 조선은 길을 잃었고, 어디로 가야할지 아무도 몰랐습니다. 조선 후기의 임금들 중에서 정조가 유독 눈에 띈 것은 아버지의 안타까운 죽음과 개혁군주라는 이미지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희정당을 보면서 정조의 고뇌가 어렴풋하게 보였습니다. 사실 문체 반정을 일으킨 정조를 개혁군주라고 보기에는 무리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통치하는 나라가 앞으로 어디로 가야 할지 해답을 내놓기 위해 고민했던 것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처음 사진기를 들이댄 것은 빛과 어둠의 명확한 구분때문이었습니다. 이런 구도에서는 사진이 정말 잘 나오기 때문이죠. 하지만 찍힌 사진을 보면서 정조가 어떤 고뇌에 빠졌을지 한참 동안 생각해봤습니다.

두번째 사진은  근대식 부엌입니다. 이게 설치될 당시에는 현대 혹은 서양식 부엌으로 불렸겠죠? 그릇을 넣어두는 찬장과 석탄으로 땠을 것 같은 화덕과 오븐이 보입니다. 왼쪽의 하얀 대리석은 그릇과 접시를 씻는 싱크대입니다. 사진에는 안 보이지만 수도꼭지도 설치되어 있습니다. 당대 사람들에게 서양의 이런 문물들은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요? 사실 창덕궁에는 대한제국의 문장인 오얏꽃 문장을 심심찮게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전각들 역시 차를 타고 오가기 편하게 개조된 것들도 보입니다. 당시의 사람들에게 이런 서구문물들은 어떻게 다가왔을까요? 고종과 순종은 카펫이 깔리고 전등이 들어오는 내전에서 의자에 앉아서 얘기를 나누고 침대에서 잠을 자야만 했습니다. 아마 이렇게 해야만, 그리고 이런 것들을 받아들여야만 조선, 그리고 대한제국을 부강하게 만들 수 있다고 믿었겠죠. 생각해보니까 제가 창덕궁을 좋아하는 이유가 바로 역사의 흐름에 따라 조금씩 변화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창덕궁 곳곳에는 대한제국의 황실 문장인 오얏꽃이 보입니다. 물론 일제가 손을 대면서 망가질대로 망가지긴 했지만 오롯하게 남아있다는 건 큰 행운이 아닐까 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세상이 극히 일부인 것처럼 우리가 생각하는 역사도 어쩌면 아주 작은 부분만을 비춰주고 있을지 모릅니다. 그래서 열 번 넘게 온 창덕궁에서 여전히 낯선 것들과 마주치는 것이죠. 아마 다음번에 창덕궁에 갈 때도 또 낯설고 새로운 것들과 마주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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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6/09 21:07
수정 아이콘
창덕궁은 서울 갈때마다 시간만 나면 가는 편인데 경복궁이 최근에 복원한 탓인지 인조미가 많이 느껴지는 반면 창덕궁은 세월의 흔적을 느낄수 있어서
참 좋은것 같습니다.
김민규
13/06/09 21:13
수정 아이콘
이런 조선의 궁궐 사진들을 보면 우리나라도 일본의 국권 침탈 없이
궁궐들이 보존되고 많은 문화재들이 후손들에게 전해졌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외국 유출문화재만 보면 진짜 한숨만....
마요라
13/06/09 21:28
수정 아이콘
창덕궁 오늘 오전에 갔는데

대한민국에 풍부한 역사지식을 가진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를 체감했습니다. 한 아줌마가 다른 아줌마한테

창덕궁에 대해 설명해주는데 그 내용만 듣는데도 왠만한 사극보다 재미있더라구요 전 병풍같은게 그런 의미가 있는 줄 몰랐습니다.

그리고 위에 의견처럼 경복궁과는 다른 멋이있어 좋았네요 근데 후원보는 가격좀 낮춰주면 안되겠니...
자이체프
13/06/09 21:30
수정 아이콘
많이들 다니셨군요. 아는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즐긴다는 말은 역사와 딱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창덕궁 후원은 아마 일부러 가격을 높게 잡은 것 같습니다. 관람객 제한을 위해서 말이죠.
눈시BBbr
13/06/09 21:32
수정 아이콘
근대식 부엌이라... 확실히 창덕궁은 시간이 흐른다는 게 느껴지죠 @_@)/ 잘 읽었습니다~
Je ne sais quoi
13/06/09 22:02
수정 아이콘
다음 번엔 조금 더 길게 써주세요 ^^; 재밋어서 더 많이 보고 싶습니다~~ 잘 읽고 봤습니다.
13/06/09 22:04
수정 아이콘
옆집 창경궁은 참....창하고 경한 일이 하나도 없었던 것 같고 망국은 경복궁과 덕수궁이니 창덕궁은 운이 좋은 궁궐같아요.
자이체프
13/06/09 22:24
수정 아이콘
서대문쪽에 있는 경희궁을 생각하면 창덕궁이나 다른 궁들은 운이 좋은 편이죠. 서울 역사박물관이 들어서는 바람에 복원이 아예 불가능해져버렸으니까요.
13/06/09 22:36
수정 아이콘
광해군의 업적(?) 이라 할만한 경희궁은 진짜 궁이라 부르기 민망할 정도의 규모만 남았죠..
감모여재
13/06/10 00:52
수정 아이콘
경희궁을 지날 때마다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밥 한그릇
13/06/10 00:35
수정 아이콘
십년전에 가고 못가봤는데 다시 가보고 싶어지네요. 저번에는 경복궁을 갔었는데 이번에는 창덕궁을 찬찬히 둘러보고 와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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