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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5/09/25 07: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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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일반] 실제 용병들의 전쟁방식을 알아보자

Battle_of_Pavia_-_Unknown_Artist_-_Google_Cultural_Institute.jpg 실제 용병들의 전쟁방식을 알아보자
 

 

 이탈리아에 드리운 그림자는 걷힐 줄을 몰랐고, 용병과 전쟁은 영원할 것만 같았습니다. 약탈은 수도 없이 반복됐습니다. 용병단의 약탈은 성과 속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한 사제는 용병단의 미덕이 수도원에 불을 지르고, 교회를 약탈하고, 사제를 납치하는 것이라 썼습니다. 

 

 용병단은 매복당하지 않기 위해서 이동할 때 주로 소규모의 파견대로 쪼개져 행군하곤 했습니다. 이렇게 움직이면 약탈할 수 있는 가동 범위도 훨씬 광범위해졌습니다. 적성의 근처에 도달했을 때서야, 용병단은 위세를 과시하기 위해 하나의 거대한 무리로 뭉쳤습니다.

 

 용병단은 될 수 있는 한 도로를 타고 이동했는데, 순례자들과 상인들도 같은 도로를 이용했습니다. 자연히 그들은 희생양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자잘한 약탈들보다 용병단의 주된 수입은 거대한 도시들로부터 뜯어낸 보호비에서 나왔습니다.

 

 도시의 대사들은 용병단의 지휘관들이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지니고 있음을 간파하여 이간질 시키는 등 최대한 보호비를 적게 내기 위해 노력했고, 용병단들은 서둘러 다른 곳으로 이동해 다른 수입을 올려야했기에, 협상은 재빠르게 진행되곤 했습니다. 물론, 약간이라도 어긋나면 대사의 목에 칼이 들이밀어지는 불상사도 벌어졌습니다.

 

 

 

Sebastiaan_Vrancx_(1573-1647)_-_De_plundering_van_Wommelgem_(1625-1630)_-_Düsseldorf_Museum_Kunstpalast_15-08-2012_15-08-12.jpg 실제 용병들의 전쟁방식을 알아보자

 

 용병의 전쟁은 약탈로 시작됐습니다. 적지의 수확물을 빼앗거나 불태우고, 가축을 훔치고, 건축물에 불을 지르는 것이 주가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흑사병과 기근이 일상적인 14세기 이탈리아 지역에서 용병들이 전쟁을 수행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빈약한 보급을 어떻게 땜질할 것이냐 하는 문제였습니다. 대규모 야전은 한 쪽이 일방적으로 우위에 있지 않는 한 거의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이탈리아에서의 용병전쟁은 주로 지리멸렬한 소모전이었으며, 돈에 좌우되는 일이었습니다. 적의 무역로와 보급로를 차단하는 게 일차적인 전략 목표였고, 군대는 종종 무기보다도 낫을 선호했는데, 적들의 곡물을 약탈해오기 위해서였습니다. 

 

 전쟁은 또한 음모와 배신으로 점철된 정보전이기도 했습니다. 정치적 망명자들로 구성된 첩자, 그리고 첩보망이 이탈리아 전역에 걸쳐 존재했고, 때로는 첩자 하나가 일국의 군대만큼이나 효율적으로 움직이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상인, 대사 등으로 위장한 채 빵 속에 암호가 적힌 편지를 집어넣었고, 때로는 역정보를 흘리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첩자 혐의로 잡힌 사람들은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사악한 방식으로 고문당하다가 죽임을 당하게 마련이었습니다. 

 

 이 시기에 적 지휘관을 독으로 암살하는 것은 너무나도 흔한 관행이었기에 이에 대해서는 따로 주제를 잡아서 두꺼운 책을 여러 권 써도 될 정도입니다. 적 보병 일천명을 죽이는 것보다 때로는 적 지휘관 하나를 독살하는 편이 훨씬 효율적이어서, 용병대장들이 좋아하는 음식들을 알아내기 위해서도 첩자들은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을 겁니다. 

 

 피렌체를 상대로 싸우던 어떤 용병대장은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체리 요리를 먹고 중독돼 사망했습니다. 독을 쓰는 가장 흔한 방법은, 적 군대의 보급품에 독을 섞어놓거나 적군이 지나갈 우물에 미리 독을 타 놓는 방식이었습니다.

 

 적성을 공략하는 공성전은 사실 하나의 파티였습니다. 정면 공격을 하기 이전에 공성측은 거나하게 연회를 열어 술 마시고 떠들며 성 안의 적군들을 조롱했습니다. 이러한 언합전(言合戰)은 오늘날의 심리전과 유사한 측면이 있었습니다. 밤새도록 트럼펫을 불며 도박을 했고, 도박에는 군인들 뿐 아니라 용병대를 따라다니는 여성들도 참여했습니다. 궐석 모의재판도 즉석에서 열려, 적 지휘관을 상징하는 각종 가축들이 공개적으로 비난 받은 뒤 눈에 잘 띄는 곳에 목매달리곤 했습니다. 

Trebuchet2.png 실제 용병들의 전쟁방식을 알아보자

 

 트레뷰셋이나 망고넬 쯤으로 불린 각종 투석기들이 공성전에 활용됐습니다. 이런 기계장치들에는 애정어린 별명이 붙곤 했으며, 기계장치를 관리하는 기술자들은 기병보다도 더 많은 급여를 받았습니다. 투석기 말고도 봄바르데라고 불린 대포도 쓰였는데, 봄바르데는 사실 거대한 공성용 대포 이외에도 모든 화기를 통칭하는 표현이었습니다. 대포 기술자들도 투석기 기술자들만큼이나 좋은 대접을 받았는데, 이것은 사실 조금 억울한 처사였던 것이, 초기 대포는 불안정한 도구라 쉽게 폭발해 적군만큼이나 아군 병사들에게도 위협적인 무서운 기계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대포는 그 엄청난 소음과 진동으로 적군의 사기를 꺾는데 엄청난 효용을 보였습니다. 

 

 

Translation_of_Albumasar_Venice_1515_De_Magnis_Coniunctionibus.jpg 실제 용병들의 전쟁방식을 알아보자

 

 용병들에게 있어서, 군대의 나아감과 물러남은 너무나도 무겁게 여겨져 감히 기독교적 관행에서만 해석할 순 없는 중대사였습니다. 따라서 하느님의 빈자리에는 아주 아주 오래 전 고대의 관습으로부터 유래한 점성술이 들어앉아 있었습니다. 군대의 고위 지휘관들은 이교의 의식을 군사 업무에 참조했습니다. 때로는 점성술의 인도가 끔찍한 패배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런 '우연의 일치'가 용병들의 이교 신앙에 대한 믿음을 꺾지는 못했습니다.

 

 야전은 매우 폭력적인 사건이었지만, 잔인함과 별개로 치명상을 입는 군인들은 소수에 불과했습니다. 전투의 주요 목표는 상대를 낙마시키는 것이었기 때문에, 사람보다 말이 더 많이 다치고 죽었습니다. 훗날의 마키아벨리 또한 용병들이 절대로 피를 흘리지 않는다며 그들의 중요성을 깎아내리곤 했는데, 그렇다고 해서 용병들이 안전한 생활을 했던 것만은 아닙니다. 때때로 큰 야전이 벌어지면, 한 번에 일천명 이상이 사망하기도 했습니다. 전장에서의 치명률은 용병들의 잔인함이나 과단함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들의 고용주가 적들을 죽이는 것보다 포로로 잡는 것을 더 선호했기에 벌어진 현상이었습니다. 

 

 

800px-Bascinet_MET_DT11527.jpg 실제 용병들의 전쟁방식을 알아보자
 

 용병단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역시 기병이었습니다. 용병단을 이끄는 하급 지휘관들이나 중기병들은 바시넷(Bascinet)이라 불리는 철제 개방형 투구와 사슬 갑옷, 그리고 금속성의 팔과 다리 보호대 및 철제 장갑 등으로 완전 무장을 했습니다. 상대를 낙마시키는 랜스, 그리고 근접전에 사용하는 칼과 작은 살상용 단검 등 무기도 여러 개를 동시에 소지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종자나 경기병은 이보다 간단한 무장만을 했습니다. 

 

 기병대는 세 명의 남자와 세 마리의 말로 구성된 하나의 랜스 부대를 이루었는데, 이름없는 지휘관들이 이런 랜스 부대를 몇 개씩 지휘했고, 70~90개의 랜스부대들이 모여 파견대를, 그리고 200~300개의 랜스 부대들이 모여 저명한 지휘관들이 지휘하는 하나의 거대한 여단을 형성했습니다. 

 

 이 시기 보병의 역할은 전통적인 군사사에서 상당히 평가절하되곤 했습니다. 확실히, 이 전후 세기에 비해 14세기는 기병이 보병을 전장에서 압도하는 경향이 아주 강했으며 그 자체로 사회, 정치, 문화적 아이콘이었습니다. 그러나 보병의 군사적 중요성은 여전히 무시하지 못할 것이었습니다. 보병들은 적지에 방화하고, 기병 돌격을 저지할 도랑을 파고, 적성의 아래에 갱도를 파는 등 자질구레한 역할들을 도맡았습니다. 보병과 기병의 유동적인 협력은 전투의 승패를 가르는 중요한 요소이기도 했습니다. 

 

 궁병들은 좀 더 전문적인 역할을 맡았습니다. 석궁병들은 이 시기에 이르면 벌써 수백년의 전통을 지닌 숙련된 용병들이었습니다. 교황도, 밀라노도, 피렌체도 군대에 석궁병을 각각 최소 천 단위로 포함하고 있었으며, 전장에서 투사체는 전투의 향방을 극적으로 바꾸어놓을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지휘관이 유시에 맞아 절명하고, 그의 군대가 혼란에 빠져 패주하는 상황은 수도 없이 반복될 일이었습니다. 

 

 장궁을 지닌 병사들도 중요했습니다. 영국 용병들은 고향 땅에서처럼 장궁에 익숙한 토착민들이 이탈리아 땅에 존재하지 않자, 헝가리 궁병들을 데려왔습니다. 이러한 장궁병들은 차례로 랜스 부대에 통합돼 말을 타게 되었는데, 영국 용병단에서는 이러한 장궁병들이 두 갈래로 분화했습니다. 하나는 장궁과 말만을 지닌 단일한 장궁병이었고, 다른 하나는 조랑말 탄 종자가 딸린 일종의 장궁 기사였습니다. 

 

 

 

Muzio_Attendolo_Sforza.jpg 실제 용병들의 전쟁방식을 알아보자
 

 

 이탈리아에서의 계속된 전쟁으로 인해, 여러가지 전쟁술이 발달했습니다. 무치오 아텐돌로라고 불리는 어느 로마냐 출신의 용병은 말 그대로 강력한 전술을 개발해 전장을 휩쓸고 다녔는데, 그의 가문 구성원들은 훗날 힘을 뜻하는 '스포르차(Sforza)'로 불리며 훗날 비스콘티 가문을 대신해 대대로 밀라노를 다스리게 될 것입니다. 스포르차식 전술의 핵심은 엄격한 기강과 훈련, 그리고 그를 통해 재빠르게 원하는 지점에서 수적 우위를 확보하는 것이었습니다. 

 

 

Braccio_da_Montone,_di_Cristofano_dell'Altissimo,_1552-68_-FG.jpg 실제 용병들의 전쟁방식을 알아보자

 

 무치오 아텐돌로 밑에서 일하던 용병 출신의 브라초 다 몬토네는 훨씬 정교한 방향으로 전술을 발달시켰는데, 그는 개별 부대를 유동적으로 활용하며, 무엇보다 대규모 기병대의 기동성을 살려 각각의 기병 소부대를 원하는 지점에 정교하게 투입하는 전술을 선호했습니다. 이 전술에서는 또한 적의 체력이 바닥날 때 쯤 준비해둔 예비대를 재빠르게 투입하는 것이 핵심이었습니다. 

 

 용병대장들은 제각기 오랜 경험으로 '스포르차 전술'과 '브라초 전술'을 융통성있게 사용했는데, 물론 이런 전술들의 대부분은 첫번째 화살이 날라오는 순간부터는 무용지물이 되는 경우가 많았으며, 전투의 승패를 가르는 데에는 무수히 많은 우연적 요소들이 작용했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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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오늘
25/09/25 08:10
수정 아이콘
재밌습니다. 빨리 다음 글을...
세인트루이스
25/09/25 08:48
수정 아이콘
디아 덕분에 바시넷 랜스는 뭔지 잘 압니다 크크크크 좋은 글 감사합니다.
고구마장수
25/09/25 10:54
수정 아이콘
좋은 글 감사합니다!

콘스탄티노플 공방전을 다룬 영화나 다큐, 책을 보면 용병대(수비측)의 역할이 두드러지게 묘사되던데, 압도적인 다수의 이슬람 군대에 비해, 소수의 용병대가 왜 이렇게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었는지가 늘 궁금했습니다. 혹시 이런 점도 다뤄주십사 부탁, 청탁을 드립니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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