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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봐도 좋은 양질의 글들을 모아놓는 게시판입니다.
Date 2009/06/19 08:34:54
Name happyend
Subject (09)당신의 법치는 정의로운가요?
1.

전남 강진의 유배지에서 정약용은 기가 막힌 일을 보게 됩니다.

다산초당 남쪽에 있는 두 마을 사람이 장난스럽게 시작한 주먹다짐이 잘못되어 한 사람이 죽어버리면서 일은 시작되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관가에서 조사가 나오면 벌어질 일이 걱정되었습니다.

“보나마나 이 일을 핑계로 이집 저집 쑤시고 다니면서 뇌물을 쓰지 않으면 죄 없는 동네사람들 모두 잡아다가 곤장을 칠게 뻔하오.”

생각다 못한 사람들은 이 일을 숨기기로 마음을 모았습니다.

“어쩌겠느냐, 마을을 살리는 길은 이것뿐이다.”
결국 사고로 사람을 죽게 했던 사람은 마을 사람들의 뜻을 받아들여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하지만 영원한 비밀은 없는 법인가 봅니다. 귀 밝은 관가의 아전이 그 소문을 듣고는 수령에게 일러바쳤습니다. 당장 관가에서 조사하러 나왔습니다.

“너희들은 끔찍한 범죄가 일어났는데도 관가에 알리지 않았고, 그 죄인을 알면서도 신고하지 않았다. 그 죄 또한 작지 않다.”
수령은 정의에 불타오른 사람처럼 열변을 토했습니다.

두 마을 사람들은 어쩔 바를 몰랐습니다. 그들을 변호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거든요. 그러자 눈치 빠른 아전이 얼른 타협안을 내놓았습니다.
“사또나리, 이것들의 죄가 크긴 합니다만 본래 마음은 착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벌금으로 해결을 보게 하심이 어떨지요.”
마을 사람들은 모두 감옥에 갇히는 것보다는 그게 나아 보였습니다.

타협안을 받아들였을 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벌금은 3만냥이었습니다. 두 마을에 쌀 한 톨 베 한오라기도 남김없이 걷어가고도 모자랄 액수였지요. 결국 두 마을 사람들은 모두 집을 버리고 떠났습니다.

눈앞에서 그 일을 지켜보기만 할 뿐 그 어떤 일도 할 수 없는 처지인 정약용의 피가 끓어올랐습니다.

‘백성들의 죄를 벌주는 데는 그 누구보다 빠르고 지나칠 정도인 관리들이었지만 그들의 죄는 누가 벌줄까?’

2.

선조임금이 왕위 등극과 동시에 성리학 근본주의자들인 사림은 정치투쟁에서 성공하여 권력을 손아귀에 넣었습니다. 이들은 인사권을 쥔 이조를 장악하고, 여론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지방의 서원, 향교를 장악하고 이후 비변사를 통해 군사권을 비롯한 모든 통치권을 왕의 손아귀에서 뺏으려 했습니다.

수도권을 기반으로 성장한 서인 노론 세력은 신권통치를 통해 왕권을 누르는데 성공하였습니다. 그들의 무기는 성리학적 도덕정치였습니다.

성리학자들은 임금에게 끝도 없이 ‘성군이 되라’고 요청합니다. 임금은 절대적 공부량에서 시골에 파묻혀 글만 읽는 산림들을 능가할 수 없었습니다. ‘성군이 되는 법’은 결국 신하들의 말을 잘 따르는 것, 여론을 장악한 산림들의 얘기대로 하는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것이었습니다.

조선후기 실학은 이들에 대한 실망감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왜란과 호란이 끝나고 경제가 파탄지경에 이르면서 그들은 ‘성군이 가르치는 나라’에 대해 다시 물었습니다.

‘전쟁에 무능하고, 경제에 무능하고, 정쟁에 파묻힌 저들이 과연 성군을 논할 자격이 있을까?’

이 의문을 가진 새로운 실학자들이 열광한 책은 <맹자>였습니다.

맹자는 성군이 가르치는 나라, 즉 왕도정치를 묻는 양나라 혜왕의 질문에 이렇게 되답하였습니다.

“백성으로 말하자면 안정된 생업이 없으면 안정된 마음도 없는 법입니다. 그런데 안정된 마음이 없으면 방탕하고 편벽되고 사악하고 사치한 짓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하여 이들이 마침내 죄를 저지르게 한 다음 좇아서 처벌한다면 이것은 백성을 그물로 긁어서 투옥시키는 짓입니다. 어찌 어진 사람이 군주자리에 있으면서 백성을 그물질할 수 있겠습니까?

늙은이가 비단옷을 입고 고기를 먹으며, 젊은이가 굶주리지 않고 춥지 않을 수 있는 정치, 이렇게 하고서도 왕도를 펴지 못하는 자는 아직 없었습니다.”

3.

한백겸은 임진왜란 때 난민들에게 죽을 쒀서 나눠주는 일을 하였습니다. 전쟁보다 더 지독한 가난 때문에 그들은 집을 잃고 땅을 잃고 거리를 헤매고 있었습니다. 전쟁은 폭리를 취하기 좋았고, 그들에 의해 물가가 치솟았으나 관리들은 손도 쓰지 못했습니다. 화살에 맞는 것보다 조총에 맞는것보다 더 쓰라린 것은 이 지독한 인플레 때문에 생활의 터전을 잃어간다는 것이었습니다.

거리엔 시체로 뒤덮였습니다. 시체를 내가는 수구문 밖에는 담벼락보다 더 높은 시체산이 만들어졌고, 인근 사찰을 동원하여 시체를 파묻는데만 일년이 넘게 걸렸습니다. 굶주린 시체들.이들을 죽게 한 것은 전쟁이 아니라 관리의 무능과 그틈을 타 사리사욕을 채운 사람들 때문이었습니다.

한백겸은 가슴을 치며 통곡하고 울부짖었습니다. 일터를 잃고 고향을 등진 사람들에게 죽을 쑤워 먹이는 일이 정의일까요?
저들에게 나라는 무엇일까요?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는 나라가 저들에게 세금내고 군대가라고 말할 자격이 있을까요?

그때부터 역사지리연구를 위한 여행을 시작합니다.

역사가 되살아나면 부강하던 고구려의 군사력과 부여의 땅을 언젠가는 되찾아낼 것이라 믿었습니다. 강한 나라, 그것은 강한 기억과 넓은 국토와 국토의 효율적인 이용에 있다고 본 것입니다. 가난한 나라가 겪는 치욕을 벗어나는 길이 거기에 있다고 본 것입니다.

조선후기 역사 지리연구가 실학의 길이 된 것은 이때부터입니다.

이 여행의 끝에서 한백겸이 찾은 것은 ‘정전법’이었습니다. 공평하게 아홉등분을 하여 여덟조각을 각자 나눠가지고 한조각은 세금으로 바치는 것. 이 정의로운 나라가 강한 나라란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이 맹자가 말한 대로 백성에게 ‘안정된 최저생계를 보장’하는 길이고, 법치라는 그물에 걸리지 않는 길이라고 믿었습니다.

유형원도, 이익도, 정약용도 그러니까 조선후기 경세치용학파라고도 불리고 중농학파라고도 불리는 실학자들이 집착한 문제이기도 했습니다.

4.

경찰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정차량을 운전한 운전사를 소환하여 조사하였다고 합니다. 혐의는 도로교통 방해 (일반교통 방해).

경찰은 조서를 꾸밀 때 ‘누가,언제,어디서,무엇을’로 시작하는 사실관계 확인만 한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누구 지시를 받았나?’, ‘경복궁으로 진입하려고 했느냐?’, ‘청와대에 가려 했느냐?’ 등 의 질문을 했다는데 왜 그랬을까요? 빨간 신호등일 때 누구의 지시를 받고 길을 건너는 사람이 대체 있기나 할까요? 왼쪽 깜빡이를 켜지 않고 차선을 바꿀 때 당신에게 지령을 내린 사람이 있었나요?

이대로라면 법치라는 그물에 걸리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요?

법은 과연 누구의 것일까요?

과연 지금 법치는 정의로운가요?




* OrBef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1-10-03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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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rncafe
09/06/19 08:44
수정 아이콘
여전히 좋은 글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supernova
09/06/19 08:50
수정 아이콘
아침부터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정의가 비상식이 되는 사회입니다
너무 답답하네요
09/06/19 09:05
수정 아이콘
여전히 좋은 글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2)

정약용 에피소드는 전혀 몰랐던 얘기네요. 그때도 그랬군요.
09/06/19 09:06
수정 아이콘
법치를 할꺼면 전국시대 진나라의 상앙처럼 하던가..
국민들에게만 강조한 법치는 한마디로 대한민국 다 족구하라 그래라는 소리밖에 안 나옵니다.
3년후에도 법치를 제대로 해야겠지요.
권선징악의 측면이 아니라 법으로 흥한자 법으로 망한다는 진리를 알려줘야 합니다.
적울린 네마리
09/06/19 09:10
수정 아이콘
이붕총리가 천안문사태를 진압할때도 Law & Order!
버마군부의 탄압때도 Law & Order!
최근 아다디네자드 이란대통령이 시위를 진압할 때도 Law & Order!
'Law & Order'가 왜곡되어 '통치'수단으로 사용될 때는 꼭 많은 피가 따랐었죠.

과거 군사정권시절의 "정의사회구현" ..그리고... 현재의 "법질서확립"...
Luminary
09/06/19 09:15
수정 아이콘
법이 정의롭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기득권의 손을 곧잘 들어주게 만든 법에 대해 신뢰성이 떨어진다고까지 생각합니다.
악법도 법이라는 말도 안되는 명제로 서민들을 옭아매는, 기득권에게 도움을 주는 도구라고 생각이 드네요.

솔로몬? 이런 프로를 보면 매번 느끼시지 않나요? 저건 당연히 저래야하는거아냐'라고 생각하는 문제들은 전부 법적으로 아니오 그렇지 않습니다' 라는 답변들을 보여주죠. 법을 누가 만드느냐가 제일 중요한데, 법을 만드는 사람이 서민들의 고통까지 챙겨주질 않는군요.
이제 殺意가 느
09/06/19 09:15
수정 아이콘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Je ne sais quoi
09/06/19 09:38
수정 아이콘
좋은 글 감사합니다. 그런데 평소에 happyend님 글 읽었을 때랑은 기분이 영~ 다르네요. 그럴 수 밖에 없는 게 씁쓸합니다
몽키.D.루피
09/06/19 09:42
수정 아이콘
법치가 문제가 아니라 욕심이 문제네요.
그들은 애당초 법치를 할 생각조차 없습니다.
욕심을 위해서 법을 이용하고 법치라 주장할 뿐이죠.
땅과자유
09/06/19 10:02
수정 아이콘
분수님// 상앙의 정치는 끔찍했었죠. 그 덕으로 진나라는 지리멸멸해 가던 전국시대를 휘어잡을 수 있는 부강한 군사력을 지니게 되었지만, 진나라 사람들에게 돌아간 것은 엄청난 형벌과 규율밖에는 없었습니다. 결국 상앙은 그 엄청난 사기적인 능력에도 불구하고 뜻을 이루지 못하죠.
엄정했던 상앙도 그러했는데, 기본적인 상식과 양심이 없는 저들에게 법은 그냥 날잘드는 망난이의 칼일 뿐입니다.
09/06/19 10:10
수정 아이콘
크, 양혜왕장구상의 클라이막스군요.
왕 앞에서도 할 말 다하는 그 분은 진정한 호연지기의 용자..

뜬금없지만 왕도를 놓고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건 요순시대일 겁니다.
백성이 배불리 먹어 배를 두드리고 노래를 부르며 한가로이 있으면 왕이 누군지 알지 못하여도 태평성대라고,
사실 지금도 그러할 겁니다. 먹고 살기 편할수록 사람들이 정치에 대해 갖는 관심은 적어지니까요.
거기에 법까지 느슨하면 더더욱 그러할 겁니다. 규제가 많아질수록 사는 게 까다로우니.

예전에 싸이베플 중 하나가 생각이 나네요.
이전 정권때는 대통령 이름밖에 몰랐는데 현 정권에는 자기가 나열할 수 있는 정치인만 100명이라던..
지금처럼 생업을 보장하지 못하면서 규제만 부르짖는 시대는 역사속에서도 낯설기만 합니다.
09/06/19 10:20
수정 아이콘
땅과자유님// 그렇죠. 그래도 상앙은 진짜로 법치를 제대로 하려고 했던 법가입니다.
그런 그도 결국 그 법때문에 죽고마니 그게 진짜 법치의 진면목 아니겠습니까?
하물며 법치를 제대로 실천한 사람도 그 공과를 제대로 받는데 현재 이 정부의
법치론자들은 그 공과를 어떻게 치룰것인가가 제가 가장 크게 관심을 받는 부분입니다.
역사에서 받는 것으로 끝날지 아니면 살아생전에 그 공과를 받게 될지를요.
노무현
09/06/19 10:32
수정 아이콘
속상함이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이적집단초전
09/06/19 10:43
수정 아이콘
법치는 정의롭습니다. 아니, 정의로워야 법치입니다. 최근 다수의 법학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현 정부에서 과반 이상이 법치가 후퇴했다고 나왔습니다. 7~80%에 육박하더군요.

현 정부는 법치를 외치기때문에 문제가 생긴게 아닙니다. 법치가 무너졌기 때문에 문제인거지요. 당장 노 전대통령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피의자 사실공표 이거 불법입니다. 이메일공개? 헌법위반입니다. 이게 현 정부의 주소고 그래서 법치가 무너지는거지요.
애이매추
09/06/19 10:52
수정 아이콘
좋은 글 감사합니다.
09/06/19 11:02
수정 아이콘
원래 법치는 법으로 다스린다는 뜻인데

어떤 사람들의 법치는 법으로 때린다는 뜻이죠.
폭풍의언덕
09/06/19 11:39
수정 아이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나두미키
09/06/19 13:11
수정 아이콘
좋은 글 감사합니다.
그런데 왜 짜증이 더 나는 걸까요? (물론 4번 내용 + 현실 때문에..)
땅과자유
09/06/19 19:04
수정 아이콘
분수님// 맞아요 분수님. 제 살아 생전에 보기를 희망할 뿐입니다
LunaticNight
09/06/19 21:59
수정 아이콘
여전히 좋은 글이군요.. 1번에 이 구절이 기억에 남네요.
‘백성들의 죄를 벌주는 데는 그 누구보다 빠르고 지나칠 정도인 관리들이었지만 그들의 죄는 누가 벌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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