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다시봐도 좋은 양질의 글들을 모아놓는 게시판입니다.
Date 2006/09/27 22:21:40
Name elecviva
Subject 정말 '잡담'
1.
근래 <파이터포럼>을 통해 선수들의 인터뷰 과정을 살펴보면 거친 승부의 현장은 어느덧 자기관리와 쇼-비지니스의 세계로 변모하는 듯하다. 아니, 이미 그런 듯하다. 조지명식의 신예들을 보라. 상대방을 도발하고 당차게 자신을 알리는 그들을 보라. 음소거를 누르고 선수의 이름을 가리면 신예와 노장은 거꾸로 서 있다. 실수는 드물고 마우스는 칼처럼 섬세하다. 내가 사랑해 마지않던 올드게이머들은 관성, 습관에 의해 종종 패배한다. 내 응원의 함성은 못내 흩어지지만 이긴 자가 강한 법. 시선은 당위적으로 승자를 향한다. 전투에서 살아남은 신예, 그에게서 볼 수 있는 것은 '자신감'이다. 그가 보여주는 화두는 자아에 대한 확신이다. 과감하고, 노련하며, 새로움을 손에 쥔 돌연변이. 그는 이미 잘 주조된 세계를 갖고 있는 듯하다. '신예가 신예 같지 않아서' 놀랍지만 그 역시 요즘 신예를 말해주는 거겠지.

2.
게임이 끝나면 <파이터포럼>이라는 언론을 통해 승자의 인터뷰가 공개되고 패자는 자신을 노출할 기회를 놓치게 된다. 승자는 기회를, 패자는 박탈감을 맛볼 수밖에 없는 구조. 또한 오롯이 승자만이 spot-light를 받는 것은 경쟁사회에서는 당연한 현상이다. 패자가 '패배'와 '위로'를 감수하는 것, 그 역시 당연한 현상이다. 금일 유게에 링크된 <스타 뒷담화>를 통해 올드 게이머와 신예들이 '이판'에 대해 갖고 있는 가치관들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 김 해설위원이 말하던 올드 게이머들의 사회성 부재, 혹은 폐쇄성은 마치 승부를 위한 반작용처럼 느껴졌다. 혼자만의 공간에서 칼을 갈고 닦는 '고수'가 연상된 것은 나뿐이었을까? 타인과의 소통보다 자신과의 소통이 더 중요한 그들에게 승리란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는 일일 것이다. 자아를 확인하는 과정, 인정받는 과정에서 자신의 존재가치를 해석할 자유를 갖는다. 승리는 성취를 위한 유일한 고리일 것이다. 물론 패배를 인정하는 것도 오래된 그들의 일이지만 패배는 좀 더 깊은 어둠 속에서 조용히 날을 가는 시간을 늘려줄 것이다. 결국 모든 에너지는 승리를 향해 전환될 것이다.


3.
넓어진 파이, 안정화된 연봉구조는 선수들에게 심리적인 안락함을 제공한다. 그리고 그들은 비교적 어린나이에 경제활동을 시작한다. 결코 적은 돈도 아니다. 하지만 돈을 사용하고 관리하는 주체는 아니다. 주지의 인터뷰 내용들이 사실이라면 대부분의 게이머들은 부모에게 관리를 맡기는 셈이다. 어찌 보면 자신을 위해 투자할 시간적 여유나 필요, 이유조차 없으므로 오직 승부에서 이기는 것만이 은퇴하는 날까지 그들의 할 일이고 소명이겠지만 훗날 그들이 무엇을 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모두가 다 해설자를 하고 '이판'에서 몸을 구르진 않겠지?  잃을 것보다 얻을 것이 더 많은 '판'이다. 짧지 않은 시간이 흘러 대기업의 참여가 눈에 띄게 사라지지 않는다면야 수년이 지나고 PGR마저 썰렁해지지 않고서야 선수들은 경기석 위에 있을 것이고 해설자들은 여전히 열정을 토해낼 것이며, 일부 팬들은 카메라를 향해 플랜카드를 흔들 것이다. 그렇지만 사회적으로 자기개발을 할 나이에 경제활동을 시작한 그들, 마땅히 잘 해낼 수 있겠지? 멋진 컨트롤이나 환상적인 운영처럼 그들의 미래도 잘 헤쳐 가겠지?


4.
게임을 스포츠라고 부른지도 꽤 됐다. 게임은 게임인데, 부끄럽지만 '천재'라는 내 별명은 새로운 게임을 할 때 마다 쉽게 적응했기에 붙여진 자칭이자 타칭이었는데……. 어느새 난 '스포츠'를 즐기고 있다. 물론 동시에 '게임'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스포츠'의 구조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내 모습을 보면 구분이 무슨 소용이며 가능하기나 한 일인지 되묻지만 오랜 친구들의 '요새 어떤 게임하냐?'는 물음엔 '나 게임 끊은 지 오래됐어'하고 대답하는 내 모습은 좀 우습다. 난 도대체 게임을 하는 걸까, 스포츠를 보는 걸까? '병살타'가 무엇인지 아직도 모르는 내가 스포츠를 보고 있는 건 아니겠지? 아닐까? 에이, 모르겠다. 다만 어느새 8년인지, 9년인지 두 손가락으로 셀 날도 얼마 안 남은 것 같다.

- 정말 '잡담' 끝.

* homy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6-09-28 13:37)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06/09/27 22:28
수정 아이콘
정말 '재밌는 잡담' 입니다. 자주 뵐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
elecviva
06/09/27 22:34
수정 아이콘
sylent님의 답글 감사합니다.
언제나 재기넘치고 즐거운글에 감사드릴 뿐입니다.
체념토스
06/09/27 23:09
수정 아이콘
쩝.. 이런글들이 있는데.. 볼 글이 없다고 이야기하는 분은 참 안타깝습니다!

잘봤습니다.
My name is J
06/09/27 23:10
수정 아이콘
즐겁게...읽었습니다.
이러한 잡담들 이판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공감할수 밖에 없는 이야기죠.
어쩌면 우린 이런 잡담을 하기 위해서 이곳에 모이는 것이니까요.
벨로시렙터
06/09/27 23:16
수정 아이콘
요즘들어 자게가 너무 무거워지고있다는 기분이 듭니다.
이렇게 가끔 분위기를 환기시킬수 있는 글이 자주 올라오면 얼마나 좋을까요 ..
항즐이
06/09/28 00:05
수정 아이콘
코멘트 다신 분들의 면면도 참 대단한 글이군요!! :)
사상최악
06/09/28 00:40
수정 아이콘
내 댓글로 인해서 이제 평균적으로 평범한 글.
글 잘 읽었습니다.
elecviva
06/09/28 00:49
수정 아이콘
답글을 달려는 찰나 사상최악 님의 답글이 올라왔군요.
함량미달의 잡담이 어느새 평균까지 올라왔군요!
감사합니다. 좋은 밤 보내세요. :)
06/09/28 05:57
수정 아이콘
간결하네요.
기름기 하나 없는 멋진 글입니다.
06/09/28 10:19
수정 아이콘
위에분들 사이에 댓글을 쓰려니 제가 참 부족하네요;
깔끔하고 담백한 글, 잘 읽었습니다^^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이런글들 참 좋습니다.
sway with me
06/09/28 11:54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생각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따라갈 수 있는 부담없는 글, 개인적으로 참 좋아합니다.
항즐이님의 코멘트로 인해 코멘트 달기가 부담스럽습니다.^^;;
06/09/28 16:15
수정 아이콘
코멘트 함량 평균 낮춰야 겠습니다. (이 무슨 놀부심보가;;)
이런 글들 때문에 pgr에 찾아옵니다.
실체가 없는 e-sports 위기론, 테란 위기론... 처럼 pgr 위기론 비슷한 분위기가 아니었나 싶었는데... 역시나, 아니군요. 좋은 글에 감사합니다. ^^*
elecviva
06/09/28 18:39
수정 아이콘
제가 쓴 글이 Ace 게시판에 올라오다니 잠시 어안이 벙벙했네요.
진심으로 즐겁습니다. 감사합니다.
크리스
06/09/28 19:16
수정 아이콘
3 번 글이 제일 가슴에 와닿네요..선수들이 은퇴 후에도 게임 쪽 관련 산업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지금의 열정을 갖고 성공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06/09/28 21:45
수정 아이콘
이런 재기넘치고 깔끔한 글 참 좋아합니다.
잘 읽고 갑니다.^.^
06/09/29 02:12
수정 아이콘
즐겁게 재밋게 읽었습니다. ^^

역시 감탄을 불러일으키는 글도 좋지만 이런 동네형이 혼잣말 늘어놓듯 하는 글이 정말 정겨워요 ^^
담배피는씨
06/09/29 09:35
수정 아이콘
코멘트 함량 평균 낮춰야 겠습니다. (이 무슨 놀부심보가;;)(2)
깔끔하고 담백한 야채죽 한 그릇을 생각 나게 하는 글이네요..
잘 읽었습니다..^^a
06/09/29 16:37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06/09/29 18:03
수정 아이콘
오우 정말 멋진 글이군요~
06/09/30 00:57
수정 아이콘
저도 정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정말 두 손가락이 부족할 때까지 얼마 남지 않았군요...
Slow_Win
06/09/30 11:12
수정 아이콘
간결하고 정말 공감이 가는 내용이네요
현재 그들의 플레이에 열광하는 우리지만
나이 좀 있는 올드게이머 축에 속하는 저희들은
솔직히 게이머들의 미래가 걱정되긴 하네요

그래서 임요환 선수의 훗날이 기대되는거겠죠
아마 그의 행보가 게이머들의 미래의 표준적인 행보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ㅎ


p.s> 미리 미리 추석인사 드립니다 ^^

무조건 행복한 추석되시길 빕니다 ^^*
연탄맛초콜릿
06/10/04 03:15
수정 아이콘
저로서 함량은 0에 수렴해갑니다.
잘 읽었습니다~
elecviva
06/10/05 01:04
수정 아이콘
답글 달아주신 모든 분들 감사드립니다.
꼭 즐거운 추석 보내시길 바랍니다.
Peppermint
06/10/09 18:22
수정 아이콘
에게 덕분에 좋은 글 읽었네요. 추석 연휴동안 밀린 글이 너무 많아요..>.<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845 라면에 김치국물을 넣음에 관하여... [51] 이오리스8843 06/10/10 8843
844 '바바리안' and '레지스탕스' [7] legend6345 06/10/09 6345
843 [sylent의 B급칼럼] <파이터포럼> 유감 [55] sylent8924 06/10/08 8924
842 함께 쓰는 E-Sports사(7) - C&C 제너럴리그 본기. [20] The Siria6997 06/10/07 6997
841 밥통 신의 싸움 붙이기 [29] 김연우8056 06/10/07 8056
840 [만화 '식객' 이야기] '부대찌개' [21] The xian7917 06/10/06 7917
839 프로리그와 기록 이야기 2 [3] 백야5870 06/10/06 5870
838 [Kmc의 험악한 입담] 어쩌다가... [20] Ntka6545 06/10/05 6545
837 진압된 반란, 대장 박대만 [7] 세이시로7056 06/10/04 7056
836 스타크래프트의 논쟁, 그리고 앞으로 우리가 가져야할 자세. [4] 김연우25441 06/10/04 5441
835 Forever SlayerS_'BoxeR' - 임요환의 836전 500승 336패 [31] Altair~★11725 06/10/04 11725
834 그녀와 나의 눈에 보인 슈퍼파이트 [11] Lunatic Love8210 06/10/04 8210
833 [sylent의 B급칼럼] MSL과 박대만, 그리고 요환묵시록 下 [94] sylent10102 06/10/04 10102
832 "어? 김양중 감독 말도 할줄아네" [62] 임태주11373 06/10/04 11373
831 정말 '잡담' [24] elecviva7798 06/09/27 7798
830 [sylent의 B급토크] 내가 임요환에게 기대한 것 [63] sylent12787 06/09/26 12787
829 흔들리는 신화, 새롭게 쓰이는 전설 [46] 김연우12765 06/09/25 12765
828 스타크래프트와 통계 [11] 순욱6446 06/09/23 6446
827 @@ 공식전적에 대한 기준과 관리가 필요한 시점 ...! [15] 메딕아빠5487 06/09/22 5487
826 <1 Min Thinking> 행복과 함께하다.. [2] Love.of.Tears.4916 06/09/21 4916
825 Who sad strong is nothing. [20] 김연우28186 06/09/20 8186
824 그들만의 송별식.......(임진록월페이퍼 첨부) [29] estrolls9118 06/09/19 9118
823 미스테리한 그녀는 스타크 고수 <첫번째 이야기> [21] 창이♡7771 06/09/18 7771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