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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봐도 좋은 양질의 글들을 모아놓는 게시판입니다.
Date 2022/08/13 01:21:49
Name 구텐베르크
Link #1 1
Subject 수호지, 명나라 마블 (수정됨)
0. Intro

저는 동양문학 전공자도 아니고, 마블 팬도 아닙니다. 수호지를 재밌게 읽었던 독자이고, 마블 시리즈 중 몇 편을 재밌게 본 관객일 뿐입니다. 그래서 전공자나 덕후가 보면 '발끈할' 헛소리를 할 수도 있겠습니다. 헛소리를 헛소리라고 짚어만 주시면 바로 수정, 정정, 철회하겠습니다.

전 세계인이 마블의 '인피니티 사가'에 열광했습니다. 이제 마블은 '멀티버스 사가'를 써 나가고 있습니다. 저도 인피니티 사가 재밌게 봤습니다. 어쩌다 보니, 아이언맨 시리즈, 토르 시리즈,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 어벤져스도 1, 2, 시빌 워, 인피니티 워에 엔드게임 정도는 다 봤습니다. 

인피니티 사가의 어떤 요소가 우리를 열광하게 한 것일까요? 사실 하나 하나 놓고 보면, 인피니티 사가를 구성하는 각 시리즈 중에는 완성도가 높지 않은 작품도 많습니다. 가령 저는 아이언맨 2, 3는 별로 재미없었습니다. 토르 2 다크월드도 지루했습니다. 캡틴 아메리카는 다 괜찮았습니다. 어벤져스 울트론은 좀 피곤했습니다. 그런데도 꾸역 꾸역 다 봤습니다. 그리고 결국 엔드게임에서는 감동 받고 말았지요. 하나 하나 놓고 보면 졸작도 적지 않은데, 왜 모아보니 재밌는 것일까요?

문득 어린 시절 제가 수호지를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났습니다. 그리고 수호지를 읽으며 열광했던 그 요소들이 마블의 인피니티 사가에 그대로 있었고, 바로 그 요소들에 제가 열광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렇다면 수호지와 마블의 인피니티 사가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세 가지입니다.

1. 그 자체로 완성된 스토리라인을 가진 독립적인 히어로 시리즈들이 묶여 있습니다.

저는 이문열 평역 수호지만 읽었습니다. 그 기준으로만 이야기하겠습니다. 

수호지를 잘 보면, 그 자체로 완성된 스토리라인을 가진 독립적인 시리즈들이 묶여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수호지는 하나의 스토리라인으로 이어지기는 합니다. 그런데 들여다보면 몇몇 눈에 띄는 영웅들이 있고, 그 영웅들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완성된 독립적인 시리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령 수호지는 구문룡 사진 이야기에서 시작합니다. 그리고 구문룡 사진이 그 나름대로의 기, 승, 전, 결을 겪으면서 하나의 이야기를 완성합니다. 산적들과의 대결, 산적들과의 교류, 관의 오해, 산적화로 이어지는 스토리입니다. 마치 아이언맨 1, 2, 3를 보는 것 같습니다. 사진 이야기만 따로 떼어 내어 하나의 책으로 출판해도 됩니다. 그 후에 화화상 노지심의 이야기로 이어지는데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노달의 범행, 노달의 입산, 노지심의 하산, 노지심의 여행 등으로 이어지는 스토리는 마치 토르 1, 2, 3를 보는 것 같습니다. 이런 식으로 표자두 임충의 에피소드들, 행자 무송의 에피소드들, 흑선풍 이규의 에피소드들이 하나의 스토리로 이어집니다.

그 시리즈 각각의 완성도는 그렇게까지 높지 않습니다. 완벽에 가까운 수준이 아닙니다. 인물들의 선택의 동기와 경위는 납득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습니다. 그들의 악당스러운 면모들은 경악스럽기도 합니다. 어떤 장면에서는 그들에게 감정 이입할 수 있지만, 어떤 장면에서는 학을 떼며 정이 뚝 떨어집니다. 이야기가 산만한 경우도 있고, 앞뒤가 안 맞기도 하고, 캐붕인 경우도 많습니다. 아니 캐붕이 되는 경우가 꽤 많습니다. 그래서 독자들은 그 각각의 시리즈들에 절대 100% 만족하지 못하고, 주인공들에 대해서도 100% 팬이 되지 못하며, 절반의 애정과 절반의 실망을 갖게 됩니다. 

그런데 그 시리즈들이 쌓이고 나니 수호지라고 하는 장강이 되어 있고, 그 시리즈들 하나 하나를 소일거리 삼아 읽고 나니 수호지라고 하는 장강을 함께 따라온 셈이 되는 것입니다.

정확히 동일한 현상이 인피니티 사가에서도 있었습니다. 말씀드렸듯, 아이언맨이나 토르, 캡틴 아메리카 같은 작품들을 보면, 그 자체로 완성도 높은 작품은 드뭅니다. 개인적인 평이고, 견해가 다른 분들이 많겠지만, 저는 솔직히 아이언맨 2, 3는 1만큼 재미 없었습니다. 토르는 라크나로크는 훌륭한데, 그 앞의 토르1나 토르: 다크월드는 진짜 판타지인데도 개연성 없다 생각하며 봤습니다. 악당도 무매력입니다. 캡틴 아메리카 정도가 1가 윈터 솔져 둘 다 재밌었습니다. 그러나 저 중 인생 영화라고 할 영화는 단 한 편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어쩌다 한 두번, 소일거리 삼아 한 두 번 본 저 영화들이 모여 어느새... 어벤져스가 되어 있었습니다. 사실 그렇게 매력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한편으로는 유치하다고 생각했던, 아이언맨, 토르, 캡틴 아메리카, (제 기준) 누군지도 잘 모르겠던 듣보잡 호크아이, 블랙위도우, 앤트맨, 블랙 팬서, 언제 마블의 일원이 되었는지도 몰랐던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닥터 스트레인지, 스파이더맨 등등이 모두 한 자리에 모이고 나니 그야말로 감동의 어벤져스가 되었던 것입니다. 

각각의 히어로와 작품에 대한 호불호의 지점은 다르겠지만, 아마 많은 분들이 비슷한 경험을 하셨을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누구에게나 마블의 어떤 시리즈들은 별로이고 어떤 시리즈는 괜찮으며, 어떤 히어로는 혐이지만 다른 히어로는 호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다 모여서 하나의 어벤져스, 하나의 인피니티 사가를 이루는 것을 보면서, 어떤 이루 말하기 어려운 감동, 연결된다는 감정, 묘한 반가움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수호지에서, 고구의 양산박 원정에 맞서 양산박 호걸들을 돕기 위해 노지심, 무송, 사진 등등이 이끄는 중국 각지의 여러 산들의 산적들이 일제히 합류하면서 양산박의 일원이 배로 늘어나는 장면에서의 감동은, 서로 전혀 다른 세계관의 주인공인 줄로만 알았던 토르, 아이언맨, 헐크, 캡틴 아메리카, 그리고 약간 꼽사리 같기도 하고 밸붕 같기도 했지만 호크아이와 블랙위도우가 로키라는 공동의 적에 맞서 뉴욕에서 이질적으로 함께 서 있을 때 느꼈던 묘한 감동과 동일한 감동이었다고 저는 기억합니다. 

이것은 마블의 마케팅 전략이었고, 또한 이것이 과거 명나라 시대 전기수들 그리고 수호지의 편저자 나관중의 마케팅 전략이었습니다. 자기만의 시리즈를 가진 히어로들이 하나의 작품에서 만나는 것이 불러일으키는 그 특유의 심리적 효과가 있습니다.

2. 그러다 보니 랭킹놀이, 밸런스놀이를 신나게 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류의 "사가"에서 빠지지 않는 문제가 바로 랭킹놀이의 문제입니다. 

어떤 히어로는 능력치가 뛰어나고 다른 히어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꼭 둘 중에 누구 능력치가 더 좋은지 모르겠는 애매한 히어로들이 있습니다. 또 꼭 분명히 얘 능력치가 더 월등한데 작가가 아닌 것처럼 묘사하는 그런 히어로도 있습니다. 능력치를 과대평가받는 것 같은 히어로와 능력치를 과소평가당하는 것 같은 히어로들도 꼭 있습니다. 

어떤 히어로는 자기만의 시리즈가 탄탄히 구축되어 있고, 팬덤도 형성되어 있습니다. 다른 히어로는 시리즈가 전혀 구축되어 있지 않고, 팬덤도 빈약합니다. 어떤 히어로는 사가 투입을 위해 허겁지겁 몇 개 작품을 만들어 주었으나 이래저래 여전히 빈궁합니다. 

히어로마다 능력치가 다르고, 서사가 부여된 정도가 다르고, 팬덤의 화력이 다릅니다. 비례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다보니, 이 히어로들이 하나의 작품에서 만날 때, 이들 사이의 랭킹이 문제가 됩니다. 팬덤은 이 랭킹을 두고 실갱이를 하고, 작가들은 이 랭킹 문제를 세심하게 조율해야 합니다.

가령 무력만으로 보면 솔직히 아이언맨이 기술력으로 캡아를 쌉바를 것입니다. 캡아 그까이꺼 그 블랙팬서네 나라 가면 널려있다는 금속으로 만든 그 방패랑 백년 전 약물복용 말고 뭐 있습니까. 그러나 캡아는 덕장 캐릭터입니다. 그리고 시리즈가 탄탄히 구축되어 있습니다. 팬덤도 있습니다. 상징하는 가치도 있습니다. 밸런스는 유지되어야 합니다. 결국 시빌워에서, 아이언맨의 능력치를 약간 너프하고, 캡아에게는 윈터솔져 버키를 붙여줍니다. 그리고 캡아가 전혀 아이언맨에게 기세에 있어서나 힘에 있어서나 밀리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사나 장치들을 심어 줍니다. 

또 한편 제 기억으로 많은 어벤져스 팬덤은 미스 마블이 갑자기 툭 튀어 나와서 어벤져스 일원들 누구보다도 센캐로 등장했을 때 반발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만의 시리즈가 튼튼하지 않고, 그래서 상대적으로 설득력이 부족하고 팬덤이 빈약한 캐릭터가 단지 작가의 설정에 의해 지나치게 높은 능력치와 비중을 부여받을 때 어색함을 느끼며 반발합니다. 이게 단지 페미 문제가 아닙니다. 서사가 갖는 설득력의 문제입니다.

그런데 또 이런 히어로들 사이의 랭킹을 정하고 밸런스를 찾는 문제는 그 자체로 우리를 열광하게 합니다. 이런 놀이는 그냥 그 자체로 너무 재밌습니다. 토르 대 헐크. 토르 대 아이언맨. 아이언맨 대 헐크. 호크아이 대 블랙위도우. 블랙팬서 대 캡아. 뭐 소재가 무궁무진합니다. 이런 랭킹과 밸런싱 자체가 너무도 흥미로운 떡밥입니다.

수호지는 아예 이 랭킹 놀이를 공식 설정으로 채택했습니다. 양산박의 영웅들은 새로운 산적들이 입산할 때마다, 그래서 영웅의 숫자가 늘어날 때마다, 서열을 다시 정하고 또 다시 정합니다. 어린 시절에는 이 서열놀이가 너무나 재밌어서 대강의 순서는 외워버렸습니다. 송강은 1위입니다. 뭐 대단한 무용을 보여줬는지는 모르겠으나, 덕장이라서 1위입니다. 나이 먹어 송강의 재주는 정치력이고, 그 검은 얼굴은 후흑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다음에는 말로는 제갈량에 버금간다는데 딱히 그런지는 모르겠는 오용, 어벤져스로 치면 닥터 스트레인지인 공손승, 그 다음에 완소이, 오, 칠 순서입니다. 그런데 계속해서 이 랭킹이 바뀝니다. 오용 앞에는 북경에서 온 노준의가 들어오고, 공손승 뒤에는 대도 관승이 들어와 완소형제들을 밀어냅니다. 이 영웅들의 서열이, 108영웅이 최종 완성될 때까지 아마 10번을 바뀔 겁니다. 나중에는 아예 한 다섯 페이지가 영웅 서열입니다. 실제 역사도 아닌 창작물에 불과한데 왜 중국의 작가들과 독자들은 수 백 년간 이 서열 놀이에 진심이었을까요? 왜냐면 서열 놀이는 재밌기 때문입니다. 

어벤져스에서는 암묵적으로 있던 히어로들의 능력치 차이를 수호지에서는 아예 공식화 해 버립니다. 수호지는 명시적으로 108 영웅들을 36 천강성과 72 지살성으로 나누어 버립니다. 그래서 고유한 자기 시리즈의 브랜드가 되는 히어로들은 36 천강성 레벨에 갑니다. 송강. 이규. 연청. 무송. 임충. 노지심. 사진. 이런 인물들입니다. 민중의 인기는 이들을 향합니다. 한편 자기 만의 고유한 시리즈를 갖지 못하고, 상대적으로 묻어 가는 영웅들이 있습니다. 72지살성들이 그들입니다. 이들은 36천강성들의 시리즈의 조연이나 서브주연 자리를 차지합니다. 그러나 천강성 지살성을 나누고도 밸붕 이슈는 여전합니다. 36천강성이 다 같은 천강성이 아니고, 천강성 내에서의 서열도 계속해서 문제입니다. 가령 저 같은 노지심의 팬들은 갑자기 관승이 튀어나와서 자기가 관우의 후예 랍시고 노지심의 한참 윗자리를 차지할 때 납득이 안 가고 서운했을 겁니다. 

랭킹의 문제는 꼭 능력치의 검증의 문제가 아니라, 서사가 얼마나 부여되었느냐, 그 서사가 얼마나 호소력이 있느냐, 팬덤이 형성되느냐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호크아이는 무력에 있어서는 토르의 발키리 친구 중 1만도 못할 것입니다. 아니 묠니르가 날아다니는 전장터에서 활이 말이나 됩니까. 그러나 호크아이와 블랙위도우에게 그만큼의 비중과 위상이 부여되는 것에 대해서 오랫동안 어벤져스를 보며 정든 독자들은 반발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가 두서 없이 많았는데, 요점은 랭킹 놀이, 밸런스 놀이는 식지 않는 떡밥, 그 자체 중독적인 재미의 원천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서열 놀이가 하나 쓸데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멈추지를 못합니다. 그리고 과거 대명제국에서 수호지가 흥행했던 원인, 또 오늘날 팍스 아메리카나의 문화 제국주의의 첨병인 할리우드에서 인피니티 사가가 스크린을 휩쓸고 있는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이것입니다. 랭킹 놀이. 밸런스 게임.

3. 과감한 영웅 학살도 장점입니다.

한편 이 점은 흥행 요인이라기에는 애매하고, 그러나 수호지와 마블 인피니티 사가가 공유하는 고유의 매력이라고 제가 생각하는 부분입니다. 바로 영웅을 과감하게 희생시킨다는 것입니다. 

저는 엔드게임 나온다는 소식 듣고 그 며칠 전에 인피니티 워를 봤지만, 인피니티 워를 개봉 당시 상영관에서 본 분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하더라구요. 타노스가 등장해서 어벤져스를 포함 우주 생명체의 절반을 날려버린 그 사건 말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가차 없는 영웅 죽이기는 사실 어벤져스 시리즈의 전매특허가 아니라 수호지와 같은 영웅 사가에서도 발견됩니다. 

어벤져스의 전반부 숙적이 로키라면 양산박 영웅들의 전반부 숙적은 고구입니다. 송나라의 간신 고구에 맞서 양산박 영웅들은 똘똘 뭉치게 됩니다. 그리고 양산박 영웅들이 고구를 패퇴시키는 쾌거는, 뉴욕에서 로키를 상대로 거둔 쾌거를 떠올리게 합니다. 

어벤져스의 후반부 숙적은 타노스인데, 이 타노스에 상응하는 인물이 제 생각에는 방납입니다. 수호지의 배경이 되는 북송 시대에는 실제로 고구라고 하는 권신이 활약했고, 또 강남 지방에서는 방납이 난을 일으킨 사실이 있다고 하지요. (송강도 실존인물이고, 양산박도 실제 그들의 활동 무대였다고 합니다.) 송나라에 귀순한 양산박 영웅들은 바로 이 방납을 토벌하러 가는데, 방납을 토벌하다가 양산박 영웅이 거진 다 싸그리 죽습니다. 이것도 기이한 것이, 요나라를 정벌할 때는 하나도 안 죽던 영웅들이 방납을 토벌하러 갈때는 왜이리 픽픽 잘 죽어나가는지. 

이렇듯 히어로 아까운 줄 모르고 쉽게 히어로를 죽여대는 이 작풍이 수호지와 마블 인피니티 사가의 묘한 공통점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아마 저처럼, 바로 이 점에서 매력을 느끼는 분들도 있었을 겁니다.

4. So what?

이제 마블은 멀티버스 사가를 써 나가야 합니다. 멀티버스 사가가 잘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어벤져스 시리즈에서 느꼈던 감동을 다시 느낀다면 참 좋겠어서 그렇습니다. 캡틴 아메리카가 '어벤져스 어셈블'이라고 외치고 다같이 소리지르며 돌격하는 장면에서 느꼈던 그 전율을 다시 느끼게 해준다면 한 2030년까지 멀티버스 사가를 기다려줄 수 있습니다.

멀티버스 사가가 잘 되려면 수호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인피니티 사가의 흥행의 원인은 대명제국 사람들을 열광하게 했던 수호지에서 발견되는 요소들입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요소는 첫번째 요소입니다. 사실 세 번째 요소는 취향을 타고, 두 번째 요소는 첫번째 요소에서 따라나오는 자연스러운 결과입니다. 팬덤이 자기 영웅/히어로가 그에 걸맞는 대접을 받기 바라며 토르 대 아이언맨, 노지심 대 노준의 등의 밸런스 게임에 몰두하며 박터지게 싸울수록 작품은 오히려 흥행할 것입니다. 첫 번째 요소가 가장 중요합니다. 완벽하지는 않아도 좋으나 자기만의 서사를 가지고 자기만의 팬덤을 거느리고 있는 자기 시리즈의 주인공인 영웅들이 만날 때 이루어지는 시너지 효과. 

그래서 마블은 결국 흥행하고자 한다면 당장은 흥행이 부진하더라도, 닥터 스트레인지, 스파이더맨을 주축으로, 새로운 히어로들에게 그들의 고유한 서사를 부여하는 일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제 생각에 DC는 이 작업을 똑바로 하지 않아 그 좋은 캐릭터들을 가지고도 맹렬히 휘청대고 있습니다. 헨리카빌의 슈퍼맨이 맨오브스틸을 넘어 하나의 새로운 시리즈의 주인공으로 서기도 전에, 벤 애플렉의 배트맨이 그 이전의 배트맨과 분명히 구별되는 독자적인 사연과 독자적인 팬덤을 형성하기조차 전에,  배대슈에 투입해버렸습니다. 마치 노지심 고유의 일화를 들려주지도 않고, 송강 고유의 일화를 들려주지도 않고, 임충 고유의 일화를 들려주지도 않고, 일단 그들이 힘을 합쳐 고구와 전쟁하는 장면부터 내세우는 격입니다. 독자 입장에서는 대체 쟤네가 왜 싸우는지도 모르겠고 또 왜 화해하는지도 모르겠고 악당은 어쩌다가 갑자기 등장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한 때 저는 마블 시리즈는 '영화'라고 불릴 수 없다는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평에 공감했고, 여전히 이해합니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은 거장이고, 제 인생 영화 BEST 10 중 두 개는 그의 작품입니다. 그럼에도 이 문제에서는 스콜세지가 오만했습니다. 스콜세지는 마블 시리즈가 할리우드의 수호지라는 것을, 이것이야말로 제국의 문화 산업이 제공할 수 있는 재미의 형태의 극치라는 것을 몰랐던 것입니다. 또는 스콜세지가 맞았습니다. 마블 시리즈는 그저 '하나의' 영화가 아니라 영화 그 이상의 장르입니다. 




* 손금불산입님에 의해서 자유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24-04-01 08:44)
* 관리사유 : 추천게시판 게시글로 선정되셨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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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8/13 01:49
수정 아이콘
저도 들은 이야기지만, 요나라편에서는 한 명도 안 죽던 호걸들이 방납편에서 줄줄이 죽어나가는 전개를 보인 이유는...
실제로는 방납편이 가장 먼저 쓰이고 이후에 요나라편이 쓰여서라더군요.

즉 수호지 본편(108명 완성) 뒤에 방납편이 나오고 거기서 끗, 이었는데 이게 워낙 히트를 치니 사이에 외전격으로 요나라편, 전호편, 왕경편이 쓰여진 거라고 보면 될 듯 합니다. 그래서인지 요나라 전호 왕경을 거치며 기존 108인에 더해서 추가되었던 교도청이나 경영 같은 신규 인기 캐릭터(?)들은 방납편에서는 또 아예 안나오죠.
지탄다 에루
22/08/13 02:46
수정 아이콘
오 재밌게 읽었습니다 한명한명 완성된 서사를 지닌 영웅들이라는 점에서 진짜 수호지와 유사한 느낌이 드네요
결국은 매력적인 자기 서사를 잘 가진 히어로들이 마블시네마틱에서도 잘 나와야 되겠네요!
엘에스디
22/08/13 07:00
수정 아이콘
조상잘둔 관승은 맨날 강캔데 후손잘둔 곽성은 재평가 없나...
저도 관승 싫어요. 코믹스 강캐가 갑툭튀한것같음. 노준의는 서사 잘 만들고 연청빨이라도 있지
메타몽
22/08/13 07:53
수정 아이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마블의 성공 공식이 이미 수호지에서 다 나와 있었네요

개성 넘치는 주인공들의 군상극을 잘 버무려야 하고, 무엇보다도 각각의 주인공만의 매력이 넘쳐야 군상긍도 더 재미있어 진다는 점이 똑같네요

그런 의미에서 엔드 게임 이후 마블은 매우 걱정이 됩니다

샹치, 이터널스, 미즈 마블 등 신캐들이 너무 매력이 없는데다 그들의 서사가 영 공감이 되지 않는다가 중론인데

이런 노매력 캐릭터로 군상극을 잘 만들어도 몰입할 캐릭터가 없으면 노잼이겠죠
동굴곰
22/08/13 07:54
수정 아이콘
관승은 진짜 매력이 없긴 하죠. 그냥 호연작 2호 아님?? 그나마 호연작은 연환마도 쓰고 부하 능진 부려서 대포도 막 쏘고 하는데 관승은 그냥 관우 코스프레캐릭이잖...
개인적으로 최애캐는 짱돌로 모든걸 처리하는 몰우전 장청입니다.
김연아
22/08/13 10:09
수정 아이콘
사실 소설만 읽었을 땐 공손승 빼면, 장청이 진짜 개사기 캐릭인데....
짱돌에 기를 실어 날리나, 돌맹이 하나로 양산박 탑티어들 서열 정리 다 했는데, 정작 순위가 낮으니...
관승 자리에 무조건 장청이 들어가야죠.
뭐 대장, 참모, 마법사 빼고 장수 중에서는 무조건 장청이 남바완이었어야 해요.

게임에선 양지랑 화영이 제일 좋았습니다.
22/08/13 08:46
수정 아이콘
정성글 감사합니다. 수호지 다시 읽어야겠네요 ^^
22/08/13 08:55
수정 아이콘
초딩 때는 삼국지보다도 수호지를 더 재미있게 읽었드랬죠. 아마도 말씀하신 그런 이유였던 거 같아요. 초딩 5학년 이후에 삼국지의 깊이를 알았습니다만 아직도 수호지 특유의 원초적인 재미는 기억에 남네요.

저는 임충이랑 공손승을 좋아했던 것 같아요. 관승도 좋아했었고 흐흐
사업드래군
22/08/13 12:17
수정 아이콘
표자두 임충은 삼국지로 치면 상산 조자룡같이 남자들의 로망같은 존재죠. 흐흐.
80만 금군의 무술사범으로 창술의 최고수에, 의협심이 강하고 전투에서 눈부신 활약을 보여주는.
폰독수리
22/08/13 09:27
수정 아이콘
어렸을때 참 좋아했는데...지금도 수호천도 108성 가끔씩 합니다
22/08/13 09:59
수정 아이콘
어벤져스 어셈블! 대하군상극류도 대중적으로 성공하려면 확실히 자칫 산만하게 흘러갈 수 있는 여러 인물의 서사를 하나로 응축시켜 터뜨릴 수 있는 결정적인 순간의 뽕차오름이 관건이죠. 페아노르의 맹세라든지, 대너리스의 번 뎀 올 이라든지.
재활용
22/08/13 10:13
수정 아이콘
생각해보니 그럼 이규는 송나라 퍼니셔군요 크크크
겨울쵸코
22/08/13 10:18
수정 아이콘
영화나 만화를 접하기 어려웠던 어린 시절, 수호지는 저에게 있어 환타지 세계의 영웅들 이야기였죠. 학창시절 몇번이나 반복해 읽을 정도로 좋아했습니다. 각 개인의 능력과 스토리를 따라가다가 모두가 모이는 그 스토리는 너무나도 매력적이죠.
피우피우
22/08/13 10:22
수정 아이콘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저는 임충과 호연작, 대종을 좋아했고, 노준의가 영 탐탁치 않았었는데 글을 읽고 생각해보니 노준의에게서 약간 캡틴마블같은 갑툭튀 캐릭터의 느낌을 받았던 것 같네요.
중반 이후에 등장하는데 기린아라면서 띄워주고 순식간에 양산박 넘버투가 돼버리는 게 마음에 안 들었던 것 같습니다.
김연아
22/08/13 10:26
수정 아이콘
노준의도 너무 갑툭튀에, 특별히 보여주는게 없기도 해서....
더치커피
22/08/13 10:26
수정 아이콘
사연은 무송, 캐릭터는 연청이 제일 좋았습니다 크크
성큼걸이
22/08/13 11:05
수정 아이콘
소드마스터 야마토 급으로 용두사미 급엔딩이 되어버려서 삼국지만큼의 평가를 못받죠. 삼국지도 엔딩을 잘냈냐 물어본다면 글쎄올시다겠지만 최소한 역사에 기반한 마무리고 수호지급으로 망한 엔딩은 아닙니다. 명작으로 평가받은 한국 드라마들도 이상하게 엔딩이 망한 작품이 많은거 보면 평이한 엔딩 내는 것도 의외로 어려운건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22/08/13 12:02
수정 아이콘
작가 개인의 창작이라기보다는 오랜 세월동안 야사나 연극 등으로 떠도는 이야기들을 하나로 묶고 편집하고 한 거라서 난잡함과 갑작스러움은 어쩔 수 없긴 하죠. 원본은 36명 산적의 이야기였다고 하니. 삼국지도 같은 맥락이지만 이쪽은 그래도 실제 역사가 튼튼하게 존재하고..
22/08/13 11:16
수정 아이콘
대종은 별생각없다가 자이언트로 보때문에 좋아하...
대법관
22/08/13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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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소설계의 불량식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수십번 완독한 독자의 입장에서 재미는 확실한 수작이 맞는데, 이게 잘 쓴 작품이라고는 말을 못 하겠어요.

천강성 36명, 지살성 72명으로 108명을 모았는데 보릿자루 1, 보릿자루 2들이 되는 경우가 너무 많았고, 후반부에 작품쓰기가 힘들었는지 방납 토벌전에서 공손승 빼버리고 몰살시킨건 지금봐도 너무 작위적이지않았나싶어요. 그런 노골적인 설정이 재미의 요소라는게 참 아이러니합니다.
기적의양
22/08/13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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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지에 잘 몰입이 안된 이력 때문인지 마블도 시큰둥한데 그 이유를 본 글에서 찾아봅니다
22/08/13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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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수호지와 MCU에 비슷한 부분이 많네요.
구밀복검
22/08/13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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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주제) 측면에서는 마블과 비슷하고
영웅들 서열 싸움은 덥덥이의 메인이벤터 놀음과 비슷하기도 하고
작법 자체는 작금의 웹소설과 아주 비슷하지요.
사이다패시즘이 매력포인트라는 것도 비판점이라는 것도 동일.
고구마 혐오 원조가 수호지이지요.
안타깝게도 고구 한정해선 사이다 없는 고구마
소믈리에
22/08/13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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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지 처음 읽었던 어린나이에 양산박호걸들 다 죽어가는거 보면서..충격받았었죠...

인피니티워때도 마지막에 충격받는 관객들 많았던거 생각하면

인피니티사가는 21세기 수호지 맞네요


근데 갑자기 떠오르는건 꾸러기수비대 크크
본문의 문법에 충실했던 애니라고 생각합니다
소믈리에
22/08/13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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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간지 주인공들의 특성과 개별스토리

그래서 호치가 쎄냐 드라고가 쎄냐 진주인공 똘기가 쎄냐 아니다 찡찡이가 최종병기다. 밸런스논쟁

꿈도 희망도 없이 죽어가는 주인공들 크크
마음에평화를
22/08/13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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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우스 엑스 마키나 긴 하지만 엔딩을 잘 마무리 지었으니 우주명작 맞네요
겨울삼각형
22/08/13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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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지 재미있었지만

나중에 다시 생각해보면.. 그저 양강 수적때 아닌가..?
영웅이라는 사람들이 살인 강도 납치 협박은 기본으로 깔고..

중반이후 사람이 너무 많아서 주요인물 몇 빼면
그게 누구지 싶더군요.

등장인물 수만보면 삼국지연의가 훨씬많지만,
그래도 이쪽은 각자 조금씩의 캐릭터가 잡히는데 말이죠
葡萄美酒月光杯
22/08/14 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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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사실 무협소설 인물들도 까놓고 말하면 살인방화를 일삼는 조폭들이죠.....
동양에서 무협에 대한 동경과 비슷한게 서양사람들의 해적에 대한 동경이구요.
Daniel Plainview
22/08/13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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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좋아했던 캐릭터는 몰우전 장청, 낭자 연청, 낭리백조 장순이었습니다. 특히 물에서는 최강자 설정은 지금 보면 아쿠아맨 같기도 하네요. 흐흐.

신행태보 대종, 흑선풍 이규, 무슨 굉천뢰 능진인가 하는 애들까지 다 기억나는 걸 보면 진짜 어렸을 때 수호지 참 많이 좋아했네요.
人在江湖身不由己
22/08/13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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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닭을 삶아서 뜯어먹죠 크크크
말다했죠
22/08/13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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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었습니다
葡萄美酒月光杯
22/08/14 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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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제목은 수호전인데 왜 수호지가 됐는지....
삼국연의를 삼국지라고 하는건 적어도 삼국지라는 사서가 있어서 헷갈려 그렇다치고 수호전은 그냥 수호전인데
럭키가이
22/08/14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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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지 너무 좋아해서 별명이랑 이름 다 외웠던 게 생각나네요
호보의 송강 옥기린 노준의 이런 식으로요 크크
수호지가 은근히 파워밸런스는 잘 맞춰져 있습니다.
특히 아군이 발릴때 나타나서 해결하는 공손승도 쾌감을 줬고, 무력쪽에서는 임충이 쾌감을 줬죠.

방납전때 우르르 죽어버리고 27명만 남는 것도 개인적으로는 좋았습니다.
아무도 안 죽다가 처음으로 죽는 장수가 욱보사였나? 어쨌든 쩌리캐릭이었는데 그때 감이 왔었죠. 그런데 진명 같은 간지 캐릭도 그렇게 가버릴줄은...
니드호그
24/04/02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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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려주신 글을 보다가, 문득 비슷한 작품이면서 말씀하신 문제점이 있는 작품이 떠올랐습니다.
슈퍼로봇대전…. 그 중에서도 OG 시리즈…. 서로 다른 이야기의 주인공들이 한데 뭉쳐서 나아가는 이야기란 점은 마찬가지인데, 시리즈가 진행되면서 이미 자신들의 서사를 완성해버린 바람에, 그 이후론 참여는 하지만 메인 스토리에선 벗어나고, 그냥 전투에만 참여하는 듯한 캐릭터들이 많아진 느낌입니다. 슬슬 다음 작으로 OG시리즈도 완결을 낼 예정이란 이야기는 들었습니다만.
외쳐22
24/04/04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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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지 108천도성인가?? 하는 게임이 있었어요 삼국지 3과 심시티를 섞어놓은듯한 게임이었는데

양산박에서 시작하면 건물 지을 땅이 별로 없어서 고생하고, 어시장? 같은거 지어서 그 어부 3형제로 물고기 잡게 하고
도사 등용되면 도관 만들고, 쌀값이 싸지면 샀다가, 비싸지면 팔아서 돈벌고

캐릭터 하나씩 등용하는 재미가 있었는데.. 전투 진행하는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려서 힘들었던 기억이 나네요
이동 후 바로 때리는게 아니고, 적앞까지 이동한 후 한턴 있다가 때려야 하는데 이동능력이 너무 없고, 거리는 긴데다
울타리 같은거 부수는데도 한세월 걸렸던 기억이...

그 게임 전투 진도만 좀 빠르게 해서 재출시해주면 좋겠네요

임충, 관승, 호연작, 사진 요런 기병대하고 무송, 땡중, 그 쌍칼쓰는 애로 보명 하고, 몰우전 장청인가? 그런 캐릭으로 원거리 하는거 재밌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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