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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2/11/28 15:46:53
Name ▩ 은별
Subject SOFA에 관한 작은 설명
안녕하세요 은별입니다.

아시는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저는 이번 사건에 관하여 사견으로라도 견해를 밝힐 수 있는 지위에 있지 아니할 뿐 아니라, 사실관계 자체도 제가 잘 모르니 언급할 수 있는 부분이 못됩니다.
(따라서 이 글은 제 견해를 밝힌 글이 아닙니다. 제가 분명히 제 견해를 밝히지 아니하겠다고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제가 특정한 어떤 견해를 내세운 것으로 오인하여 실제로 존재하지 아니하는 이 글의 논지를 공박하는 댓글을 다시는 분이 없으시길 바랍니다.)

다만 이 글에서는 과연 SOFA가 무엇이고 그 내용이 무엇인지에 관하여만 소개를 하겠습니다.

SOFA는 Status of Forces Agreement 의 준말입니다.
우리측의 정식 명칭은 "대한민국과 아메리카합중국 간의 상호방위조약 제4조에 의한 시설과 구역 및 대한민국에서의 합중국군대의 지위에 관한 협정"이고, 1967. 2. 9. 조약 제232호로 처음 체결되었다가, 1991. 2. 8. 조약 제1038호로 한번 개정되었고, 2001. 3. 29. 조약 제1553호로 다시 개정되었습니다. 특히 2001년의 개정은 미군범죄가 빈발하자, 종전까지 사건내용에 관계없이 미군 헌병대에서만 구금을 하였던 것을 중범죄에 관하여 구금을 인도하는 조항을 삽입한 것이 특징입니다.

흔히들 이야기하는 한미행정협정이란 위 조약과 더불어 세 가지의 조약이 더 포함되어 있습니다만, 이는 위 조약의 부속조약 비슷한 내용이기 때문에 결국 위 조약을 한미행협 자체로 보아도 큰 무리는 없다고 할 것입니다.

이번 사건에 관한 조항은 제22조 형사재판권에 관한 사항인데, 양측의 1차재판권에 관한 사항 등이 상세히 나열되어 있습니다.

위 조항을 좀 쉽게 풀어보면,
1. 우리나라에서는 범죄가 되지만 미국에서는 범죄가 되지 아니하는 경우, 혹은 그 반대의 경우는 죄가 되는 나라에 재판권이 있습니다. 이것은 형법에 해당 범죄의 유형(類型)이 기재되어 있는가를 뜻하는 것이므로, 판례의 경향상 한 나라에서는 유죄로 판단하고 다른 나라에서 무죄로 판단한다고 하더라도 위 조항이 적용되지는 않습니다. 실제로 거의 모든 나라의 형법이 비슷하기 때문에 위 조항이 적용될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2. 양국이 모두 해당행위를 범죄로 규정하고 있는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대한민국이 1차적 재판권을 갖고, 예외적으로 미국이 1차적 재판권을 갖게 됩니다. 그 예외는 2가지인데, 첫째, 오로지 미국의 재산이나 안전에 대한 범죄 또는 오로지 미군의 구성원이나 군속 또는 그들 가족의 신체나 재산에 관한 범죄(한마디로, 자기들끼리 일어난 일이니 자기들끼리 해결하겠다는 것이므로, 이 부분에 관하여 이의를 제기하는 견해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둘째, 공무집행중의 범죄입니다.

3. 다만, 구금만은 미군 헌병대에서 하게 되는데, 2001. 3. 29.의 합의의사록(제목은 "의사록"이지만 실제로는 별개의 조약입니다)에 의하여 예외에 해당되지 아니하는 범죄 중 "살인, 강(등록 안되는군요. -_-)간, 유괴, 마약, 방화, 흉기강도, 폭행(상해)치사, 교통사고 사망사건 중 음주운전 또는 도주사건"의 경우에는 한국측에서 인도를 요구하면 대체로('구금의 상당한 이유와 필요가 있는 경우'로 기재되어 있습니다만, 이 부분이 삽입된 배경에 비추어 보면 실제로는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인도한다는 취지입니다) 구금을 인도하기로 하였습니다.

여기까지 간단히 설명을 드리고, 몇 가지 잘못 알고 계신 부분을 말씀드립니다.


1. '자신들이 과실을 인정했는데' 무죄란 말이 안된다?

물론 과실을 인정했으면 무죄가 될 리가 없습니다.
영미의 형사재판제도는 정식 공판(trial)을 열기에 앞서 pre-trial을 먼저 엽니다. 이 사건은 과실치사로 기소된 것이므로, pre-trial에서 피고인이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그에 관한 보강증거가 있으면 사실심리는 하지 아니하고 배심원 없이 바로 형량을 정하기 위하여 공판을 열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경우 보통 판사는 검사와 변호인이 협의한 형량을 선고합니다(기속되는 것은 아닙니다만,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대로 선고하죠).
여기서 정식으로 배심원을 선정하고 trial을 연 것으로 미루어 보건대, pre-trial에서 피고인들은 죄를 부인하면서 정식재판을 해 달라고 진술하였을 것입니다.

따라서 이 사건에서 피고인들이 과실을 인정하였다는 것은 잘못 알고 계신 부분입니다.


2. SOFA는 전체가 무조건 미국에게만 일방적으로 유리한 규정이므로 폐기해야 한다?
(개정을 요구하는 의견을 포함하는 것이 아닙니다)

규정 자체는 거의 모든 조항이 호혜적입니다. 다만 이번 사건에서와 같은 문제가 발생하면 부각이 될 수밖에 없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잘 알려지지 아니할 뿐이죠.

실례로 제가 군에서 근무할 때 일화입니다.
제가 부대를 옮기게 되었는데, 하필이면 제가 전입하기 직전에 그 부대의 취사병 하나가 음식물쓰레기를 버리기 위해 음식물쓰레기를 실은 차를 보조자 없이 운전하다가 후진중 미군 안테나를 충격하여 넘어뜨렸습니다. 물론 평소에는 그 병사가 보조자로 후진인도를 했었는데, 그날따라 평소 운전하던 병사가 어디 가고 없었고, 이 병사는 좀 기다리거나 다른 병사에게 부탁했으면 될 것을 자기 혼자 한다고 하다가 한마디로 사고를 친 것입니다. 안테나라고 해서 무슨 TV 안테나 비슷한 것을 생각하시면 안되구요. 흠... 그 안테나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기밀에 해당되는 것 같아서 쓰면 안되겠군요. 하여간 무지 큽니다. 높이가 10여 미터 되는 것이었죠. 쩝... 한국돈으로 2억원 정도 되는 것인데 이걸 망가뜨렸으니 어쩝니까. 부대장은 안절부절... 결국 미군측에서 정식으로 공문이 와 있는 상태더군요. "물어내라..." 과연 물어줬을까요?

제가 전입하자마자 우리 부대장, 해결책 없냐고 합니다. 제 첫 임무가 되어버렸습니다. 어떻습니까? 보통인의 상식으로는 물어주어야 할 것 같지 않나요? 공무원의 과실은 국가의 과실이니까요. 저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SOFA의 내용을 잘 몰랐고, 겨우 형사재판권이나 규정하는 것인데다가 그쪽에만 유리하게 해놓은 것이니 그것은 참조하나마나라고 생각하고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혹여나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마음에 한번 뒤적뒤적해 보았는데, 물고늘어질 거리가 생겼습니다.

위 조약 제23조[청구권] 제1항에 의하면 "각 당사국은 자국이 소유하고 자국의 군대가 사용하는 재산에 대한 손해에 관하여, 손해가 타방당사국 군대의 구성원 또는 고용원에 의하여 그의 공무집행중에 일어난 경우 타방당사국에 대한 모든 청구권을 포기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한쪽 군인이 공무집행중에 다른 쪽의 군 재산에 손해를 입혀도 배상 못받는다는 얘기입니다(물론 한쪽이 군인이 아니거나 그 재산이 군 재산이 아니면 당연히 해당이 안됩니다). 공무집행중이라는 부분이 찜찜하기는 했지만, 우리나라 병사들은 의무복무이니 1년 365일 24시간 전부가 공무집행중 아니겠습니까? 이 부분에 관하여 미군 법무관들은 우리와 생각이 약간 달라 보이더군요. 아무래도 매일 퇴근하고 음식물쓰레기야 자기 집에서 해결하는 것이 보통인 사람들일 테니까요. 이번 사건에서의 과실유무에 관한 쟁점 또한 우리와 미국인들 사이에 법 해석의 배경이 된 문화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여간 다시 옛날로 돌아가서, 우리도 공문 작성해서 "SOFA 23조가 어쩌구저쩌구... 그러니 안물어줘..."라고 버텼습니다. 안주는데야 어떻게 하겠습니까. 중간에 예상치 못하게 다른 곳으로 전출되는 바람에 마지막에 어떻게 끝났는지까지는 알지 못합니다. 보직이 없어져 버렸기 때문에 제 후임자도 없었던데다가, 자세히는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부대가 약간 특수한 임무를 담당하다보니 다른 부대와 교류가 거의 없고 전화선도 따로 쓰고 있어 결국 알아보기가 힘들더군요.
(뭐 꼭 알고 싶었으면 어떻게든 알아냈겠습니다만... 게을러서요... ^^;;;)

어쨌든 대한민국은 물어줄 책임이 없고, 해당 병사가 문제였는데('국'에 대한 청구권만 포기하는 것이므로, 해당 병사에 대한 청구권은 여전히 남게 됩니다), 뭐 월급 1만원 받는 20살의 청년이 무슨 재산이 있겠습니까. 전혀 자력이 없으니 그쪽 상대로 받아내려고 할 리가 만무하죠.

이거 실질적으로는 우리에게 유리한 조항이더군요. 반대로 미군이 우리 안테나 부쉈다? 미국에게는 청구 못합니다만, 미군 개개 병사는 우리보다 월급 몇십배죠? 재산이 별로 없더라도 우리 병사보다는 많으니까 우리는 미군 개인에게 청구하면 됩니다. ^^;;; 뭐 실제로 잘 일어나지 않는 일이기는 하지만요.

제 견해를 배제한 내용이니 별 알맹이는 없는 글입니다.

두서없이 쓰다보니 글이 장황해졌습니다만, 총명하신 pgr21 회원님들께서 양해를 해 주시리라 생각합니다.

독감이 유행이군요. 지금은 거의 회복되었지만, 저도 한 1주일 고생했습니다. 다들 건강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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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11/28 16:22
수정 아이콘
이 글 프린트해서 전군에 배포했으면 좋겠네요. 특히 미군 부대 근처에서 근무하는 차량 운전병들에게... 앞뒤 범퍼 기스 안나게 폐타이어 같은 걸로 보강하고 무조건 갖다 박으라고 하면... SOFA 재개정 협상할 때 카드로 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은별
02/11/28 16:57
수정 아이콘
사고 많이 나면 개개인에게 청구 들어가겠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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