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다시봐도 좋은 양질의 글들을 모아놓는 게시판입니다.
Date 2020/07/04 12:44:43
Name EPerShare
Subject 멋진 발상
명제) 사람은 회식을 좋아한다.

수년 전, 팀장 L은 당시 신입이었던 저를 따로 불러내어 '여건이 녹록치 않아 회식을 자주 못해줘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으니 L이 해당 명제의 신봉자라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습니다.


L의 논거
가. 사람은 회식을 좋아한다.
나. 회식 때는 술을 먹는다.
다. 사람은 술을 좋아한다.


결론. 사람은 회식에서 술을 많이 마실 것이다.



하지만 추후 회식을 개최하여 참석자의 음주행태를 관찰한 그는 그의 논거에서 도출된 결론과 모순된 행위근거를 수집했습니다.

관찰결과 : 사람은 회식에서 술을 마시지 않는다.

L은 그 결과를 다음과 같이 해석하고, 자신의 결론을 수정하게 됩니다

관찰결과의해석 : 상사인 자신보다 술을 많이 마시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다.

결론2. 상사인 자신이 음주하고 권주하면 사람은 회식에서 술을 많이 마실 것이다.



그러나 L은 그 다음 회식실험에서의 피실험자의 행동방식으로부터 새로운 자료를 습득했습니다.

관찰결과2 : 자신이 음주하고 권주하니 사람은 병환을 사유로 술을 마시지 않는다.

관찰결과2의해석 : 갑작스러운 번개회식이 아닌, 오랜 시간 전에 공지한 회식을 열면 회식에서 술을 마시기 위해 사람은 건강관리를 하고, 사람은 회식에서 술을 많이 마실 것이다.

결론3. 미리 공지된 회식에서 상사인 자신이 음주하고 권주하면 사람은 회식에서 술을 많이 마실 것이다.



그렇게 L은 한달 전부터 회식 날짜를 공지했고, 해당일에 술을 많이 마셔도 된다고 직원을 다독였습니다.

이윽고 공지된 회식의 시간이 다가오고, 그 회식 때에도 사람은 술을 마시지 않았습니다. L은 고민했습니다. 이것이 도대체 어찌된 일인가? 필경 사람은 술을 마시고 싶을 터인데, 부하직원을 위해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관찰결과3 : 공지된 날짜의 회식에도 사람은 술을 마시지 않는다.

그간 회식 경험을 되짚던 L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모든 회식이 화수목 3일 중 열린 것이었습니다! 유레카!

관찰결과3의해석 : 다음 날이 평일이어서 출근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부하직원이 술을 마다하는 것 같다.

결론4. 그렇다면 금요일에 회식을 하자!

사람은 술을 마실 것이고 사람은 술을 좋아하니 행복할 것이고 직원의 사기가 고취되며 자신의 사려깊음은 칭송받을 것이다.





아, 이 얼마나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발상입니까? L선생님, 저희가 회식에서 주취하지 않는 이유는 상사가 권주하지 않아서도 아니요, 몸에 고질병이 있기 때문도 아니요, 다음날 출근을 하기 위해서도 아닙니다.

제가 정말 놀라운 사실을 하나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L선생님, 정말 놀랍고 경악스럽고 상상도 못한 정체를 밝혀드리자면, 많은 사람이 회식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놀랍죠?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사실입니다.

저 또한 기껏 치킨콜라 참아가며 조절하던 식단을 고작 회식에서 술붓자고 망가뜨리리가 너무 아쉽습니다.

L선생님, 직원을 배려하여 금요일 저녁에 회식을 잡고 직원이 부끄러워서 음주치 못하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 직원당 1병 이상씩 마셔야 회식을 종료한다고 선언하신 군자의 마음에는 정말 감사드립니다만, 세상에는 따뜻한 마음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것들이 있음을 주지하여 주셨으면 합니다.




이 글은 절대 다음 주 금요일 회식이 가기 싫어서 작성한 글이 아니며, 피지알 횐님들 모두 많은 회식 참석하시기를 앙원하겠습니다.

* 노틸러스님에 의해서 자유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21-06-08 18:15)
* 관리사유 : 좋은 글 감사합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딸기콩
20/07/04 12:53
수정 아이콘
하지만 회식이 소고기라면?
요슈아
20/07/04 13:07
수정 아이콘
고기만 먹어야죠.
전 술을 딱히 마다하지는 않지만 강제로 왕창 마시는 건 절대 사양입니다.
딱 내가 배부르면 안 마시고 싶다고!!
EPerShare
20/07/04 13:21
수정 아이콘
저는 회식가서 소고기 먹는 것보다 집 가서 닭가슴살 렌지 돌려 먹는 게 더 행복합니다. 회식 싫어요 ㅠㅠ
CarnitasMazesoba
20/07/04 14:25
수정 아이콘
술먹이는 상사랑 한우 암만 먹어봐야 다음날 되면 맛이 기억 안나더라고요
sway with me
20/07/04 16:55
수정 아이콘
L' 팀장님?
興盡悲來
20/07/04 13:11
수정 아이콘
회식이라는게 말 그대로 동상이몽이라... 누군가는 단순히 배를 채우기위해 가고, 누군가는 공짜로 취하러 가고, 누군가는 친목도모를 위해서 가고, 누군가는 평소 찍어둔 사람을 조지러 가고....
20/07/04 13:20
수정 아이콘
재미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먹기 싫은데 상사가 권하면 정말 너무 난감해요.
므라노
20/07/04 13:22
수정 아이콘
회식이 참 윗세대랑 현세대의 마음가짐의 차이를 보여주는게 아닌가 싶어요.
괴롭히는게 아니라 진심으로 단합을 위해서 단체로 주말에 등산에 끌고가거나 회식을 한다거나 하는 분들이 많아서..
EPerShare
20/07/04 13:31
수정 아이콘
본문의 선생님도 본래 의도는 '직원들은 회식을 좋아하니까, 회식을 금요일에 열어서 그간 노고를 치하해주자'는 의도였지 괴롭히려는 생각은 전혀 없었죠 ㅠㅠ
동굴곰
20/07/04 13:22
수정 아이콘
술은 좋아할수도 있죠. 이건 개인차니까.
하지만 상사와 함께 하는 술은 좀...
제가 진짜 아무리 먹어도 취하지 않았던 자리는 교수님이랑 마시는 자리였습...
지니팅커벨여행
20/07/04 13:34
수정 아이콘
저는 회식을 좋아합니다. 신입사원 때도 그랬고 중간으로 올라온 지금도요.
엄밀히 말하면,
1. 야근을 하지 않고 눈치 안 보고 나갈 수 있으니까
2. 평소에 잘 못 먹는 고기류를 먹을 수 있어서
3. 어릴 땐 총무로서 주도해서 내가 먹고 싶은 걸로
4. 지금은 중간급이라 위에서 먹자고 하는 음식이 마음에 안들면 반론 제기 가능해서
뭐 이런 이유들로 좋아하는 거죠.
물론 2차 3차로 가면 힘드니 그 이후는 별로고요, 1차에 한정된 겁니다.
EPerShare
20/07/04 13:37
수정 아이콘
제 주변에도 "공짜로 고기에 술 먹을 수 있는데 대체 어떻게 회식을 싫어함?"이라고 생각하는 친구들이 꽤 많더라고요. 그런 친구들은 또 대체로 사교적이고요.
Rorschach
20/07/04 13:40
수정 아이콘
뭐 그런데 회식 뿐만 아니라 다양한 영역에서 사람들은 본인 기준에서 생각을 많이 하죠.
단적인 예로, "남자들 끼리 모이면 원래 음담패설은 아무렇지도 않게 해", "남자들 끼리 모이면 쌍욕을 일상대화처럼 해" 이런거요. 저거 사실 그냥 본인( 및 본인 주변사람)이 그런거...
CarnitasMazesoba
20/07/04 14:26
수정 아이콘
고백으로 혼내주기의 원조격이죠 회식으로 혼내주기
시니스터
20/07/04 14:57
수정 아이콘
소주가 너무 싸서 취하기 위해 마시다보니 이런 일이 생기는 거죠. 소주 1병당 만오천원 이렇게 강제하면 회식에서 만취하는 일 사라질 겁니다. 희석식 소주를 증류식 소주 가격으로 팔기!
시니스터
20/07/04 14:58
수정 아이콘
이왕 회식 할 거면 비싼 술 좀 사주면 좋겠습니다 하다 못해 수성고량주만되도 좋겟다...아니지 하다못해라기에는 수성고량쥬는 넘 맛잇습니다
요기요
20/07/04 15:10
수정 아이콘
회식때 사적인 이런 저런 이야기 주고 받는 게 참 힘들고 피로하더군요. 제가 딱히 할 흥미로운 이야기도 없고..
그냥 빨리 집에 가고 싶은 것..
회식할 돈으로 직원들에게 치킨 무료 쿠폰이나 한장씩 줬으면..
20/07/04 15:10
수정 아이콘
회식이 너무 싫어서 회식없는 회사로 만들었는데 직원들이 회식 왜 안 하냐고 구박하더군요

사람 마음은 알 수가 없어...
醉翁之意不在酒
20/07/04 17:44
수정 아이콘
비용은 회사에서 내고 일찍 시작해서 일찍 끝나고 음식은 좋은거 먹고 술은 안먹는 회식을 선호하겠죠......
아마추어샌님
20/07/04 15:20
수정 아이콘
회식메뉴 정한뒤 인원제한 걸고 신청을 받은뒤(신청자 비공개) 뺑뺑이로 가면 좋지 않을까요.
사람들 의견 갈리는 사안을 통일시켜서 일을 진행해버려서 많은 사람들이 불편해지는거 아닌가 싶네요.
20/07/04 16:01
수정 아이콘
회사에 처음 들어가서 회식문화때문에 사표쓰고 싶었어요. 지금은 10년이 넘게 흘러서 문화도 많이 변했고, 무엇보다 제가 중간 위치라서 선택권도 어느 정도 있어서 회식 빈도가 많이 줄었습니다. 제가 회식 주도권을 쥘 수 있는 팀장 역할을 수행할 때에는 1년에 딱 2번 했어요. 정기인사 시즌 맞춰서 환영회/환송회 같이 하고 끝.
이런이런이런
20/07/04 16:45
수정 아이콘
술 못하는 체질이라...
유리한
20/07/04 17:37
수정 아이콘
저희는 회식 빠져도 되는데, 오히려 빠지면 사람들이 좋아해요. 흐흐
나머지 사람들이 더 좋은걸 많이 먹을 수 있게 되거든요.
유료도로당
20/07/04 17:42
수정 아이콘
(윗사람들이 꼰대 성향이 아니라는 전제하에) 공짜로 술과 고기를 먹는다는 이유로 좋아하는 인원들도 은근 많은게 함정입니다 크크
저도 싫어하진 않은데 술 강제로 먹이는 사람 하나만 있으면 진짜 극혐이에요. 요새는 짬이 차서 먹으라고 해도 안 먹지만요.
20/07/04 18:00
수정 아이콘
사람 탓이지 회식은 죄가 없습니다
자루스
20/07/04 18:31
수정 아이콘
회식이라는것 자체가 왜 있는지 생각해 보면 답은 뻔하지 않겠습니까?
고분자
20/07/04 18:39
수정 아이콘
위로드립니다. 전부 다 표면적인거고 실제로는 L 본인이 드시기를 원할지도 모르죠.
병장오지환
20/07/04 18:55
수정 아이콘
사실 이거같은데.. 크크 이유야 뭐 아무거나 들어도 되죠
20/07/04 19:06
수정 아이콘
좋아하는 사람도 많아요

강제로 권하거나 모셔야 하는게 짜증날뿐

공짜로 술과 고기 사주는데요 뭐

제가 다니는 곳은 불참 자유, 강권x 라

전 많이 했으면 크크

배불리먹고, 상사 술 멕이고

1차 빠르게 끝내고 마음 맞는 사람끼리 2차
EPerShare
20/07/04 20:31
수정 아이콘
윗댓글에 적었다시피 제 주변에도 공짜로 고기랑 술 먹는데 어떻게 싫어할 수가 있냐고 하는 사람이 꽤 있긴 합니다.
술팬더
20/07/04 19:41
수정 아이콘
결론: 밑에 직원이 술을 좋아해도 L과 마시는것보다 편한 사람들과 먹는걸 좋아한다.
20/07/04 20:27
수정 아이콘
그 동안 그 많은 모임, 회식을 하면서도 술 마시는게 너무 싫어 어떻게든 빠질 궁리만 한다는...
잉크부스
20/07/05 09:52
수정 아이콘
보통 회식비가 인당 얼마씩 할당되는데 저는 이가 모아서 일년에 회식 3번 정도 했습니다.
고정은 연말회식, 진급자 회식
나머지는 퇴사자나 입사자 회식

그러면 돈이 남아 돌아 숙성회 혹은 소고기를 양껏 먹고도 돈이 남습니다.
그럼 1차 회식끝나고 저 포함 꼰대들은 집에가고 젊은 친구들에게 법카 주고 2차가라고 하면 알아서 잘들 놀더군요.
가끔 자리에서 빠져준 꼰대들끼리 따로 2차가는 경우도 있는데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보통 집에들 들어갑니다.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3171 내가 가본 이세계들 (1) 브리타니아의 추억. [36] 라쇼16865 20/07/02 16865
3170 멋진 발상 [33] EPerShare16774 20/07/04 16774
3169 에어버스의 실패작(?) A380 [46] 우주전쟁19150 20/07/03 19150
3168 우리 오빠 이야기 [43] 달달한고양이17170 20/07/03 17170
3167 백종원씨도 울고가실지도 모르는 비빔냉면 레시피 대공개. 매우 쉬움. [24] Love&Hate23347 20/06/23 23347
3166 "8월의 폭풍"으로: 소련과 일본의 40년 충돌사-서문 [32] PKKA15047 20/06/19 15047
3165 한국형 전투기 KFX에 관한 소개 [79] 가라한18821 20/06/18 18821
3164 노래로 보는 2005년의 20대 - 이 정도만 잘했어도 좋았잖아요? [31] 비온날흙비린내14902 20/06/16 14902
3163 [검술] 검은 흉기, 검술은 살인술. 칼잡이 발도재 히무라 켄신의 검, 발도술 [69] 라쇼29823 20/06/14 29823
3162 [F1] 스포츠, 경쟁, 불균형, 공정성 - F1의 문제와 시도 [42] 항즐이15214 20/06/11 15214
3161 [콘솔] (스포일러)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 종합 비평 [75] RapidSilver23393 20/06/21 23393
3160 [개미사육기] 최강의 개미군단 -전편- (사진 있어요) [67] ArthurMorgan18171 20/06/10 18171
3159 연기(Acting)를 배우다 [3] 개롱17077 20/06/10 17077
3158 [LOL] 우지가 싸워왔던 길 [121] 신불해54437 20/06/04 54437
3157 [검술] 옛날 검객들은 어떻게 결투를 했을까? 비검 키리오토시(切落) [45] 라쇼35706 20/06/04 35706
3156 [개미사육기] 불꽃심장부족!! (사진 있어요) [67] ArthurMorgan26452 20/06/01 26452
3155 [일상글] 결혼하고 변해버린 남편 -게임편 [95] Hammuzzi34749 20/05/30 34749
3154 6개월 간의 정신건강의학과 경험담 [22] CoMbI COLa27166 20/05/30 27166
3153 게임 좋아하는게 뭐 어때서 [95] 뒹구르르24772 20/05/29 24772
3152 군대로 이해하는 미국의 간략한 현대사. [42] Farce34376 20/05/27 34376
3151 산넘어산 게임을 아시나요? [47] Love&Hate41198 20/05/20 41198
3150 불멸의 게이머, 기억하고 계십니까? [24] htz201529040 20/05/18 29040
3149 조립컴퓨터 견적을 내기위한 기초지식 - 컴린이를 벗어나보자 (CPU 램 메인보드편) [102] 트린다미어28904 20/05/13 28904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