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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10/08/13 00:27:44 |
Name |
zeros |
Subject |
Mr.Waiting - last |
이 후 그녀의 집까지 별다른 말은 없었다. 지하철역 계단을 올라 밖으로 나왔을 때 그녀가 잡은 손을 풀었다. 난 그녀의 얼굴을 보았다.
“나 잘 몰랐는데, 우리 동네 은근히 보는 눈들이 많더라고. 저번에 어떤 아줌마가 너랑 있는 거 보고 엄마한테 말해서 꾸중 들었거든. 그래서 여기선 손잡으면 안 될 거 같아.”
단지로 들어가기 전에 음료수를 두 개 샀다.
“야 아직 너 통금시간 남았으니까 조금 있다가 들어가.”
“응? 그래 뭐 어차피 이거 마셔야 되니깐.”
주변은 조용했다. 나는 입을 열어 말을 꺼냈다. 그리고 그녀와 나는 내가 이미 예상했고, 준비했던 그 마지막에 다다르고 있었다. 안타까운 것은 어쩔 수 가 없었다. 스스로는 이제 그렇게 되도 상관없을 것이라 생각했으면서도 돌려보고픈 마음이 들었다. 서로가 서로를 설득하다 조용해졌다. 난 들고 있던 음료수를 비웠다. 준비를 해서 그런 것일까. 이전에는 그녀를 놓친다는 사실에만 마냥 안타까워 어떻게든 잡으려 했던 나였지만 그 시점에 그녀와 나를 새로 볼 수 있었다.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 이것은 설득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친구들이 이제 그만두라고 할 때, 과거에 그녀에게도 이성으로 감정을 어찌하면 안 된다고 말했던 나였건만 난 너무나도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이었다. 내가 조금 더 노력하면, 그리고 그 언젠가 쯤엔 가능하리라 생각했던 그 꿈 대신 이렇게도 아닌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를 붙잡고 싶은 생각도 우리의 결론을 조금 더 유예시키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 오랜 시간 동안 내 마음에 머물러있던 그녀를 향한 감정이 단 몇 분 만에 바스러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직 나를 설득하는 그녀의 말을 들렸다. 문제는 참으로 간단한 일이었다. 내가 원하는 걸 그녀는 해줄 수 없었고 그녀가 원하는 것을 나 역시 해줄 수 없었다. 또한 둘은 그 어떤 양보를 할 수도 없는 상태였다. 더 이상 무슨 말과 고민이 필요할까. 그녀가 옆에서 말하고 있는 그 순간조차 의미 없는 시간처럼 느껴졌다.
“지은아.”
“응.”
“들어가라.”
그녀는 잠시 망설이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난 그녀가 작아지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혼자 남아 앉아있자니 그 곳에서의 기억들이 떠올랐다. 그녀와 내가 이야기를 나눴던 그 벤치엔 많은 얘기가 남아있었고, 그녀를 기다리며 초조함에 피웠던 담배꽁초가 남아있었고, 아무런 말도 없이 홀로 와서 아무런 기대 없이 앉아있던 나의 모습이 남아있었다. 나쁜 기억은 아니었다. 그렇게 마구 떠오르는 모습들을 잠시 바라보았다. 그리고 일어섰다. 그런 기억들이 이제 나에게 의미가 없다거나 한건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 마지막이었다. 그것이 내가 그녀에게 들었던, 말했던 그 몇 개의 마지막중의 하나 일 것 같지는 않았다. 안타까움에 요동치던 가슴은 금방 잠잠해졌고, 난 망설임 없이 돌아섰고, 계단을 내려와 걸었다. 그녀와 이렇게 될 때마다 항상 찾던 담배를 샀다. 포장 비닐을 벗겨내고 있자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예전처럼 그렇게 절망적이지도, 가슴이 깨질 듯 아픈 것도 아니었다. 어느 샌가 이런 행동도 하나의 버릇처럼 되어버린 것은 아닌가 싶었다. 생각을 하며 불을 붙였다. 역시 오랜만에 피는 담배는 맛이 없었다. 몇 번의 기침을 하고는 꺼버렸다. 바람이 시원해 기분이 좋았다. 몇 명의 친구와 전화통화를 걸어 이야기를 나누면서 길을 걸었다. 어머니는 오랜만에 새벽에 들어오지 않은 아들을 반갑게 맞아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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