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다시봐도 좋은 양질의 글들을 모아놓는 게시판입니다.
Date 2007/01/30 16:00:53
Name 앤디듀프레인
Subject 나를 일으켜 세워준 임요한(?)환(!)
2001년의 무덥던 여름으로 기억합니다.

고3 신분에도 불구하고 건강상의 문제로 이듬해를 기약하며 공부를 거의 포기하고 있던터라 별 부담없이 모백화점의 영화관에 영화를 보러 갔습니다. (그때 본 영화가 아마 스필버그 감독의 AI였을거에요.)

영화의 여운이 채 가시기전 영화관 아래층에 식사를 하러 내려왔는데 그 백화점에 메가웹스테이션이 생겨서 오픈 이벤트로 코크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8강 경기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당시 8강 매치업중 임요환 선수와 변길섭 선수의 경기가 준비돼있었죠. 매치업을 보고 잠시 멈칫 했습니다. 아...임요한이 아니라 임요환이었구나...

앞서 말했듯 건강상의 문제로 학교도 잘 나가지 못하고 학업을 포기하고 있었지만 나름 고3이라고 TV시청과 컴퓨터질을 자제하고 있던 때였습니다. 때문에 임요환이란 선수가 정말 잘하고 유명하다 소리를 들었지만 정작 그의 경기는 한번도 본 적이 없었습니다.

마침 그다지 할일도 없기에 최은지 캐스터와 기욤 패트리 선수의 사인을 받으며 스타리그 경기가 시작되길 기다렸습니다.
'임요환이 얼마나 잘하길래 그래 유명한가 한번 보자'
이윽고 머리가 제법 커보이는...선수와 표정을 전혀 읽을 수 없는 선수가 경기를 시작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기억하실 겁니다. 배럭 널뛰기가 나온 바로 그 경기. 상대의 입구를 배럭으로 막으며 시즈모드와 풀기를 반복하며 탱크를 농락하던  바로 그 경기였습니다.

정말 장내 분위기는 말그대로 열광의 도가니였습니다. 그 날 경기를 직접 보신 분들이 임요환이 팬이 아니었대도 아마 그 순간만큼의 임요환이란 이름을 다시금 되뇌일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이후에 저는 임요환 선수의 팬이 될 수 밖에 없었고 결승에서 그가 우승하는 순간을 티비로 지켜보며 환호했습니다.(제가 저그유저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짧은 제 인생에서 전혀 그럴것 같지 않은 것에서 감동을 느껴본적이 몇번 있습니다.
그 처음이 레드 제플린의 'stairway to heaven'을 들으며 음악이 이처럼 아름다울 수 있다는 사실에 감동을 받았고, 그 두번째가 임요환 선수의 코크배 우승을 바라보며 였습니다.

네이버에서 '감동'이란 단어의 뜻을 검색해보면 '크게 느끼어 마음이 움직임'이란 풀이가 나옵니다. 당시 나름대로 힘겨운 시절을 보내고 있던 저에게 큰 감동을 준 사람이 바로 임요환 선수였고, 그의 플레이 하나하나 였습니다.

말그대로 크게 느끼어 마음이 움직였죠.

건강의 심각한 악화로 한달간 물한모금 마시지 못해 몸무게가 12킬로씩 빠지고 몸무게와 더불어 영양실조로 머리카락과 몸에 있는 무슨무슨 털들이 마구 빠져나갔던 시절이었습니다. 어느 정도 기운을 차렸지만 거의 그 해의 삶을 포기하고 살고 있던 저에게 그의 모습은 빛이 났습니다.

나도 저렇게 빛나고 싶다. 저 사람은 불과 나보다 세살이 많을 뿐인데 이미 저렇게 빛나고 있지 않은가. 어차피 남들보다 조금 덜 살아야하는 인생, 이렇게 한시가 아까울때 일년을 버려가며 난 무엇을 하고 있는거지?

온갖 생각이 머리에 맴돌았습니다. 그때부터 전 변하기 시작했죠. 건강을 되찾기 위해 약을 잘 챙겨먹고 운동도 했습니다. 늦긴 했지만 공부도 시작했습니다. 남들이 고1때부터 하던 야간자율학습도 고3시절 동안 단한번 못했지만 나름 입시전략을 짜가며 열심히 했습니다.

그리고 6년이 지났습니다. 임요환 선수는 여전히 빛나고 있더군요. 새로운 길을 개척해나가며 빛나고 있는 임요환 선수에게 감사합니다. 힘겹던 시절에 저를 일으켜준 사람이 바로 그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임요환 선수의 열렬한 팬이라 그를 추앙하려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닙니다. 요새 보면 수능을 마치고 힘겨워하고 있는 학생들이라거나 인생에 있어 어려운 시기를 맞이한 사람들에게 이야기해주고 싶었습니다.
사람을 변하게 하는 것은 결코 굉장한 무엇이 아닙니다.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기회는 언제든지 있고, 그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계기가 있다면 더욱 좋겠죠. 그것의 계기가 되는 것이 제게는 임요환이란 선수를 알게 된 것이죠.
다들 힘내시고 이 힘든 세상 열심히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

괜히 쓸데없이 주절거리는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ps1. 지금 제 건강은...내상이 원체 심한지라 치유될 수 없는 병이긴 해서 어쩔 수 없지만 겉으로만 보기엔 소위 말하는 몸짱이라고 불릴 정도로 건강해졌습니다.

ps2. 공군팀 프로리그 나오나요? 로스터 문제도 있을텐데 어찌 될런지. 공군이 프로리그에 나온다면 발업된 기차타고 서울상경할용의 얼마든지 있습니다.

ps3. 피지알분들 중에 충남대학교 다니시는 분 꽤 있어 뵈던데. 3년만에 학교에 복학하려니 많이 암담합니다. 학교에서 얼굴이 하얗고 키가 제일 작은 남자를 혹시 보시거든 저라고 생각해주세요 ^^;

충대에서 이렇게 생긴 생물보면 아는척좀...사람이 그리워요 ㅠㅠ


* anistar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7-02-01 14:49)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타마마임팩트
07/01/30 16:10
수정 아이콘
제목 임요 '환' 으로 좀...
07/01/30 16:14
수정 아이콘
글을 읽어 보니 일부러 저리 쓰신듯 보이네요.. 글 잘 읽었습니다. 건강하시다니 다행이구요.^^
07/01/30 16:14
수정 아이콘
제목 일부러 한거 같은데요?
암튼 건강해 지셨다니 다행이네요
07/01/30 16:16
수정 아이콘
타마마임팩트님//글과 자연스럽게 연계되기에 별로 고칠 필요는 없어보이네요~^^ 매니아 사이트이기도 하고..

인생에 있어서 큰 희망을 주었다는것 자체가 임요환이병이(?) 이 글을 읽으면 매우 기뻐할것 같네요..
건강 잘 관리하시고 앞으로의 인생도 멋지게 사시길...(충대에 친구들도 많은데 은근슬쩍 마주칠 수도 있겠네요^^;;;)
07/01/30 16:20
수정 아이콘
글을 한번 더 읽어보니 쇼생크 탈출이 생각나네요.. 아무 의미없는 삶을 살아가던 레드가... 앤디를 만나 종국에 태평양 어느 한군데에서 자유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었지요.. 님에겐 그 앤디가 바로 임요환 선수 였으리라 생각하니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네요.
Copy cat
07/01/30 17:44
수정 아이콘
이번에 졸업하는데 아쉽네요.. 학비가 후덜덜해지긴 했지만 타대학보단 많이 싼 편이고 장학금혜택도 많은 편이니 열심히 하시길 바랍니다~
앤디듀프레인
07/01/30 17:48
수정 아이콘
헉,,,사진태그가 그렇게 되나요? 컴퓨터쪽에는 영 문외한이라 한다고 했는데 ㅠㅠ 어떻게 하는건지...
felblade
07/01/30 17:53
수정 아이콘
링크가 안되는 계정인 것 같네요.. 네이버 포토
포도주스
07/01/30 18:06
수정 아이콘
많은 사람들에게 이만큼의 감동을 준 임요환 선수도 대단하지만, 그 감동을 직접 몸으로 실천해서 변화한 글쓴 분도 대단합니다. 정말 그러기 힘들다는 것을 아니까요.

건강이 좋아지기 힘들다고 하셨지만 몸'만' 건강한 사람들보다 훨씬 건강하신 분 같습니다. 님의 글이 누군가에게는 감동을 줄 수도 있지 않을까 싶네요. ^^
DeaDBirD
07/01/30 18:07
수정 아이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07/01/30 18:46
수정 아이콘
글쓴 분이 대단해보입니다. 무언가에 의해서 감동을 받는 일은 많죠. 하지만 무언가를 결심하고 꾸준히 실행하는 일은 쉽지 않거든요.
저도 요환선수팬이라 요환선수의 경기를 보면서 감동받고 좀 더 열심히 살아야지~ 라고 다짐을 해도 며칠지나면 다시 제자리더군요. 훌륭하십니다.
낭만토스
07/01/30 20:32
수정 아이콘
에게로.... 제가 지금 인생에서 힘든 기로에 서있는데 많은 힘을 얻고 갑니다.
코딩은 내 운명
07/01/30 21:04
수정 아이콘
잘 생기셨네요 +_+ (근데 전 남자랍니다.;)
글루미선데이
07/01/30 23:21
수정 아이콘
훗 그러게요 잘생기셨네요
그리고 글도 잘 읽었습니다

그의 전략성이나 커리어 실력등 다 좋습니다
하지만 그런 화려함보다 지더라도 땀 뻘뻘 흘리며 악착같이 버팅기던 모습이 제일 매력적이였고 지금까지 응원하는 이유 같습니다
1살 터울인 나는 못하는 엄청난 노력과 집념을 눈으로 보면서...응원안할수가 있겠습니까 :)
쓰다보니 비슷한 감도 있네요 저에게 있어서도 그는 노력이란 것이 무얼까 제일 잘 가르쳐준 소중한 선수입니다
07/01/31 06:34
수정 아이콘
저처럼 주종을 테란으로 정한 이유가 '동족전이 싫어서' 인 사람들은 - 전 색약이라 동족전을 하면 적과 아군이 구별이 안가지 말입니다 - 임요환 이윤열 최연성 선수들이 좋으면서도 밉지 말입니다. '애증' 그 자체라고나 할까요 ^^

요즘은 그래서 프토를 해야 맞지만, 프토는 만에 하나 동족전 나오면 질럿싸움을 해야하는 것이 흑흑흑 ㅠ.ㅠ 테란은 드랍만 아니면 적어도 멀리서 쏘니까 좀 낫죠
구경플토
07/02/01 11:20
수정 아이콘
글루미 선데이님 말씀에 공감합니다.

임요환 선수의 팬은 아니지만, '절대 지지 않을 거다!' 라는 듯한 눈빛과 최후의 순간까지 포기하지 않는 점(그런 상황에서도 단순히 버티는게 아니라 어떻게든 이길 방법을 찾으려 하는 점), 그리고 그 끈기로 인해 이뤄낸 기적같은 역전승들이 너무나도 멋있습니다.
스타나라
07/02/01 15:08
수정 아이콘
2001년...스타리그 사상 처음으로 열린 지방투어였던 바로 그 경기로군요^-^

세이백화점에서 열렸던 임요환 선수와 변길섭선수의 라그나로크에서의 경기...

그경기에서 임요환선수의 배럭 널뛰기도 기억나지만,

변길섭선수의 떡칠한 얼굴도 상당히 인상적이었지요^^;

완전 분장수준으로 그냥 -_-;;;
07/02/01 15:26
수정 아이콘
원래 임요환 선수를 좋아했던건 아니지만..
막상 없으니까 또 그리워 지더군요. 솔직히 임요환 선수의 경기 있는날
이면 괜히 경기가 기대되고 팬들의 온라인 논쟁도 더 볼만했던 것 같네요.
07/02/01 19:39
수정 아이콘
저긴 분명 궁동 어은동은 아닌데.. 은행동인가요?
암튼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힘내요~
zeppelin
07/02/02 02:26
수정 아이콘
저도이제 공부해야할 나인데 .. 님덕분에 공부하려고 마음먹은 결심
꾸준히 이어나갈수 있을거같아요. 언제변할지는 모르지만.. 아, 그리고
레드제플린의 stairway to heaven이 안나왓다면 그냥 보고 지나치려던 글이었는데.. 좋아하는 밴드가 나왔기에.... 한때 수백번도 더듣던 노래(과장아니고요)인데.. 요즘은 드림시어터의 현란한연주가 더 좋더라고요.. 그래도 왠지모르게 오늘은 레드제플린과 퀸이그리워지네.. 잠자기전에 듣고자야겠네요^6^
블러디샤인
07/02/03 00:11
수정 아이콘
임요환 선수의 장점이죠..
그는 승부를 1%가능성이 있는 시점까지 gg를 날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가 이긴 패러독스 경기가 전설급 '클릭'을 보유한지도 모르죠..
Reaction
07/02/04 04:41
수정 아이콘
같은 팬임이 느껴지네요^^
가까우면 술이라도 한잔 하고 싶습니다만 충청도는 너무 멀군요...
'하는게임'에 시들해지고, '보는게임'에 열올리면서 자연스럽게 박서의
팬이 되고 벌써 7년이 되었습니다...만 아직도 그의 경기는 전율입니다.

그가 무엇을 하든, 그가 어디에 있든, 그리고... 그가 어떤것을 선택하든
무조건 '박서팬!'이라는 생각이 어느센가 들어버렸습니다. 언제부터였
는지도 잊어버렸었는데 이 글을 보니 그 머~언기억들을 더듬게 되네요.
박서이기에 이 기다림이 지루하진 않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같은 팬들도 많고...

잘읽었습니다~ 남은 학교생활 후회없이 하시길 바랍니다~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914 마재윤과 전상욱, '본좌'와 '4강 테란'인 이유 [27] 라울리스타14912 07/02/04 14912
913 강민의 MSL 4강을 앞두고... 강민의 옛 경기들을 추억해봅니다. [48] New)Type11097 07/02/03 11097
912 [sylent의 B급칼럼] 전상욱의 매너리즘? [37] sylent10640 07/02/03 10640
911 단편적인 생각 : 한 명장과 홍진호 [18] 소현8942 07/02/01 8942
910 나를 일으켜 세워준 임요한(?)환(!) [22] 앤디듀프레인8645 07/01/30 8645
909 조금 더 솔직해졌으면 좋겠습니다. [9] 앤디듀프레인7787 07/01/30 7787
908 더블커맨드와 3해처리 [81] 김연우14810 07/01/29 14810
907 2007 W3 개막기념 크리티컬 스트라이크(수정) [28] 제니스7032 07/01/18 7032
906 회원님들은 아마 앞으로도 좋은 글 계속 쓰셔야 할 겁니다 [23] CrystalCIDER9926 07/01/23 9926
905 실수 또는 약해짐에 대한 보고서... [14] 네로울프6279 07/01/24 6279
904 MBC게임 HERO, 발전된 팀모형을 제시하다. [24] 구름비8564 07/01/21 8564
903 As good as it gets [16] 연아짱7140 07/01/21 7140
902 7경기 박태민 vs 염보성 in 신백두대간 허접한 분석. [37] 초록나무그늘10982 07/01/20 10982
901 Best Highlight Of 2006 Starcraft [44] 램달았다아아8734 07/01/18 8734
900 담임선생님께 편지가 왔습니다.. [17] caroboo8490 07/01/17 8490
899 투신鬪神이 유일신唯一神을 증명하던 날 [26] 초록나무그늘10325 07/01/16 10325
898 The Captain Drake_The POS_MBC game Hero.. [42] kimera6751 07/01/09 6751
897 사랑합니다! 나의 스타리그! [17] NavraS7468 07/01/14 7468
896 이런저런 '최다' 이야기. [16] 백야7341 07/01/14 7341
895 [sylent의 B급칼럼] 강민, 빌어먹을. [31] sylent11249 07/01/13 11249
894 [설탕의 다른듯 닮은] 마본좌와 킹 앙리 [26] 설탕가루인형8418 07/01/13 8418
893 쇼트트랙과 스타, 그 혁명의 역사. [23] EndLEss_MAy6887 07/01/13 6887
892 편성표가 한 살이 되었어요 >_< [27] 발그레 아이네6027 07/01/13 6027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