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 교통에 관심만 많은 동네 잉여가 쓴 “교차로 ‘불’완전 정복”입니다. 이 글은 저번에 쓴 “교통 정체를 해결할 교통수단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의 교차로 버전입니다. 교차로를 어떻게 하면 교통 정체를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될지 같이 궁리해 보기 위함입니다.
보통 차로 하나 당 처리할 수 있는 교통량은 시간당 2,200여대라고 합니다. 이는 신호처럼 교통류를 한 번씩 끊어주는 장치가 없을 때를 기준으로 합니다. 만약 신호가 있는 도로라면 사거리에서 2현시 신호(한 주기에 2번 바뀌는 신호)는 시간당 1,100여대, 4현시는 500여대 수준으로 떨어집니다. 4현시에서는 한 방향의 통행을 위해 나머지 방향에서 양보를 하기 때문에 교통량이 고속도로의 반에 반 토막 수준입니다. 바꿔 말하면 고속도로와 고속화도로는 차들이 막힘없이 다니게 해줄 뿐만 아니라 일반 도로의 교통량도 상당 부분 흡수해 일반 도로의 교통도 원활하게 해 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서울은 한 방향으로 시간 당 팔만 명 이상을 나를 수 있는 지하철도 많이 있고, 고속화도로도 많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량 평균 속도는 자전거 주행속도보다 느립니다. 신호가 도로 용량을 반에 반 토막을 낸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서울의 거의 모든 신호 교차로를 입체 교차로로 바꾸는 것으로 도로 용량을 3~4배 끌어올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도로를 3~4배 늘리는 것보다는 현실적입니다만, 교차로 주변의 넓은 땅을 밀어야 하기 때문에 오십 보 백 보입니다. 코엑스 사거리 정체를 해소하기 위해 코엑스를 밀어버리는 행태가 곳곳에서 벌어지기 때문입니다.
지하도로나 고가도로와 같은 반입체교차로를 짓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국내 교차로에서 좌회전 차량은 직진 차량의 15%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반입체교차로를 도입하면 직진하는 양 방향은 신호 없이 통과시킬 수 있고, 신호는 무신호 은혜를 못 받는 직진 방향으로 몰면 되니 양 도로의 용량을 끌어올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서울에서는 지하철이 이미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어 반입체교차로를 짓기 어려운 구간이 많습니다. 그 외에 고가도로를 지으면 미관이, 지하도로를 만들면 돈이 깨진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이 외의 방법은 앞서 소개해 드린 신교통수단을 도입해 보거나 신호를 바꾸는 방법이 있습니다. 신호 개선은 반입체교차로를 도입하지 않으면 그리 극적인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제법 저렴한 비용으로 지체를 줄일 수 있는 방법입니다. 도시 여기저기에서 만성적인 정체가 나타난다면 반입체교차로를 건설하는 것보다는 신호 관리에 집중하는 것이 낫습니다. 반입체교차로를 많이 지으면 돈이 제법 들어가거든요.
현재 국내에서는 주로 4현시를 씁니다. 대표적인 예로는 동시신호와 직진 후 좌회전, 과거형인 좌회전 후 직진이 있습니다. 동시신호는 좌회전과 직진을 나눠서 처리할 수 없는 왕복 2차로 도로나 좌회전 하는 차량이나 직진하는 차량의 수가 엇비슷한 도로에 쓰면 좋은 신호입니다. 그렇지 않은 교차로에 쓰면 효율이 좋지 않습니다. 직진 후 좌회전은 직진하는 차량이 많고 양 방향에서 좌회전하는 교통량이 비슷하면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간선도로에 있는 상당수의 교차로에서 직진하는 차량의 비중이 높기 때문에 제법 많이 볼 수 있는 신호이기도 합니다.
제가 사는 창원에서는 4현시의 업그레이드(?!) 판인 5현시 신호를 쓰는 곳이 많습니다. 간선도로끼리 만나는 곳이나 간선도로와 보조간선도로끼리 만나는 곳에서 볼 수 있으며 동시신호 4현시에 간선도로의 양방향 직진 1현시가 추가된 형태입니다. 가상의 도로인 간선도로 남북로와 보조간선도로인 동서로가 만나는 교차로에서 5현시를 쓰면 대략 이렇습니다.
“남쪽 직좌 → 남북 직진 → 북쪽 직좌 → 동쪽 직좌 → 서쪽 직좌”
전체 신호 주기 자체는 4현시인 직진 후 좌회전과 차이가 없습니다. 좌회전을 모아서 처리하느냐, 아니면 직진에 붙여서 처리하느냐의 차이일 뿐입니다. 그래도 양쪽에서 좌회전하는 교통량이 서로 차이가 난다면 직진 후 좌회전보다는 이쪽이 낫습니다.
반면에 외국에서는 2현시 신호를 쓰는 곳이 많습니다. 동시신호보다 2배나 많은 차량을 통과시킬 수 있으며, 신호에 한 번 걸리면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 적은 것도 장점입니다. 30초마다 신호가 바뀐다고 가정한다면 2현시는 최대 30초만 기다리면 되지만 4현시는 90초를 기다려야 하거든요. 이렇게 좋아 보이는 2현시 신호의 대표적인 예로는 좌회전이 금지된 교차로, 일방통행 도로끼리 만나는 교차로, 비보호 좌회전이 있습니다.
네? 뭐라고요?
하나같이 엄청 돌아가거나 위험해 보이는 녀석들이 2현시 신호입니다. 그런데 이 문제는 도시 계획에 따라서는 별로 문제가 안 될 수도 있습니다. 한 블록의 거리가 별로 멀지 않다면, 바꿔 말하면 왕복 4차로 정도의 도로가 비교적 촘촘하게 배치된 도시라면 일방통행 위주의 교통 정책을 펴든 좌회전을 금지를 하든 혹은 비보호 좌회전을 하든 그리 어렵지는 않습니다. 둘러가야 하는 거리도 짧고 비보호 좌회전을 하기 위해 눈치를 봐야 할 반대편 차로의 수도 적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도시에는 크고 아름다운 도로들이 많아서 2현시 신호체계를 쓰기 어렵습니다.
그나마 비보호 좌회전은 다른 2현시 신호에 비해 국내에서도 도입할 수 있을 정도로 범용성이 좋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굳이 도시 구조를 뜯어고치지 않아도 도입할 수도 있고, 외국에서는 왕복 6~8차로 도로에서도 종종 쓰이는 신호거든요. 다만 비보호 좌회전이 처리할 수 있는 교통량이 다른 2현시 신호만큼 아주 많지는 않습니다. 비보호 좌회전은 좌회전 차량이 0%가 되어 사실상 좌회전 금지 교차로나 다름없어야 교차로 용량이 최고점을 찍습니다. 좌회전 차량이 많아질수록 비보호 좌회전인 교차로의 용량은 줄어듭니다. 차량 한 대가 좌회전을 하는 시간이면 반대편에서 직진하는 차량이 얼마나 많이 통과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보면 납득이 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비보호 좌회전은 직진 차량이 대부분인 곳에서 주로 쓰이며, 용량이 2현시 치고는 작다고는 해도 어쨌든 4현시보다는 많으니 외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신호입니다. 신기한 점은 비보호 좌회전이 위험해 보이긴 하지만, 이게 표준인 나라에서는 사고율이 4현시 교차로와 비슷하다는 것입니다. 비보호 좌회전에서 벌어지는 판단 미스와 4현시의 답답합이 유발한 신호 위반이 교통사고에 끼치는 영향은 거의 동급이라 볼 수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교통운영체계 선진화’라는 것이 도입되면서 앞으로 비보호 좌회전이 늘어날 계획입니다. 운전자들이 적응만 한다면 외국과 비슷한 수준의 사고율을 보이겠습니다만, 적응할 때에도 그러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적응기간 동안에는 사고율이 높아질 수 있으며, 반면에 좌회전 타이밍을 못 잡아 어버버버 하는 분들도 제법 계실 겁니다. 후자는 아래 그림에 나와 있는 좌회전 유도차로라는 걸 도입하면 어느 정도 해결할 수는 있긴 합니다.
그림 : 좌회전 유도차로 (출처 : 한국교통신문)
다만 서울 도심에서는 버스중앙체로제를 실시하는 구간도 있는데, 여기에서는 좌회전 유도차로를 도입하기 어렵고 좌회전할 운전자가 뒤에서 오는 버스까지 신경을 써야 합니다. 이런 곳에서는 비보호 좌회전을 안 하는 것이 나을 것 같네요.
나머지 이야기는 2부에서 쓰도록 하겠습니다.
# 출처 및 참고 #
도로 위의 과학 (신부용, 유경수 지음 / 지성사)
연합뉴스 (
http://www.yonhapnews.co.kr/society/2009/08/01/0701000000AKR20090801043300062.HTML)
한국경찰신문 (
http://policei112.co.kr/home/bbs/board.php?bo_table=B02&wr_id=123&sca=%C0%FC%B3%B2%A1%A4%C0%FC%BA%CF)
http://blog.naver.com/bae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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