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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6/08/29 18:37:11
Name
윤여광
Subject
[yoRR의 토막수필.#26]무제.
https://pgr21.co.kr/free2/25269
삭게로!
[BGM]
[에필로그 In 장화홍련 OST]
그 날도 그랬다. 아무렇지도 않게 일을 끝내고 숙소로 돌아와 씻을 차례를 기다리던 나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지역번호 033. 집이 아니라면 강원 지역의 지역번호가 뜰 만한 곳이 없었다. 나는 아마 학교에서 걸려온 전화라고 생각했다. 휴학 신청도 하지 않은 채 개강 시기가 다가오고 있었으니 아마 등록금을 빨리 내라는 재촉전화일거라 생각했다. 가뜩이나 가벼운 주머니가 생각나 왠지 기분이 가라앉아 버렸다. 나는 기운 빠진 목소리로 핸드폰을 집어들었다.
"윤여광씨되십니까."
"네. 그렇습니다만."
학교에서 걸려온 전화는 아니다. 학과 사무실에서 걸려왔을거라 생각한 내 생각대로라면 나에게 윤여광"씨"라는 호칭은 쓰지 않을 터였다. 학생이라는 흔한 말이 있지 않은가. 무언가 불안한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아. 나는 강릉경찰서 OOO형삽니다."
"예?"
형사라는 말에 나는 다시 한 번 놀랐다. 그렇게 착하게 살진 않았어도 적어도 경찰로부터 직접적으로 호출을 받을 만큼 범법적인 행동은 한 적이 없기에. 짧은 시간이지만 오만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지금 현재 위치가 어디십니까?"
아무 상황 설명없이 대뜸 내 위치를 묻는 그가 왠지 야속했다. 뭐라고 말을 먼저 좀 해줬으면 했다. 확실히 좋지 않은 통보를 남기려 전화를 했을 그가 나에게 무슨 말을 할련지 전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적어도 나 한 사람에 한해서는.
"대전입니다만..."
"아...그러십니까. 수고스럽겠지만 지금 바로 강릉으로 오셔야겠습니다."
"네?"
이 시점에서 적어도 내가 지난 시간 저지른(?) 행동에 대한 문책때문에 나를 호출한것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경찰이라는 꽤나 고압적인 직업의 사내가 나에게 어디로 와주셔야겠다고 친절하게 말해주는 것을 보면.
"무슨 일입니까. 뭐 설명을 해주셔야 제가 가든 말든 하죠."
"아. 죄송합니다. 놀라지 말고 침착하게 들으시죠. 실은 오늘 오후 6시경에...."
그 날 아침 8시. 매일 안부를 위해 집으로 걸었던 전화를 통해 어머니는 나에게 개학 적 마지막 쉬는 날이라 아버지와 어머니 동생 모두 가까운 곳으로 나가 바람이라도 쐬고 오실 것이라는 말을 하셨다. 나는 아무런 생각없이 그러시라고 말했고 대신 내 꿈자리가 사나웠으니 차 조심하라는 당부를 남겼다. 어머니나 나나 꿈자리가 좋지 않았던 날은 본인이 됐든 다른 가족이 됐든 꼭 크고 작은 일을 당하곤 했었다. 불안하긴 했지만 여름 방학 마지막 쉬는 날을 무료하게 집에서 선풍기 바람이나 쐬고 있으시는 것 보단 나으리라 생각했다. 거기다 20여년 넘게 작은 접촉 사고 하나 내지 않으신 아버지의 운전 능력이라면 아무 일이 없으리라 생각했었다. 다시 일을 시작해야 했기에 더 남길 말은 집어삼키고 전화를 끊었다. 그렇게 나는 하루 종일 나에게 넘겨진 주문서에 적힌 일을 처리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가족들은 즐거운 시간을 보냈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 날 오후 6시. 오랜만의 나들이를 마치고 돌아온 우리 가족은 언제나 그렇듯 4자리 숫자로 이루어진 비밀번호가 걸린 도어락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동생은 옷을 갈아입기 위해 자기 방으로 들어갔고 어머니는 챙겨갔던 도시락 그릇을 정리하기 위해 주방으로 아버지는 땀으로 범벅이 된 몸을 씻으려 안방으로 들어가셨을 것이다. 여름이지만 집을 완전히 비울 때에는 각 방의 창문을 완전히 잠구는 것이 철칙이었던 아버지는 나오기 전 분명히 잠궜던 안방의 창문이 살짝 열려있는 것을 보고 오전에 외출하시기 전 제대로 잠궈야 하는 것을 힘을 덜 줘 완전히 닫히지 않으신 것이라 생각하시고 어차피 집으로 돌아오고 했으니 답답한 마음에 창문을 활짝 열으려 하셨다. 그렇게 창문을 열고 돌아서려는 순간 뭔가 평소에 눈에 띄지 않던 물체를 하나 보셨을것이다. 차림새는 어떠했을지 모를 어느 누군가. 그의 손에는 원래 있어야 할 자리는 우리집 주방의 식기구통이었을 과도가 들려 있었다. 그것이 의도적인 행동이었을지 숨어 있던 그 누군가가 당황하여 충동적으로 저질렀을 행동이었을지는 모른다. 그는 테란스와 안방을 사이에 둔 창문 뒤에 숨어 있다 아버지와 눈이 마주쳤다. 거실과 안방에 모두 에어컨이 설치되어있는 지라 창문을 열 것이라 생각은 하지 못했겠지. 눈이 마주친 순간 아버지가 무어라 소리를 지르기 전 그는 손에 쥐고 있던 그것을 휘둘렀다. 억 하는 소리와 함께 아버지는 쓰러지셨고 때마침 주방에서 없어진 과도를 찾으려 아버지에게 물어보려 안방으로 다가오던 어머니는 그 장면을 목격하셨을 것이다. 사태가 점점 커짐을 알면서도 그는 멈출 수 없었을 것이다. 이미 저지른 일. 그 상황에서 놀라서 소리를 지르는 어머니는 그의 눈에 장애물로 보였을 것이 뻔하다. 성큼성큼 다가가 어머니에게도 아까와 같은 행동을 취했다. 방안에서 이어폰을 꼽고 만화책을 들여다보고 있는 동생은 밖의 상황을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다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시끄러운 음악 사이로 치고 들어갔을 때 무슨 일인가 싶어 문을 열고 거실로 나간 순간. 눈 앞에 서 있는 피로 범벅이 된 누군가가 자신을 향해 붉게 빛나는 무언가를 휘두르는 것을 보고 점점 흐려지는 시선을 느껴며 쓰러진다.
나는 형사와의 통화가 끊어질까 무서워 오른쪽 어깨로 단단히 핸드폰을 귓가에 대고 급하게 옷을 챙겨 입고 있었다. 그에게 전해 들은 사건의 전말은 그랬다. 그 날 따라 테란스의 창문들의 잠금 장치를 거는 것을 깜빡하시고 게다가 거실을 가리는 커튼까지 치지 않으시고 나가셨단다. 훤히 들여다 보이는 아파트 1층 31평의 작년 중순 입주하면서 거금을 들여 새로 인테리어한 꽤나 있어보이는 집. 그것이 범인의 눈을 끌었을것이라 형사는 말했다. 쉽게 집으로 발을 들여놓은 범인은 거실로 들어와 무언가 손에 집기도 전 삑삑대는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곧장 거실로 들어가 과도를 쥐어잡고 밖으로 나가 창문뒤로 숨었을것이라 했다. 그가 왜 곧장 도망가지 않고 다시 숨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아마 그가 미처 도망가기 전 가족들이 먼저 문을 열고 들어와 그럴 시간이 없어 취한 행동이었으리라 마저 설명을 마친 그는 현재 가족들이 입원해 있는 병원을 알려주고 현재 상황이 위급상황임을 다시 한 번 인식시킨 뒤 수술을 위해 가족의 동의가 필요함을 물었다. 물론 내가 동의할것이라고는 생각했겠으나 형식상의 절차를 위한 것이니 이해해달라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생각만큼 빨리 달려주지 않은 버스 기사에 대한 원망은 뒤로 접고 나는 급하게 병원으로 향했다. 나에게 전화했던 형사와 간호사들이 나를 맞이했다. 현재 수술이 진행중이며 경과가 지나봐야 알겠지만 걱정할만한 일은 생기지 않을 것이니 나에게 진정할 것을 요구했고 지금은 조용히 수술이 끝나기를 기다려달라는 말을 전했다. 그렇게 10시간여의 밤을 지샌 긴 시간이 지나서야 나는 힘겹게 숨을 내쉬며 수술실에서 나오는 가족들을 볼 수 있었다. 중환자실로 옮겨야 했기에 내가 얼굴을 볼 수 있었던 시간은 길지 않았다.
대전에서 강릉까지 버스로 달려오는 3시간여의 시간이 마치 내 삶의 마지막처럼 느껴졌다. 지금까지 많은 것을 얻고 잃는 일을 겪었지만 나와 사회 사이에 유일한 보호막인 가족을 송두리째 빼앗길 뻔 했다는 생각에 두려움이 엄습했다. 처음으로 식은땀이라는 것을 흘렸다. 뭐랄까. 속이 완전히 뒤집힌 느낌. 간신히 올라오는 구토를 참았다. 참으로 길었던 고속 도로. 모든 것이 새로웠다. 마치 지옥과 같은 그것들.
다행히 수술은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어 결과적으로 나는 아무도 잃지 않을 수 있었지만 어느 정도 안심이 된 후에 뒤늦게 찾아오는 훗날에 대한 두려움과 범인에 대한 분노로 몸을 떨어야 했다. 어느 순간에는 분명히 내 곁을 떠나가실 두 분. 그리고 마지막까지 보살펴야 할 내 소중한 동생. 왜. 어떠한 이유로 내 가족에게 그런 짓을 했을지 모를 그는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신변이 확보되었으니 체포에는 그리 큰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라 나를 안심시키는 형사들이었지만 나로서는 솔직히 그 말을 신용하기 힘들었다. 내가 살아온 시간만큼이나 이러한 일들을 접했을 그들이지만 그러한 경력을 완전히 신용하고 당장 내일이라도 내 앞에 범인을 잡아놓으리라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아니 그렇게 되더라도 뒷 일이 상상이 되지 않았다. 뭐든지 처음 겪게 되는 일이라면 누구나 어설프고 당황하겠지만 이런 일은 정말 마주치고 싶지 않았는데. 나만은. 우리 가족은 지나쳐가주길 바랬는데.
눈물은 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그 모습을 가족들에게 보이지 않을 수 있어 다행인걸까. 지금 나에게 있어 행운이라고 할 수 있을만한 일이 무엇이 있을까. 그나마 다행히 모두를 잃지는 않았다는 일? 그게 아니면 내일부터 다시 출근해야 할 일자리가 아직 남아있다는 점? 아무 것도 없어 보인다. 갑갑했다. 처음으로 느껴보는 꽉 막힌 세상. 사람들이 이런 것을 두고 절망이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그래도 늦지 않게 이 녀석과 마주하게 되어 다행이라고 말하는 이가 있다면 망설이지 않고 입을 찢어버리리라.
긴 수술 시간으로 가족들이 잠에서 깨어나는 모습을 보지 못한 채 나는 다시 버스에 올라야 했다. 가끔 피곤한 마음에 일을 제낄까 하는 잔머리는 굴려봤으나 차마 발이 떨어지지 않는 일은 또 이게 처음이라 마음은 계속 심란할 수 밖에 없었다. 가까운 지인이 간병인을 자청해주셔서 그래도 떠나오는 길이 올 때 보단 편안하긴 했으나 그렇다고 어디 그 마음이 어딜 가겠는가. 나는 상처를 받았다. 이걸 무슨 방법으로 보상받아야 한다는 말인가. 지금도 어디에선가 뻔뻔하게 숨쉬고 있을 그의 숨이 당장 내일 끊어진다고 해도 나는, 우리 가족은 평생을 불안함과 상처를 몸과 마음에 지니고 살아야 한다. 이 무슨 날벼락인가. 그래도 딴에는 착하고 성실하게...열심히 살아온 우리들인데. 돌아오는 것이 겨우 이따위 처사라니. 오랜만에 하늘이라는 놈을 원망하며 휙휙 지나가는 창문 밖 풍경을 바라봤다. 참으로 못난 세상.
무언가 생각하다보면 나는 언제나 그 결론을 긍정적인 면으로 끌고 가버리는 습관이 있었다. 보고있는가. 덕분에 나는 그 습관을 버릴 수 있을 듯 하다. 그것 하나는 고맙게 생각해야하는 걸까.
끝이 있다면. 언젠가 그 끝을 맞이해야 한다면 나는 하루 빨리 지금의 이 어두운 날들의 끝을 보고 싶다. 지금은. 그것이 내 유일한 희망사항이다.
-마음이 진정될 때 까진 글을 쓰지 말아야 겠다고 생각했으나 이렇게라도 풀고 싶어 유쾌하지 못한 글 올리게 됐습니다. 혹여나 문제가 된다면 삭제하셔도 상관없습니다. 텀이 좀 길어지더라도 이전처럼 못나도 즐거운 마음으로 볼 수 있는 글을 쓸 수 있을 때 까지. 잠 좀 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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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포스
해시 아이콘
06/
08/29 18:40
수정 아이콘
많이 안다치셨으면 좋겠네요-
abraxas
해시 아이콘
06/
08/29 22:06
수정 아이콘
봉변을 당하셨네요 여광님의 팬으로서 맘이 아픕니다.
가족분들 쾌차하시길 빌고 여광님의 상처도 낫길 바랍니다.
사탕군
해시 아이콘
06/
08/29 22:34
수정 아이콘
세상만사 세옹지마라고들 합니다.~
뜬금없는 소리지만 보험이란건 정말 서민들일수록 꼭 필요하다는 생각들 듭니다. 최근에 제 친구도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가입한 보험상품이 하나도 없어서... 뭐 어찌 되었든 놀랍고 안타까운 소식입니다.
가족분들 하루빨리 쾌차하시길 바랍니다.
이제 좋은일들이 많이 생길거에요~~ ^^*
Kevin Spacey
해시 아이콘
06/
08/29 23:42
수정 아이콘
부디 쾌차하시길... 그래서 다음엔 밝은 내용의 수필 기대해 볼께요...
koel2
해시 아이콘
06/
08/30 00:02
수정 아이콘
안타깝네요. 그래도 다행입니다.
가족분들의 쾌차를 빌겠습니다.
여광님도 힘내세요.
Juliett November
해시 아이콘
06/
08/30 00:34
수정 아이콘
후... 범인이 꼭 잡히길, 그리고 가족분들이 빨리 쾌유하길 바랍니다.
힘드시겠지만, 그래도 기운 내세요..
윤여광
해시 아이콘
06/
08/30 01:32
수정 아이콘
모든분들께//감사합니다. 약속드릴게요. 저는 회복이 빠른 인간이라 2-3일이면 예전의 저로 돌아갈 수 있을 겁니다. 돌아올게요. 기다려주세요. 정말 너무나 감사합니다. 큰 힘이 되었습니다.
베컴
해시 아이콘
06/
08/30 02:17
수정 아이콘
안타깝네요..힘내세요
항상 올려주시는 수필읽으면서 많은걸 깨달았었습니다. 여러가지로.
공감되는부분도있었고, 아닌부분도 있었는데.
오늘 수필은 ...
지금까지 안달았던 리플을 달게 만드네요.
힘내세요...
AhnGoon
해시 아이콘
06/
08/30 09:24
수정 아이콘
... 달리 드릴 말씀이 없군요.
힘내세요. 잘 될겁니다.
샷v
해시 아이콘
06/
08/30 11:11
수정 아이콘
힘내세요..
순리대로 될 겁니다
exit
해시 아이콘
06/
08/30 12:47
수정 아이콘
힘네세요....그리고 가족분들이 어서 빨리 쾌차하셨으면 좋겠네요...
나는 나!!
해시 아이콘
06/
08/30 12:56
수정 아이콘
여광님의 팬으로서 즐거운 맘으로 글을 클릭했는데.....안타깝네요....
여광님도 힘 내시고, 가족분들도 쾌차하시기 바랍니다
아케미
해시 아이콘
06/
08/30 15:44
수정 아이콘
학교에서 읽다가 너무 놀라서 로그인했습니다.
힘내시라는 말씀밖에 드릴 수 없네요. 가족 분들의 쾌차를 기원합니다.
sinfire
해시 아이콘
06/
08/30 15:57
수정 아이콘
OST 덕분에 더욱더 감정 이입이 되는것 같습니다. 힘내세요-
hyoni
해시 아이콘
06/
08/30 17:26
수정 아이콘
놀란 마음 잘 다스리셨으면 좋겠습니다. 나이를 먹어간다는 건 드라마에서나 봤을 법한 큰 일들을 하나둘씩 겪게 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여광님이라도 몸 잘 챙기세요. 큰 일을 겪으면 몸도 따라서 망가지더군요.
다시 좋은 글과 함께 오시는 날을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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