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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2/09/30 01:33:43
Name ColdCoffee
Subject [잡담] 병영만가2
다들 즐거운 일요일보내셨나요?

아까 아침에 횡설수설잡설 늘어놓았던 coldcoffee입니다.
그때 뭐하나 적어볼까... 하다가 너무너무 졸려서 그냥 잠자리에 들었는데요...
그때 올릴려고 했던 이야기를 마저 하겠습니다.

요즘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제가 군생활했던 당시에는 가을에 반드시 마련해 두어야 했던 싸리나무에서
시작된 얘기입니다. 부대에서 1년내내 사용해야 하는 빗자루의 주 재료인 싸리나무는 가을한철 다 만들어
두어야 하기때문에 "싸리나무 해오기"는 가을엔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작업입니다.
군대에선 봄철과 가을철엔 무지무지 바쁩니다. 훈련이야 사시사철 있고,
(푹푹찌는 여름에도, 살을 에일듯한 겨울에도 훈련은 있습니다. 겨울엔 혹한기 훈련이라고 해서
추위를 이기기 위한 내한훈련을 하죠. 여름은 훈련을 위한, 훈련에 의한, 훈련의 계절이죠.
심지어 그 즐거운 전투수영도 훈련이잖습니까. 악명높은 유격은 말할 것도 없고...)
봄에는 겨울동안 헝클어지고 망가진 부대정비, 각종 진지보수공사등 겨울나기 후의 보수작업으로,
가을에는 월동준비,대민지원활동 등으로 매~~우 바쁩니다. 저의 주특기는 130 으로 포병이었는데요.
포병들의 부대인 포대는 부대인원이 얼마 안되기 때문에, 그렇게 작업이 많을 땐 우루루 몰려서 하지 않고
얼마안되는 인원을 쪼개서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때도 비가와서 무너진 도로보수작업, 진지보수공사 등으로 인원이 많이 필요해서
싸리작업에는 4-5명 정도밖엔 할당 할 수 없었습니다.
아침 일과 집합에서 인사계님이 작업배정을 하는데 인원을 적게 할당하는 작업은 주로
하고싶은 사람이 손을들어 지원하는 식으로 배정합니다. "싸리작업~~"하고 외치니 대번에
손들이 우수수 올라갔지요. 당연합니다. 다른 작업들 보다 훨씬 편하고, 인솔자가 고참"사병"인데다,
작업인원도 얼마 안되니 산에 올라가는 길에 마을구멍가게에서 뭔가 먹을걸 사서 해먹기 좋죠.
인원이 많으면 장교들이 인솔하고 그러면 맛없는 짬밥밖엔 먹을 수가 없죠. 간혹 기분이 좋아야
라면을 끓여먹을 수 있을 뿐입니다. 하기야 그 라면이 어디냐 마는...
게다가 인솔자가 사병이라는 건 굉장한 플러스 요인입니다. 맨날 FM만을 강조하는 장교들하고 같이
나가는 것보다 같은 사병이 인솔하면 아무래도 조금이라도 더 자유스럼을 느낄수 있을 테니깐요.
목공일이나 용접일 같은 할 수 있는 사람이 정해져 있는 작업을 해야할 병사들과,
"짬밥"이 얼마안되어 감히 손들 용기가 없는 "쫄따구"들 말고 상병이상 되는 병사들이 거의 모두
손을 든 모습을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보던 인사계는 대충 훑어보더니 저를 지명하면서
4명정도 뽑아서 작업을 나가라고 했습니다. 왜 저냐구요? 전 짬밥 먹을대로 먹은 분대장이었거든요.
(전 일반사병들 중에서 차출되어 분대장교육을 받고 하사계급장을 단 일반하사였습니다.
제가 알기로 사단에서 마지막 기수의 일반하사였습니다.)
게다가 이러저러한 일들로 그나마 분대장들 중엔 좀 미더워 보였나 봅니다.
사실 그때 우리부대는 GOP(민간인출입통제선,민통선)내에 있었기 때문에 다른부대에선 별일 아닌 것들두
꽤 신경을 곤두세웠거든요.
그래서 저두 가고싶은 사람 위주로 해서 인원을 구성했습니다.
저보다 한달 고참인데 무지막강한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는 노병장,
저보다 네달 후임이고 순박한 인상에 듬직한 체구로 온갖일도 잘해
시골출신인줄 알았는데 의외로 도시출신인 정병장,
정병장과 입대동기이며 키는 엄청 큰데 성격은 담백해서 키큰 사람들의
일반적인 선입관에 딱 들어맞는 왕병장,
제 분대원중 한명으로 "개구장이"라고 얼굴에 씌어진 듯한 양상병.

상식적으로 군생활을 하신 분들은 알겠지만 계급을 보십쇼...
뭔가 일을 제대로 해내면 이상한 엄청난 짬밥들 아닙니까?
군에서 뭔가 작업같은 거 하면 일병이나 상병이 많아야 열심히 잘 합니다.
보통 작업구성에 일병40%이상, 상병30%정도, 병장이상 20%이하 정도는 되어야
뭔 일이 제대로 잘 됩니다. 뭘해야하는 상황이면 뭐든지 다 아는 병장이상 고참병들이
결정을 하고, 상병들이 주축이되어 일병들이 열심히 일하죠. 이등병이야 뭐...
있으면 좋은 잔심부름꾼 혹은 일을 배우는 도제, 또는 각종 생생한(!) 사회의 이야기들과
노래로 즐거움을 선사하는 엔터테이너 정도?
고참이 없어도 문제지만 고참병들만 있으면 더 문제죠... 일을 누가 합니까?
뭐 그래도 인사계는 표정으론 좀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지만 승락을 했습니다.
열심히 해야하는 다른 작업들이 많았고, 어느정도 산길에 대한 노하우가 있는 짬밥들이고,
뭐 이정도 작업이면 저놈들도 군소리 없이 잘 할거다... 란 생각이었을 겁니다.
"진지보수공사에는 농땡이나 칠라구 하는 저놈들 데꼬가는 것보다 일병이나 상병들 몇명 더 보내야
한번이라도 삽질을 더 할거다..."란 현실적인 생각도 한몫했을 거고요.

하튼, 우린 낫이며 톱이며 싸리나무를 묶을 밧줄등 작업도구를 가지고 보무도 당당하게
부대정문을 나섰습니다.
그리고 부대에서 멀지않은 나지막한 산으로 가기로 하곤 부대 앞 조그마한 동네를 지나갈 때였습니다.
듬직한 체구의 정병장이 입맛을 쩍쩍다시며 "강하사님, 우리 배고플 때 구워먹게 삼겹살이나 좀 사가죠"
하는 것이었습니다. 좋죠~ 삼겹살. 그때 작업하러 나가면 가장 인기 있는게 수퍼같은곳에서 파는
랩으로 포장된 삼겹살로 값도 그리 비싸지 않고(한 3000원 정도 했나요?), 한 두어개 있으면 출출할때
요기도 되죠... 배부를 만큼은 못사죠. 일반하사 한달 월급이 32,000원 이었고,
병장월급이 16,000원 이었으니 말입니다.
평소 눈치빠르고 싹싹한 양상병이 동네 구멍가게에 다녀오기로 하고
포장삼겹살,번개탄등을 사러갔다왔습니다. 산에 깔린게 나무인데 왜 번개탄을 사냐고요?
산에선 함부로 불을 피우면 안된다는 것도 모르십니까 ? 그리고 일단 규칙상 사병들은 개별취사가 금지죠.
책임질 장교라도 있음 모를까... 사병들은 안돼죠. 뭐 우리가 그걸 생각한 건 아니지만....
어쨌든 고개를 구울댄 연기가 많이 나는데요. 싸리나무가 화력도 좋고 연기가 잘 안나서 좋지만 (그래서
싸리빗자루로 라면 끓여 먹다가 인사계한테 들키면 완전군장으로 연병장 꽤 돌아야돼죠) 불씨 처리하기도
좀 그렇고... 암튼 여러가지로 번개탄이 더 좋습니다. 아참 전에 구두약으로 라면 끓여먹은 적도 있군요..
구두약으로 불 지피면 그을음 엄청납니다.

좀있다가  양상병이 이러저러한 것들을 사가지고 왔습니다. 눈치로 보아하니 소주도 한병 정도 있었던
것 같던데 뭐... 좋은게 좋은거 아닙니까...
양상병을 구멍가게 갔다오면서 엄청나게 솔깃한 뉴스를 가지고 왔습니다.
"가게에 갔더니 할머니랑 아가씨하나가 있던데요? 우와아~~~ 게다가 미니스커트입고요."라는
잠재적 사건발생성 뉴스를요.
전에 한참 유행했던 군인대상 프로그램을 보셨으면 아시겠지만 "아가씨"라고 불릴만한 연령의
여자를 보면 군인은 일단 제정신을 약간 상실하기 시작합니다. 게다가 그때 우리부대는
민통선내의 정말 사람도 별로 없는 그런 곳에 있었거든요. 그리고 이 아가씨는 미.니.스.커.트.를
입었다고 하지 않습니까.
뭐 그래도 일단 이때까지는 다들 제정신 이었기 때문에 가게로 우르르 몰려가는 추태를 연출하지 않고
산으로 싸리작업하러 갔습니다. 그리고 한 두시간 정도 열심히 작업했죠.
가끔씩 까만 비닐봉투에 들어있는 삼겹살을 사랑스런 눈초리로 쳐다보면서요.
강원도의 공기는 정말로 참 좋습니다. 맑고 자연의 은은한 향기가 함뿍 담겨있죠.
군복속에 젖어든 땀냄새도 숲속에서 나무냄새와 함께 맡다보면 그리 불쾌하진 않습니다.
게다가 10월의 가을... 하늘은 높고, 나무는 아직 푸르죠.
그런곳에서 몇시간 땀 좀 내고 잔나무나 풀이 별로 없는 바위등치에서 번개탄에
삼겹살 구워먹으면...  꽤 좋겠죠?
그리고 비공식적으로(!) 소주를 반주 삼아 나눠 마시고 담배한대 피우고 다시 열심히 작업에 돌입했습니다.

이윽고 점심때가 되어 식사도 할 겸, 싸리나무도 갖다놓을겸 부대에 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돌아가는 길에 아까의 그 동네를 지나치는데......

......
......

에휴 오늘 다 못쓰겠네요...
인제 내일 출근을 위해 잠자리에...
아까 네시간밖에 못자서요... ^^
읽어주신분께는 죄송...  m(__)m
남은 얘기는 내일 더 쓰겠습니다.
거기드신 뾰족한 돌은... 이왕이면 둥글둥글한 걸로 바꿔서 던져주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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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09/30 02:59
수정 아이콘
전 81mm 박격포였는데요.. 옛날 생각나는군요...
제 개인적인 생각으론 육군 중에 제일 빡쎈 주특기는 90mm 가 아닐까 하네요...
02/09/30 07:49
수정 아이콘
허허... 또 궁금모드 자극..-_-;;
군생활 하신지 상당히 오래되신듯 하네요...
인사계, 일반하사... 지금은 다 없어진 것들이죠..
인사계는 행정보급관으로, 일반하사는 없어지고 단기하사, 즉 4년 6개월근무하는 체계로 바뀌었답니다..
조속히 다음편 올려주세요...
아니면 군용 대-_-검 던집니다...
02/09/30 16:37
수정 아이콘
전 군대생활을 함정을 탔었기에 육군의 얘기는 잘 이해는 되지 않지만, 그래도 재미 있게 읽고 있습니다.
해양경찰대 전투경찰 1기입니다. 혹시 pgr 회원중에 해경도 있을려나? ^^ 원래 36개월 근무인데, 36개월하고도 하루를 더 근무했다는... 1기생의 비애... ^^
ColdCoffee 님의 첫글, '방송중계..'와 그 다음에 쓰신 '병영생활...'을 읽으면서 pgr에 또 멋진 작가분이 나타나셨구나 하고 반가웠습니다.
본격적으로 쓰시는 것 같은 '병영만가' 육군 경험은 없어도 공감대 느껴지고 재미있습니다.
kairess님, 아무리 그래도 너무 섬찟... 요즘 엽기는 한물 갔습니다. ^^;;; 전 우리 시골 마당의 호박이나 하나 따서 던질까봐요 ^^
02/09/30 16:39
수정 아이콘
전 주로 인천항을 본진으로 하는 서해안이 활동무대였는데, 역시 군 생활(? 군대는 아니었지만, ) 얘기 하라면 밤을 샐것 같습니다. ^^
ColdCoffee
02/10/01 03:41
수정 아이콘
p.p님!!!!! 영..영광입니다~~
게다가 호박까지 던져주시다니...
p.p님이 던져주신 호박으루 kairess님의 대검을 막아야겠군요.
근데 "멋진 작가분"은 너무 과하신 듯...
게시판의 파워풀한 공력을 자랑하시는 다른 분들과 어찌감히
말석에라도 함께 끼일수가 있겠습니까?
흠... 7103님... 정말 힘드셨겠네요 ^^
군에서 언젠가 한번 훈련뛰면서 박격포병봤었는데
정말 무거워보였습니다. 박격포 받침대...(받침대 맞나요?)
ColdCoffee
02/10/01 03:42
수정 아이콘
네 kairess님,제가 제대한게 92년 초였습니다. ^^
02/10/01 14:28
수정 아이콘
^____^;; 서해안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망x산 꼭대기에 있었더랬지요..
저의 중대장님이 언젠가 술자석에서 저한테 해주신 그 말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푸하하. ^^
공군 창군사상.. 니 마이(너만큼) 빠진 군x리는 첨이데이.. ㅡ,.ㅡ;;;;
이라시더군요. 으하.. ^^
02/10/01 14:29
수정 아이콘
앗..그러고 보니.. p.p님.. 저도.. 2월이 윤달이 걸리는 바람에 하루를 더 있었습니다..
2월 29일에 제대를 했었더랬지요.. .. ㅠ0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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