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다시봐도 좋은 양질의 글들을 모아놓는 게시판입니다.
Date 2020/08/04 23:49:31
Name macaulay
Subject 그림 그리는 사람이 본 오퍼튜니티의 매력 (수정됨)
퍼시비어런스의 발사 성공으로 제가 들르는 유일한 커뮤니티 사이트인 pgr21에도 관련 글들이 많이 올라오네요.
[우주전쟁]님이 올리시는 글들 저도 잘 읽고 있습니다 :)

전 오퍼튜니티가 주인공인 그림책의 그림을 그린 적이 있습니다. 재작년부터 1년간 오퍼튜니티 자료를 찾아가며 고생했던 감회가 새롭더라고요. 작업하면서 느꼈던 오퍼튜니티에 대한 이야기와 그림 몇장을 남겨보겠습니다.
20-07.jpg
(맘에 든 그림이라 표지에도 썼습니다...)


보통 글/그림을 혼자 다 하는 그림책은 투고를 하던가 아니면 아는 편집자가 '혹시 가지고 있는 더미 있으면 보여줘봐'하고 물어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은데, 글과 그림이 따로인 그림책은 대부분 먼저 글작가에게 글을 받은 출판사에서 글과 잘 맞겠다 싶은 그림작가에게 연락을 하여 작업이 이뤄집니다.

어느날 그때까진 안면이 없던 출판사에서 오퍼튜니티라는 화성탐사로버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건데 혹시 관심이 있는지 궁금하다란 연락이 왔어요.
이과출신이기도 하고 워낙 우주에 관심이 많기도 해서 바로 승낙했습니다. 게다가 몇년전에 첫째가 지인에게 꽤 정밀한 오퍼튜니티 모형을 선물받았어요. 그 당시엔 아무 생각없이 '어? 이렇게 생긴 로봇도 있네?'하고 넘겼었는데, 전화를 끊고 갑자기 그 모형이 떠오르면서 내가 그릴 운명인가?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논픽션류에는 자료가 꽤 중요한데 그걸 이미 충족하고 있다는 뜻이니까요. 

어쨌거나 한동안 오퍼튜니티만 생각하고 그리면서 살다보니 머나먼 화성땅에서 천천히 나아갔던 이 탐사로버의 매력이 점점 크게 다가왔습니다. 
그 이유가 뭘까 고민하다 도달한 결론은...

1. 역시 그림을 그릴 때는 생김새가 제일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우선 처음으로 눈(카메라들)과 머리가 달린 귀여운(?) 형태로 만들어졌다는게 핵심이었습니다 (딱 월E 느낌!).
첫 화성탐사로버는 영화 마션에 나왔던, 마치 태양전지 달린 상자각에 안테나와 바퀴 여섯개를 달아놓은 듯한 '소저너'란 로버였어요. 나름 귀엽기도 하지만 마션에서도 그렇고 감정이입이 좀 힘든 생김새죠. 
하지만 오퍼튜니티는 그리면서 자꾸만 얘한텐 감정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큰 눈과 긴 목이 매력적이었습니다.
아마 소저너가 주인공이었으면 딱딱하기만 해서 그리는 것도 좀 힘들었을 겁니다.

2. 서로 다른 운명에 처한 쌍동이 로버.
스피릿과 오퍼튜니티. 둘은 똑같이 생겼고 동시에 만들어진 쌍동이 로버입니다. 물을 발견하리란 기대를 한껏 짊어지고 먼저 출발한 스피릿이었습니다만, 별 소득없는 곳에 착륙하면서 고전했습니다. 
그에 반해 얼마 후 발사된 오퍼튜니티는 떨어진 바로 그곳에서 블루베리라 불리는 물의 흔적을 발견하는 행운을 거머쥡니다. 또 진 주인공답게 바퀴가 모래에 빠져 오도가도 못하게 되는 위기에도 처합니다. 하지만 든든한 조력자인 과학자들이 지구에서 급하게 화성과 똑같은 환경을 만들어놓고 시행한 시뮬레이션을 통해 겨우 빠져나오며 극복합니다. 자료조사차 다큐를 보면서 이 부분에선 왠지 소년만화의 한장면처럼 오퍼튜니티가 한단계 성장한 느낌도 들더라고요.
그에 질세라 스피릿도 고장난 바퀴 하나가 땅을 긁으며 가는 바람에 우연히 그 파인 곳에서 규사 성분을 발견하고, 화성에 미생물이 존재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찾게 됩니다. 하지만 이런 성과가 계속 이어지기 전에 스피릿은 오퍼튜니티에 비하면 너무나 일찍 신호가 끊겨버리죠. ㅜㅜ
'평생 만날 수 없는 쌍동이 형제의 극과 극으로 다른 운명'... 

3.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는 기간동안의 임무 수행.
언제나 초월자들은 매력적입니다.

이 정도로 정리되더군요. 
나름 2년간 찾고 그리고 지우고를 반복하면서 애착이 커졌나 봅니다.


퍼시비어런스의 활약도 기대됩니다. 
이번에 화성에 가게 되면 거의 실시간으로 찾아볼 것 같아요.



* 작년에 방문했던 미국의 케네디 우주센터에는 기념품샵 앞에 레고로 만든 거대 화성탐사로버가 있었습니다.
IMG-0540.jpg 
IMG-0543.jpg 
역시 레고는 대단하죠. 자료로 써야지 하고 찰칵!

* 벌써 1년도 더 전의 일이긴 하지만 그림 그리던 과정도 몇 장 올립니다.
09-01.jpg 
많은 도움이 되었던 아들의 모형

IMG-9491.jpg 
속표지에 쓰려고 했던 그림인데 아쉽지만 안 쓰였어요.

03-04.jpg 
13-02.jpg 
11-06.jpg 
05-11.jpg 


* 노틸러스님에 의해서 자유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21-06-24 16:15)
* 관리사유 : 좋은 글 감사합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VictoryFood
20/08/05 00:11
수정 아이콘
와 그림 멋집니다.
실례가 아니라면 그 그림책이 무엇인지도 알 수 있을까요?
macaulay
20/08/05 08:11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나는 화성탐사로봇 오퍼튜니티입니다’라는 그림책입니다.
스위치 메이커
20/08/05 00:18
수정 아이콘
인류가 화성 테라포밍에 성공한다면 영원히 보존될 인류의 유산이죠. 신라로 따지면 진흥왕순수비인데요 홓


다만 그걸 살아서 보긴 힘들 것 같다는 게 아쉽지만요
macaulay
20/08/05 08:13
수정 아이콘
후대의 로버가 찍어서 영상으로 볼 수 있기만 해도 감동일 것 같아요.
-안군-
20/08/05 00:34
수정 아이콘
스피릿과 오퍼튜니티는 로마건국 신화의 로물루스와 레무스 급의 대우를 해줘야...
macaulay
20/08/05 08:16
수정 아이콘
영화 마션과 더불어 사람들의 화성을 향한 관심도를 확 끌어올렸다고 생각합니다
20/08/05 00:41
수정 아이콘
이럴수가!
지금 초등학생인 제 딸이 유치원때 가장 많이 본 책 중 하나가 '파란 분수'입니다!
감사합니다 ㅠㅠ
macaulay
20/08/05 08:21
수정 아이콘
헉! 따님에게 고맙다고 꼭 전해주세요.
코로나 때문에 조심스럽지만 군포문화예술회관에서 글없는 그림책 전시를 오늘부터 23일까지 합니다. 파란분수도 원화와 더미북전시로 참여한답니다.
20/08/05 08:46
수정 아이콘
구매는 제가 했습니다, 엣헴! 크
작가선생님께 댓글 받았다고 꼭 전하겠습니다 후훗
닉네임을바꾸다
20/08/05 09:12
수정 아이콘
의문의 팬미팅과 광고분위기 크크....
macaulay
20/08/05 10:54
수정 아이콘
파란분수 가장 많이 봤다고 하셔서 그만 광고분위기로... 흐흐
20/08/05 00:55
수정 아이콘
좋은 글 감사합니다!
及時雨
20/08/05 01:11
수정 아이콘
와 짱이다
Curiosity
20/08/05 03:15
수정 아이콘
우와 그리신 그림 정말 멋지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티오 플라토
20/08/05 03:48
수정 아이콘
우리 오피 ㅠㅠ 태양광 패널만 닦아주면 다시 움직일텐데..
macaulay
20/08/05 08:22
수정 아이콘
언젠가 그럴 날이 오기를 ㅜㅜ
닉네임을바꾸다
20/08/05 09:13
수정 아이콘
아니 또 일시킬려고...
티오 플라토
20/08/05 09:40
수정 아이콘
크크 더 시킵시다 더더!
20/08/05 08:01
수정 아이콘
얘만 생각하면 뭔가 슬퍼요... ㅜ_ㅜ 나이먹고 왜 이러는지
macaulay
20/08/05 08:23
수정 아이콘
저도 그래요. 나이 먹어서 더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ㅜㅜ
우주전쟁
20/08/05 08:47
수정 아이콘
그래도 이렇게 기억해 주는 사람들이 많은 걸 보니 오퍼튜니티는 복 받은 로버였네요...ㅠㅠ
macaulay
20/08/05 10:55
수정 아이콘
앞으로도 우주 관련 글 기대하겠습니다 :)
은때까치
20/08/05 09:27
수정 아이콘
와 재미있어요! 완전 다른 업계 분들 이야기 듣는건 언제나 즐겁습니다 흐흐
macaulay
20/08/05 10:56
수정 아이콘
시간이 되면 그림책에 대해 가끔씩 써 보고 싶습니다 흐흐 그치만 게을러서...
별거아닌데어려움
20/08/05 11:29
수정 아이콘
회색느낌에 지글지글 아날로그 흑백 티브이 느낌이 나면서 따뜻하고 야잔한 느낌이 나네요. 그림 잘 보았습니다.
부기영화
20/08/05 12:49
수정 아이콘
https://creativepark.canon/ko/contents/CNT-0024559/index.html
이거 출력하면 종이로 만들 수 있더라고요. 큐리오시티도 있고요.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3202 주님, 정의로운 범죄자가 되는 걸 허락해 주세요. [56] 글곰28653 20/10/06 28653
3201 예방접종한 당일에 목욕해도 될까? [65] Timeless21435 20/10/06 21435
3200 학문을 업으로 삼는다는 것의 무게 [56] Finding Joe19376 20/09/23 19376
3199 사진.jpg [36] 차기백수21809 20/09/23 21809
3198 엔비디아의 ARM 인수가 갖는 의미 [129] cheme22982 20/09/21 22982
3197 이번 생은 처음이라(삶과 죽음, 악플 & 상처주는 말) [8] 세종대왕11274 20/09/20 11274
3196 마셔본 전통주 추천 14선(짤주의) [131] 치열하게17808 20/09/18 17808
3195 금성의 대기에서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을까? [71] cheme14122 20/09/16 14122
3194 어느 극작가의 비명 [4] 겟타쯔8708 20/09/14 8708
3193 오늘은 정말 예쁜 날이었어요 [36] 及時雨13981 20/09/13 13981
3192 일본 반도체 왕국 쇠망사 1 [67] cheme16905 20/09/11 16905
3191 영창이야기 [39] khia8844 20/09/10 8844
3190 올해 세번째 태풍을 맞이하는 섬사람의 아무 생각. [33] 11년째도피중10233 20/09/05 10233
3189 기생충, 그 씻을 수 없는 냄새 [25] lightstone12745 20/09/02 12745
3188 10년전 우리부대 대대장 가족 이야기 [38] BK_Zju11338 20/09/01 11338
3187 포스트 애들은 가라 시대에 남겨진 '어른들' [8] Farce11009 20/08/30 11009
3186 [LOL] 말나온 김에 적어보는 lol-Metrics 2 : 롤타고리안 승률 [104] 오클랜드에이스10281 20/08/04 10281
3185 [LOL] 그 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47] ipa15373 20/07/26 15373
3184 위스키 입문의 길 [53] 김익명13287 20/08/29 13287
3183 [번역][이미지 다수] 내가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아마 믿기 조금 힘들 거야. [35] OrBef10268 20/08/08 10268
3182 스피릿호와 오퍼튜니티호는 어떻게 죽음을 맞이했나? [9] 우주전쟁8202 20/08/05 8202
3181 그림 그리는 사람이 본 오퍼튜니티의 매력 [26] macaulay10579 20/08/04 10579
3180 [우주] 2020` 7월, NASA 오늘의 사진 모음 [18] AraTa_Justice7921 20/07/29 7921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