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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봐도 좋은 양질의 글들을 모아놓는 게시판입니다.
Date 2019/09/05 17:0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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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우리는 왜 안전한 먹거리를 먹을 수 없는가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두 강대국, 미국과 소련은 이제 우주를 선점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입니다.
전쟁을 통해 급격히 발달한 기술은 발사체를 쏘아올리는 것에서부터 사람이 직접 우주로 진출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을 요하지 않았습니다.
우주라는 전혀 다른 환경에서 사람이 활동하는데는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인류 역사와 함께해 온 고민거리. 바로 호구지책이었습니다.


물만 바뀌어도 배앓이를 하는 게 사람일진데, 우주에서 상한 음식이라도 먹는다면 ‘똥싸개’라는 별명을 얻는 정도로 끝날 일이 아니었습니다.
중요한 임무를 가지고 우주에 와서 물똥만 죽죽 싸다 탈진해버리면, 수천억을 써서 진행한 계획이 한순간에 똥이 될 수도 있는 일이니까요.
그래서 NASA는 생각합니다. ‘진짜 진짜 최고로 안전한 식품을 만들자.’

이런 생각으로 필스버리(Pillsbury)라는 회사에서 1959년 HACCP(위해요소중점관리기준)이 탄생하게 됩니다.
이론은 간단합니다. 식품 제조의 모든 공정을 분석하여 (Hazzard Analysis),
중요한 관리포인트 (Critical Control Point)를 찾아 집중적으로 조지면 안전한 식품을 만들 수 있다는 개념이지요.

그 간 변변한 관리툴이 없었던 식품업에 이 HACCP이라는 개념은 획기적이면서도 효과적인 것 이었습니다.
무려 우주인도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식품을 만드는 관리체계였으니까요.
이후 HACCP은 지속적으로 발전하여 일반 식품에도 적용되기 시작하였으며, 이는 세계로 퍼져 나가게 됩니다.

우리나라 또한 1995년 식품위생법에 위해요소중점관리기준에 대한 조항을 신설하며, 전격적으로 도입하게 됩니다.
무려 '미제'에 우주식 이라는 타이틀은 우리나라 관계자들이 동경하기에 충분했습니다.
그 어느 나라보다 빠르게 HACCP를 확산시켜, 2003년 어묵류 등 6개 품목에 대한 의무적용을 시작으로
김치, 과자, 빵류 등 가공식품 전반에 걸쳐 순차적으로 의무적용 되었으며,
`19년 6월 현재 식품관련업체 6,200여 개소, 축산물 관련업체 12,000개소 (가공, 유통은 물론 도축장, 사료제조까지
축산물은 모두 의무적용이라 보시면 됩니다.)가 HACCP을 도입, 시행하고 있습니다.


대단하지 않습니까?
그 우주인도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식품을 만든다는 HACCP 시스템으로 상당수의 식품, 대부분의 축산물이 제조/유통되고 있다니요.
이렇게 보면 우리나라는 그야말로 먹거리 청정지역이요 식품제조강국임에 틀림 없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는 크고 작은 식품 사고들을 뉴스로 접하고 있으며,
매년 수백명의 식중독 환자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뉴스 말미에는 꼭 이런 대목이 붙게 마련인데요…
“한편 해당 업체는 HACCP인증(정확한 표현은 ‘지정’입니다.)을 받은 업체임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사고가 발생하여
관계부처의 관리 부실이 도마 위에 오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글의 주제, HACCP라는 우수한 식품제조 관리체계를 광범위하게 의무적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안전한 먹거리를 먹을 수 없는가에 대해 살펴 볼 생각이 막 듭니다.

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2003년 6개 품목을 시작으로 HACCP 의무적용 품목은 지속적으로 늘어납니다.
예를 들어, 김치가 HACCP의무적용 품목이 되었다는 것은 HACCP을 받지 않은 공장은 김치 제조를 못한다는 뜻이고,
이는 대기업부터 영세업체까지 동일한 사안입니다.
물론 매출규모와 직원 수에 따라 순차적으로 적용되긴 하였으나, 시기의 문제일 뿐 결국은 모두 HACCP지정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초창기의 HACCP은 큰 돈이 드는 일이었습니다.
낙후된 공장은 뜯고 새로 짓는 것이 나을 만큼 높은 수준의 시설을 요구하였고,
미생물 분석실 정도는 따로 가지고 있어야 신청서라도 넣어 볼 수 있는 수준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당시의 HACCP은 미숙할 지언정 (혹은 미숙하였기에) 믿을 수 있는 시스템이었습니다.

하지만 금새 펜대를 굴리는 높은 사람들은 생각했을 겁니다.
‘야.. 이거 좋은데?, 좋은 거면 다 하게 만들면 엄청 엄청 좋은 거 아니야? 이걸 좋다고 권할게 아니라 전부 강제로 하게 만들자.’
이런 생각으로 HACCP의무적용품목을 늘려 나가고, 심지어 식약처는 각 지방청 별로 HACCP업체 숫자에 목표를 부여하기 시작합니다.
연간 지정 목표가 내려오고, 각 지방청은 어거지로 그 숫자를 맞추어 HACCP지정을 내리게 됩니다.

당연히 HACCP마크를 찍은 제품들은 늘어나고,
여기에 발맞추어 식약처에서는 적극적으로 홍보를 시작합니다.
차츰, 국민들도 HACCP을 알게 되고, 식약처는 점점 더 HACCP에 매달리게 됩니다.


별 문제가 없어 보이나, 여기에는 두 가지 큰 문제점이 있습니다.

먼저, HACCP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투자비를 모든 업체가 감당할 수 있는가 입니다.
물론 소규모 업체의 경우 지원금 제도를 운영하고 컨설팅도 지원 하는 등 여러 지원책을 썼으나,
근본적으로 HACCP공장은 돈이 많이 드는 공장이었습니다. 지원책은 얼마 안되어 한계를 보이게 됩니다.
의무적용품목은 HACCP지정을 받지 않으면 아에 제조/판매를 할수 없으므로,
HACCP기준을 충족하는 공장을 갖지 못한 영세업체는 원칙상 퇴출되어야 마땅합니다. 물론, 그게 가능 할 리 없겠지요.

여기서 ‘소규모 HACCP’이라는 이상한 제도를 만듭니다.
간단히 말해, ‘돈을 많이 들이지 않고, 절차도 간소하며, 관리포인트도 최소화 한 약식 HACCP’을 만든겁니다.
물론 소규모 업체에만 이 개념을 적용하게 됩니다.

식품쪽에 일해보면 [식품안전 = 사람 + 돈(시설, 원재료 등)] 라는 등식이 설립함을 알 수 있습니다.
반대로 말해 사람과 돈을 덜 투입하면 그만큼 식품은 덜 안전해진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소규모HACCP은 기존 HACCP수준의 안전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HACCP마크 어디에도 ‘소규모’라는 단어는 들어가지 않습니다.
소비자는 어떠한 제품이 소규모HACCP 공장에서 제조된 것인지 알 수 없고, HACCP의 수준은 그렇게 하락하게 됩니다.


두 번째 문제는, ‘그렇다면 HACCP수준의 관리가 이루어지지 않는 업체를 퇴출할 수 있는가?’ 에 대한 문제입니다.
어찌 보면 첫 번째 문제와 연결되어 있는 사안입니다만…
HACCP은 높은 수준의 관리체계인 만큼 최초 지정 시 하루 종일 평가를 받습니다. (소규모의 경우 반나절 정도)
그리고 매 년 지정평가 수준의 사후평가도 받게 됩니다.
HACCP을 하게 되면 관련 서류만 해도 30여가지를 훌쩍 넘기에 서류와 현장을 넘나들며 그야말로 하루 종일 평가를 받는데,
그 수준이 보통의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 보다 훨씬 꼼꼼하고, 체계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정 취소는 거의 (라고 쓰고 ‘전혀’라고  읽습니다.) 없습니다.

물론 통계상으로는 매년 몇 개의 업체가 HACCP지정 취소를 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숫자의 착시현상일 뿐 영업자가 영업을 계속하기를 희망하는 한 HACCP 지정 취소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매년 HACCP지정 취소가 발생하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로 자진 폐업하는 업체 때문일 뿐입니다.

HACCP지정 취소는 곧 해당 업체의 종말을 의미하고,
우리 사회는 ‘이정도의 일’로  ‘남의 밥줄을 끊는 것’을 용인하지 않는 사회입니다.
‘그깟 위생’ 좀 안지켰다고 회사를 망하게 만든다면, 그 후폭풍을 감당하기 힘들 것입니다.
그것을 알기에 식약처는 HACCP지정취소를 내리지 않습니다.

간단히 말해, 수준 이하의 업체에서 만드는 식품에도 HACCP마크는 찍혀서 우리에게 판매된다는 뜻입니다.

비단 HACCP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닙니다. 식품업 전반에 있어 위반사항에 대한 행정처분은 너무도 미미한 수준입니다.
우리는, 여러 방면에 걸쳐 우수한 관리체계를 가지고 있지만, 단호한 징벌 문화는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1번 라인에서 만든 식품에서 외계인사체가 나와도 2번 라인에서는 계속 제품을 생산하고,
심각한 법령위반으로 인한 영업정지 처분도 과태료로 갈음 할 수 있는 환경에서

우리는 과연 안전한 먹거리를 지켜낼 수 있을까요?


* 노틸러스님에 의해서 자유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9-12-06 16:00)
* 관리사유 :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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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placency
19/09/05 17:17
수정 아이콘
HACCP 지정되었다고 그렇게 깨끗한 것도 아니다라는 말을 얼핏 들은 적이 있었는데 이런 속사정이 있었군요..
야다시말해봐
19/09/05 17:26
수정 아이콘
한국형 HACCP
19/09/05 17:37
수정 아이콘
그런데 이런 생각도 들긴해요
엄격한 기준의 돈이 많이 드는 햇삽을 유지하고 확대하는것도 방법이긴 하겠지만
이건 현실적으로 대기업 아니면 접근이 불가능하니 시장에 위험한 식품들을 방치하게 되고
기준을 낮추는 대신 시장 전체적인 위생 퀄리티를 높히는 측면으로 접근하여 원래의 목표보다는 낮지만
전체의 기준을 높혀주는 효과는 있다고 생각해서요
19/09/05 17:51
수정 아이콘
옳으신 말씀입니다만, 결국 이렇게 되면 HACCP은 점점 느슨해지게 될 겁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광범위한 의무적용이 아닌, HACCP은 자율 적용으로 그 수준을 유지하고
작은 업체들의 도입을 유도하는게 옳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HACCP을 광고하면 소비자의 손은 그쪽으로 쏠릴테고,
구태여 강제하지 않아도 HACCP을 도입할테니까요.
답이머얌
19/09/06 12:26
수정 아이콘
이게 올바른 정책이죠.

다만 소비자 입장에서 '비싼 가격을 지불한만큼 haccp식품은 신뢰성이 있다.'라는 신뢰가 전제되어야겠지요.

제 입장에선 아직은 haccp마크보다 브랜드가 더 가깝고 신뢰성있게 느껴져서요.

과거 그리고 현재에도 어느 정도 유행하는 유기농, 모농약 식품처럼 haccp는 값만 비싸고 믿을수 없는 표시로 인식되기보다는 차라리 엄격한 기준으로 시장을 이원화(haccp, 비haccp) 하는게 효율적이라 봅니다.

비근한 예로 한참 유행했던 국제표준ISO가 결국 인증기관 장사로 요즘은 솔직히 별볼일 없게 느껴지죠.
19/09/05 17:40
수정 아이콘
행정과 절차, 집행과 비용이라는 측면에서 이런 HACCP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군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정말 원하시고 싶은 말씀이 무엇인지 쉽게 와닿는 좋은 글입니다!
홍승식
19/09/05 17:46
수정 아이콘
All is Nothing 이라는 문구가 생각납니다.
우수업체에게 줘야 하는 기준을 전체업체에 적용하면 그건 우수업체 기준이 아닌거죠.
기사조련가
19/09/05 17:50
수정 아이콘
좋은 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몰랐던 분야인데 배웠네요. 우지파동(우지라면이 끌맛이라던데...)부터 쓰레기만두까지 우리는 먹거리에 장난치는거에 매우 민감한데 정작 그 안전한 먹거리를 만들어주는 제도를 제대로 활용을 못하네요.
카미트리아
19/09/05 18:05
수정 아이콘
우지 파동도 쓰레기만두도 실체는 별거 아닌
언론의 장난질이 더 컸다는 것도 또하나의 문제죠...

장난친 업체가 죽고 잘한 업체는 살아야하는데..
걍 다죽는 결과였으니까요
기사조련가
19/09/05 18:06
수정 아이콘
만두파동때도 만두는 실컷 먹음 크크
답이머얌
19/09/06 12:27
수정 아이콘
우지나 쓰레기만두나 모두 먹을거 가지고 장난친게 아니고 무식한 기레기들의 설레발로 유명한 사건 아닌가요? 추가하면 포르말린 통조림도...
기사조련가
19/09/06 13:20
수정 아이콘
알죠 크크 유명한 사건 나열한거에요
켈로그김
19/09/05 17:53
수정 아이콘
해썹, GMP를 진행해본 입장에서
이건 책상놀음이지 실무에서 지켜지기 힘들다는 확신을 했습니다.
기사조련가
19/09/05 18:10
수정 아이콘
오늘도 닉값을....크크
jjohny=쿠마
20/01/10 15:45
수정 아이콘
책상...놀음...이군요!
페스티
19/09/05 17:53
수정 아이콘
어쩐지 갑자기 하나부터 열까지 HACCP 붙어있더라니
Je ne sais quoi
19/09/05 17:54
수정 아이콘
어쩐지 언제부턴가 저 마크를 어디서나 볼 수 있었는데 이런 이유가 있었군요
네파리안
19/09/05 17:55
수정 아이콘
개인적으로 다이어트하겠다고 건강관련 서적 읽다보면 우리나라도 미국처럼 분류체계가 확실했으면 좋겠다 싶기는 하더군요.
초짜장
19/09/05 17:57
수정 아이콘
등급을 나눴으면 그걸 확실히 구분해서 표기하도록 하는게 필요하지 않을까요.
19/09/05 18:00
수정 아이콘
이게 바로 한국형(KOREA)이었군요..
진솔사랑
19/09/05 19:30
수정 아이콘
리얼 한국형(KOREA) 인증...
봉그리
19/09/05 19:59
수정 아이콘
한국(KOREA)형입니다.
19/09/05 20:15
수정 아이콘
아 이게 원조였군요. 평소 그냥 스킵하다보니... 실수했습니다.
19/09/05 18:19
수정 아이콘
일반 산업분야도 대부분 검사비용만 지불하면 인증은 거의 패스되더군요. 과연 철저한 안전을 위한 인증인지 돈을 벌기위한 인증인지 의문이긴 합니다.
성야무인
19/09/05 19:50
수정 아이콘
이거 하나는 확실합니다. 한국하고 비슷한 수준의 나라에 가서 비슷한 가격의 음식을(예를 들면 소고기) 먹었을때의 한국보다 휠씬 만족도가 높습니다. 맛은 맛이거니와 확실히 육류 및 채소의 품질이 다릅니다. 왜 그럴까요???
Dear Again
19/09/05 21:36
수정 아이콘
한국은 지리적(사실상 섬나라, 산지가 많음) 특성상 농산물, 축산물의 단가가 비싸죠...
비슷한 수준의 싱가폴에서 같은 가격으로 먹으면 한국이 낫지 않을까요
강미나
19/09/05 23:29
수정 아이콘
경제수준에 비해 한국의 1차산업이 엄청나게 낙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 소규모 자영농이라 효율은 바닥인데 딱히 답이 없죠.
방법론으로만 보자면 육류, 채소 품질 올리는 가장 쉬운 방법은 지방의 소규모 자영농 싹 밀어버리고 분야별 거대 기업농으로 통합하면 됩니다.
새강이
19/09/05 22:49
수정 아이콘
좋은 글 감사합니다 많이 배우고 갑니다
잠이온다
19/09/05 23:39
수정 아이콘
개인적으로는, 비용없이 안전하고 좋은 물품을 먹고싶다는 욕망이 문제의 근본 아닐까요? 사실 비용없이 뭐가 나올 수는 없고, 안전도 마찬가지죠. 돈없으면 더 건강하지 않고 위험한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불편한 진실을 똑바로 보기 어렵잖아요.
파맛첵스
20/01/14 10:10
수정 아이콘
비용이냐 안전이냐의 문제네요.
미카엘
20/01/23 17:35
수정 아이콘
좋은 글 감사합니다
푸구루죽죽
20/01/28 17:25
수정 아이콘
결국 국가가 문제.
식품 뿐만 아니라 상당한 문제들이 사실은 다 국가의 관리 문제로 귀결되죠.
국민정서상 '밥벌이'가 무엇보다 신성시 되는 한 없어지지 않을 현상 같습니다.
사실 아직까지도 지적 수준은 여전히 미개한 국가인거죠
박진호
20/02/03 11:45
수정 아이콘
안전이라는 기준이 참 애매하고 어렵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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