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오빠와 나는 아슬아슬하게 띠가 돌 뻔한 11살 차이.
그래서 내가 어렸을 적 벌써 어른 같았던 우리 오빠의 방은 나에게 흥미진진한 미지의 세계였다.
아직도 어렴풋이 그려볼 수 있는 그 방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던 책장에는 책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는데, 호기심에 이것저것 들춰보던 것 중에 오성 이야기가 있었다.
(그래서 내가 이 마성의 만화를 알게 된 건 초등학생-그것도 아마 1학년 무렵이었을 것 같다. 얼마 전에도 오빠와 이 얘길 했는데, 오빠에게 13권부터는 모든 설정이 바뀐 느낌적인 느낌이지만 여전히 같은 만화로 연재 중이라는 걸 납득시키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는 -지금도 잘 이해할 수 없으니 그때야 뭐 오죽 했겠느냐 마는- 멋져 보이는 대사들과 인형 같은 미형의 캐릭터들이 빽빽한 설정 속에 살아있는 그 이상하고 어렵고 복잡한 책이, 어린 눈에도 너무나 멋져 보였다.
(그리고 갑자기 주인공이던 소프가 죽어서 -진짜 죽는 건 아니긴 했지만- 공룡에게 뜯어먹혀 버리는 장면에서 겪었던 충격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리고 내가 아주 좋아했던 책 중에는 얇은 두께의 게임 잡지들도 있었다. 거기엔 그 당시 발매 게임에 대한 자잘한 정보들-스토리와 캐릭터 소개, 필살기와 아이템에 관한 설명 등등-이 적혀있곤 했는데, 왜 그것들이 그렇게나 재미있게 읽혔었는지 모르겠다.
(언젠가 엑스맨 게임에 대한 내용을 읽은 적이 있는데, 그때 스톰의 캐릭터가 너무나 멋져서 -날씨를 조종한다니?!- 한동안 푹 빠져있었다)
아무튼 나는 오빠가 학교에 간 사이 몰래 오빠의 방에 들어가 이렇게 저렇게 뒤적뒤적 오빠의 책장을 기웃거리다 오빠가 돌아오기 전 티가 나지 않게 잘 정리해두곤 했는데,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오빠가 몰랐을 리가 없다.
하지만 오빠는 한 번도 나를 타박하지 않았다.
1.
나는 오빠를 무척이나 따랐다.
지금도 기억나는 단편들은, 오빠와 함께했던 팩을 꽂아서 하던 게임들(땅굴을 파 내려가며 돌을 피하거나 서부의 보안관이 되어 현상 수배범을 잡거나 펭귄이 신나게 남극대륙을 달려가던 그런 것들). 플로피디스크를 넣으면 한참이나 끼긱 끼긱 소리를 내던 컴퓨터로 마계촌이니 페르시아의 왕자니 삼국지 같은 걸 하고 있으면 내가 멍하니 지켜보던 일. 그리고 언젠가 내가 아무 생각 없이 뽑은 컴퓨터 전원 코드 때문에 오빠가 불같이 화를 내던 장면, 등등.
오빠가 집에서 무언가를 할 때면, 그 곁에는 열렬히 응원해주던 내가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때부터 난 무언가를 잘하는 누군가를 지켜보는 걸 아주 좋아했던 것 같다. 내가 중학생 때부터 게임 방송을 보고(그리고 커서 코엑스에 좋아하는 선수를 보러 달려가고), 해외 축구를 보는 것도 그 때문이겠지. 선배 언니들보단 오빠들이 더 편했고, 그래서 엄한 고백을 받곤 했던 일도 어쩌면 다 오빠 때문...?
암튼간에 조금만 더 우리 오빠 자랑을 해보자면, 우린 남매지만 좋은 건 다 오빠가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오빠는 진지한 그림도 잘 그리고, 요리도 아주 잘하고, 수학도 잘하고(!), 책임감도 강하다.
반면에 나는 어설프게 오빠를 닮았는지 진지한 그림을 그릴 끈기가 없어서 늘상 만화 같은 낙서나 끄적거리고, 요리에도 관심은 많지만 뭘 만들어도 똑같은 맛이 나고, 이과지만 수학적인 머리가 전혀 없어서 기를 쓰고 해봐도 결국 1등급은 한 번도 못 받아봤고, 어마어마하게 타인에게 무심하고 이기적이라 남을 챙기거나 책임지는 일은 질색이다.
그래서 항상 오빠는 나에게 존경과 동경의 대상이고, 절대적이고 완벽한 사람이다.
그리고 그래서, 나는 우리 오빠가 너무 좋다.
2.
어느 새벽의 일이, 아직도 생생하다.
나는 어째서인지 아직 밖이 캄캄한 때에 일어나야 했는데, 오빠가 현관 앞에 서 있었다.
[다녀올게, 진아]
내가 몇 살 무렵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그렇게 졸린 눈을 비비고 손을 흔들며, 군대에 가는 오빠를 배웅했다.
그 이후의 얼마간의 기억은, 굉장히 뒤죽박죽이다.
보통 내가 잠들어 있을 때 집에 오시던 엄마, 집에 가끔 오가던 누군지 잘 모르는 어떤 아저씨 (그러고 보니 비뚤게 자라 결국 교정을 해야 했던 내 앞니 중 하나를 그 아저씨가 땀을 뻘뻘 흘리며 뽑아주었다). 그 아저씨가 사줘서 한동안 매일같이 했던 슈퍼마리오 3. 그 언젠가 학교 가는 길에 게으름을 부리고 혼자서 콩벌레를 찾아 배회하던 일이나 숙제를 제대로 해오지 않거나 준비물을 빠뜨려서 선생님에게 혼이 난 일. 한때 유행이던 스티커북을 가지고 싶어서 엄마의 지갑에 손을 댄 일.
우중충하고 칙칙한 시간이었지.
시간이 지나 휴가를 나온 오빠가 날 꽉 안아주고, 보초를 서다가 수상한 기척에 바짝 긴장하고 총을 쏠 뻔했는데 노루였다, 와 같은 시시콜콜한 무용담(?)을 들었던 일도 기억이 난다.
그리고 오빠가 다시 군대에 복귀한 사이.
아버지가 나타났다.
태어나 처음 본 아버지는, 잠시동안 나를 ‘자기’의 집으로 데려갔다.
거기엔 친절하고 온화한 아주머니가 계셨고, 맛있는 밥을 차려주셨고, 나와 정답게 놀아주셨다.
그래서 나는, 거기에 살기로 했다.
그 일은 물 흐르듯이 착착 진행되어서 얼마 지나지 않아 열 살의 나는 새로운 곳으로 새로운 사람들과 살 게 되었다.
지금도 나는 잘 모르겠다.
왜 나의 친엄마는 나를 그렇게 쉽게 보냈을까.
그리고 난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결정을 내렸을까.
3.
오빠와 내가 터울이 크게 진 탓이, 철없던 아버지를 정신 차리게 한다고 한참이나 늦게 나를 가졌던 까닭이라고 들었다.
그러나 사람이 어디 변하겠는가.
아버지는, 우리와 친엄마에게 그랬듯이, 새엄마에게도 마찬가지로 무책임하고 나쁜 사람이었다.
그래서 내가 옮겨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집에는 나와 새엄마 만이 남았다.
그리고 내가 중학생 무렵, 오빠가 나를 만나러 왔다.
오빠는 나를 한참이나 안고서 아무 말이 없었는데, 철없던 나는 오랜만에 본 오빠가 마냥 반갑고 좋기만 했다.
하지만 그때 오빠의 마음이 어떠했을진 나는 지금도 짐작할 수조차 없다.
그 이후로도 오빠는 가끔씩 나를 만나러 와 주었다. 대학생이던 오빠는 여자친구도 생겼는데, 두 사람이 같이 왔을 때 더없이 반겨준 엄마에게 무척 감사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도 새언니-그때 그 여자친구-가 안방을 흔쾌히 내주시던 엄마가 너무 쿨하셔서 깜짝 놀랐다는 얘기를 하시곤 한다).
그리고 언제나 까마득하게 어른 같았던 오빠는, 내가 대학생이 될 무렵 조금씩 마음을 터놓기 시작했다.
내가 제일 깜짝 놀랐던 건 오빠가 나에게 항상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었는데 그 이유인즉슨, 자기가 어린 나에게 너무 엄했다는 거였다.
그러고 보니 오빠에게 혼났던 -몰래 사놓은 만화책을 들켜서 엄마 지갑에 손댄 일까지 밝혀지는 바람에 밤에 놀이터에서 뺑뺑이를 돌았던 (잊을만 하면 이 얘길 꺼내는 게 아무래도 이게 가장 미안했던 모양이다) 일 같은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나에게 오빠는 언제나 좋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나는 정말 괜찮다고 몇 번이나 말해줬다. 하지만 오빠는 -아마도 지금도- 마음에 응어리가 크게 진 것 같았다.
아버지가 없어서, 내가 그걸 해야 할 것 같아서.
그래서 그랬다고.
생각해보면 그때 오빠 나이가 많아봤자 스물 언저리다.
그런 나이에 그런 생각을 해야 했고 그것 때문에 지금도 미안해하는 그런 오빠인 거다, 우리 오빠는.
4.
오빠는 많은 것을 되돌리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내가 새로운 환경에서 가족을-엄마를- 만나 살아가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 간격은 마음만 가지고 메꿀 수 없을 만큼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내가 대학생이 된 그해에 친엄마를 -물론 우리 오빠의 노력으로- 십 년 만에 다시 만났는데, 거짓말같이 눈물은 나더라.
그러나 그것뿐이었다.
내가 닮았을지 모르는 그 안이함, 이기적인 성격이 듬뿍 묻어나는 친엄마의 모습은 내 마음을 차갑게 식게 만들었다.
아니, 무슨 엄마가 십 년 만에 만나 다 커버린 딸한테 남자친구가 생겼다는데 걔는 집안은 어떠니, 땅은 좀 있니, 이딴 소리를 하냐고, 참.
그리고 나는 참으로 싸가지가 없고 게으른 인간이라, 한번 닫아버린 마음을 다시 열기란 아주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난 친엄마와의 만남을 조금씩 줄여갔고 전화를 피했다.
그 와중에 새엄마 사이와의 무슨 삼류 드라마 같은 구질구질한 사연까지 얽혀서 친엄마는 나에게 없는 사람처럼 되어 버렸다.
하지만 그래도 오빠는, 항상 나의 소중한 우리 오빠였다.
5.
시간이 흘러,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게 되었다.
이 사람도 애지간히 부침이 있던 터라 가끔씩 놀라울 정도로 이성적이고 무던한데(덕분에 서러운 일도 참으로 많았었지...) 그 덕분인지 나름 복잡한 나의 가정사도 쿨하게 넘겨주었다. 그런 일들이 중요한 사람들에겐 또 한없이 중요하다던데(그리고 그런 남자에게 한번 크게 당한 적도 있었고), 지금도 너무나 감사한 일이다.
오빠에게 이 소식을 전했다.
오빠가 어려운 제안을 했다.
친엄마를 모시고 결혼식을 해 줄 수 있겠느냐고.
그러자 스무 살 초반쯤 오빠네 집에 놀러 가 밤새 맥주를 마시곤 할 때, 술에 잔뜩 취한 오빠가 나에게 했던 말이 생각이 났다.
오빠가 어떻게든 되돌린다고. 그래서, 네가 결혼할 때 서울 엄마, 춘천 엄마 두 분 다 모시고 식 올릴 수 있게 할 거라고.
나는 시간을 달라고 했다.
사실은 당장 대답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내 동생이지만 뭐 이런 게 다 있냐 싶어 할까 봐 한 말이었다.
그리고 전화로, 그건 안되겠다고 말했다.
오빠는 한참 말이 없다가 알겠다고, 괜찮다고 했다.
그리고 식 올리기 이틀 전에 전화가 왔다.
차마 못 가겠다고, 미안하다고.
그래서 나도 알겠다고, 괜찮다고 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신부 대기실에 앉아 있으면서 어언 십 년 만에 뵌 외할머니를 보고 눈물이 왈칵 쏟아질 뻔 했었는데, 만약 오빠나 새언니, 거기에 친엄마까지 나타났다면 어땠을지 아찔하기도 하다.
이렇게 생각하는 나도 정상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참.
6.
얼마 전, 세상에서 제일 귀여운 조카가 태어났다.
정말 힘들게 얻은 아이라 오빠와 새언니는 말 그대로 기쁨과 감격의 혼수상태에 빠져 있는데, 특히 우리 오빠가 그 정도로 딸바보가 될 줄은 몰랐다.
무슨 하루에도 사진을 오십 장 백 장을 보내고 있으니 아무리 귀여운 조카라도 싱싱한 리액션으로 받아주기가 벅차 오더라.
그런데 신기한 게 나는 아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도, 그 녀석은 사진만 봐도 웃음이 샐쭉 나온다.
오빠를 닮고, 새언니를 닮고, 그리고 솔직히 나도 많이 닮았다. 흐흐.
예전엔 오빠 집에 놀러가면 얘기 끝에 꼭 나 어렸을 적 오빠가 나를 키우던(?) 얘기를 꺼내곤 했는데 자기 분신이 태어난 이후론 그런 말이 일체 없다.
드디어 우리 오빠를 뺏긴건가 싶어 서운하기도 하지만 그러면서도 감사하다.
오빠가 그토록 꿈꿔왔던 평범한 가정을, 이제야 가지게 된 것 같아서.
걱정 한 점 없이, 나는 다만 오빠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사랑하는 우리 오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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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덧.
1. 단순히 파이브스타스토리 15권이 나와주셔서(...) 갑자기 또 오빠 생각이 나서 써버린 글입니다.
막상 적기 시작하다보니 글이 끊임없이 새나가는 걸 정리하느라 정신이 없긴 했는데, 기억나는 장면들이 참 많았네요.
역시 좋은 오빠였어 흐흐.
2. 그리고 뭔가 아련한 느낌이 들긴 하지만 오빠는 아주 잘 살아있습니다(?).
(요즘 행복해 죽어요. 드디어 내 딸이 천재인 것 같다를 시전하기 시작했습니다)
3. 역시 여동생과 오빠는 진리입니다 (터울이 크게 지면 여동생이 일방적으로 행복합니다 크크)
* 노틸러스님에 의해서 자유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21-06-08 18:13)
* 관리사유 :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