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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1/07/14 23:16:26
Name Farce
Subject <스포> 풍수지리 스너프 필름: "미나리" (수정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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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끈따끈한 리뷰입니다. 방금 유튜브를 통해 온 가족과 함께보고 올리는 후기입니다.

할머니를 모시고 살다보니, 극장같이 사람이 몰린 곳에 온가족이 다같이 가는 것을 피하다보니,
미나리가 극장에서 개봉을 했을 때는, 미처 극장에 가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부모님께서 영화를 찾으셨고, 제가 유튜브에 있는걸 발견하고 시청했습니다.
48시간 대여에 5,500원입니다.

리뷰를 시작하기 전에, 며칠전에 제 집안에서 있던 일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왠지 영화하고도 관련이 있는 일이었거든요.

산타할아버지가 그려진 도자기 그릇이 하나 집에 있었습니다.
반찬을 내놓을 때 가끔씩 쓰던 그릇입니다. 보통은 그냥 밀폐용기에 반찬을 담고 뚜껑만 열어서 먹지만요.
또 이 그릇이 가끔 쓰이는 이유는, 꽤나 집안에서 아끼는 그릇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잘 모르는 이야기이지만, 부모님께서 결혼식 때 받은 선물 중에서 가장 맘에 드는 것이라고 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릇 선물 세트에서 이것저것 없어지고 깨졌는데, 이 녀석만은 그래도 이사 가는 사이에도 같이 있어줬다고요.

한편 할머니께서는 요리를 하시다가 그만 손가락 끝을 다치셨습니다.
꽤나 깊게 자르셔서, 저도 살면서 처음 119 구급차를 타고 병원에 모시고 갔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영화를 보시면서도 할머니의 약지 손가락은 두껍게 붕대로 감아놓은 상태입니다.

그러다가... 음 이제 한 일주일 지난 것 같군요.
다친 몸이 회복하는 것에는 고기가 좋다고 합니다. 
물론 그냥 고기를 좋아하는 집안이긴 합니다만, 그래도 핑계는 필요했습니다.

밀폐용기를 쓸 수 없으니, 고기를 내드리면서 그 산타할아버지 그릇도 나왔습니다.
할머니께서는 고기를 맛있게 드셨고,
"잘 먹었다."라고 말씀하시면서 자리에서 일어나시면서

당신 앞에 계시던 그릇들을 반찬그릇까지 모아서 쌓아서 왼손으로 드셨고
몇걸음 가지 못하셔서 젓가락을 흘리셨고, 두 걸음 뒤에는 산타 그릇을 깨셨습니다.

아버지는 위생장갑과 비닐을 꺼내셔서 큰 조각을 줍기 시작하셨고,
저는 아버지께 실내 슬리퍼를 드린 다음, 저도 한 짝 신고 청소기를 꺼내와서 작은 조각들을 돌렸어야 했습니다.

그래도 그거 끝나고도 고기는 많이 남았기에 식사는 계속 되었고, 술도 마싰더라고요.

이야, 부기영화 기준으로는 이거 영화 스포일러인데요!?
[스포일러 가득한 리뷰 시작하겠습니다!]

저는 영화 "미나리"에 대해서 '한인을 다룬 작품'이라는 정보만 가지고 있었습니다.
제가 이 작품에서 발견한 키워드는 3가지: 폭력, 이동, 기독교입니다.

1) 폭력.

작품을 보신 분이라면 제가 꽤나 이상한 키워드를 꺼내왔다고 생각이 드실 것입니다.
되게 평화롭고, 또 담담한 작품이 아니었는지요?

작품에서 누군가의 멱살을 잡는 장면이 나오지도 않고, 평범한 사람은 폭발할 것 같은 순간에도 오히려 평화와 납득이 찾아오며,
궁극적인 주제는 '회복'에 가깝습니다. 이렇게만 작품을 본다면 폭력은 설 자리가 없을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피 한방울 없지만,
상징으로 가득한 고어물에 가깝습니다.

주인공 내외가 일하는 병아리 부화장이 열심히 사람들이 일해서 선별한 숫병아리를 태워서 굴뚝으로 매캐한 연기를 뿜고 있는걸
이 영화는 몇번이나 롱테이크로 잡습니다.

남자 주인공 '제이콥'이 아칸소의 시골로 처음 이사와서 바닥의 흙을 한 줌 쥐고,
한국말로 '여기 흙좀 봐! 미국에서 가장 기름진 땅이야.'라고 말했기 때문인지

한국적인 풍수지리와 신토불이에 대한 아칸소의 심술궂은 대답은
토네이도가 찾아와서 집을 흔들고, 우물은 마르고 수도세는 떨어져서 물이 끊어지며, 고생지어 농사지은 창고엔 불을 지릅니다.

비가 온 다음에야 땅이 굳듯이, 영화는 계속해서 상처의 비를 내립니다.
시작 장면에서부터 아내는 남편의 귀농에 상처를 받고,
"내가 보내준 돈으로 당신네 가족은 잘 살잖아"라며 부부싸움을 거니까, 머나먼 한국땅에서 할머니를 모시고 옵니다.

할머니는 오자마자 손주에서 "이거 비싸니까 꼭 다 먹어"라면서 맛없는 보약을 먹여, 음료수를 먹을 기회를 뺏어가고
음료수는 맨날 뺏어 먹으면서, 보약으로 독살(?)시도를 하는 할머니에게 손자는 오줌을 음료수라고 대신 담아줍니다.

목가적이고 평화로울 수도 있는 한 가정의 이야기는, 비록 작은 스케일이지만, 
작은 생채기나마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위한 기회를 놓치지 않는 가족을 보여줍니다.

"별걸로 싸울 수도 있다 정말!"이라고 할머니가 익살스럽게 꼬집듯이,
각 가족 멤버는 서로에게 "아니 근데, 왜..."라고 몰아붙이는 것에 주저가 없습니다.

물론 한국영화가 다 그렇듯이, 여기 '나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잘 해주고 싶죠. 그런데 돈이 없습니다. 씻겨주려는데 물이 없고, 병원에 가야하는데 당장 일이 바쁘고 병원은 대도시에 있습니다.

이 작품이 다루는 폭력은 매우 한국적인 폭력입니다. 무슨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범이 칼로 찌르는게 아닙니다.
사람이 착하면 뭐해요? 서로 착하고 배려해주는 덕분에 여태까지 폭발하지 않고 버텼습니다. 
그 덕분에, 더 이상 못하겠다는 이 순간까지, 내가 이 사람 때문에 지금 우는 구나하는 그 순간까지 
서로에게 못해주고 실망시키는 것의 연속인 스너프 필름이 상영됩니다.

2) 이동.

움직이는 것은 고통스럽습니다. 이사라는 것이 끔찍한 추억이신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물론 어떤 종류의 이동은 즐겁죠. 신분상승이고 돈벌 기회의 증가입니다.

당연히 이 영화에서 다루는 이동은 정반대의 것입니다.
잘 풀려서 이동이 아니라, A에서 안 풀려서 B, B에서 안 풀려서 C, 하... 이제 C에서 생각해보니 D로 가야하나?

등장인물은 한국인이라는 설정이건만, "미나리"는 윌리엄 포크너를 포함한 미국 남부 소설의 문법에 충실합니다.
대도시의 온갖 불쾌한 기억, 걱정거리, 경제적 기회로부터 빠져나온 '남부 농민'이 치뤄야하는 죄값은
바로 '이동'입니다. 

농사도 고생해서 지어야하지만, 농산물을 '죄악에 가득찬 대도시'로 옮기는 것 또한 그들의 몫입니다.
평소의 궂은 삶 때문에 아슬아슬하게 유지되고 있던 가족관계와 경제능력은,
'한 몫 잡으러' 도시로 여행을 떠나는 순간, 더 끔찍한 형태로 악화됩니다.

아니, 그냥 가족이 함께 지내려고
힘들게 한국에서 미국으로 옮겨온 할머니는 그 과로 때문인지 며칠 안되어서 뇌졸증으로 쓰러지시고
가족들은 서로 누구의 탓인지 범인찾기를 해야하나, 자신의 탓이라고 자책을 시작할까 이지선다에 들어가죠.

모 일본 작품에서 '도망쳐 온 곳엔 낙원은 없다'라고 했다지요.
이 작품 역시 그 정신에 충실합니다. 아니죠, 불행한 사람은 도시에서 잘 풀리는 사람이 아닙니다. 
밑천이 없이 빚을 끼고 농사부터 지어보는 사람이죠.

그런데, 도망도 일종의 '노력' 아닌가요?
무슨 도망만 무책임하게 친 것도 아니고, 그런 인간상은 영화에서 한 명도 나오지 않습니다.

다들 열심히 살고 있는데, '낙원이 없으면' 도대체 왜 열심히 살아야하죠?
노력은 그냥 무너지지않기 위해, 체면 챙기기 위해 하는 이기적인 행위인가요?

3) 기독교.

"미나리"는 내내 기독교적인 상징과 소재를 사용합니다.
'여긴 한인교회에서 빠져나오고 싶었던 사람 밖에 없어'라는 말을 듣고, 미국인 교회에 녹아들려고 하며,

주인공이 고용한 농사 일꾼 "폴"은 일은 매우 잘하지만, 미신과 광신에 빠져있는 사람이죠. 
적어도 해를 끼치진 않고 말도 잘 들어주고 그래서, 주인공 가족과는 그럭저럭 지내지만요.

등장인물들이 '열심히 살고, 착하다'라는 두가지 요소를 한번에 보여주기 위해,
주중에 일을 열심히 할 뿐만이 아니라, 멋진 차림으로 매번 일요일에 교회에 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가족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런데도, 세상은 이들을 짖밟고 또 짖밟죠. 차라리 교회와 신앙이 이들을 고난으로부터 보호해준다면,
차라리 '악마'가 하는 일이라도 될텐데, 폴의 말마따나 '엑소시즘'을 하면 해결이 될텐데

오히려 공포스러울 정도로 삶이 안 풀리는 것은 악마의 소행이기에는 너무 사소하고 구체적이지 않습니다.

성경에는 '욥기'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착하게 사는 '욥'이라는 사람에게 고난이 닥치는 이야기입니다.

이 '욥기'라는 작품을 쉽게 한줄요약하자면 이런 식으로 사람들은 이야기를 줄이고는 합니다.
'욥이 이유없는 고통 속에서 고생했지만,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았더니 배로 복을 받고 잘먹고 잘 살았더라, 아멘!'

그리고 이건 애석하게도 매우 잘못된 요약입니다.
사실 욥의 이야기는 매우 복잡하고 또 끔찍한 이야기에요.

욥은 매우 무서운 사실을 깨닫게됩니다.
'고난이 그가 죄를 지었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라는 사실을요.

욥이 피부병에 걸리고, 집이 불타고, 가족을 잃었을 때,
친구라는 웬수들이 찾아와서 그에게 말합니다. '회개해라 죄인아! 선하신 신께서 함부로 너를 벌하실리가 있냐'!

하지만 하나님은 말하죠. '지금까지 네가 죄를 지었기에 일어난 일은 아무것도 없다'.
긍정적으로 해석을 하자면요. 착하게 살고 계신 기독교인은, 고통 받으실 때 자신의 죄 때문이라고 책망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끔찍하게 해석을 하자면요. '착하게 살아도 나쁜 일은 일어나요.'

영화 "미나리"의 제목은 우리가 먹는 그 미나리에서 따왔습니다.
이야기 안에서는 할머니께서 멀리 떨어진 물가에 심어둔 작물입니다.

그리고 영화내내 열심히 고생하면서 지은 농작물은, 그걸 팔려고 도시에 간 대가인지 불타버리고
단 한 번도 제대로 신경 써준적이 없는 미나리는 잘 자라서 마지막 장면에 가족들을 반겨줍니다.

정말 멋진 결말이고 '힐링하는' 결말이지요. 가족에게는 아직 다음 기회가 남았습니다.
한 해 농사는 망쳤지만 아무도 다친 사람이 없습니다.
그리고 누구를 탓하기 보다는 서로 열심히 도우면서 살아야겠다고 마음을 먹게 도와줬고요.

하지만 열심히 지은 작물은 불타고,
심어두고 잊은 미나리는 번성한다면

인생은
인생이란 무엇일까요?


* 손금불산입님에 의해서 자유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23-08-08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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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기영화
21/07/15 00:21
수정 아이콘
제목과는 달리 착한 리뷰네요. 잘 봤습니다. 영화 안보고 읽었어요...
21/07/15 11:24
수정 아이콘
앗 좋은 영화를 즐기실 기회를 뺏어간것 같아서 아쉽습니다. 흐흐... 썸네일과 제목은 원래 좀 자극적이여야 손님이 오니까요.

꽤나 괜찮은 영화였습니다. 다만 확실히 '예술영화'에 가까워서 지루해하실만한 분도 많을 것이 이해가 가더군요. 그런 분들에게는 소개를 해드릴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21/07/15 01:15
수정 아이콘
신이 죽은 세상에서 사람은 그 자신이 신이 되려는 믿음을 지니고 열심을 다하면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시지프스의 노동을 반복합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을 멍청하다고 조소할 수 있을까요? 그 무의미한 노동에서 벗어나는 법은 자살뿐일 텐데 말이죠. 카뮈의 글이 생각나는 감상평이네요. 글 잘 읽었습니다.
21/07/15 11:39
수정 아이콘
노력과 결과가 비례하지 않는다는 말은 대다수의 사람에게 죽으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런 죽으라는 말이 던져지는 세계에서도 사람들은 삶을 택하지요. 도대체 뭐이리 달콤한게 안에 들어있어서 그리 사람을 홀리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없음'이라는 것은 그 어떤 고통보다도 더 아픈 것인가 봅니다.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1/07/15 01:16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따뜻한 시선이 느껴지는 리뷰였습니다.
21/07/15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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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글을 따뜻하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이걸 쓰면서 제가 이 작품과 사람의 삶을 지나치게 냉소적으로 보는 시각이 드러나진 않을까 엄청 걱정하면서 썼습니다 흐흐흐...

이 영화에서는 직접 다루지 않고 관객들의 몫으로 남깁니다만, 결국 '불의'에 대한 인식은 '그렇다면 어떻게 정의를 회복할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그 만큼 따뜻한 것은 없을지도 모르겠네요.
아마추어샌님
21/07/15 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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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쁘게 살아도 좋은 일은 일어날거고...

인생은 삶은 감자죠.
그냥 먹고 없어지는 것. 심지어 설탕 없으면 맛없음.
21/07/15 11:44
수정 아이콘
와아아아 멋있는 말씀 감사합니다.
앞으로 저도 자주 빌려 쓰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종교가 쇠망한 시대의 요즘 사람들은 종교를 비웃는 것을 즐기지만, 사실 종교에서부터 가장 노력하고자 했던 고민은 '좋은 일과 나쁜 일이 일어나는 것에 선한 사람과 사악한 사람 사이의 차등이 있는가?'였지요. 하지만 연쇄살인범도 로또에 당첨될 확률은 수학적으로 같고, 이렇게 과학적인 팩트로 가득한 세상은 정말 비인간... 아니 탈인간적이기도 하지요. 물리법칙이 정의롭지 못한다면, 세상에서 정의를 찾겠노라 떠드는 문과들의 발언은 참으로 공허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세상에 필요한 설탕은 과연 무엇일까요. 생각할 거리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21/07/15 08:36
수정 아이콘
잘 봤습니다
21/07/15 11:45
수정 아이콘
좋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미나리는 참으로 예술 영화스럽게도 말하는 것도 적고, 상징하는 것도 많다보니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영화인것 같습니다. 그래도 제 목소리가 한가지 버전으로 따로 설 수 있다면 매우 행복할 것 같아요.
21/07/15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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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은 사람이 어찌할수가 없으니 분산투자가 중요하지요...

농업혁명이 일어나고 사람들이 천명 이상 모여 살며 노동집약적 농업을 하기 시작하면서 날씨가 안좋으면 사람들이 대량으로 아사하는 일이 많아졌지만

오히려 반농 반수렵채집(?)하던 시절에는 굶어죽는일이 거의 없었다고 하죠 그 비법이 바로 분산투자(?)입니다

그때의 농업이란 하루종일 밭에 사람이 붙어서 관리하는게 아니라 슬렁슬렁 지나가면서 여기 하천주변 평지에 씨뿌리고 저기 산중턱 조각밭에 씨뿌리고 이런식이었다죠

그런식으로 설렁설렁 돌아다니면서 씨만 뿌리고 돌보지는 않는식으로 여러군데 분산하다보니 들이는 시간대비 생산량은 매우 비효율적이었지만 흉년이 들었을때는 최소한의 식량은 언제나 확보가능해서 배고플지언정 아사할 지경까지는 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뭐... 결국 '근면한 노동'은 보상 받는 다는 관념은 노동집약적 효율적인 농업에서 생산되는 잉여생산물을 받아먹는 사회지도층, 종교지도자들의 프로파간다이고 윗대가리를 먹여살리려고 농민들이 아사의 위험을 짊어지게 되었는지도 모르지요
21/07/15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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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됨) 크크크크크... ann309님께서 제가 맨날 떠들고 싶어서 입이 근질거리는 주제를 딱 긁어주셨네요.

그렇습니다, 수천년 짜리 전통인 농사는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제정신으로 할만한 일이 아니지요. 하늘은 통제요소가 아니고, 풍년이면 풍년이라고 폭락, 흉작이면 흉작이라고 통으로 작물이 매말라버리고는 하지요. 마르크스적인 관점에서보자면 말 그대로 농업이라는 것 자체가 '이데올로기'와 '헤게모니'로 강요당하는 약자의 함정 그 자체입니다.

하지만 저는 여기서 좀 더 최신 모델(?)을 가져와서, '거버넌스'의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마르크스는 세상의 통치가 유지되는 이유를 폭력과 억압과 선동으로 정리했지만, 이름이 비슷했던 막스 베버는 '진짜로?'라고 다시 생각해보자고 했지요. 어쩌면, 사실 밑바닥에서 깔아뭉개지는 사람도 은근히 '살맛이 나는지'도 모릅니다. 금의환향이라는 말이 있듯이, 농민의 자식도 열심히 부모님이 소를 팔아서 공부시켜 서기관이 되면, 농사를 짓지않는 계급에 편입되어서 부모님의 노년을 편하게 해주고, 다른 농민을 쥐어짜는 '권력'을 얻을 수도 있었을테니까요. 제가 감히 이름을 붙어보자면 '체제의 달콤함'인것이지요. 기사들이 맘에 안들어도 적어도 말도 안통하는 유목민 오랑캐보다도 났고요.

이런 이야기를 할 수록 "미나리"와는 거리가 멀어지긴 합니다만, 거창하게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의 거시담론이 아니라도, 최소한의 인간관계에서도 베버의 거버넌스는 유효하다고 생각합니다. '나에게도 기회가 올 것이다'라는 희망고문과 '하지만 지금 내가 참여하는 제도가 부셔진다면 나는 혼란스러운 세계로 떨어지지 않나?'라는 불안감이 두 개는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접착제죠.

비극이 되었던 희극이 되었던 세상에 무언가를 일단 만드는 접착제요.
플레스트린
21/07/15 08:53
수정 아이콘
훌륭한 리뷰 감사히 읽었습니다. 한국식 가정폭력에 대한 시각이 와닿네요. 선의로 행하는 폭력이 더욱 가혹하죠. 제가 아는 사람들의 구할은 가족에게 인생 상처 다 받았더라고요.
21/07/15 12:00
수정 아이콘
사르트르는 '타인은 지옥이다'라고 했다는데, 사실 여기서 말한 '타자'는 '나'를 제외한 전부였죠. 왠지 한국어로 '타인'이라고 옮기니 그러면 가족이나 친구는 괜찮나 싶어지는 어감이 되었습니다만, 사실 모르는 사람에게 상처입기는 되게 힘들죠 크크크크.

"다 너 잘되라고 하는 소리야"가 그래서 참 무섭고 쓸모없는 단어죠. 그 밑 단계에는 그러면, 자식보고 못되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건데, 뭐 그런 사람도 세상에 있기는 하겠지요. 그래도 같은 가족으로서 그런 존재들 보다는 위에다가 모시고 싶은데, 그런 식으로 말이 나오면 아 참 고민되거든요 크크. 사람이 상처입는 것에 착한 의도가 면책시켜주는 것도 아니고, 결론적으로 잘 풀리는 것에 좋은 말이 필수조건인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요, 또 이렇게 세상을 보자면, 노력은 왜 하고, 좋은 말은 왜하고, 착하게는 왜 살아야할까요. 아무래도 무작정 윽박지르고, 물리적인 상처를 주는것보다는 그나마, 확률적으로, 경향적으로, 상식적으로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간다고 믿기에, 그리고 그것이 어느정도 사실이기에 우리는 세상에서 이렇게 사는 것일 것입니다.

그렇기에 어떤 시기에는 정말 최선을 다해서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겠지요. 그나마 나은 판단을 하고 있다고 믿으면서요. 삶이란 도대체 무엇일까요. 타인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그러면 이걸 고민하는 나라는 놈은 무엇일까요 크크크크...
21/07/15 10:03
수정 아이콘
이 작품이 다루는 폭력은 매우 한국적인 폭력입니다. 무슨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범이 칼로 찌르는게 아닙니다.
사람이 착하면 뭐해요? 서로 착하고 배려해주는 덕분에 여태까지 폭발하지 않고 버텼습니다.
그 덕분에, 더 이상 못하겠다는 이 순간까지, 내가 이 사람 때문에 지금 우는 구나하는 그 순간까지
서로에게 못해주고 실망시키는 것의 연속인 스너프 필름이 상영됩니다.


--> 아주 좋네요. 요즘 직장에서 비슷한 것을 느끼는데 딱 마음에 닫는 표현입니다.
21/07/15 12:10
수정 아이콘
유교의 윤리와 기독교의 윤리는 전혀 다르다고 합니다. 왜냐면 둘이 다른 종교라서요 (뻔한 말)!

기독교의 윤리는 '미덕 윤리'(Virtue Ethics)라고 번역합니다. 대중매체에서도 유명한 '7대 죄악'과 그에 상응하는 '7대 선'을 가지고 사람의 선함과 악함을 판단합니다. '자선', '근면' 같은 선한 가치와, '시기', '분노'같은 악한 가치는 신 앞에 평등하게 서있는 인간 모두에게 적용됩니다.

아 물론, 현실적으로는 그 안에서도 차등이 있습니다. 기독교 세계관에서는 당연하게도, 이교도보다는 기독교인이 더 이런 미덕을 잘 알고 있을 것이고, 신의 말씀을 접하고 배울 기회가 높은 성직자나 기사가, 무지렁이 농노보다는 더 잘 자신을 수련하고 미덕을 추구할 수 있겠지요. 그래도, 예언자조차 시정잡배의 말에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 정도로, 미덕과 죄악 자체는 인류의 공통요소입니다.

하지만 유교의 윤리는 '역할 윤리'(Role Ethics)입니다. 윤리란 위에서 보셨듯이, 누가 착하고 나쁜지를 정하는 척도가 되어줍니다. 유교의 버전은 역할의 수행에 큰 중점을 둡니다. 이 사장은 사장다운가? 어린이는 어린이 다운가? 어른은 어른답고, 직원은 직원다운가?

그렇기 때문에,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 국가, 가족, 회사에서는 나쁜 사람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모두 자신의 몫을 다하고 있으니 이렇게나 좋은 결과가 이루어진 것이겠지요!

하지만 동시에, 역할 윤리의 세계에는 심성이 착한 사람이 없습니다. 사람의 기질이 순박한게 아무런 의미도 없거든요. 아니, 오히려 가지고 있는 지위에 따라서 그건 악이 될수도 있습니다. 그런 무서운 세상에서 한국인들은 사실 살고있습니다. 마치 매트릭스에 갇혀사는 사람 같이 비교할 세계가 없고 표현할 단어가 없어서 막연하게만 느끼는 사실이지만요.

물론 개개인에게 모질은 세상이라는 거지, 나쁘거나, 경쟁력이 없거나 (사실 이건 반대입니다. 제 최고의 걱정이기도 하죠. 역할 윤리의 사회가 미덕 윤리의 사회보다 객관적으로 우월하다면요? 미래는 어떻게 될까요?), 사람이 살만한 곳이 못된다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하지만 원래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는 사람이 공산주의 서적을 읽어보는 것이고, 공산주의 세계의 사람들은 자본주의를 우월함을 찬양하다가 감옥에 가고는 했다고 합니다. 그 말인즉슨, 특정 세계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란 자신의 세계를 인식하려 최선을 다해보고, 또한 최선을 다해 다른 세계는 어떤 곳이 있는지를 탐구해봐야겠죠. 그것이 인생을 충실하게 사는 길이 아니겠습니까.
파다완
21/07/15 12:00
수정 아이콘
가끔씩 가족이 참 답답합니다. 뭐 크게 잘못한 가족이든 그냥 평범한 가족이든 참 사랑하고 아끼는데 가끔 너무 갑갑합니다. 뭐 저희 가족에서 저만
이런 감정을 느끼는건 아니겠죠. 뭣보다 누구보다 오래 지냈으니 상처도 많이 입혔을거고. 말 그대로 배려해주는것 때문에 계속 지내는 거겠죠.

인생은 정말 뭣도 없다는게 아닐까요, 옛날에 소개해주신 릭앤모티도 생각나네요....
음... 그래도 보지는 않았지만 미나리를 릭앤모티랑 비교하기는 좀 그렇군요. 크크
21/07/15 12:15
수정 아이콘
(수정됨) 아앗... 오히려 말씀하신 내용에서 제가 작품 비평은 안하고 그냥 제가 원하는 것만 본것이 아닌지 뜨끔해지는 말씀이시네요 크크크크.

미나리는 정말 괜찮은 영화입니다. 릭앤모티는 시즌을 몰아보신다면 하루 이상 걸리겠지만, 2시간짜리 예술영화라고 생각하신다면, 핸드폰을 만지시거나 술을 마시시면서 보셔도 꽤나 괜찮은 경험이 되실거라 생각합니다.

요즘 이런 주제의 작품이 많이 나온다는 것이 걱정되기도 합니다. 아메리칸 드림이 성공한다는 이야기는 최근에는 한번도 못 들어보신것 같지 않으세요 흐흐흐? 그런데도 미국은 초강대국이죠. 같은 맥락에서, '인생 뭐같다'라는 작품들이 나오고 있어도, '그러니 나가죽자'라는 메세지를 주는 작품은 아직 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심지어 어떤 작품이 그런 말을 한다고 해도, 사람들이 '그래 저 말이 맞아. 인생 별거 없지'라고 끄덕이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좀 들어요.

2021년은 비록 코로나로 시름하고 있지만, 이 달콤한 2020년대라는 것이, 코로나가 있음에도 참 얄궂고 끔찍하게도, '태평성대' 아니겠습니까? 인류에게 살기 팍팍해서 죽고 싶지만은 않은 시기, 정말로 하루하루 죽음을 마주하고 더 나아갈 가치가 있는지 물어보기에는 재미있게 볼 영화도 있는 시기이기도 해서 이렇게 날카로운 작품들이 또 나오는 것이 아닐까요?

왜 우리는 가벼운 사람들에게 상처받고, 얼굴도 모르는 감독이 만드는 작품에 상처가 비집어지면서도 계속 사는 것일까요? 왤까요, 정말로 왜.
21/07/15 15:52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글을 읽고 여러가지 생각은 머리속을 맴도는데 정리해서 말은 못하겠네요 제 능력 부족입니다

영화관에서 본지 몇 달되서 가물가물하지만 인상깊었던 부분?은 결국 아빠와 가족의 갈등? 이었습니다
아빠의 농사에 대한 열망? 성공에 대한 열망은 가족을 위한게 아니라고는 할 수 없지만 가족보다 더 우선순위라고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후반부에 결국 따로살자는 결론을 내게되었고 마지막에 창고화재를 함께 대처하면서 극적화해를 하는데 이부분이 공감이 잘 안갔던거 같습니다

현대사회라서? 미국식 자본주의, 개인주의를 받아들여서?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으로? 어떤 이유이건간에 과거에 비해서 가족공동체의 결속보다는 개인의 의사가 중시되고있습니다 아직 결혼을 하진않았지만 개인의 욕구와 다른가족의 욕구사이에서 어떻게 행동할지 생각해보게된 영화였습니다
21/07/15 16:09
수정 아이콘
"애들도 아빠가 성공하는걸 봐야하잖아."라는 말이 '제이콥'이 얼마나 이기적인 인물인지를 보여주는 장면으로 등장하죠. 그런데, 그렇다고 제이콥이 나쁜 사람인가 생각해보면, 그런 면모는 하나도 없다는게 참 이 영화의 잔인한 점입니다. 화는 자주 내지만, 막상 의견 같은걸 들을 때도 무작정 윽박지르지도 않고, 농사도 결과론적으로는 실패했지만 분명 시도를 할 때 생각없이 임하지 않고 나름대로 이런저런 방안을 찾아본다고 머리를 굴려보고 몸이 성하지 않을 때까지 부딪쳤지요.

그래서 저는 오히려 영화를 보면서 의아했던 부분이 좀 달랐던 것 같습니다. 이 작품은 제가 이렇게 염세적인 리뷰를 남길 정도로, 노력에 대해서 엄청 부정적으로 다룹니다. 아내 모니카가 무너질 때 '우리 결말이 보이는데, 어쩌면 좋을지 모르겠어'라고 무너지고, 제이콥의 노력은 헛된 우공이산으로 만드는 것에 영화는 공을 들이지요. 한 남자의 시도가 철저하게 좌절되는 과정을 2시간 내내 보여줍니다.

그래서 저는 개인의 의사에 대해서 오히려 되게 부정적으로 보고 있는 작품이 아닌가, 그런 발상에서 이 글을 쓰게 되었고요. 제가 예전에 "인사이드 르윈"이라는 영화를 보고 비슷한 평을 PGR에 적은 적이 있는데요. 네, 지금 생각해봐도 미나리도 왠지 접근을 비슷하게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저도 결말에 대해서는 좀 고개를 갸우뚱거렸던 것 같습니다. 심리학에서 긍정강화와 부정강화가 있다고 하잖아요. 좋은 일이 일어나게 해서 행동과 생각을 이끌어낼 것인가, 아니면 나쁜 일을 피하게 해서 행동과 생각을 만들 것인가. 그런데 결말은, 그냥 부정강화도 아니고 부정 그 자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어요. 와, 돈 날리고 건강 날리고! 영화는 그래도 아직 두번째 기회가 있다는 미국적인 낙관주의로 끝납니다. 미국 작품이라고 본다면 결말이 그런게 이해는 가더라고요. 땅도 있겠다. 사람은 있겠다. 아직 최악은 오지 않았네.

그런데 한국인 관객으로서 본다면 진짜 결말 뭐냐? 가 나와버리죠. 빚을 내서 지은 농사는 망했고, 할머니께서도 큰 충격을 받으셨고, 가족을 옭아매던 경제적인 문제나 거주지의 문제는 하나도 해결이 안되었죠. 뭐지, 다음에 더 끔찍한 일이 일어난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인가? 크크크 이렇게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 갈린다고 봅니다.

좋은 덧글 감사합니다. 덕분에 저도 몇몇 부분에서 좀 제 생각이 복잡했는데, 다시 생각하고 풀어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aDayInTheLife
21/07/16 15:31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저는 아무래도 이 영화를 풀뿌리와 감독 자신의 유년 시절과 그 가족들에게 보내는 편지로 읽히더라고요. 뭐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계속된다고 해야할까요.
결은 다르지만 한 영화의 광고 카피가 떠오르더라고요.
‘쪽팔려도 고개를 들어라! 우리는 가족이다.’하는 그런 카피로 기억하는데..
21/07/16 19:35
수정 아이콘
결국 가족의 결합에 대한 훈훈한 영화가 맞으려나요 흐흐흐. 제가 너무 부정적으로 적은건 아닌지 생각하게 만들어준 댓글 감사합니다. 이렇게보니 미나리도 참 여러가지 해석이 가능하게 잘 만든 작품이었던 것 같아요!

그러고보니 아직 '어느 가족'을 보지 못했는데, 그걸 보고나서 미나리랑 비교를 해보고 싶어지는군요. 항상 영화리뷰에 영감을 주시는 글을 써주시는 aDayInTheLife 님께서 잘 읽었다고 해주시니 갑자기 몸에 힘이 생깁니다!
aDayInTheLife
21/07/16 20:25
수정 아이콘
아이구 과찬이십니다. 크크크
어느 가족의 경우는 참… 정반대에 가까운 상황을 가지고 의문을 던지는 좋은 영화죠. 가끔가다 정말 미세한 현미경으로 살을 째는 느낌이 들 정도로요.
재밌게 보세요. 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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