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파리에서 그야말로 성스러운 오오라를 내뿜는 한국인 유학생 커플을 만난 적이 있다.
여행 중 같은 숙소를 잡았을 작은 인연인지라 그들과 함께한 시간은 저녁 식사 두 번이 전부였지만,
그 짧은 시간에도 나는 그 느낌에 압도당해 '세상에는 정말 이런 사람도 있구나.' 하고 속으로 몇 번이나 되내었다.
그들은 거룩했다.
말, 눈빛, 미소, 손짓 등 행위 하나하나가 깊고 고요한 호수와 같았다.
특별한 행동은 아무것도 없는데도, '우리는 선량하고 착한 사람입니다.' 하는 게 온몸으로 표현되고 있었다.
그들의 삶은 언제나 평화 중에 있고, 어떠한 근심도 걱정도 없을 것만 같았다.
우와.. 내가 하나의 대상에 이렇게나 많은 수사를 동원한 건 처음이 아닐까.
어쨌든 짧게 말하자면, 나는 성인을 만난 느낌을 받았다.
허나 나는 그저 그런 존재에 놀라워했을 뿐, '나도 저렇게 되어야지, 되고 싶다.' 라는 생각은 코털만큼도 하지 못했는데,
그것은 사람이 저런 수준에 이르려면 대체 얼마만큼의 희생과 절제가 필요할지에 대하여 동타임에 숨이 턱 막혀왔기 때문이다.
평소 온갖 나태와 쾌락에 젖어서 사는 나로서는 도저히 오를 수 없는 산으로 보였다. 아니, 노린다는 생각조차 들지 못했다.
솔직히 그때 나는 그들이 그다지 부럽지도 않았던 것 같다. 그저 신기했을 뿐.
그렇게 금방 눈을 돌려버리고는
저번 주까지는 저 커플에 대해 깔끔하게 잊고 살았다.
그러다가 저번 주,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먼 동네 신부님이 내게 물었다.
"당신은 어떤 삶을 원합니까?"
순간 아무 생각 없던 나는,
"평화로운 삶을 원합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평화로운 삶을 위하여 도대체 어떤 노력을 하고 있습니까?"
...그러게요.
"아무것도 안 하죠?"
넵.
"그래서 당신이 지금 여기에 있는 겁니다. 제 말 무슨 뜻인지 아시겠어요?"
...
아, 여태 나는 헤메었구나.
이때서야 그때 그 커플이 떠올랐다.
무엇이 될지보다 어떻게 살지를 고민하라는 책 제목이 스쳐갔다.(물론 안읽었으나,)
그리고 오늘에서야 급작스런 종용에 힘입어,
저기를 오르는게 의미가 있는 일이며,
진짜로 올라야겠다고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으악.
또 모른다. 아니 잘 안다.
또 나도 모르는 사이에 오늘의 개심도 후루루룩~
이번에도 높은 확률로, 나는 오늘 새로 태어나는 놀이 중 하나로 남겠지...만,
그래도 시작이 반이라지 않나. 좋은 다짐 자체가 뭐가 나빠.
이제는 노릴 수 있게 되었지 않나.
큰 흐름으로 보면 뭔가 꾸준하게 나아지고는 있다. 그러니,
어쨌든 오늘 하루쯤은 기뻐하며 잠들어도 되지 않을까나.
즉, 오늘 나는 내 인생 가장 어렵고, 힘들고,
그렇지만 가장 가치 있는 꿈을 품었다.
거기에 이번만큼은 혼자도 아니고 말이다.
오늘 살포시 내 등을 밀어주신,
해가 바뀌어도 우주 제일 달콤하신 여친님께 감사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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