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Date 2011/11/23 20:44:58
Name 눈시BBver.2
Subject 고조선에서 현대까지 - 깨작깨작 적어보기

박물관에서 선사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오다 보면 문명하는 재미가 느껴집니다.

거창하게 시작하는 건 아니구요. 그냥 깨짝깨짝입니다. 현재 저로서는 삼국시대까지도 단편으로 살짝 다루는 것 이상을 넘지 못 하니까요.

고대사와 근대사는 정말 말 하기 힘든 시기입니다. 간단히 근대사 얘기할 때는 본문보다 "빨갱이" "친일파" 얘기가 더 나오게 되고 고대사로 가면 "매국식민빠" "환빠" 얘기가 더 먼저 나오거든요. 근대사야 사상의 차이 때문이고, 고대사는 그노무 대륙 때문이죠. -_-; 환단고기 좋아하는 쪽에서 신나게 욕 하긴 하지만, 고대의 영토에 대한 얘기는 우리가 흔히 교과서 등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초라할 거거든요. 싸우기도 싫고 -_-; 자세히 설명하려 해도 제 지식도 부족하고 그렇죠. 그 때문에 인터넷에서 고대사를 주로 다루는 분들은 유독 까칠합니다. 그만큼 많이 욕 먹고, 많이 싸워서 그렇게 된 거죠. 다른 시대보다 난이도도 꽤 높기도 하고. 그리고 고대사로 오면 저 역시 까칠해집니다. ( ..)

그러니 뭐 자세한 걸 묻거나 토론하는 건 받지 않겠습니다. 주류 학설은 이 정도 얘기가 있다는 것과 제 생각을 넣은 정도입니다.

조선에서는 지금까지 쓴 글들을 다 링크할 생각입니다. 최종까진 아니더라도 정리라고 해야겠죠. '-')/

아 그리고 블로그에 박시백 실록 18권 서평 썼습니다. 제가 묘사한 거랑은 좀 다르네요.
http://blindbard.egloos.com/2840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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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조선
기원전 2333년. 사실 이건 정말 상징적인 연도입니다. 이것부터가 참 어이 없게 만들어졌거든요. 어찌 된 거냐 하니... 삼국유사, 제왕운기 등에서 고조선 건국 연도를 말하는 건 전부 "요임금"에 맞춥니다. 그 중 무진년에 건국했다는 것을 이용하죠. 여기에 송대의 [황극경세]가 이용됩니다. 과거 중국의 신화 인물들의 연대를 억지로 맞춘 책이죠. 이 책에 따르면 요 임금의 재위는 언제고, 그 중에 요 임금 25년으로 환산해서 나온 게 2333년인 겁니다.

문제는 요 임금 재위 중 언제 했느냐인데, 이게 책마다 다릅니다. 때문에 그게 기원전 2509년까지 올라가기도 하죠. 애초에 신화적 인물인 요 임금의 연대를 중국식으로 끼워 맞춘 것에 끼워 맞춘 겁니다.

현재 중국에서 하상주 단대공정 (신화를 역사로 - -) 으로 노는 것 말고는 중국 내에서도 요순은 인정받지 못 합니다. 그저 신화적 인물일 뿐이죠. 그나마 인정받는 게 상나라로, 그나마 은허의 유적이 발견된 후에야 인정받았죠. 은나라로 불리다가 상으로 불리게 된 것도 얼마 안 됐구요. 이 은나라도 제대로 밝혀진 건 기원전 14세기 정도일 뿐... 그나마 현재 밝혀진 것을 보면 일개 도시국가에 불과했습니다. 사방에 여러 도시국가가 널려 있었고, 그 중 가장 센 나라일 뿐이었죠. 역시 도시국가인 주나라가 은나라를 먹은 후 마찬가지로 봉건제도로 나머지 도시국가들을 통솔했구요. 중국이 영토국가로 가는 건 춘추전국시대가 돼서죠.

이런 고대 국가가 이상향으로 묘사되는 건 역사 대대로 그래 왔죠. 공자부터 신화적 인물 요순을 칭송하면서 그건 계속 이어졌습니다. 은나라는 중화질서의 시작인 것처럼 인식되구요. 한국의 고조선에 대한 환상도 비슷하다고 보면 될 겁니다.

이 고조선이 사료에서 발견되는 건 기원전 7세기, 그나마 제대로 드러나는 건 기원전 4세기 무렵입니다. 그나마 문제가 하나 더 걸리는 게 이 때 사료들에서 발견되는 "조선"이라는 게 그냥 여러 집단을 일컬어 말하는 개념이냐 하나의 국가를 말 하는 개념이냐는 거죠. 하지만 더 이상 나아가지 못 해요. 사료가 없거든요. 뭐 요령에서 7세기 무렵의 왕의 무덤이라 할 만한 유적을 발견했다 하니, 적어도 이 시기까지는 하나의 나라로 작용한 건 틀림 없는 것 같습니다. 춘추전국시대 당시 연나라의 동쪽에서 나라라 할 만한 것은 조선밖에 없었다고 하거든요.


그런 면에서 이 정도 영역도 과장됐을 가능성이 큽니다. 비파형 동검 등으로 영토를 구분하는 건 정말 힘든 거거든요. 다만 영향력이라 생각한다면 납득할 수준입니다. 특히 중국과의 접경이라면 모를까 북쪽과 동쪽은 알기가 정말 힘들 겁니다.

당시 고조선 남쪽에 진국이 있었다고 하는데 이 실체는 도무지 알 수 없습니다. 고조선의 유력자가 진으로 망명했고, 삼한의 전신이 진이었다고 하니 분명 그 실체는 있었을텐데 말이죠. 보통 그 국경은 임진강 정도로 나오고 있습니다. 고조선과 그 이후 북방계 국가들을 이뤘을 거라 생각되는 예맥족과 진-삼한으로 이어지는 남쪽의 한韓족, 이 두 계열이 우리의 초기 국가를 이루었을 겁니다. 동이족으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동이족은 중국의 동쪽을 모두 오랑캐라 일컫는 것이거든요. 종족상의 관계야 어느 정도 있었겠지만, 부여 때부터 이미 말갈-읍루 쪽과는 차이가 드러납니다. 언어로요.

2. 기자조선

에 그러니까 참 한국인들이 보면 좌절할, 그래서 고대사 얘기를 참 하기 힘든 일이 벌어지는 게 이거 때문이죠. -_-; 고조선은 연나라와의 싸움에서 패해서 세력이 크게 축소됩니다. 지도에서는 남쪽도 고조선의 영토라 하고 있지만 신빙성은 없죠. 위만조선 때도 진은 멀쩡히 살아 있었고 한나라와 싸우게 되는 이유 중 하나가 되거든요.

기원전 3세기, 이 시기에 요동 일대에는 연나라의 유물이 대거 등장하게 됩니다. 고조선이 잃은 영역은 2000리 수준이라고 하는데... 이 때 거의 한 번 나라가 멸망했거나 멸망할 뻔 했다는 수준으로 봐도 될 겁니다.

문제는 이런 기록들이 모두 "기자조선"에 대한 기록이라는 겁니다. 팔조금법도 그렇고 고조선이 역사에 드러나는 건 거의 기자조선이예요. -_-; 애초에 연나라와 고조선이 맞서게 된 것도 연나라가 왕을 칭하니까 그랬던 거구요. 그래서 무시하면서도 무시할 수 없는 거죠. 거기다 마냥 무시하기도 그런 게, 기자가 조선에 온 걸 기원전 11세기라고 하면서 역사를 끌어올려 주거든요. (...)

뭐 저로서는 삼국시대 때 중국에 맞서기 위해 중국 신화의 인물을 끌어들인 거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정세 혼란 속에 만주와 한반도에는 중국의 유민들이 대거 몰려들었고, 그들을 받아들이면서 성장해 갔거든요. 삼국시대 때도, 고려 때도 마찬가지였죠. 지금 보면 중국의 식민지라고 자랑하는 거냐고 하겠지만 딱히 그렇게 생각할 필요 없는 게 신화 속 인물이거든요. 고려까지도 조상 중에 당의 황제를 집어넣었으니까요. 거기다 이 기자가 어떤 인물이냐 하면... 주나라의 왕이 직.접 (조선까지) 찾아와서 절 하면서 인의예지를 배우고 간 양반입니다. 지금 보면 식민지냐고 하지만, 그 때는 오히려 우리가 중국이랑 맞먹는다는 생각을 하게 된 인물인 거죠. 이건 조선으로 이어져 강화되면서 단군-기자-동명성왕으로 이어지는 계보가 됩니다. 요임금 때 건국했으니 역사로도 중국에 안 밀리고, 기자가 있었으니 문화적으로는 오히려 우리가 잘났다, 이런 식으로요.

아무튼 -_-; 더 무시하기 힘든 건 위략입니다. 위략에 나오는 고조선은 다 기자 조선이고, 사기 등에서 나오는 위만조선은 마치 "나라가 없는 상황에서 새로 나라를 세운 것" 같이 나오거든요. (...) 정말 애매해요.

어쨌든 고구려에서 기자 숭배 사상이 있던 걸로 봐서 그런 생각 자체는 있었다... 이 정도가 결론이겠죠. 백제의 백성들이 왕을 건길지라 불렀다는 것에서 길지와 기자를 연결시키기도 합니다.

3. 위만조선
당시 고조선의 상황을 생각하면 아예 요령에 있던 고조선이 몰락하자 평양에 있던 세력이 새로 고조선을 칭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어쨌든 중국의 통일과 진한교체기 동안 고조선은 평안도-황해도에서 재기합니다. 연나라에서 몰려온 유민도 받고, 그 중에 한 명이 위만이었죠.

이 때 고조선과 진-한의 경계가 어디인가가 문제인데, 패수로 확정지었다 하는데 이 패수가 청천강이라는 학설과 압록강이라는 학설이 있습니다. 다수는 청천강 설이구요. 진한교체기의 혼란 동안 요동을 되찾았다는 주장과 아니라는 주장도 나뉘어져 있구요. 또 하나 문제는 황해도 쪽의 진번과 강원도 북부-함경도 쪽의 임둔입니다. 이 지역을 위만조선이 차지하고 있었느냐, 아니냐의 문제가 걸리죠.

연나라에서 온 위만은 그 특성을 살려 국경지대에 배치됐지만 핑계를 대고 쿠테타를 일으켰고, 준왕은 마한으로 쫓겨났다고 하죠. 이렇게 진을 이은 삼한이 고조선의 정통을 주장하게 되면서 남북방계의 통합의 모습이... 아 아직 나올 때는 아니죠. 아무튼 남쪽에서도 고조선 정통을 주장한 걸로 봐서는 확실히 강력한 국가였던 것 같긴 합니다.

위만의 손자 우거왕에 이르러 남쪽 진이 한나라와 무역하는 걸 막고 계속 한나라와 맞서다가 멸망당하죠. 기원전 2세기 말의 일입니다.

4. 부여와 한사군

고대사를 얘기하기 제일 힘든 주범, 한사군입니다. 사실 한사군보다는 요새 역덕 사이에서 통용되는 동방변군이 더 맞다고 봐요. 변군은 말 그대로 "우리 땅임"하고 찍어둔 땅일 뿐, 소수의 한족과 토착민들이 있는 땅이었습니다. 말 그대로 "여긴 중국 땅임"이라고 찍어둔 것에 불과하죠. 특히 이 동방변군들에는 한족의 대규모 이민도 없었구요.

이 동방변군이 만주에 있었다는 설의 가장 큰 약점은 1. 각 군의 이동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 2. 한반도 남부 세력과의 교류 및 전쟁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 있습니다. 400년이나 있었던 낙랑군은 한반도 국가들과 별의별 일을 다 벌였는데 이 모두를 설명할 수 없이 그냥 만주에 있었다고만 하거든요. 유물로도 부정할 수 없는 상황이구요. 때문에 그에 대한 대응은 한반도 남부의 국가를 대륙으로 끌어올리는 것 뿐이죠. -_-;

아무튼 이 때 세워진 4군은 곧 고조선의 중심지, 혹은 고조선과 그 주변의 중요한 지역이라 생각하면 될 겁니다. 이 중 임둔과 진번군은 25년만에 퇴출, 현도군은 북쪽으로 계속 밀려납니다.

이 현도군의 위치가 문제인게 초기 고구려의 위치가 딱 여기에다 현도군 내에 고구려현이 있었거든요. 거기다 문제가 되는 게... 이 고구려의 처음 이름이 졸본부여였거든요. 그리고 이 부여가 장난 아니었죠.

고조선이 과대평가 되었다면 부여는 참 과소평가 된 나라입니다. 대충 저 정도의 영역을 차지하고 있었다는데, 고구려도 그렇고 주변에서도 부여를 칭했으며 백제도 남부여를 칭했죠. 건국 이후로 단 한 번도 수도가 함락되지 않은 게 부여였습니다. 초기에 허구헌날 수도 털리는 고구려랑 비교해 보면 (...)

문제는 이 부여의 건국이 전국시대 말까지도 소급될 수 있다는 거죠. 위만조선과 동시기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초기 고조선이 몰락한 후 그 남은 이들이 따로 세웠거나, 아예 고조선에 포함되지 않았던 예맥족이 고조선과 연이 싸우는 동안에 세웠을 수도 있습니다.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어요. 기록이 정말 적거든요. 이 때문에 대무신왕이 싸웠던 대소왕은 왕 같은 게 아니라 부여 사출도 세력 중 하나일 뿐이었고, 고구려에서 자랑하려고 띄운 거라는 주장도 나오는 모양입니다. 그럴 듯 한 게 금와왕-대소왕으로 가면 너무 짧잖아요.

대체 어느 정도의 나라일지 모르는 상황인데 가장 자세한 게 고구려에게 털리는 기록이라는 게 문제죠. -_-; 그 주적도 고구려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서쪽에서 무시무시하게 다가오는 선비족이었죠. 3~4세기 무렵 선비에게 크게 당한 부여는 일부는 연으로 가서 벼슬을 하기도 했고, 중심지를 동쪽으로 옮겨서 계속 남기도 했습니다. 그 일부는 두만강 쪽으로 가서 동부여를 세웠구요. 5세기에는 고구려에게 흡수되다시피 했고, 그 유민들은 더 깊숙히 들어가서 동쪽에 두막루라는 나라를 세우기도 했고, 시베리아 쪽까지 올라간 이들도 있는 모양입니다.

해모수라는 단군과는 다른 시조를 내세우는 걸로 봐서 아예 다른 세력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_-a 흐음... 이들은 고구려와는 달리 동방 변군과 친하게 지냈고, 고구려가 요동군을 치자 지원하기도 했습니다. 정말 부여의 세력이 졸본으로 와서 고구려를 세운 것인지, 현도군 내에서 스스로 자란 세력이 현도군을 몰아내고 졸본부여를 칭했다가 이어 고구려를 칭한 것인지는 모르겠네요. 어쨌든 그 때 부여의 존재감은 장난이 아니었다는 거죠. 이들이 동방변군들을 공격하기도 하는데, 고구려가 했던 약탈도 점령전도 아닌 그냥 기 죽이기용 토벌이었다고 합니다. 이런 리즈시절이 제대로 사료에 남질 않았으니...... 5세기 말, 후기 부여는 물길(말갈)의 침략을 받고 고구려에 투항, 완전히 멸망하죠.

5. 낙랑군과 삼한

고구려는 주기적으로 낙랑과 요동군을 삥 뜯으며 살았습니다. 그러면서 압록강 유역과 강원도, 함경도 등의 소국들을 차례차례 병합했고, 부여와도 맞서면서 깡패국으로 거듭나죠. 그래서 밟히기도 밟혔지만 -_-; 안 죽었죠.

그 동안 유일하다시피하게 남은 낙랑군은 발전에 발전을 거듭했습니다. 고대사에서 이게 제일 큰 문제죠. -_-; 낙랑군은 고구려-부여의 북방계와 삼한의 남방계 사이를 끊고 양쪽에 계속 영향을 줬다고 하거든요. 결국 중국의 영향을 받아서 고대 국가가 성장했다는 식민사관이냐 vs 아니 그렇게 몰아내는 역사면 충분히 된 거지 왜 그러냐 요런 싸움입니다.

하지만 중국의 혼란은 낙랑에서도 이어졌고, 낙랑 태수가 독립을 하려 했다가 밟히는 일이 벌어집니다. 왕망이 신나라를 세울 때의 일이었죠. 광무제가 후한을 세우면서 안정은 돌아왔지만, 고구려는 어느새 성장해서 변군들과 대등하게 맞짱 뜰 정도가 되었죠.

한편 남쪽에서는 진을 이은 삼한의 소국들이 계속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그 중 역시 대표적인 것은 마한의 백제와 진한의 사로국이겠죠. 대체적으로 세 나라 다 1세기 때는 건국됐다고 기록돼 있지만 보통 백제와 신라는 2~3세기에 건국됐다고 추정하죠. =_= 그 이전의 기록들이 너무 부실하거든요.

백제의 경우는 고구려계의 흔적이 보이는 게 2세기부터라서 그런 것이고, 초기에는 낙랑군에서 갈라서 설치한 대방군과 마한의 패권을 차지한 목지국과 대립한 것으로 보입니다. 대방군에 대해서는 고구려에 맞서서 협력하는 관계였고, 목지국에 대해서는 일단 상하관계라 치긴 하는데 언제 대들지 모르는 관계인 거죠. 적어도 온조왕이 오자마자 마한을 복속시키지는 않았을 겁니다. 아무튼 이 시기부터 고구려와 백제의 원수지간이 시작되는 거죠.

한편 신라는 애초부터 진한의 강국이었고 천천히 영토를 확장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 시기 역시 2~3세기. 애초에 6개의 부가 모여서 스스로 왕을 칭했던 나라, 그래서 파격적인 주장까지 나옵니다. 박-석-김의 교대가 아니라 그 3국이 공존하고 같이 신라라는 이름을 칭했으며, 김씨가 통일했다는 거죠. -_-a 뭐 이 정도로 삼국사기 초기 기록이 믿기 힘들다는 거죠.

어쨌든 두 나라는 계속 영토를 늘려간 것으로 보이고, 고이왕-아달라 이사금 (성이 박씨................) 때부터 문경새재를 사이에 두고 계속 싸웠습니다. 두 나라의 원수관계가 계속된 거죠. 이 시기까지는 이 나라들이 점령한 것도 간접 점령이었던 것으로 보이고 우리가 아는 백제, 신라로서의 정체성이 있었는지도 알 수 없죠. -_-;

도시 국가, 혹은 부족 국가를 떠나서 영토 국가이자 중앙집권 국가로 추정하는 시기는 백제는 구수왕, 신라의 경우 벌휴 이사금에서 내물 이사금 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백제는 고이왕 대에 들어 마한의 맹주 자리에 앉은 것으로 보이고, 그래서인지 남쪽을 적극적으로 공격하는 모습이 영 보이지 않습니다. 중앙집권국가로서의 백제가 아닌 마한의 패권국이라는 이미지인 거죠. 신라는 이런 의심이 더 늦게까지 계속되구요.

대신에 백제가 눈을 돌린 것은 북쪽이었습니다.

한편 =_=;;;; 김해-부산 지역을 차지하고 있던 가라국. 금관가야는 영토 확장은 못 했지만 일본과 중국과의 철 무역을 통해 열심히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현재 가야에 대한 주류 가설은 가야 제국설, 연맹이 아니라 가야라 불리긴 했지만 다 다른 나라였다는 겁니다.

3세기에 이 금관 가야에 대한 주변국의 대대적인 공격이 시작됩니다. 이른바 포상팔국의 난이죠. 당시 강대국이었던 사로국은 금관 가야를 도와 이들을 막아냈고, 영향력은 더 올라갔죠. 이후 가야국들은 절치부심해서 백제와 왜와 손 잡고 신라를 다시 칠 생각을 하는데............... 하는데!

6. 삼국의 성립

한편 공손탁이 요동 태수가 되면서 낙랑군에서 황해도 부근을 떼서 대방군으로 나눕니다. 이 시기 고구려는 변군들과 부여를 계속 압박하고 있었고, 그에 대한 대처라고 봐야겠죠. 공손씨 덕분에 살아난 낭락군과 대방군은 고구려를 막기도 하고 마한을 치다가 발리기도 하면서 삽니다. 안 되겠다 싶었던 위나라는 관구검을 시켜 고구려를 공격하는 초강수를 두기도 했죠. 이후 고구려는 잠시 움찔했지만, 진의 건국 이후 다시 공격을 시작합니다. 이 때부터 백제가 대방군을 도왔다는 기록이 있죠. 하지만 곧 상황이 바뀌었으니... 백제가 강성해진 겁니다.

고이왕 때부터 백제는 태도를 바꿔 대방과 낙랑군을 공격합니다. 고구려는 이 때 대방군과 손 잡기도 했구요. 그러면서 힘을 찾은 고구려는 정면으로 이 군현들을 공격해 311년에는 서안평을 점령합니다. 낙랑군과 중국의 관계를 완전히 끊은 거죠. 그리고 2년 후인 313년, 미천왕은 낙랑군을 점령하고 이어 대방군 지역도 완전히 점령합니다. 기존에 점령했던 옥저, 낙랑국(호동 왕자가 옥저에서 놀다가 가는 길에 들렀다는 것 때문에 함경도 설이 많더군요), 동예(강원도) 등과 함께 고구려는 만주부터 한반도 북부를 관할하게 된 거죠. 이렇게 고구려의 전성시대가 열리나 싶었는데...

당시 백제는 쓰러지기 직전인 낙랑-대방군을 치면서 남쪽을 계속 공략하고 있었습니다. 충청도와 전라북도의 상당수가 점령됐거나 속국이 된 것으로 보이구요. 이 때 가야는 물론 신라까지도 백제를 상국으로 섬긴 모양입니다. 이렇게 남쪽이 탄탄해진 상황, 근초고왕은 북벌을 결심하고 평양성을 칩니다. =_=; 고국원왕 끔살... 이후 백제는 심심하면 평양을 치고 한반도 전체에서 패권국 취급받는 리즈 시절을 보내게 됩니다. 16대 진사왕까지도 그렇게 될 줄 알았죠. 여전히 고구려를 삥 뜯으며 백제의 전성기를 이으려 했는데........


하필 고구려의 왕이 이 분이라서........................

고구려는 남쪽으로는 백제, 서북쪽으로는 후연, 동북쪽으로는 동부여로 포위돼 있었습니다. 평양이 위험해지고, 요동을 뺏긴 상황이었죠. 그런데... 391년부터 시작된 동서남북 모든 전선에서의 싸움을 고구려가 이겨 버리죠. 서쪽으로는 후연을 공격, 요동을 확실히 차지했고 동북방의 동부여를 먹고 숙신족을 복속시켰으며, 백제의 아신왕을 잡고 복속시켰죠. 백제가 안 되겠다 싶어 가야-왜와 연합해서 신라를 공격하자 5만명을 보내 격파, 신라는 고구려에 복속됩니다. 신라의 본격적인 역사가 이 때부터라고 봐도 되겠죠. 고구려와 중국의 문물을 받아들일 수 있었으니까요. 이후 개로왕이 한 번 딴지를 걸다가 또 발리고 -_-; 그 아들 문주왕 때에 이르러 웅진으로 천도합니다. 한편 신라도 고구려에 반기를 드는데, 장수왕의 군대가 경주 코 앞까지 왔다가 막히고, 일단 복속에서는 풀려나죠. 장수왕은 평양으로 도읍을 옮기면서 열심히 남방을 개척하는데, 마침 중국의 5호들이 중국 남부를 공격하기 시작한 때와 맞아서 이 때 한랭기가 온 게 아닌가 하는 주장도 있더군요.

그 이후 나제동맹으로 고구려를 견제하면서 솥발 같은 삼국의 정립이 시작됐고, 그 이후의 역사야 뭐 '-')/~ 다 아시죠잉?

삼국시대야 뭐 -_-; 더 끌면 안 될 테니 넘기겠습니다. 남은 나라들은 그냥 코멘트 정도만.

아 사실상 시작이 됐던 이 글이 있군요. 황산벌-평양성으로 보는 신라의 삼국통일사
https://pgr21.co.kr/zboard4/zboard.php?id=freedom&page=5&sn1=&divpage=5&sn=on&ss=on&sc=on&keyword=눈시&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27216

7.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시대가 욕도 많이 먹고 별로 주목받지도 않지만 정말 중요한 시기기는 합니다. 왜냐면 이 때가 바로 고대에서 중세로 넘어가는 시기거든요. 고대의 질서가 붕괴되고 유교가 보급되면서 중앙집권의 모습이 보이는 거죠. 뭐 조선에 비하면 전혀 아니지만...

이런저런 전설들도 많고 황금의 나라다운 유물들도 많지만... 사실 저도 아는 건 별로 없어요.



발해의 경우는 참 애매합니다. 고구려의 유민과 말갈족의 연합이라... 우리만의 역사라 하기는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발해가 고구려가 먹지 않은 연해주를 먹을 수 있었던 이유는 이 말갈족들 때문이겠죠. 하지만 그만큼 불안정한 상황이었습니다. 중국의 기후에 대한 데이터를 봤는데 600년을 중심으로 1000년까지, 발해 멸망 때까지 날씨가 따뜻했다는군요. 백두산 폭발은 발해 멸망 이후이지만, 폭발 전에도 화산은 주변에 영향을 주니 영향이 아예 없진 않았을 것 같습니다. 특히 폭발 후에는 그 주변에서 사람이 꽤 오래 살지 못 하지 않았나 싶구요. 거란이 순식간에 발해를 먹어놓고도 그 지역을 포기하고 온 것으로 봐서 정말 왕조만 멸망한 것으로 보이고, 남은 발해의 유민들은 거란에 흡수되거나 고려로 가거나 발해의 후예국을 세웁니다. 물론 곧바로 멸망당합니다만 (...)

여러 가지 정황상 굳이 말하자면 요동사, 만주사로 분류해야 될 나라입니다. 남북국시대라 부르지만 과연 둘 사이에 얼마나 연관이 있었을지는 모르겠거든요. 고려에서 보면 알 수 있듯 신라 내의 고구려 세력이 따로 존재했으니까요. 하지만 어느 나라의 역사가 무조건 한 나라에 귀속되어야 된다는 일국사관으로 본다면 중국보다는 우리 역사죠.

8. 고려

후삼국을 통일한 고려. 참 특이한 나라기는 해요. 좀 쳐 올라가 볼랬더니만 요-금-원 크리 -_-; 내부에서도 지배층이 계속 계속 바뀌죠. 초기의 호족, 문벌귀족, 무신, 권문세족, 신진사대부로요. 엔하 발 평가인 "귀족적 성격과 역동적 성격이 공존하는 묘한 양상"이 맞는 것 같습니다. 참 화려한 나라였죠. '-'

아 중요한 게 이 시기에 민족의식이 확립됩니다. 참 재밌는 게... 부여를 이은 것으로 보이는 고구려는 고조선 계승(다물)을 표방했고, 백제는 고구려에서 아예 위로 나가서 부여 계승을 주장했죠. 삼한 국가들은 고조선을 이은 것이라 했고 고려는 한 차례 돌아갔다가 조선에서는 다시 고조선으로... 참 재밌습니다. 이거

조선시대 대충 다 했으니 고려로 슬슬 옮길 것 같긴 한데 아직은 모르겠군요.

그러고보니 후삼국이야기도 있었군요.
https://pgr21.co.kr/zboard4/zboard.php?id=freedom&page=5&sn1=&divpage=5&sn=on&ss=on&sc=on&keyword=눈시&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27429

9. 그리고 조선
이렇게 조선까지 왔습니다.

맨 위에서 말했듯 이제까지 쓴 걸 왕 별로 복사할랬는데... 힘드네요. 그냥 제목만 달겠습니다. =_= 제 닉네임으로 찾아서 보세요~

통사 : 절사손장자 조선의 장남들, 어심을 읽어라

고려 공민왕~태조 : 고려의 마지막 명장
태조~정종~태종 : 왕자의 난
태종~ 세종 : 성군의 뿌리(단종애사 특별편) 조공, 사군 육진(왕자의 난 외전), 세종대왕 특별편, 훈민정음 시리즈
문종~단종~세조 : 단종애사
예종~성종 : 여인천하 1편
연산군 : 그 때 그 날 외전에 살짝
중종 : ' ^'?
인종~명종 : 여인천하 2편
선조 : 임진왜란, 임진왜란 해전사, 정유재란, 율곡 EE (헥헥)
광해군~인조~효종~현종 : 남한산성, 남한산성 이후
숙종 : '^ '?
경종~영조~정조~순조 : 그 때 그 날
헌종~철종 : 세도 정치편
고종~순종 : |( ..)|;;; 저번 편에 낚아서 죄송.

이후 조선이 망하면서 일제강점기가 시작되고, 해방이 되었고, 분단이 되었죠.

참........ '-') 앞으론 어떻게 될까요?

----------------------------------

... 다시는 통사 안 써.
대충 다룬 부분은 다 아시겠죠? -_-a 언젠가는 따로 다룰 거라는 걸.
* OrBef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1-11-25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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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자달리자
11/11/23 20:49
수정 아이콘
아니 이게 논문이야 PGR자게야.!! 눈시BB님 글은 항상 읽으면서 느끼지만, 어렵게 느낄 수 있는 역사를 쉽고 재미있게 풀어주시는것 같아요. 그래서 항상 개인적으로는 선추천 후독입니다! 잘 읽겠습니다.!
선데이그후
11/11/23 20:53
수정 아이콘
선리플 후감상
어물쩡 조선끝내고 딴나라로 넘어가면 큰일나죠.ㅡㅡa
대한제국사까지 끝내고 넘어가셔야죠. ^^;
하심군
11/11/23 20:55
수정 아이콘
구한말 선교사가 쓴 책을 번역한 책을 읽었는데 그 선교사분은 조선의 역사를 기자조선(...이라고 썼는데 왠지 위의 글을 보니깐 위만조선같고 말이죠)에서 시작했다고 생각하는거 같더군요.
11/11/23 20:59
수정 아이콘
눈시님 글은 쭉 모아서 필담집처럼 내도 될거같은데요. 어투도 그렇고 너무 술술 잘읽혀요 크크
BetterThanYesterday
11/11/23 21:04
수정 아이콘
와 금새 또 글을 쓰셨네요,,

확실히 능력자신듯요...

잘 읽었습니다,,, 책 안 내시면 제가 쓰신거 모아서 내버릴껍니다 크크 저작권 문제로 법원에서 뵙겠네요 크크
김구라황봉의시사대담
11/11/23 21:08
수정 아이콘
대충 다룬 부분은 따로 다뤄주신다니 고맙습니다. 크크.
제가 바라는건 대충 다루신(?) 분단 이후 제3공화국, 제4공화국기 글 한번 써주셔서 PGR 파이어 되는 겁니다. 크크.
현대사 글은 쓰기 조심스럽더군요. 아직도 그 시대는 민감한 것 같아요. 당사자들도 살아 계시고.
근데, 궁금 한 것이 신라사 부분에서 박석김의 나라가 공존했고, 김씨가 통일 했다는 주장이 요새 통설인가요?
제가 처음 들어서 궁금합니다. 요새는 파는 분야가 1,2차대전 쪽이라 고대사 공부를 소홀히 했네요 ㅠㅠ
Je ne sais quoi
11/11/23 21:31
수정 아이콘
아침먹으면서 상쾌하게 읽고 출근합니다. 쓰신 글 중에 알 수 없다가 이렇게 많이 나오는 편은 처음이군요 ^^
FIAT PAX
11/11/23 21:45
수정 아이콘
제가 예전에 아주 스쳐지나가듯 본 책에서는 마한이 꽤 오랬동안(4c경 까지) 존속했다던데 백제와 마한의 정체성이라던가 상호 관계가 궁금하네요

마한 내의 맹주(?)이던 백제가 무럭무럭 자라서 정복한건지 아니면 마한으로 뭉쳐있던 향토세력이 하나씩하나씩 기존의 연맹을 탈퇴해서 백제로 옮겨간건지..

근초고왕 집권 전에 마한이란 이름으로 조공을 했다는 점이나, 변한-진한에도 목지국의 지배국가가 있었다는 점을 보면
(세습되지 않던, 선출된 왕이 위력행사를 할 정도의)부족국가연합(?)에서 힘의 구심점이 어디에 있었는지도 궁금하구요..

여튼 고맙습니다 책으로 내 주세요 아이돌 앨범사듯 예닐곱 권 사서 소장 한 권, 읽기 한 권, 닳도록 읽기 한 권, 네 권은 눈시교 포교에 쓰겠습니다( _ _)
11/11/23 22:08
수정 아이콘
원더풀
짱이다
쩐다
으아아아
호옹이
도대체 무슨 수식어를 달아드릴까요. 이런글때문에 PGR에 옵니다. 이맛이죠.
바로 이맛입니다. 그러니까 마지막 문단도 '대충'좀 달아주세요.
굽신굽신
공허진
11/11/23 23:08
수정 아이콘
오~~~국사에 입문하는 공시생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글입니다
서주현
11/11/24 00:12
수정 아이콘
좋은 글이네요.

굳이 환빠들이 아니더라도, 고조선의 넓은 영토에 자부심을 느끼는 사람들이 적잖은데...(고구려를 너무 과대평가하는 사람이 많은 것도 어느정도는 비슷한 이유죠)

사실 고대의 영토개념은 오늘날과는 많이 달랐죠.
우리역사에 존재했던 국가들 중에서 실질적으로 다스리는 영토가 가장 넓었던 국가는 고조선, 고구려, 발해가 아니라 조선입니다.

삼국시대만 해도 거점을 군사적으로 점령하는데 그쳤고, 그 외 지방은 사실상 토착세력이 상당한 수준의 권력을 가지고 있었죠.
관료제가 어느정도 정착된 것은 고려시대에 이르러서였다고 봐야 할 겁니다.
그리고 조선은 동시대에 비교할만한 국가를 찾기 힘들 정도로 훌륭한 중앙집권화가 이루어진 국가였죠.
심지어 오늘날 지구상에 존재하고 있는 국가들 중에서도 체제정비의 정밀함이 조선만 못해보이는 나라가 꽤 많을 정도이니...

조선은 정말 대단한 나라였다고 생각합니다.
불패외길자족청년
11/11/24 01:02
수정 아이콘
진짜 이 음악은 처음에 들을때도 대단했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대단한 음악입니다. 좋은 글들 잘 읽고 있습니다.
카서스
11/11/24 02:19
수정 아이콘
기자조선은 글썌요.

기자가 고조선으로 갔다는 증거도 가능성도 없을텐데요;

그냥 그당시 고조선에 무엇무엇이 있었다. 근데 그떄면 기자조선일때 아녔나? 그렇군 기자조선때 저런일이 있었군.

정도로 생각합니다.
나이트해머
11/11/24 10:52
수정 아이콘
기자조선이야 떡밥 아니겠습니까.
단군을 추양하여 역사의 길이가 중국에 못하지 않다고 높이고, 기자를 추종하여 문화가 중국에 못하지 않다고 높이는 목적으로 말이죠.
그리고 최근엔 마한이 전남까지 장악했는지도 의심을 받더군요. 유물의 차이가 크다나요. 전남은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토착세력들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
홈런볼
11/11/24 19:52
수정 아이콘
역사에 관심이 많은 사람으로서 눈시님 글은 항상 재밌게 보고 있습니다. 역사라는게 현대의 관점에서 정립되는 경향이 있어 일제 식민지 이후 우리의 관점에서 보는 것이라 기록도 부실한 우리의 역사를 그저 추정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저 안타깝습니다. 그런면에서 눈시님의 객관적인 추정이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고구려가 망하면서 고구려측의 기록이 3일간 불태워졌다는게 그런 역사가 깡그리 사라졌다는게 그저 두고두고 아쉬울 뿐입니다. 고구려나 백제때의 기록이 보존되어 있다면 우리도 중국만큼이나 체계적인 역사가 성립했을텐데요.
홈런볼
11/11/24 20:04
수정 아이콘
항상 궁금한게 있는데 영토의 개념이 아니라 고구려와 백제신라, 발해와 신라, 거란여진 그리고 고려.. 만주족과 조선으로 이어지는 만주쪽과 한반도의 사람들이 서로를 어떻게 여기고 생각했을지 그게 제일 궁금합니다. 제일 중요한게 언어와 문화인데 고구려, 발해가 확실히 우리말을 썼는지 관혼상제나 의식주등의 문화가 얼마나 비슷했을지가 궁금합니다. 확실히 요하를 동서로 가르는(이것도 결국은 고구려와 중국을 나누는 관점에서 고착되긴 했습니다만) 문화권의 차이는 확실하다고 생각하는데 그쪽은 중국, 이쪽은 한민족하는 관점에서 봐야할지 중국, 만주족, 한민족으로 나눠야 할지 그게 항상 궁금했습니다. 조선때까지도 간도의 개념이 남아있는 것을 보면 확실히 우리의 역사는 청천강, 압록강의 범주로 보기보다는 요서와 요동의 범주에서 크게 봐야하는게 아닐지 눈시님의 고견을 듣고싶네요.
난그랬어
11/11/26 00:24
수정 아이콘
정말 능력자 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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