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웹소설의 신으로 검색을 해보니까 책이 한권 나오네요.
의학 웹소설, 그리고 유튜브 채널로 나름 유명한 전문의 작가의 작법서입니다.
저랑은 딱히 관계가 없는 책입니다.
# 2
예전에 직장 선배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세상에는 현실적인 드림카가 있고, 비현실적인 드림카가 있다.
저에게 있어 비현실적인 드림카는 아우디의 R8이고, 현실적인 드림카는 르노의 SM XX 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구매한지 10년이 넘은 준준형 차량을 몰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월급을 쪼개 할부금을 낼수있을까 궁리했지만, 그래도 카푸어는 안되지 하며 단념했습니다.
그리고 얼마안가, 웹소설 시장에 발을 디디게 됩니다.
# 3
직장생활을 하면서 웹소설을 병행한지 삼 년 정도가 되었을때,
저는 그동안 받았던 인세를 모두 털어 BMW 선수금을 내었고, 나머지 잔액을 2년간 분할납부 했습니다.
여전히 학자금 대출은 남아있었고, 생활은 빠듯했지만 인세로 받은 금액 만큼은 온전히 저만을 위해 사용하고 싶었습니다.
매달 월급의 40%를 어머니께 생활비로 드렸고, 그 시간이 10년, 액수로는 1억 5천이 넘었던 시기였습니다.
아버지가 작고하셨던 이십대 초반 이후로 제 월급을 전부 사용해본적이 없었고, 그로인한 반발심(?)이 작용했던것 같습니다.
# 4
특정한 대상을 신으로 모실수 있다면 저는 '웹소설'이란 신을 모실겁니다.
평범한 직장이었던 제가 조금이나마 특별해진것 같았고, 월급을 모두 소진하고도 돈이 남는 기적을 보았습니다.
그렇게 학자금 대출과 마이너스 통장을 갚고, 삼십대 중후반이 되어서야 순자산 플러스를 기록했으며, 일년전 출판사의 무리한 지원 덕분에 내집장만도 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처럼 회사를 다니면서 하루에 오천 오백자만 꾸준히 쓸 수 있다면 인생에 큰 부침은 없을것 같다.
오 년간 해온 일이었기에 문제될것이 없어 보였습니다.
# 5
눈치가 빠른 분들이라면 '일년전'의 의미를 잘 아실겁니다.
집값이 상당히 빠지기 시작합니다.
언젠가 주변 지인에게 농담조로 말한적이 있습니다.
투자에 있어 마이너스의 손인 내가 집을 샀다.
이제 곧 집값은 떨어질 것이고 나는 무주택자들의 영웅이 되어 순교할 것이다.
사람은 역시 입을 조심해야 합니다.
신혼집 목적으로 아파트를 구입하자 마자 전쟁이 터지고 물가가 치솟더니 소설속 파워 인플레처럼 금리가 치솟습니다.
# 6
그래도 그것까지는 괜찮았습니다.
1주택 영끌러들이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말.
실거주 한채는 집값이 오르건 말건 상관 없다는 생각으로 정신승리하면 되니까요.
나름대로 '처음 집을 살 때부터 한달 나가는 원리금을 기준으로 샀기에 존버하면 된다'는 졸렬한 핑계를 곱씹었습니다.
부동산은 장기적으로는 언제나 우상향했으니, 악으로 깡으로 존버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회사에서 권고사직을 당하기 전까지는요.
# 7
아니, 14년을 공백없이 직장생활만 했는데 그 끝이 권고사직이라니.
심지어 저는 '인세'라는 사업소득이 있기 때문에 실업급여도 나오지 않는답니다.
그러면 나는 고용보험료를 왜 납부하고 있었던건지 이해는 거지 않지만, 그건 일단 지워버렸습니다.
당장 삼월에 상견례를 해야 하는 판국에, 글을 쓴다고는 하나 반백수 신세가 되었습니다.
왜 하필.
14년간 별 문제 없었다가 결혼을 준비하는 이 때에 무직자 신세가 된 걸까요.
이 신묘한 타이밍에 화도 나고 헛웃음도 났지만, 어쩌겠습니까 방법을 찾아야지.
# 8
자세한 이야기는 할 수 없지만 저는 집을 산 댓가로 본래 인세의 50%를 출판사에 반환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반환 기간은 앞으로 4년 정도를 보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죽었다 깨어나도 결혼하고 나서 인세만으로 살 수 없다는 겁니다.
자연스럽게 직장을 다시 구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 9
저는 14년간 5회 이상의 이직을 경험했고, 종종 이직을 연애에 비교하곤 했습니다.
이직이 안될때에는 별의 별 방법을 써도 안되고, 이직이 될 때에는 별거 안했는데 슉슉 진행됩니다.
이런 표현은 비약이겠지만, 거대한 자연의 섭리? 혹은 거스를수 없는 순리는 아닌지 생각합니다.
그 순리가 제게 말하고 있습니다.
응 지금은 안되는 시즌이야.
# 10
요즘 경기가 좋은 시장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제가 몸담았던 업계도 찬바람이 휭휭 붑니다.
그동안 이직하며 점프뛴 연봉을 도로 뱉어내야 하는 상황이지만, 그래도 뽑아만 준다면 감사할것 같습니다.
나이 서른 아홉에 반백수 상태로 결혼을 준비해야 하는 기분.
삐에로처럼 '응, 파혼하면 그만이야' 라고 던질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좋은 사람이거든요.
# 11
대박이란걸 친 적이 없는 그저그런 작가이지만, 그래도 배를 조금 내밀어 볼수있는게 몇 개 있습니다.
단 한번도 연재 중단을 한적이 없다는 점.
매년 적어도 한 질 이상의 소설을 완성했다는 점.
제 소설을 원작으로 한 웹툰이 네이버와 카카오에 연재되고 있다는 점.
하지만 가장 내세워볼만한게 있다면, 그건 장르의 다양성 이었습니다.
처음 유료 연재를 할 때 현판 스포츠물로 시작해 야구, 축구, 엔터테인먼트, 그리고 헌터물까지.
대박을 못친 것에 대한 보상심리일까요?
저는 언제부터인가 장르의 다양성에 집착하기 시작합니다.
# 12
글은 언제나 쓰기 싫지만, 가끔 존X게 쓰기 싫을 때가 있습니다.
웹소설의 신이 어쩌고 해놓고 불경하기 짝이 없습니다.
여러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저는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합니다.
'내가 읽을때 제일 재밌어하는걸 안쓰니까 그렇지.'
왜 안쓰냐구요?
여러가지 장르를 완결지어온 저로서도 감히 도전하기 힘든 분야였거든요.
그 장르는 바로 '무협'이었습니다.
# 13
여차저차 플랫폼 심사를 뚫고 '무협' 장르로 연재를 시작했습니다.
웹소설을 읽으시느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벤트를 시작하는 시점에 모든 흥망성쇠가 결정됩니다.
글을 쓰는 지금으로부터 몇 분이 지나면 유료화가 되고, 며칠이 있으면 이벤트가 시작되겠네요.
저에게는 무협이라는 장르로 연재를 시작하게 된 것에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적이 괜찮다면 앞으로 계속 무협만 쓰고 싶거든요.
# 14
웹소설에 신이 있다면, 그 신은 이번에도 저를 도와줄까요?
생각치도 못한 잭팟이 터져서 직장을 굳이 안다녀도 될 상황을 만들어줄수도 있고,
반대로 처참히 실패한 뒤 언제나처럼 사람인과 잡코리아를 뒤적거리게 될수도 있습니다.
유료화로 진행되는 오늘 밤, 저는 기도를 하고 자볼까 합니다.
# 15
이제와 고백하건데, # 1 에 쓴 '웹소설의 신'은 저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언급한 전문의작가와 저는 고등학교 동창 사이고, 20년이 넘도록 친한 친구로 지내고 있습니다.
처음 웹소설을 시작해보라고 제안한 친구가 바로 저 놈이기도 하구요.
앞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저는 웹소설을 신으로 모십니다.
그럼 저 놈은 신의 대리인 같은 걸까요?
재네 아빠, 목사님인데.
끝.
(혹시나 광고글로 보일수 있으니 본문과 댓글에 작품명은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 배려님에 의해서 자유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24-08-20 08:12)
* 관리사유 : 꿀행성님께 웹소설의 신이 강림하셨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