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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봐도 좋은 양질의 글들을 모아놓는 게시판입니다.
Date 2009/09/10 11:21:27
Name 김연우
Subject (09)방한복 이야기
세계여행을 다니는 A와 B가 있습니다. 저는 이 둘의 가이드입니다. 둘은 전 세계를 여행합니다. 특히 어떤 기후도 어떤 문화도 어떤 지형도 가리지 않고 전 세계를 여행하고 싶어합니다.

이 두명이 남극에 갔습니다.  놀랍게도 A는 도착하자마자 추위와 상관 없이 쌩쌩 뛰어다녔습니다. 하지만 B는 추위에 벌벌 떨며 몸을 잘 가누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어딘가로 이동할때마다 벌벌떨며 움추리던 B는 항상 뒤쳐졌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은 도착한 직후 얼마간의 시간동안 뿐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나자 B도 쌩쌩 뛰어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A가 적응력이 좋다고 해야할까요, B가 적응력이 좋다고 해야할까요.
그것은 둘이 처음에 어떠한 방한복을 입었느냐, 에 따라 달라집니다.

만약 둘이 같은 방한복을 입었다고 합시다. 그러면 도착한 즉시 적응한 A가 적응력이 좋은 케이스입니다. 반대로 늦게 적응한 B가 적응력이 나쁜 케이스이죠.

하지만 A가 월등히 좋은 방한복을 입었다면 어떨까요. 그렇다면 A는 방한복이 좋아서 적응한 것일 뿐이기에, 나쁜 방한복을 입었음에도 그것을 극복한 B가 훨씬 적응력이 좋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렇게 단순하게 판단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둘은 인종도 다르고 성별도 다르고 키도 몸무게도 모두 달라, 두 사람의 방한복이 얼마나 차이가 있는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즉,
'만약 둘의 방한복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모르는 상에서, 누가 더 적응력이 좋은지 판단할 수 있는가?'
란 문제에 봉착한 것이지요.







이에 대해 제가 내린 대답은 '알 수 없다'이며, 거기에 '그것을 알 필요가 없다'는 말을 덧붙입니다.
왜냐하면 누가 적응력이 좋은지 나쁜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제가 목표하는 바에 이르기 위한 보조 자료일뿐, 그것을 아는 것 자체가 목적은 아닙니다.

여행 가이드인 제가 고민 하는 것은 둘이 별 탈 없이 여행하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입니다. 가장 좋은 경우는 돈이 많아서 방한복을 여러개 구입한 다음, 추워하면 두꺼운거 입혀주고, 더워하면 얇은거 입혀주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사정이 허락해주지 않습니다.

자금적으로 부족함이 있기 때문에, 처음 구입할때 잘 구입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여러 옷 입혀보고, 그중에서 괜찮다, 싶은 것을 구입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이때 B에게는 조금 얇은 방한복을 입힙니다. 왜냐하면 시간이 조금 지나면 B는 기후에 적응하여 두꺼운 방한복을 더워할 것이기 때문이죠.

그렇게 판단하더라도 고민은 남습니다. 남극이 다르고 아프리카가 다르고 중동이 다르기 때문이지요. 보통은 A가 먼저 적응하고 B가 나중에 적응하는 순으로 가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고, 그럴때마다 A와 B가 엄청나게 고생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멀리 돌아갈 필요가 없겠군요. 이것은 맵에 대한 비유입니다.

일단 맵이 나온 후 이미지만 본 상태에서 게임을 하면, 저그가 이깁니다. 엄청난 저그 압살맵이 아닌 이상, 그냥 저그가 이긴다고 봐야합니다. 이후에 테란맵, 토스맵이라 칭해졌던 것들이라도, 일단 맵이 처음 나온 상태에서는 저그가 이깁니다.

저그가 매우 유연한 종족이기 때문입니다. 테란이나 토스와 달리 심시티등 세밀한 최적화 없이도 잘 적응하는 종족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항상 그러한 것은 아닙니다. 테란과 토스가 앞섰던 맵에서 ,저그가 뒤늦게 따라가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많습니다.




그래서 맵 테스트는 그다지 의미가 없습니다.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는 선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죽어라 노력해봤자, '이 맵 안쓴다'는 한마디에 자신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데, 거기에 아무 대가 없이 노력하리라 생각하는 것은 어찌보면 이상합니다.



그래서 맵 테스트 할때는 참 재미있는 모습도 보입니다. 본진 2가스 맵을 만들었음에도 앞마당에 3해처리를 피는 저그도 있습니다. 가스가 5000이 넘어가고 미네랄은 100대에 머무르는데도 '저그에게 미네랄 멀티는 필요없다'며 미네랄 멀티를 먹지 않기도 합니다. 질럿만으로도 수비가 가능한 지형임에도 꼭 포지를 짓고 포톤을 지으며 더블넥을 하기도 합니다. 모든 지형이 분지임에도 4배럭에서 마린만 뽑다가 뮤탈에 전멸당하기도 합니다.

이런 모습을 보고 비웃고 비난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본진 2가스 맵에서 3해처리를 피는 저그가 2해처리를 하는 저그보다 승률이 좋으며, 질럿으로 수비 가능한 지형에서도 포지 더블넥을 하는 이가 더 승률이 좋으며, 분지형태의 맵에서 발키리를 뽑는 테란보다 4배럭 마린을 뽑는 테란이 승률이 좋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곤란해하실겁니다.

새로운 맵에서 맵에 맞는 전략을 쓰는게 좋다는건 상식입니다. 하지만 맵에 맞는 전략을 제대로 쓰기 위해서는 상당한 노고가 필요합니다. 그러한 노고를 투자해서 최적화 하기 전까지는, 기존의 전략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제 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형태는, 아까의 가이드가 그러했듯 옷을 여러벌 준비하는 것입니다. 즉 공식맵을 여럿 준비하고, 두달에 한번씩 문제가 되는 맵을 제외시켜나가는 형태입니다. Feedback빠르면, 오판에 의해 발생하는 부작용이 줄어들테니까요. 하지만 이러한 방법은 여러가지 사정으로 거부되고 있습니다.





맵에 의한 보정은 정부의 시장 개입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대로 두면 어느 한 세력의 득세가 일어나고, 그 세력의 독점이 이루어집니다. 이것을 가만히 두면 시장에서는 경쟁이 사라져 과독점의 패혜가 발생하며, 게임 리그에서는 한종족전만 줄창 벌어져 재미가 떨어집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정부 실패는 발생하기 마련입니다. 그에 따른 부작용도 꽤나 존재하지요. 이에 대해 경제학은 정부가 손을 때면 된다는 이론이라도 제시하는데, 게임판에서는 이에 대해 어떤 대안이 있는지 전혀 모르겠습니다. 블리자드가 만든 맵들만 사용하기라도 해야 하는건지.




어떠한 고민을 하더라도 결국 돌아오는 대답은 '잘' 하는 것입니다. '잘' 하면서, 이미 했던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제도화' 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한 이슈이지요. 결국 반복적인 질문과 답의 연속이며, 끊임없이 정진하는 것 외에는 달리 도리가 없습니다.
* OrBef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1-10-21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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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9/10 11:31
수정 아이콘
좋은 글을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합니다.
09/09/10 11:33
수정 아이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한편으로 드는 느낌은 "이거 정말 씁쓸하구만"이네요.
왠지 인간이 만든 시스템의 한계를 이런 작은 게임판에서조차 극명하게
바라봐야하는가 싶기도 하고...
信主SUNNY
09/09/10 11:39
수정 아이콘
저그의 그러한 모습때문에, 실제적인 밸런스수치는 그렇지 않은데 테저전에서 '저그맵'으로 강하게 인식된 맵들이 있고,

실제로 테란이 많이 이기는데도 '밸런스맵'이라는 소리를 듣는 경우도 흔하지요...

저프의 경우에는 저그가 좋은 맵이 더 많기 때문에 이러한 것이 잘 부각되지 않는데(저그가 좋은맵이 결과도 저그가 좋은게 많기에)

유독 테저전에서는 함정이 심하게 있는 듯 합니다.



개인적으로 테란의 맵적응력이 뛰어나서 오래쓰면 테란맵된다는 말을 정말 싫어합니다. 오래써서 잘 안 맵은 최종형태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테란맵인데 적응력이 뛰어난 저그들이 선전했었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밸런스 맵인데 오래써서 테란으로 수치가 기울었나보다'라는 말처럼 억울한게 없더군요.
라구요
09/09/10 12:43
수정 아이콘
제목만 보고......... 지나칠뻔한 에이스성지..
09/09/10 13:08
수정 아이콘
제목 보고 '응..? 왜 게임게시판에 이런 제목의 글이..?'

클릭하고 글쓴이를 본 순간 납득했습니다.

추천 누르고 갑니다
완소탱
09/09/10 13:17
수정 아이콘
음 아..읽고 보니 역시..김연우님이시네요.. 좋은글 추천하고 갑니다.
원시제
09/09/10 13:21
수정 아이콘
평소 연우님 글이 좋다고는 생각했지만 그 안에 담긴 생각과 다른 부분이 꽤 많았는데,
이 글은 제 생각과 정확히 일치하는 글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Ms. Anscombe
09/09/10 13:34
수정 아이콘
골프의 코스처럼, 대회마다 특성있는 맵을 사용한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만, 테니스나 골프 같은 투어적 성격을 가질 경우에나 가능할 듯 싶습니다. 단일 대회적 성격을 가지면서도 연속적인 리그 성격을 갖는 상황에서 밸런스 문제는 끝까지 안고 가야 할 난제인 것 같네요. 개인적으로는 동일 맵에 약간의 수정을 두고 종족전 별로 나누는 게 좋겠는데(수차례 나온 얘기고), 실행되지 않겠죠..
블랙독
09/09/10 15:32
수정 아이콘
아카디아가 좋은 예이려나요?
09/09/12 15:55
수정 아이콘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리켈메
09/09/12 19:23
수정 아이콘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결국, 똑똑한 정부의 존재도 중요하지만 당시의 시장상황이나 시장을 이끌어가는 트렌드세터의 존재가 중요합니다.
DavidCoverdale
09/09/12 22:44
수정 아이콘
좋은 글이군요.
09/09/13 15:07
수정 아이콘
좋은 글이군요. 추천 꾹 누르고 갑니다.
김연우
09/09/13 20:54
수정 아이콘
아카디아가 대표적인 예일거 같고, 그냥 맵 나온 상태에서 게임하면 저그가 으례 좋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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