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다시봐도 좋은 양질의 글들을 모아놓는 게시판입니다.
Date 2018/06/11 23:05:27
Name 신불해
Subject 원나라 패망하자 수많은 문인 관료들이 자결하여 충절을 지키다 (수정됨)




보통 몽골 제국이 세운 원나라의 중국 통치기에 대해 대중적인 인식은 '식민지' 라는 인상입니다. 몽골인들이 중국을 정복한 뒤 절대다수인 중국인을 노예처럼 부리며 살았고, 한족들의 불만은 쌓이고 쌓여서 나중에 원나라가 무너질때 보면, 여러 한족 봉기군이 민족적 감정을 내세우며 반몽감정을 주원동력으로 몽골인들을 몰아냈다는 식입니다. 




일례로 주원장은 북벌에 나서면서 "자격이 없는 오랑캐가 백년간 중국을 정복했다. 분하고 한스럽다. 모조리 토벌하여 분함을 갚자" 대략 이 정도 내용의 포고문을 내세우며 북벌을 나서기도 했습니다(재밌는 건, 이것은 '포고문' 이고, 주원장이 신하들에게 개인적으로 이런 부분을 언급할때는 원나라 황족을 사로잡으면 꼭 보호해줘야 한다거나, 원나라가 지난 100년간 중국의 분명한 주인이었다거나 하는 말은 했다는 점입니다. 아마 저 포고문은 주원장 본인의 실제 생각이라기보다, 일종의 선전문에 가까워 보입니다). 그렇게 보면, 몽골인과 중국인 사이의 식민 지배성 통치에 대한 분열과 갈등이 아예 없지는 않았을 수 있습니다.





한데 그렇다고 해서 이 당시 원나라의 중국 지배를 마치 일제 강점기 같은 느낌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좀 어려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원나라가 백여년간 중국을 지배할 적에는, 정사초(鄭思肖) 처럼 극단적인 반몽, 반원 감정을 보인 문인도 있었긴 합니다. 반면에 원나라 조정에 출사하거나 원나라 조정에 동조하여 충성을 바친 문인, 관료들도 적지 않습니다. 그 중에서는 물론 몽골인 문인, 몽골인 관료, 서역계 관료도 있으나 한족 문인들의 숫자도 상당합니다.




명사나 원사 등에서는 이런 사람들을 따로 다뤄부고 있는데 살펴 보면...





1. 백안자중(伯顔子中)은 선조가 서역 출신 이민족이었는데, 백안자중 본인의 대에 이르러서는 완전히 중국에 동화되어 강서에 자리를 잡은 문인이 되었습니다. 원나라가 멸망할 무렵 백성들을 모아 진우량과 대항하기도 했으며, 주원장이 장수 요영충(廖永忠)을 보내 백안자중을 잡으려 하자 말을 타고 도망치다가 떨어져 다리가 부러져서 잡혔습니다. 요영충은 백안자중에게 항복을 권했지만, 백안자중이 끝내 받아들이지 앉자. "이 사람은 의로운 사람이다." 라고 포기하고 물러났습니다.




주원장은 백안자중을 탐내 그 가족들의 생업도 주원장 본인이 책임지고 보호해주면서 회유하려 했으나 백안자중은 끝내 듣지 않았고, 오랜 세월 강호를 여행하면서 지냈습니다. 시간이 지나 고향에 돌아와 지내고 있으려니 다시 한번 회유 하려는 움직이 있었지만, 백안자중은 "내가 너무 오래 살아버렸구나." 하고 한숨을 내쉬면서 자살해버렸다고 합니다.





2. 원나라의 총관 근의는 주원장이 태평을 공격하여 함락하자, 주원장에 맞서 싸우다가 전세가 불리해지는것을 보고 물에 몸을 던져 자살했습니다. 태평을 함락한 주원장은 근의의 시신을 수습하여 의로운 인물이라고 칭송하면서 장사를 지냈습니다.





3. 원나라의 행사어사대부 복수는 주원장의 군대가 집경(남경)을 공격하자, 도망을 치자는 주위의 충고도 뿌리치고 끝까지 일선에서 병사들과 함께 화살을 쏘며 분전하다가 전사했습니다.




4. 주원장의 군대가 영국을 함락하자 영국에 있던 백호 장문귀는 가족을 모두 죽이고 본인도 자살했습니다.




5. 명나라의 부대가 북벌하여 원나라의 익도(益都) 등을 함락시킬 때도 수 많은 사람들이 절개를 지키려 자살하거나 달아났습니다. 평장 보안불화가 끝까지 맞서 싸우다 죽었고, 평장 신영이 스스로 목을 메서 죽었으며, 다루가치 삽납석창은 이후에 수도가 함락되었다는 말을 듣자 조복을 입고 성 위로 올라가 북쪽을 향해 절 한뒤 투신 자살했습니다.




6. 경원이 함락되자 상가실리라는 사람은 처자식과 함께 모두 절벽에서 집단 투신 자살했으며, 좌승은 종남산에 들어가 은거했습니다. 낭중 왕가는 약을 먹고 자살했습니다.




7. 삼원현윤 주춘은 아내에게 "나는 나라를 위해 죽어 보은함이 마땅하다." 고 했고, 그 부인은 "남편이 충성을 지키는데 소실이라고 어찌 절개를 지키지 않겠습니까." 라고 말하며 부부가 동반 자살했습니다.





8. 우승 등조승은 영주 지역을 필사적으로 지켰으나 군량이 다 떨어지자 약을 먹고 자살했습니다.




9. 오주가 함락되자 장고가 물어 뛰어들어 자살했습니다.




10. 정강이 함락되자 그곳을 지키던 조원룡, 진유, 유영석, 첩목아불화, 원독만, 동축한, 조세걸 등은 모두 자살했습니다.




11. 강서 사람 유심은 명망이 높아 명옥진이 초빙 했으나 거절했고, 명옥진이 결국 촉을 장악하자 관직을 버리고 은거했습니다.




12. 장사성이 평강을 공격하자 참군 양춘은 끝까지 결사적으로 싸우다가 결국 가슴에 칼을 맞아 죽었는데, 그 순간마저도 눈을 부릎뜨고 장사성을 욕하다 죽었습니다. 뒤이어 부인도 자살했습니다.




13. 장사성이 전 자사원외랑 양승을 초빙하자 양승은 "내 인생, 오랫동안 절개를 지켰으니 이제 충분하지 않은가!" 라고 말한 뒤에 밤중에 목을 메 자살했습니다.




14. 진우정은 문인은 아니고 글을 모르던 농부 출신이었으나, 원나라가 위기에 처해지자 자신을 따르는 품삯꾼 노동자 5명과 함께 일어나 의병을 조직하여 나라를 위해 싸우고 복건 지역을 장악한 뒤, 원나라 순제에 수차례 식량을 원조했습니다. 이후 주원장과 싸우다 전세가 불리해지자 북쪽을 향해 두 번 절한 후 독약을 먹고 자살을 시도했습니다. 성내에 입성한 명나라 병사들에 의해 목숨이 살아나 주원장과 만나게 되자, "나라가 망했는데 더 살아서 무엇하겠는가" 라고 일갈하고는 아들과 함께 사형당했습니다.




15. 원나라 총관 왕한은 원나라가 패망하자 태산 깊숙한 곳으로 도망쳐 10년을 야인으로 살았습니다. 주원장이 그를 초빙하여 억지로 벼슬을 맡기자, 스스로 목을 베어 자결했습니다.





이외에도 언급하지 않은 지사들의 행적이 굉장히 많습니다. 오죽하면 심지어 명사에서도 이르기를,




원나라가 무너질 때, 절개를 지키며 나라의 땅을 지키려다 죽은 사람들이 많았다(當元亡時,守土臣仗節死者甚眾)




고 할 정도이니, 이런 사람들의 숫자가 상당히 많았다고 알 수 있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저런 원나라의 지사들 중에는 몽골인도 있지만, 한족들이 많고, 백안자중처럼 설사 본래의 피는 이민족 계통이었다고 해도 이미 저 당시에 마인드는 전형적인 한족 문인이었던 사람도 있습니다. 현대의 민족적 개념으로 보자면 '민족 배신자' '한간' 이라고 하겠지만 저 당시 사람들에게 그러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죠.




명나라를 건국한 주원장 역시 원나라를 위해 싸우다 죽은 사람들을 무슨 부역자거나 그런 식으로 공격하지 않았고, 오히려 끝까지 충정을 지키다 싸웠다면서 시신을 수습해 장사를 지내주거나, 은거한 사람들을 탐내 어떻게든 등용하려는 모습 역시 자주 보였습니다. 더군다나, '이미 명나라에 충성을 모두 다 바치고 있는데 딴마음을 품은, 내통의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 이 아닌, 본래 원나라의 녹을 먹던 관리였는데 일단 명나라에 항복은 했지만, 원나라를 끝까지 따르고 싶다' 는 사람들은 자유롭게 북으로 갈 수 있게 허락했습니다.




이 무렵 태조는 항복한 자들이 북으로 돌아가는 것을 방관하고 내버려 두었다(會太祖縱降人北還)




즉 옛 주인에 대한 충절을 지키고 싶으면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물론 지금의 재물과 권세를 포기하고 초원으로 고생길을 자처할 정도의 배짱이 있는 사람이라면 말입니다. 물론 당연한 소리지만 명나라의 벼슬직을 하고 있는데 원나라에 대해 충절을 공공연하게 말하는 사람은 '내통자' 로 처벌하여 사형에 처하긴 했습니다. 





어떤 나라가 어떤 나라를 한동안 점령하다가 물러나곤 했을때, 보통 이런 부분에 대해 자주 나오는 말이 "어느 나라 역사냐" 라는 말이고, 특히나 원나라는 이런 말이 가장 많이 나오는 주제 중에 하나입니다. 중국사 관련 질문 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많이 본 말 중에 하나가 "원나라는 어느 나라 역사인가요." 라는 말이기도 하구요.




원나라는 몽골 제국의 역사 중 하나입니다. 그건 확실합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중국의 역사가 아닌가' 라고 하면 중국 땅이라는 공간과 시간 속에 존재하던 역사이니 아니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중국 민족이 몽골인들에게 지배당하고 굴종당한 역사다' 라고 할 수도 있지만, 민족보다도 문명 그 자체에 근간을 둔 한인 관료들은 당시의 원나라를 중국의 왕조 중 하나로 여기고 유교적 관념에 따라 충성을 바쳐야 할 대상으로 보았습니다.  주원장을 비롯한 농민 봉기군의 주요 상대는, 원나라 정부의 몽골군보다 오히려 이런 '원나라에 충성하는 한인 지주들' 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




이게....어느 한 국가적 공동체 집단이 과거로부터 이어지는 역사 및 국가에 대해 자신들의 정통성을 찾고, 그 의식을 꾸준히 이어 내려와 근간으로 삼는것 자체는 분명 무시할 수 없고 실제적인 '현상'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데,



적어도 그 당시의 실제적 상황을 살펴보는데 있어서는, 그런식의 사고방식으로 살펴보는게 별로 도움이 안되더군요. 그냥 '역사는 역사다.' 라고 할까요. 어느 순간부터 그런 점을 느끼다보니, 그런 식의 화제나 질문 자체도 거의 듣는둥 마는둥 하고 별 관심도 안생기고.


* 라벤더님에 의해서 자유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8-09-07 17:54)
* 관리사유 : 좋은 글 감사합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18/06/11 23:09
수정 아이콘
신불해님 글은 일단 추천 후 정독
18/06/11 23:16
수정 아이콘
믿고보는 신불해님글 선추천 후감상 합니다
항상 좋은글 감사합니다
18/06/11 23:22
수정 아이콘
마지막 두 문단 엄청 공감가네요.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폰독수리
18/06/11 23:37
수정 아이콘
고등학교 때 배웠던 E.H 카와 랑케가 생각나네요. 잘 읽었습니다.
18/06/11 23:50
수정 아이콘
뭐 계백 장군이 백제를 위해 충절을 바친 것은 멋진 일이지만 그렇다고 현대의 전라도민이나 충청도민이 백제 부흥운동을 펼치면 좀 이상하죠. 의리는 어디까지나 내 부모도 자식도 아닌 내 당대의 일인 것 같아요.
신의와배신
18/06/12 00:04
수정 아이콘
신불해님 글은 일단 추천 후 정독
bemanner
18/06/12 00:09
수정 아이콘
관료는 '나를 알아주는 자'를 위해 죽는게 충이고
백성은 사회를 바로 세우는게 의 아닌가 싶습니다.
18/06/12 00:24
수정 아이콘
악마와 괴물들이 아니라 역시나 사람이 세운 정권이고 어떤 사람은 그 곳에서만 가치를 찾을 수 있었다는 것을...
사랑기쁨평화
18/06/12 01:06
수정 아이콘
이런거 보면 남자야 말로 로맨스의 화신들 같아요.
Lord Be Goja
18/06/12 01:45
수정 아이콘
(수정됨) 이 당시의 충이라는 개념은 아브라함계열 종교의 신에 대한 믿음과 유사한 가치라고 봐야할거 같아요.
-안군-
18/06/12 09:01
수정 아이콘
글쓴이 안 보고 읽어도 신불해님 글이라는 걸 바로 알겠습니드. 추천추천
18/06/12 12:53
수정 아이콘
글을 읽고 나니 1945년에 일본 패망 후 일본으로 같이 넘어간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궁금해지네요. 시대가 다르니 자결한 사람은 드물겠지만요.
전자수도승
18/06/12 21:37
수정 아이콘
패망할 때보다 천황이 후줄근하게 입고와시 맥아더와 사진 찍으며 인간선언 할 때 더 많이 자결했을겁니다
蛇福不言
18/06/16 09:58
수정 아이콘
신불해님 글 좀 자주 올려주세요. ^^
킬리언 머피
18/09/08 10:36
수정 아이콘
신불해님 가둬놓고 글만 쓰게 하고 싶습니다! 물론 농답입니다, 더 자주 써주세요
어제의눈물
18/09/16 13:14
수정 아이콘
좋은 글 감사합니다.
저도 마지막 감상에 동감합니다. 역사를 통해 그 시대를 이해하려한다는 것이 때로는 무척 힘든 경우들이 있어요.
18/09/17 11:00
수정 아이콘
빌어먹을 사이트 맨날 벌점먹고 탈퇴하지만 꾸준히 들어오는건 오직 신불해님 덕입니다
글 자주 올려주세요!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3399 [NBA] 현대 농구의 역사적인 오늘 [27] 라울리스타4058 21/12/15 4058
3398 그들은 왜 대면예배를 포기하지 못하는가 (1) [75] 계층방정7446 21/12/13 7446
3397 위스키 도대체 너 몇 살이냐 [부제] Whiskey Odd-It-Say. 3rd Try [40] singularian3155 21/12/11 3155
3396 수컷 공작새 깃털의 진화 전략 [19] cheme4007 21/12/10 4007
3395 가볍게 쓰려다가 살짝 길어진 MCU 타임라인 풀어쓰기 [44] 은하관제4399 21/12/07 4399
3394 고인물들이 봉인구를 해제하면 무슨일이 벌어지는가? [66] 캬라10286 21/12/06 10286
3393 [역사] 북촌한옥마을은 100년도 안되었다?! / 한옥의 역사 [9] Fig.14285 21/12/06 4285
3392 굳건함. [9] 가브라멜렉3587 21/12/02 3587
3391 로마군의 아프가니스탄: 게르마니아 원정 [57] Farce4399 21/12/01 4399
3390 올해 국립공원 스탬프 마무리 [20] 영혼의공원4071 21/11/29 4071
3389 꽤 행복한 일요일 오후였다. [15] Red Key3797 21/11/23 3797
3388 [도시이야기] 경기도 수원시 - (3) [12] 라울리스타3310 21/11/16 3310
3387 신파영화로 보는 기성세대의 '한'과 젊은세대의 '자괴감' [23] 알콜프리4992 21/11/15 4992
3386 <1984 최동원> 감상 후기 [23] 일신5265 21/11/14 5265
3385 김밥 먹고 싶다는데 고구마 사온 남편 [69] 담담11322 21/11/11 11322
3384 [스포] "남부군" (1990), 당황스럽고 처절한 영화 [55] Farce4097 21/11/10 4097
3383 나의 면심(麵心) - 막국수 이야기 [24] singularian3356 21/11/05 3356
3382 신해철, '해'에게서 '소년'에게 (1) [26] 글곰3979 21/11/03 3979
3381 일본 중의원 선거에 관련된 몇 가지 이야기들 [78] 이그나티우스6785 21/11/03 6785
3380 [NBA] 영광의 시대는? 난 지금입니다 [28] 라울리스타6561 21/10/22 6561
3379 [도로 여행기] 대한민국에서 가장 높이 올라가는 도로, 만항재와 두문동재 [19] giants4766 21/10/30 4766
3378 [역사] 이게 티셔츠의 역사야? 속옷의 역사야? / 티셔츠의 역사 [15] Fig.13761 21/10/27 3761
3377 우리가 이곳에 있는 이유는 우리가 이곳에 있는 이유는 우리가 [12] Farce3575 21/10/24 3575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