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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2/05/15 09:41:05
Name 영혼
Subject [일반] 놓을 수 있을까.




신기한 일이다. 어느샌가 흩날리던 벚꽃은 언제 그랬냐는듯 사라져버렸다. 아니, 벚꽃이 있었는지도, 누구를 위해 흩날렸던지도 글쎄, 잘.
그리도 기다렸었는데. 따스했고 또 쌀쌀했던 봄날은 진즉에 내 곁을 지나어버렸건만, 살랑이던 마음은 이미 기억에 없다.

어제는 한차레 비가 쏟아졌다. 비로소 봄이 끝났다. 고 생각했다. 누구도 알려준 적 없고 그리 생각하지 않았지만 혼자 그리 결정하기로 했다.
이 비는 끝이다. 봄의, 며칠, 아니 몇년째였는지도 모를 나만의 봄이 비로소 끝이 났다.

비가 와, 비가 와. 누구라고도 할 수 없는 목소리가 생각난다. 비는 온다. 때때로 내리기도 한다는데, 도통 비가 간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어쩌면 비는 내킬때면 가끔 우리에게 찾아오곤 하는 손님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비는 항상 우리를 찾아오지만 이별의 약조는 찾을 수 없는.
단지 이제 오지 않을 뿐, 그만 내리게 되었을 뿐. 언젠가 빗물처럼 누군가에 적시었던, 누군가가 내리었던 날들 또한 떠나지 않고 머물 것만 같다.

잠시잠깐 숨을 돌리고 나니 어느샌가 쏟아지던 봄비는 언제 그랬냐는듯 사라져버렸다. 아니, 비가 내렸는지, 그 흔적들도 글쎄, 잘.
쓸데없이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언제라고 꼬집어 말할 수 없을만큼 황망하게 자취를 감춘 빗방울을 보니 쓸데없이, 너의 생각이 났다.

너는 나를 놓을 수 있을까. 나에게서 사라질 수 있을까.
떠난 적 없는 생각이 다시금 나를 찾아올 때 비로소 그 생각에 적시어질 수 있을까. 나는 이 비를 놓아버렸듯 너를 놓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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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는나의빛
12/05/15 09:52
수정 아이콘
시간이 답이죠..
12/05/15 09:52
수정 아이콘
진리는나의빛님 // 매력적인 오답이기도 합니다.
Darwin4078
12/05/15 09:57
수정 아이콘
놓을 수 없어요. 죽을때까지 놓으려고 노력할 뿐.
아니, 애초에 노력같은거 안하는 걸지도 모르죠.
12/05/15 09:59
수정 아이콘
Darwin4078님 // 어찌 저는 구구절절 이렇게 길게 써야하는 말을 단 두 줄로 표현해내십니까.. ㅠㅠ
PoeticWolf
12/05/15 10:19
수정 아이콘
비로소 봄이 끝났다. 고 생각했다. 누구도 알려준 적 없고 그리 생각하지 않았지만 혼자 그리 결정하기로 했다.

이 문장에 다 들어있군요. 시간이 답이거나... 다른 사람이 답이거나... 힘내세요 영혼님.
12/05/15 11:18
수정 아이콘
시적늑대님 // 다들 저마다의 답을 찾거나, 혹은 답을 찾지 못하여도 그런대로 살아가는 편이겠죠.
켈로그김
12/05/15 10:39
수정 아이콘
다른 사람이 답이더군요.
그렇게 치열하게 평생을 놓아줄 것 같지 않던 사람도
내 곁에 다른 사람이 생기면서 점점 옅어져 갔습니다.
12/05/16 05:32
수정 아이콘
켈로그김님 // 그럴겁니다. 그럴지도 모르겠는데, 그렇지 않을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별로네
12/05/15 10:53
수정 아이콘
켈로그김님 말씀처럼,
다른 누군가를 만나고 결혼하고 아이들을 가지고 사회생활을 하며 점점 옅어져 갑니다.
그리고 옅어져 가며, 슬펐던 과거가 아니라 행복했던 추억으로 승화시킬수 있더군요.

단, 잊혀지진 않네요. 아직까지도. 아마.... 죽을때까지도........?
12/05/16 05:32
수정 아이콘
별로네님 // 저두요. 아마. 끝까지
확고한신념
12/05/16 00:03
수정 아이콘
글 좋네여,
근 한달간 봤던 글중에 가장 좋았어요
12/05/16 05:32
수정 아이콘
확고한신념님 // 좋게 읽어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쉬림프골드
12/05/16 17:09
수정 아이콘
너는 나를 놓았겠지만.... 나는 너를 놓을 수 있을까요?
사람을 사람으로 잊고 싶지만....
내 마음 속의 네가 비워져야 비로소 다른 누군가를 담을 수 있을것 같아요...ㅠㅠ
12/05/16 20:38
수정 아이콘
쉬림프골드님 // 아무도 확신할 수 없는 문제일거에요. 사실 잊지 못하더라도, 아니 그러지 않더라도 상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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