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13/01/16 15:46:32
Name Eternity
Subject [일반] [리뷰] 박수건달 - 용두사미, 하지만 기본은 한다 (스포 있음)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 있습니다.*
*리뷰 특성상 반말체인 점 양해바랍니다.*




[리뷰] 박수건달 - 용두사미, 하지만 기본은 한다



어제 저녁, 예정된 약속이 펑크가 나면서 갑작스레 남는 시간이 생겨 CGV에서 홀로 <박수건달>을 관람했다.
영화는 재미있다. 물론 전체적으로 볼 때, 조폭 코미디 특유의 방만한 전개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등 아쉬운 부분이 많았지만 배우 박신양의 존재감만으로도 이러한 아쉬움이 상당 부분 상쇄되는 그런 영화였다.

무속과의 퓨전을 통한 조폭 코미디의 변주


우리에게 익숙한 <조폭 마누라>와 <두사부일체> 시리즈부터 해서 최근에 5편까지 개봉한 <가문의 영광> 시리즈까지. 한국 관객에게 가장 익숙한 코믹 장르 가운데 하나가 바로 조폭 코미디이다. 결국 그만큼 안정적인 재미를 뽑아낼 수 있는 장르이기는 하지만 반대로 얘기하면 또 그만큼 지겹고 식상한 장르이기도 하단 얘기이다. 영화 <박수건달>은 이런 의미에서 영리한 시도를 했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조폭이란 소재와 무속이란 소재를 퓨전시키는 새로운 시도를 통해 엉뚱하고 낯선 재미를 뽑아내고자 한 것. 결론적으로 이러한 의도는 나름대로 잘 들어맞았고 이 영화, 익숙하면서도 낯설고 또 낯설지만 재미있다.

영화의 내용은 간단하다. 원치 않는 신내림을 받아 어쩔 수 없이 박수무당이 되어 갑작스레 조폭과 무당의 이중 생활을 시작하게 된 엘리트 건달 박광호의 좌충우돌 이야기. 우선 이 영화를 칭찬해줄 점이라면 조폭 코미디 특유의 (사투리 등을 앞세운) 우악스러운 억지웃음이나 과장된 슬랩스틱류의 몸개그가 아닌, 언밸런스한 상황을 통한 나름의 자연스러운 재미를 만들어낸다는 점이다. 대표적으로, 검사 취조실에서의 빙의 애정씬(?)이나 박수무당인 자신을 찾아온 조직의 부하들을 마주대하며 벌어지는 에피소드 등 주인공이 처한 모든 상황들이 그 상황 자체만으로도 재미를 주기에 충분하다. 이른바 배우들의 개인기나 몸개그를 통해 웃음을 주기 보다는, 박수무당이 된 조직의 중간보스가 겪는 황당한 에피소드들이 자연스레 나열되며 거부감 없는 웃음과 자연스러운 재미를 선사한다는 것이 영화 <박수건달>의 가장 큰 장점이자 관람 포인트이다.

툭툭 끊어지는 단절된 상황극과 소모품용 캐릭터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조폭 코미디 특유의 억지 웃음이나 진부한 억지 감동코드가 없는 것은 아니나 이러한 억지 감정 코드 보다도 내 눈에 더욱 거슬린 것은 툭툭 끊어지는 전개와 흐름, 그리고 일회성으로 쉽게 사용되고 버려지는 캐릭터들의 무분별한 소모였다. 아무리 이 영화의 주목적이 웃음과 재미를 주는 것이라곤 해도 하나의 상황과 하나의 캐릭터가 그 순간의 일시적인 상황과 재미를 위해서만 복무해선 곤란하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하나의 상황과 하나의 캐릭터는, 그 순간의 웃음과 재미를 위해서만 복무한다는 느낌이 강하다. 마치 이런 식이다. 예를 들어 검사 취조실 에피소드에서 큰 웃음을 뽑아내는데 일조했던 여자귀신과 황검사(조진웅)의 캐릭터는 그 상황이 종료된 이후로 영화에서 자취를 감춘다. 적어도 그러한 일련의 에피소드를 통해, 그때까지 평행선을 달리던 황검사 캐릭터와 광호의 캐릭터가 일종의 화학적 결합을 일으키고 이러한 결합이 그 후 영화의 매끄러운 전개에 일조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는 얘기다.  

더불어 엄지원이 연기했던 명보살 캐릭터 또한 목욕씬과 '조선의 국모'드립을 빼면 이렇다할 기억에 남는 장면이 없다. 또한 광호에게 죽은 귀신들이 줄줄이 따라붙는 자동차씬이나 풍어제 에피소드 등도 마찬가지로 상당히 휘발성이 강한 상황과 상황의 무책임한 나열에 불과하다. 결국 영화의 자연스러운 흐름과 전개 속에 각각의 상황이 녹아들며 캐릭터가 어우러지는 것이 아니라, 코믹스러운 하나의 상황이 끝나면 "자, 다음 상황!" 이런 식으로 각 장면들이 절단되고 그 각각의 상황을 통해 웃음을 배출한 캐릭터는 소모품처럼 취급되는 느낌이 강하다는 얘기다. 특히나 <런닝맨> 등 박신양과 예능 나들이를 통해 이 영화의 여주인공 포스를 뽐내던 엄지원의 명보살 캐릭터는 영화 속에서 사실상 순간 순간의 휘발성 말개그를 담당하는 주조연 캐릭터에 불과할 정도이다. 오히려 그녀보다는, 박신양을 졸졸 쫓아다니는 꼬마아이 수민(윤송이)이 오히려 이 영화의 여주인공에 가깝다고 느껴질 정도로 박신양의 캐릭터를 제외한 영화 속 캐릭터들은 존재감이 부족하고 캐릭터적 끈기가 없다.

물론 가볍게 웃고 즐기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킬링타임용 조폭 코미디 영화에 너무 많은 것을 바란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래도 영화는 영화다. 아무리 가벼운 목적으로 만들어진 영화라도 그 영화가 토막난 상황극의 나열이나 개그 콘서트 모음이 되어선 곤란하다는 얘기다. 아무리 유쾌한 웃음을 선사한다해도, 극적인 상황과 상황간의 유기적인 연결의 아쉬움과 캐릭터들의 일시적 소모의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영화를 먹여 살린 팔할은 박신양의 존재감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의 재미에 나름 푹 빠질 수 있었던 이유는 박신양의 능청스러운 연기와 화면을 꽉 채우는 든든한 존재감 덕분이다.  황검사의 죽은 애인이 몸 속에 들어오는 빙의씬 등 다른 배우들이 했으면 손발이 오그라들고 민망했을 부분들도 박신양이기에 선방했다는 느낌이 강했고 눈빛과 목소리를 야무지게 뒤바꾸며 용한 박수무당을 연기하는 그의 모습은 큰 웃음을 주기에 충분할만큼 능청스러웠다. 특히나 그중 압권은, 초보무당이 된 광호를 시험하기 위해 온 손님 무당이 그를 무시하자 뒤늦게 신들리며 그녀를 몰아세우던 첫 손님씬이었다. 이 장면에서 그는 마치 정말 신들린 박수무당인 양 특유의 섬세한 연기력을 마음껏 선보였다. 마치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에서 이지적 이미지의 배우 이병헌의 이질적인 코믹 캐릭터 연기에 신선함을 느꼈던 것처럼, 박신양의 박수무당 연기는 비슷한 차원의 신선함과 재미를 주었다. 결국 영화의 허접한 구성과 캐릭터들의 두서없는 난립 속에서도 관객의 몰입도를 끝까지 유지시키고 영화의 안정감을 나름대로 지켜낸 공은 오로지 박신양의 존재감과 연기력에서 기인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박신양이 <박수건달>이라는 조폭 코미디를 찍는다는 얘기를 들었을 땐, '오랜만의 스크린 복귀작이 왜 하필 조폭 코미디인가' 하는 아쉬움이 먼저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막상 영화를 보고나니 박신양의 선택이 나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러한 그의 작품 선택을 이해하게 되었다. 적어도 <박수건달>은 <가문의 영광>류의 조폭 코미디보다는 한단계 정도 업그레이드된 코미디 영화인 것은 분명하고 또 그만큼 작품의 흥행성 또한 어느 정도 기대할 만한 영화이다. 다른 건 몰라도 시나리오의 대중성과 흥행성을 감지하는 박신양의 배우로서의 상업적 안목이 아직 죽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는 영화랄까.

사실 영화 <약속>부터 <달마야 놀자>, <범죄의 재구성> 그리고 <박수건달>까지. 대한민국 영화계에서 이처럼 지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조폭(혹은 양아치) 연기를 능청스럽게 잘 소화해내는 배우가 또 누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박신양의 연기는 양극단을 널뛰기하며 보는 이들에게 많은 쾌감을 선사한다. 이른바 정순하고 묵직한 내공을 바탕으로 한 재빠른 초식과 가벼운 행보의 무림 고수를 보는 듯한 기분. 그의 연기는 그래서 가벼우면 가벼울수록 오히려 묵직한 내공과 존재감이 더욱 느껴진다.

용두사미, 하지만 기본은 한다


어쨌든 이러한 박신양의 몸과 입술을 던진(?) 열연에 힘입어, 영화는 조폭 코미디로서의 본분을 다하며 나름 제몫을 한다. 물론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영화적 구성의 허접함과 캐릭터의 무분별한 소모로 인해 뒤로 갈수록 초반의 신선함은 떨어지고 조폭 코미디 특유의 개싸움(?)과 억지 감동으로 대미를 장식하며 식상하게 마무리되는 용두사미의 모양새를 보여주지만, 그래도 '기본은 한다'는 얘기다. 이 정도면 스트레스 받을 일이 많은 요즘 같은 하수상한 시기에 극장에서 큰 기대 없이 가볍게 킬링타임용으로 웃고 즐기기에 부족함이 없다.

어쨌든 오랜만에 스크린에서 만난 박신양은 반가웠고 그의 능청스러운 존재감만으로도 이 영화의 매력은 충분했다. 다만 우리가 알지 못하는, 신비로운 무속의 세계를 조금 더 깊게 파고들어 그 안에서 신선한 재미를 더 많이 뽑아내지 못하고 수박 겉핥기 식의 소재 차용에 머물며 애초의 신선한 시도가 식상한 마무리로 그친 점은 아쉬움으로 남지만 어쩌랴, 태생이 조폭 코미디인 것을. 너무 많은 기대는 정신 건강에 좋지 않은 바, '나름 선방'이라는 네 글자로 영화 <박수건달>에 대한 총평을 마무리한다.


p.s 여담이지만 영화에서 박신양 못지않은 존재감과 연기력을 선보인 이는 무속인 할머니 역할의, 배우 박정자가 아닌가 싶다. 마치 진짜 무속인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그녀의 연기력은 인상 깊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13/01/16 16:03
수정 아이콘
네이버 평점도 생각보다 높던데... 괜찮은가보네요~

조폭코미디라서 거부감들고있었는데...
Eternity
13/01/16 16:15
수정 아이콘
피가 튀기거나 우악스러운 장면도 별로 없고 조폭 코미디 치고는 제법 괜찮은 편입니다.
가볍게 킬링 타임용으로 즐기기에 무난한 영화랄까요.
에릭노스먼
13/01/16 16:23
수정 아이콘
이 감독영화 킬링타임용으로는 괜찮더군요
Eternity
13/01/16 19:28
수정 아이콘
찾아보니 <조폭 마누라> 감독이었군요.
에이치투
13/01/16 16:57
수정 아이콘
전 영화 결말도 중간도 안돼서 눈에 보였고,
설정이나 연기도 과하다는 느낌이 들어서 중간에 나가고 싶었어요. 지금까지 영화관에서 본 영화 중 최악으로 꼽을 정도로
재미가 없더라고요.
박신양이라는 이름 때문에 기대치가 너무 높았던건 아닌가 싶습니다.
Eternity
13/01/16 19:29
수정 아이콘
전 반대로 조폭 코미디라는 장르에 대한 기대가 0으로 수렴해서인지 아무 기대 안하고 갔다가 나름 재밌게 관람하고 나왔습니다.
말씀하신대로 영화의 결말은 너무나 뻔하고 유치했지만 뭐, 중간에 많이 웃어서인지 그러려니 했네요.
곱씹어보면, 박신양이란 배우에 대한 개인적인 호감도가 영화에 대한 후한 평가에 일조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네요.
에이치투
13/01/17 00:35
수정 아이콘
본문에서 언급하신 것처럼 무속인 할머니 역할을 하셨던 배우분의 연기만큼은 인상 깊었습니다. 자연스러웠다고 할까요.
13/01/16 17:13
수정 아이콘
최악의 영화 중 하나였습니다.
Eternity
13/01/16 19:32
수정 아이콘
영화의 후반부터 결말까지만 놓고본다면 최악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중반까진 나름 괜찮았다고 봅니다.
전 나쁘지 않게 관람했습니다.
13/01/16 22:18
수정 아이콘
여러가지 평이 많네요 저는 기대도 안했을뿐더러 조폭코미디가 뭐 뻔하지 하고 봤었는데 상당히 만족하고 봤습니다.
결말은 뻔하다해도 이런영화에서 뭔가 얻기보다는 킬링용으로 많이 보니깐요
여담으로 병아리가 너무 귀엽더군요
Eternity
13/01/17 18:50
수정 아이콘
저도 비슷한 마음으로 관람했는데 그래서 그랬는지 볼만하더군요.
뒤로 갈수록 좀 진부하고 뻔하긴 했지만 중반까지는 꽤 재밌게 관람했습니다.
캐스퍼
13/01/16 22:57
수정 아이콘
나이가 들었나봅니다
감독이 대놓고 울어라하는 씬에서
(검사애인 빙의씬,라스트씬)
울 뻔 했습니다ㅠㅠ
그리고 집에와서 이문세의 소녀만 듣고 있습니다
Eternity
13/01/17 18:51
수정 아이콘
사실 저도 빙의씬에서는 울컥 했습니다.
대놓고 눈물을 유도하는 씬이라는 생각은 했지만 그래도 저도 모르게 울컥하는 건 어쩔 수 없더군요.
조진웅의 연기가 꽤 짠했습니다.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44691 댓글잠금 [일반] 홍어, 운지 그리고 일베(혐오주의) [143] 엄배코11706 13/06/23 11706 3
44595 [일반] 누가 짝사랑이 아니라고 말해주세요. [17] 내맘이야4479 13/06/19 4479 0
44565 [일반] 간단한 영화 감상기 [25] 예바우드6130 13/06/17 6130 0
44284 [일반] [책 소개] 주기자 - 주진우의 정통 시사 활극 [10] DarkSide7907 13/06/05 7907 2
44221 [일반] 개그콘서트 "황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70] JunStyle10060 13/06/03 10060 0
44206 [일반] 꽃의 안드로이드 학원 [22] 순두부11133 13/06/02 11133 0
43809 [일반] PC방에서 만난 민주화 청년들 [372] 유유히9370 13/05/16 9370 3
43629 [일반] [단편] 어느 게임 마니아의 일상생활 [14] 트린6885 13/05/08 6885 2
43117 [일반] [소개] 뫼신사냥꾼 -윤현승 [22] par333k9638 13/04/10 9638 0
42609 [일반] 여대생과 카풀 체험후기 (part3.비상사태) [56] Eva01010430 13/03/08 10430 7
42438 [일반] 미지와의 조우 - 벨테브레와 하멜 [5] 눈시BBbr8529 13/02/25 8529 1
42426 [일반] [리뷰] 베를린(2013) - 한국형 첩보 영화의 미래를 말하다 (스포 있음) [82] Eternity13966 13/02/10 13966 5
42099 [일반] 바른 생활 [29] 헥스밤7480 13/02/03 7480 24
41882 [일반] 지고나서야 비로소 꽃인 줄을 알았다.-2 [10] 영혼5944 13/01/24 5944 1
41846 [일반] 펌 - (정보글) 지역드립과 관련된 총설 [144] 장어의심장7911 13/01/23 7911 5
41727 [일반] [리뷰] 박수건달 - 용두사미, 하지만 기본은 한다 (스포 있음) [13] Eternity6630 13/01/16 6630 0
41719 [일반] [펌] 지역감정에 대하여 -유시민- [59] Pray4u8579 13/01/16 8579 2
41237 [일반] 개인적으로 꼽는 올해의 드라마 세편 그리고 대사 [60] classic7638 12/12/24 7638 0
41235 [일반] 난 한 게 없었다 [19] 눈시BBbr7842 12/12/24 7842 1
40418 [일반] 두 사람 이야기 - 앞에 서거나 뒤에 서거나 [6] 글곰3644 12/11/16 3644 4
40354 [일반] 원효상가에서 돌아오며 [18] 항즐이5790 12/11/14 5790 0
39970 [일반] 고쳤으면 하는, 개인적으로 신경쓰이는 국어습관. [91] 곰주6092 12/10/29 6092 0
39591 [일반] 늦었지만... 한글날 기념으로 지금은 안쓰는 순 우리말~ [33] ofbyfor10722 12/10/09 10722 1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