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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9/07/24 15:56:19 |
Name |
i_terran |
Subject |
[소설] 불멸의 게이머 38화 - 단 하루라도 |
[소설] 불멸의 게이머 38
38 단 하루라도
건호와 아나이스가 재회한 다음날.
두 사람은 다시 만났지만, 표면적으로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건호는 결승전을 준비해야 하는 상태였고 여전히 감옥에 갇혀 있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건호에게 좋은 쪽으로건 나쁜 쪽으로건 뭔가 변화를 만들어 줄 수 있는 것은 이번 대회의 결승전이었다.
그러나 그 결승전에 대한 준비도 완벽하다고 할 순 없었다.
감옥에 갇힌 건호에게 라데온이 결승전 준비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었다.
“지옥테란에 대해서 많은 것이 알려진 것은 아니다. 겨우 3게임을 봤을 뿐이니까.
하지만 그녀석의 빌드는 항상 똑같다. 일정한 시간에 확장. 일정한 상황에 정찰. 일정한 타이밍에 진출.”
“......”
건호는 그 경기를 이겨야 좋은 것인지 져야 좋은 것인지조차 구분하기 힘든 상태에서 그 이야기를 들었다.
건호는 진심으로 지옥이 깡그리 날아가는 게 더 올바른 일이 아닌가 끊임없이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라데온은 아랑곳없이 말했다.
“네가 히로스 보다 더 게임을 잘하니 제대로 올인 전략을 사용하면 큰 피해를 주고 승리할 수 있다.
그 어떤 컨트롤로도 피할 수 없는 범위마법 등이 스타크래프트엔 분명히 존재하니.
15분 진출전에 그런 것을 조합해 공격하면 100% 이길 수 있다."
"....."
"그러니까 지옥테란의 플레이 패턴에 맞춘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세팅해주지.“
라데온은 지옥테란의 강력한 컨트롤이나 생산력에 크게 놀라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지옥테란이 보여주는 플레이 특징을 보고 건호라면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건호는 처음으로 질문했다.
“그 전략대로 1세트를 했는데 다른 변수를 발견하면? 그래도 그 전략대로 해야 할까요?”
“.....”
라데온은 완벽하게 예상하는 것에 반대를 하자 기분이 나빴다.
사실 지옥테란의 경기를 많이 본 것이 아니기 때문에 변수는 충분했다.
하지만 지옥테란과 같은 상대에게 또 다른 변수가 있다면 도저히 이길 수 없다.
“그런 일이 일어 날 리 없다.”
라데온은 다소 불확실한 것을 확신하고 싶어 하는 듯이 말했다.
그 확신 안에 오히려 부정적인 어조가 묻어나 있었다. 라데온은 그 말에 대해선 빨리 떨쳐 버리고 다른 것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어쨌든 계획대로 되었든 되지 않았든 7세트를 갔을 때를 말해둔다.
7세트 경기는 카르마가 직접 만들어내는 경기맵에서 경기한다.
그건 카르마가 순간적으로 디자인해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카르마가 만들어내는 맵?’
건호는 입을 열진 않았지만 놀랐다. 그런 요소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라데온은 설명을 계속했다.
“카르마의 성능을 고려했을 때 순간적으로 디자인 하는 것은 무리일 수도 있다.
자체 인공지능이 미리 만들어두고 그것을 사용한 것일 수도 있지...
아무튼 그 맵은 무엇인지는 미리 알 수 없다.
카르마는 승부의 불확실성을 배제하기 위해서 그런 맵을 만들어내고 그 안에는 독특한 이벤트가 숨겨져 있다.”
“이벤트?”
이번엔 건호가 입을 열고 소리를 내어 의문을 표시했다. 그런 반응에 라데온은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전에 나와 함께 시간전환 이벤트 맵을 한 적이 있지 않은가?
그것은 약 4년 전 7전을 갔을 때 카르마가 제시한 맵과 같다. 그걸 토대로 비슷하게 만들어낸 거지.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상상을 할 수 있다. 양쪽플레이어 가진 특정한 유닛의 능력치 변화를 선택할 수도 있고 ....
워낙 괴팍해서 어떤 이벤트가 등장할지 알 수 없지만...”
라데온은 그림 그리듯 상상하며 말했다.
“... 어쨌든 그 상황이 되면 지옥테란 보다는 네가 유리할 것이다.”
라데온은 단정하듯이 말했다. 그러나 건호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라데온의 분석이 틀리진 않았지만 지금까지 건호는 대부분의 승부를 생각할 때 분명히 예측 못할 일이 일어날 것으로 생각했다.
그것이 예측할 수 없는 일이기에 당연히 건호도 예측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다. 라데온은 말했다.
“아무튼 시간전환 이벤트 맵도 강력한 인공지능을 넣어서 세팅해주마. 자 그 외에 나에게 얘기할 것이 있나?”
라데온은 분명히 건호가 할 말이 있을 거라고 여기듯이 말했고 건호는 천천히 얘기하기 시작했다.
“당신이 있으면 도저히 연습을 할 수 없을 것 같네요.”
“......”
“보고만 있어도 너무 두려우니까요.”
건호는 두렵다는 말을 조금 이상한 어조로 말했다. 마치 역겹다는 말을 사용하듯이 말했다.
라데온은 쓴 웃음을 지었다. 라데온은 부드러운 어투로 말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요 며칠 너를 너무 과격하게 대해왔다는 것을 인정하지. 좋아.
네가 편하게 생각할만한 녀석을 데려다가 심부름을 시켜줄 테니. 그 점은 걱정하지 마라.
아무튼 그렇게 해주는 만큼 또 한 번 조언을 하지.”
라데온은 건호의 멱살을 잡고 들어올렸다. 지난번에 건호를 들어 올릴 때처럼 아주 가볍게 건호를 들어 올렸다.
“......”
건호는 또다시 아무런 저항도 못하고 라데온에게 들어 올려졌다.
“아무리 말하고 또 말해도 부족한 것이 있어. 그래도 또다시 말하지만....
지금 네가 얼마나 행복한지 깨달아라. 패배한다면 더 이상 세상의 무엇도 두렵지 않을 거다.
가장 고통스럽고 괴로운 것을 이미 체험하고 있을 테니.
공포를 느낀다는 건 어쨌든 최악의 상황 이전에 훨씬 좋은 상황을 보내고 있다는 증거다. 그걸 잊지 말아라.”
“.....”
툭
라데온은 건호를 바닥에 떨어뜨리고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감옥 밖에서 다른 다급한 발소리가 감옥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아나이스였다.
“건호야. 괜찮아....?”
그 말에서부터 글썽거림이 느껴졌다. 아나이스는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건호를 보면서 분노했다.
“이.... 나쁘...”
아나이스는 욕이라도 퍼부어줄 기세로 라데온에게 시선을 돌렸지만
“.......”
그녀는 단지 라데온이 뒷모습만을 보고서도 흠칫 놀라 다시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아나이스는 발소리를 통해서 라데온이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서야 겨우 말할 수 있었다.
“... 나쁜 놈.... ”
그런데 어느덧 건호가 아나이스의 눈물을 닦아내 주고 있었다.
아나이스는 자신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울지 마.”
건호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라데온한테 미움 받으면 안 돼. 지옥에서 나가야 되잖아.”
“건호야...”
건호는 여전히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누나는 지옥에서 떠나 그리고 새 삶을 살아가. 난 어쨌든 최선을 다할 거니까.”
“.....너...”
아나이스는 아무것도 할 말이 없었다. 그저 건호에게 모든 것이 미안할 뿐이었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환대받는 것이 불편했다. 괴로웠다.
그것이 아나이스의 솔직한 마음이었고 그녀는 점점 건호 앞에 서는 것에 자신이 없어졌다. 그때 건호가 말했다.
“그동안은 항상 내가 누나 부탁을 많이 들어줬으니까. 이젠 내 부탁을 들어줘야지.”
“......”
하지만 건호는 그런 아나이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가 듣기에 더 미안한 말들만 쏟아내고 있었다. 아나이스는 비참한 심정이 되었다.
뭐라도 뭐라고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뭔가 이룰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뭔가 도움이 되는 게 있다면....
‘뭔가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게 있다면.’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때였다.
우우우웅...
건호의 목에 걸린 팬던트가 빛나고 있었다.
“......”
하지만 건호는 빛나는 팬던트를 무시하고 아나이스의 눈물을 마저 닦아 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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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데온의 사무실.
라데온은 컴퓨터 안에 설치된 플레이어를 모니터를 통해서 지금 건호와 아나이스의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라데온의 시선은 빛나는 건호의 팬던트 <마인드 오브 파워>에게 멈춰져 있었다.
“......”
표정을 보니, 그 팬던트의 빛이 왠지 라데온에겐 불편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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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또다시 흘렀다.
라데온의 사무실엔 아마트라가 와 있었다. 아마트라는 약간 불편한 모습으로 쇼파에 앉아 있었다.
하급악마로서 강대한 권력자인 라데온의 사무실에 오는 일은 드문 일이었고
그래서 항상 사무적인 태도를 일관할 수 있는 아마트라도 지금 이 자리가 불편했다.
잠시 후 라데온이 자신의 찻잔을 가지고 나타나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아마트라에게 말했다.
“임시용역으로 너를 고용한다. HTTC와는 다 얘기가 끝났고 보수는 괜찮을 것이다.”
“무슨 일을 합니까?”
“너도 알고 있겠지만, 임건호를 보좌해라.
결승전이 끝날 때까지 아무래도 녀석은 나를 꺼리는 것 같으니 네가 하던 대로 그 녀석이 뭘 필요로 하는지 알아서 처리해주길 바란다.”
아마트라는 결승전이 끝난 후 건호에의 처리에 대해서 물어보려고 했지만,
아무것도 쓸데없는 짓이 될 것 같아.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라데온이 말했다.
“사실 난 네가 마음에 들지 않아. 네가 <기억복원>을 너무 절묘한 타이밍에 섭외해서 내 계획이 많이 틀어졌지.”
“.......”
“나도 여러 가지로 다른 방법을 강구하고 있지만, 별로 예상대로 될 것 같지가 않아.”
“.......”
“그러니까. 요약해서 이런저런 이유로 너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알아두고 그걸 감안해서 더 열심히 하도록 해.”
그 말은 마치 협박과도 같았다. 아마트라도 약간의 공포를 느끼며 자리에서 일어서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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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이스는 헬게이트 시티 시내에 나왔다.
아나이스는 건호에게 뭔가 응원을 해주고 도움이 되고 싶었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그런 것들이 모두 불가능했다.
아나이스는 여기저기를 혼자서 떠돌다가 예전에 건호와 갔었던 추억의 장소에 들르게 되었다.
옷가게.
무엇이 그녀의 발걸음을 거기로 이끌었는지 모르나 그녀는 상점 안으로 들어가서 그것을 보았다.
“다시 그 옷 보러 오셨나요?”
기억력 좋은 점원이 아나이스를 알아보고 그 옷을 보여주었다.
자신과 건호가 고르고 기분이 좋았던 옷이다. 순백처럼 하얀 롱스커트 원피스
“......”
아나이스는 그 옷이 아직 팔리지 않았다는 것에서는 안도의 마음을 가졌지만
그 옷을 사야할지 말아야 할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결정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아나이스는 한참 그 옷을 보고 생각하다가 말했다.
“너무 좋은 옷인데 제가 입을 수가 없겠네요. 곧 떠날 거라서..”
아나이스는 그렇게 말하고 상점을 나와야 했다.
상점 주인은 다시 실망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황망하게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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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호는 열심히 연습하고 있었다.
타닥타닥 타닥....
인공지능 컴퓨터는 건호의 상대편 자리에 세팅되어 있었다.
보통은 컴퓨터 안에 프로그램으로 삽입되어 움직이는 인공지능을 상상하기 쉽지만 이것은 달랐다.
컴퓨터와 싸우지만 그 컴퓨터는 건호가 사용하는 컴퓨터 안의 프로그램이 아니라.
맞은 편 자리에서 독립적으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두 대의 컴퓨터는 랜으로 연결되어 있었고 실제로 대전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아.... 하아... 하아...”
어디 가서 컴퓨터에게 졌다고 말하는 것은 분명히 수치스러운 일이지만,
지금의 경우는 그렇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강하다.’
과연 이것이 현재의 세일즈맨테란처럼 강력할지 어떨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히 플레이 패턴만을 놓고 본다면 그 어떤 연습상대보다 가장 그와 흡사할 것이다.
“......”
하지만 이것을 이긴다고 전부가 아니다. 설사 지옥테란을 이긴다고 해도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그것은 소원을 이루는 길이 아니다. 건호는 지거나 이기거나 아무런 차이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게임을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건호가 지금까지 그 어떤 게임을 했어도 이와 같은 최악의 상황은 없었다.
이길 수 없는 적.
그동안 건호는 게임내에서
<보이지 않는 적>, <시간을 되돌리는 적>, <진영을 뒤바꾸는 적> <모든 것을 복사하는 적> <기억을 지우는 적>
등과 만나서 싸워왔다. 하지만 이번만은 위상이 달랐다.
이겨선 안 되는 적.
지금 건호 앞에 놓인 인공지능 컴퓨터도 강력하지만,
그것보다 건호는 승부 자체에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모든 것을 잊고 일단은 승부에 집중해 보려고 해도 불가능했다. 당연하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소원을 파괴하는 행위가 되기 때문인 것이다.
그렇게 건호가 착잡한 마음에 컴퓨터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을 때 감옥 밖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건호... 연습은 되나?”
아마트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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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트라는 이런저런 물품을 사서 가지고 들어왔던 것이다.
건호가 필요로 할 만한 옷가지와 생필품 그리고 건호가 좋아할만한 음식을 가지고 와서 건호와 함께 먹었다.
그것은 후라이드 치킨이었다. 건호는 한 번도 지옥에 와서 이 음식을 먹어본 적이 없었다.
함께 닭다리를 뜯으며 아마트라는 가벼운 얘기를 건네었고 그로인해서 건호의 마음도 약간은 풀어졌다.
건호는 그것을 먹으면서 아마트라에게 물었다.
“아마트라도 내 몸에 묶여 있는 <사슬>이 보여?”
아마트라는 그 질문에 담담하게 말했다.
“그래. 하급이라서 그걸 컨트롤할 능력은 없지만.”
아마트라는 미안해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당연한 듯이 뻔뻔하게 얘기한 것도 아니었다.
그야말로 아마트라만이 말할 수 있는 톤으로 사실만을 말하고 있었다.
그래서 건호는 아마트라에 대해서 궁금한 게 생겼다.
건호가 알기로 아마트라는 모든 말에 사심을 담지 않고 말하지만 그러지 않은 적이 최근에 있었기 때문이다. 건호는 물었다.
“전에 나에게 악마가 되라고 한 건... 내가 이렇게 될 걸 알아서였어?”
건호는 조금 진지하게 물었다.
건호는 히로스와의 경기 직후 아마트라에게 악마가 될 생각이 없느냐고 제의를 받은 적이 있었다.
그때는 왜 아마트라가 그런 제안을 하는 지 알 수 없었고, 당시 아마트라는 이유는 묻지 말라고 말하며 그런 제안을 했었다.
지금 건호의 질문을 받은 아마트라는 조금 생각하더니 역시 담담하게 말했다.
“솔직히 모르겠다.”
건호는 그 애매한 대답이 오히려 진짜같이 느껴졌다.
따지고 보면 아마트라는 지금까지 건호에게 거짓말을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 같았다.
재수 없는 말도 많이 했고 상처를 주는 말도 많았지만 따지고 보면 거짓말은 없었던 것이다.
아마트라는 건호에게 희망을 가지라는 둥, 소원을 이룰 수 있다는 둥, 좋은 말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건호는 아마트라에게 또다시 물었다.
“지옥에서는 아무도 소원을 이룬 인간은 없는 거야?”
“그래.”
아마트라는 아무것도 고민하고 않고 얘기했다. 건호는 다시 물었다.
“여러 가지 소원을 가진다면 그게 모두 이뤄지지 않는 거야?”
“그래.”
건호는 허탈해졌다. 아마트라가 말하면 그것은 모두 진실이었다.
아마 건호가 지옥에 와서 아마트라의 말을 의심하지 않고 모두 곧이곧대로 받아들였다면 지금 이런 상황을 맞이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쓸데없는 상상이었다.
그만큼 아마트라의 말은 믿고 싶지 않았던 말들이었는지 모르니까.
아마트라는 그런 건호의 마음을 모른 체 부연하기 시작했다.
“소원불가의 법칙은 지옥에서는 절대적이다.
너무나 절대적이기 때문에 모든 악마의 마법을 앞서는 제0의 마법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모든 악마의 마법은 거기에 비하면 장난이지... 따라서 소원이라고 할 만큼 뭔가 바라고 원하는 건 그만둬.
진심으로 강하게 바랄수록 그만큼 더 괴로워질 테니까.”
아마트라는 단정적으로 말했다. 그 말에 건호는 다시 기분이 가라앉았다.
그리고 고개를 속였다. 그러자 아마트라도 무거운 어투로 말했다.
“.... 미안하다. 내가 왜 이런 말을 해야 하는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또다시 아마트라는 자신도 이유를 댈 수 없는 말을 했다.
그렇게 둘은 아무 말도 없이 잠시 시간을 흘러 보냈다.
건호는 처음으로 아마트라가 아나이스 마르두크와 같이 자신에게 너무 소중한 동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아마트라가 말했다.
“그 세일즈맨테란과 싸우는 건 괴롭지만, 냉정하게 생각하면 그는 이미 죽은 것과 같아.
아무런 기억도 없고 아무런 자아도 없어. 껍데기뿐인 그를 그라고 부를 수 있을까?
물론 내 판단을 너에게 강요하는 건 아냐.”
“.......”
“하지만 생각해봐 지금 그에게 진짜 필요한 건 뭘까?
그가 지금 상태에서 가질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행복이 무엇일까?”
“......”
건호는 조금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어렵지 않게 답을 생각해 낼 수 있었다.
사실 세일즈맨테란도 그것을 위해서 스스로 저주를 받은 것이니까.
그리고 마르두크 역시 그것을 위해서 스스로를 파괴한 것이니까.
하지만 건호는 그것을 입 밖에 낼 순 없었다. 너무나 슬픈 말이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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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콤박사의 잠수함.
말콤박사의 서재였다.
오늘은 다른 날과 달리 말콤박사는 여러 가지 책과 서류에 묻혀서 책상에 엎드린 체로 잠들어 있었다.
그 옆에는 기괴한 그림자를 보이는 지옥테란이 있었다.
마치 <정지화면>처럼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는 상태로 그 그림이 지속되었다.
“......”
그런데 지옥테란의 손이 움직였다. 그리더니 컴퓨터의 키보드 위로 올라갔다.
마치 판토마임을 하듯이 고민하는 사람의 손처럼 키보드 위에서 고민을 하듯이 머물다가 그것은 문자를 쳐내기 시작했다.
타닥... 타닥... 타닥...
지옥테란이 키보드로 타이프 한 문자는
<한 번도 이겨보지 못한 상대...>
였다. 지옥테란은 그 이후의 말을 뭔가 적으려고 고민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결국 지옥테란은 <...> 말줄임표를 몇 번 타이프 하더니 백스페이스 ← 키를 눌러서 자신이 썼던 글자를 모두 지워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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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데온의 사무실
아나이스는 라데온의 갑작스러운 호출에 당황한 상태였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라데온은 자신의 서재에서 뭔가를 정리하더니
상자 하나와 종이 하나를 가지고 나왔다. 그리고 그것을 아나이스에게 건네주면서 말했다.
“오늘 떠나라.”
“네?”
아나이스는 갑작스러웠다. 라데온은 사무적으로 말했다.
“네가 마음에 들진 않지만, 어쨌든 넌 최선을 다했다.
예전의 네 소원대로 .... 넌 지옥에서 떠날 수 있다. 오늘 밤에 떠나라....”
“왜 오늘이죠?”
라데온은 귀찮았지만 약간의 의무감을 가진 얼굴로 설명했다.
“결승전 전날이 아니라 오늘이다. 우리 도시에 대한 테러 우려로 스케쥴이 바꿔서 결승전 전날엔 그 기차가 오지 않는다.”
“......!”
“네 프로필 스크롤과 그 열차를 탈 수 있는 인증의 마법서류다.”
아나이스는 너무 갑작스러웠다. 비록 며칠 밖에 되지 않지만 건호를 몇 번이라도 더 볼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언젠가 겪어야 할 일이었지만 예정보다 빠르게 다가오니
마치 둔기로 얻어맞은 것처럼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런데 라데온은 그 모습을 발견하자 지나칠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왜? 그 꼬마와 정들어서 단 하루라도 더 보고 싶은 건가?”
“......”
라데온은 이번엔 사무적인 말투치고는 약간은 조롱이 섞여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뭐 마음대로 해라. 오늘 밤이 아니면 넌 지옥에서 영원히 나갈 수 없을 테니까.”
아나이스는 자신의 물품을 받아들고 라데온의 사무실에서 나올 수밖에 없었다.
라데온은 악마답지 않게 아주 성실하게 약속을 이행했다.
스케쥴이 바뀐 것도 미리 체크해서 아나이스를 위해서 알려주며 배려했던 것이다.
따질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오히려 너무 황송하다. 하지만 아나이스의 뇌리에는 떠나지 않는 말이 존재했다.
단 하루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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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이스는 답답한 심정에서 공원으로 왔다.
공원의 벤치에 앉아서 생각을 정리하고자 했다. 하지만 쉽게 정리되지 않았다.
그러면서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갔고 역으로 떠나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런데 아직도 아나이스의 머릿속에선 라데온이 했던 말이 떠나지 않았다.
‘단 하루라도.’
아나이스는 그 말이 매우 익숙하다고 생각했다. 어디선가 들었던 말 같았다.
그리고 잠시 후 아나이스는 그 말을 어디서 들었었는지 어렵지 않게 생각해 낼 수 있었다.
그것은 아나이스가 사람들에게 ‘공명’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사기를 칠 때 생각했던 이야기에서 나오는 말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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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이스는 다음과 같은 불치병 여자의 심정을 토로하며 사람들에게 공명한 적이 있었다.
‘하느님 전 믿어요. 진정한 사랑은 죽음이 갈라놓는다고 해도… 영원할 수가 있다고 전 믿어요. 그렇지만… 하느님’
‘단 하루라도 더 살고 싶어요.’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통해서 아나이스는 최초로 건호를 자신의 세계에 끌어들이는 것에 성공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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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
아나이스는 스스로 쓴 웃음이 났다.
‘단 하루라도’라는 말이 익숙했던 것은 아나이스가 그렇게 여러 번 써먹었던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상당히 유치한 상상이었던 것 같다. 왜 불치병이고 왜 죽음을 앞둔 사랑이었을까?
왜 그런 생각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었을까? 그런데 생각해 보면 아나이스 스스로도 모르고 있었지만 놀라운 일이 있었다.
‘난... 다른 이야기는 전혀 생각해 본적이 없어.’
불쌍한 이야기는 다른 이야기도 많다.
하지만 왜 아나이스는 오직 이 이야기만을 생각했고 다른 것은 생각하지 못했을까?
아나이스는 알 수가 없다. 아나이스도 자기 자신에 대해서 생각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지 못하다.
왜냐하면 아나이스는 인간이었던 때의 기억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아나이스는 하나의 가능성을 생각했다.
“설마 그건 생전의 내 이야기...?”
갑자기 몰입해서 생각하다가 그게 혼잣말로 나와 버렸다.
아나이스는 또 한 번 쓴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아나이스는 스스로를 자책하듯이 말했다.
“내가 그렇게 행복하게 죽었을 리가 없잖아.”
그녀는 그렇게 자기 자신을 추스르고 벤치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택시를 잡았다. 그리고 택시 기사에게 말했다.
“지옥종착역터미널 갈게요.”
그녀는 택시에 올랐고 택시는 그녀를 태우고 이동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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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호는 자신의 감옥에서 혼자서 생각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아나이스를 생각했다. 그리고 아무도 자신을 보지 않는 다는 것을 깨닫고는 홀로 미소 지었다.
그러면서 건호는 아나이스의 조용히 아나이스의 행복을 빌었다.
그리고 팬던트가 빛났다.
* 박진호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9-08-07 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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