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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봐도 좋은 양질의 글들을 모아놓는 게시판입니다.
Date 2009/09/24 00:41:09
Name 네로울프
Subject (09)가을 전어 굽는 냄새에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온다.
가을 전어.
전어 머리엔 깨가 서말.
전어굽는 냄새에 집나간 며느리도 돌아온다.

사실 그리 귀하지 않은 이 생선이 몇 년 전부터인가
가을 대표 맛의 하나로 정착되어가는 것 같다.

비리지도 않고 뼈째 오독오독 씹어가면 고소한 맛이
베어드는게, 저도 모르게 슬며시 옷 깃을 여미기
시작하는 가을 밤에 시린 소주 한 잔 기울이면서
함께 하기엔 참 마맞은 안주거리다.

가을 전어 이야기가 나오면 실타래 엮여오듯이
따라오는 말 가운데 하나가
'전어 굽는 냄새에 집나간 며느리도 돌아온다.'는
우스개다.

저 말을 들을 때 마다 왠지 그 묘한 뉘앙스에
슬며시 웃으면서도 입꼬리 끝에 또 묘한 애잔함이
걸린다.

이러지 않았을까?

바닷가 어촌 마을 삶이란게 참 고단하고 비루하다.
제법 배 척이나 가진 몇몇을 제하고는 그저 바다에
몸뚱이 하나 걸고 벌어먹는게 다반사일 것을..

더구나 늦봄부터 여름 내내 가장 팍팍한 것이
바닷가 생활이다. 외려 따뜻한 날씨에 가장 잡히는
고기가 적고 그나마 잡히는 것들도 살은 무르고
속은 텅텅 빈다. 여름 고기나 해산물이 대부분
그렇다.

거기에 미역을 메거나, 김을 메거나, 늦봄부터
여름 내내는 그저 고된 일거리 뿐이다.
돈푼 되는 것은 언감생심. 그저 늦가을이나 돼야
알이 차고, 살이 단단해지고, 잎이 길어지는게
바다 농사다.  

바닷가 어촌 마을에 시집 온 며느리는
참 얼마나 고되었을까.
새벽 배 나가는 남편 바라지에,
한낮은 내내 갯벌에, 양식밭에 허리 한 번
펼 일이 있었을까.
평생을 그리 살아온 까맣고 골 깊은 시어미
얼골을 보고 있으면 그게 이제 제 모습일 것을.

저리는 못살지.
저리는 안살지.

새벽 이슬 밟아 보퉁이 하나 끌어안고
파도소리 안들리는 곳 까지 도망해도
뉘 탓할 일 아니다.


팍팍하고 고단한 여름이 지나 가을 바람이 일면
첫 잡히는 고기가 전어다.
무지막지 잡히는 것이 전어다.
그물로 쓸어담듯 잡는 것이 전어다.
망태로 지고, 또 지고, 아침부터 해질녘까지
지고 나르는 것이 또 전어다.

그예 손바닥 만 하고, 그리 값을 쳐주지도 않지만
저리 가득 잡혀주니 그제야 바다 마을에 주름이
조금 편다. 그제야 손에 돈푼이나마 잡힌다.
이제 부터는 큰 고기 떼도 올라오고 미역에 김에
거둬들이는게 많아진다.

이제사 파도소리에 노랫소리도 섞여오고
술 내음도 골목 골목 바람따라 흐른다.

밑이 허는 가난에, 뼈 마디 잡히는 노동에
돈 잡히는 재미도 없어, 집을 나갔던 며느리도
이 무렵에야 그나마 살 수 있겠구나 싶어서
돌아오는 걸게다.
전어 굽는 냄새 따라 다시 바다에 기대 살아
봐야겠구나 싶어 돌아오는 걸게다.

그래서 그런 말이 생긴걸게다.
전어 굽는 냄새에 집나간 며느리도 돌아온다고.

화덕에 노릇노릇 익어가는 전어를 볼 때 마다
그래서 애잔하고, 그래서 또 흐뭇하다.




                                        ..zzt



* OrBef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1-10-21 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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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영
09/09/24 00:46
수정 아이콘
이거 경험적으로도 증명된 얘기인가요? 실제로 며느리가 돌아왔나.....
Rocky_maivia
09/09/24 00:48
수정 아이콘
이거 케이블티비에서 정말로 실험했던 적이....
09/09/24 00:50
수정 아이콘
정형돈씨도 무한도전에서 한번 보여줬죠
이적집단초전
09/09/24 00:59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담담한 묘사가 참 가슴에 와 닿습니다. 마치 육자백이 가락이 옆에서 들리는 것 같습니다.
09/09/24 01:04
수정 아이콘
전어 먹을 때마다 이 글 찾아올 것 같네요.
09/09/24 01:43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오우... 잔잔한 글에서 포스가 그냥...;;;
Rationale
09/09/24 02:24
수정 아이콘
현장녹음텍스트유머는 많이 봤지만,
걸걸하고 애절한 육자백이가 귓가를 맴도는 글은 처음이네요.

읽으면서 마음이 움직였고,
다 읽고 나서는 눈 꼭 감으며 여운에 고개 한 번 젓고 갑니다.
제르맹
09/09/24 02:25
수정 아이콘
따뜻한 글이네요.
집이 마산에서 횟집을 해서 요즘 부모님께 전화오면
전어철이라 힘들지만 장사가 잘되서 재미난다 하십니다.
부모님생각이 나네요.
09/09/24 02:37
수정 아이콘
너무 좋은 글솜씨입니다.
조심스럽게 외칩니다 추게로~
highheat
09/09/24 04:07
수정 아이콘
오늘 막 전어구이를 먹고 와서인지 훨씬 와닿습니다. ^^
원래 전어가 잡어 중에 그나마 먹을만한 생선이라지요. 지금은 가을의 명물이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따뜻한 글 감사합니다.
지니-_-V
09/09/24 05:01
수정 아이콘
정말 글 잘쓰시네요 :)

저도 조심스럽게 외쳐봅니다. 추게로~
09/09/24 08:35
수정 아이콘
글 잘 쓰시네요. 필력이 대단하십니다.

(3번째 줄 냄세 는 수정해주실꺼죠?)
흑백수
09/09/24 09:02
수정 아이콘
좋은 글입니다.
저도 고향이 마산인데, 추석연휴 때 집에가면 전어 좀 먹고 와야겠네요.
LunaticNight
09/09/24 09:46
수정 아이콘
좋은 글이네요. 저도 추천할게요:)
스타카토
09/09/24 10:17
수정 아이콘
이런 서정적인글..
너무나도 좋네요~~~
Into the Milky Way
09/09/24 10:34
수정 아이콘
좋은글 잘읽었습니다.
오늘 저녁엔 전어회,전어구이에 시린 소주 한잔 먹고 싶네요.
소요유
09/09/24 12:19
수정 아이콘
네로울프님의 글은 모두 다 좋아요. 마음이 따뜻해지는 거 같아요.
아나까놔
09/09/24 12:21
수정 아이콘
요즘에는 전어 굽는 냄새에도 집 나간 며느리가 돌아오지 않고 사먹는다고 하네요..^^
09/09/24 15:32
수정 아이콘
캬.. 그림이 그려지는 아름다운 글이네요!
tannenbaum
09/09/24 22:46
수정 아이콘
일단 추천~~!!

이렇게 아름다운 글에 이런 덧글을 남기게 되어 죄송스럽지만 "가을전어 굽는 냄새엔 집나간 며느리도 돌아온다"에 관한 또다른 속설을 알려드릴까합니다.

원래 이 전어란것이 예전에는 처치곤란한 것이었다 합니다.
덩치도 작은것이 어찌가 가시가 많은지 처치곤한한 애물단지였었습니다.

그래서 어촌마을 어귀마다 잡으면 그냥 버려논 전어무더기 썩는 냄새가 가을이면 진동을 하였지요
헌데 그 전어썩는 냄새가 꼭 사람 시체 썩는 냄새와 비슷하였다 합니다.

한 어촌마을에 시집온 어느 며느리가 있었습니다.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 나이든 시어머니 구박이 어찌나 심한지 하루하루 지내다 결국 도망을 갔다합니다.
그렇게 지내다 아들이 너무도 보고 싶어 다시 동네로 돌아온 며느리는 계속 망설이다 먼발치서라도 아들을 보고 싶어 집으로 향합니다.
헌데 집으로 가까이 다가갈수록 어디서 시체썩는 냄새가 났다 합니다.
하여 며느리는 혹 시어머니가 죽은건 아닐까 하고 기쁜 마음에 집에 들어섰지만 그것은 마당한켠에 쌓아놓은 전어썩는 냄새였다 합니다.

물론 저도 돌아가신 할아버지께 들은 말이라 진위여부는 알수 없지만 어린 마음에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추측건데 원래 "가을전어 썩는 냄새엔 집나간 며느리도 돌아온다"는
시어머니 시집살이가 시체(전어)썩는 냄새만큼 고약하고 힘들다였었지만
어부들에게 돈 안되던 애물단지 전어가 먹어보니 맛도 있고 그래서 점점 인기가 높아져 보물단지가 되자
"가을전어 굽는 냄새엔 집나간 며느리도 돌아온다"로 변형이 된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케이스는 좀 다르지만 "라푼젤" 이야기처럼 변형이 된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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