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회화의 탄생
Wassily Kandinsky
Composition IV ,1911, Oil on canvas, 159.5 x 250.5cm,
unstsammlung Nordrhein-Westfallen, Dusseldorf
바실리 칸딘스키는 어느 날 밖에 나갔다 돌아와 생각에 잠긴 채 화실 문을 여는 순간 놀랍도록 아름다운 그림을 발견하고 깜짝 놀라게 됩니다. 알 수 없는 대상이 그려져 있는 그 그림은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니 이젤 위에 옆으로 눕혀 놓은 자신의 그림이었습니다. 그러나 일단 실체를 파악하고 나서는 처음 느꼈던 불가사의한 아름다움은 사라졌습니다. 그는 이 체험을 통해 그림에서 객관성이라던가 어떤 대상의 묘사는 불필요할뿐더러 방해가 된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화면에서 대상을 제거해 버리는 추상회화로의 발걸음을 내딛게 되는 순간이었죠.
Wassily Kandinsky Wassily Kandinsky
Improvisation 7 On White II
1910, Oil on canvas, 131 x 97 cm, Tretyakov Gallery, Moscow 1923; Oil on canvas, 105 x 98cm; Centre Georges Pompidou, Paris
추상과 표현
카메라의 등장이후 화가들에게 사물의 정확한 재현이라는 오랜 목표는 의미 없는 일이 되어버렸고 현실을 재현하는데 필요한 모든 원리들도 이미 다 실험을 끝낸 상태였죠. 인상파의 한계를 극복하려고 노력했던 세잔 이후 현대회화는 고전적인 회화를 지탱하던 기본적 전제들을 하나하나 해체해 나가면서 발전했습니다. 사물의 대상성을 버리고 추상화가 , 고정된 시점과 사물의 형태를 해체하고 입체파가, 대상이 가진 고유의 색을 해방시키고 야수파가 등장했습니다. 이들 미술사의 각 흐름에는 모두 원근법의 무시와 평면화라는 공통점이 있었고 무엇보다 현실의 모방과 재현은 더 이상 화가들의 관심사가 아니었습니다.
칸딘스키는 외계의 재현을 완전히 거부할 경우 예술이 단순한 장식과 구별되는 걸 막기 위해서는 예술가의 감동에 바탕을 둔 내적 필연성이 있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그에 의하면 예술 작품은 예술가의 혼이 느낀 감동을 감각을 통해 작품으로 조형화하고 관객은 그 작품을 자기의 감각으로 받아들여 예술가가 느꼈던 감동을 체험하는 전달구조를 취해야 합니다. 이런 쌍방의 감동을 통해 예술은 단순한 장식에서 벗어나 하나의 표현이 됩니다. 그렇게 되면 그 표현이 외계의 사물을 재현하고 있는지는 이미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죠. 그는 마치 음악에서 음률이 현실의 구체적인 소리를 재현하고 있지 않더라도 듣는 이의 영혼에 호소할 수 있듯이 점, 선, 면 과 같은 회화의 기본요소만으로도 직접 보는 사람에게 감동을 전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그의 추상예술의 이론적 근거입니다.
피에트 몬드리안은 사물을 추상화하면 그것의 감추어진 본질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몬드리안의 나무 연작인데 형태가 단순해지면서 추상화되고 사물과의 유사성이 사라지는 과정이 보입니다.
아래 그림은 리히텐슈타인이 보여주는 추상화의 과정입니다. 형태의 단순화를 통한 추상뿐 아니라 공간자체를 파편화하고 단순화하여 추상에 도달하고 있습니다.
Roy Lichtenstein
Study for ´Cow Tryptich (Going Abstract), 1982
이런 과정을 통해 몬드리안의 기하학적 구성 작품들이 나타나게 됩니다. 피카소나 브라크 같은 입체파화가들은 완전히 대상을 떠나 추상적인 구성을 시도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대상을 해체하고 다시 화면에서 재구성하는 큐비즘의 기본원리가 몬드리안의 차가운 기하학적 추상에 많은 영향을 주었죠.
Piet Mondrian Piet Mondrian
Composition with Yellow, Blue and Black, 1924-25, Lozenge Composition with Red, Gray, Blue, Yellow and Red, 1937-42
oil on canvas, 77 x 77cm, Tate Gallery, London Oil on canvas, 72.5 x 69 cm,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D.C
칸딘스키의 추상주의가 예술가의 영혼의 반영이며 내적필연성의 표현이었던데 반해 몬드리안의 추상주의는 조형 요소 자체에서 자율적인 법칙을 찾아내려는 것이었습니다. 몬드리안은 기하학의 공리를 연상시키는 기본원리를 통해 모든 조형표현을 통일하고 ‘순수한 색과 선의 순수한 관계’에 의한 ‘순수한 아름다움’을 실현하고자 했으며 스스로 '신조형주의'라 명명했습니다. 우리는 추상주의의 두 대가인 칸딘스키와 몬드리안의 이런 차이를 각각 뜨거운 추상이니 차가운 추상이니 하면서 구별하곤 합니다.
Piet Mondrian
Composition II in Red, Blue,and Yellow,1930
Piet Mondrian, Piet Mondrian,
Broadway Boogie Woogie New York City, 1941-42
1942-1943,Oil on canvas, 127 x 127 cm 1941-42 , Oil on canvas, 119 x 114 cm
The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Musee national d'art moderne, Centre Georges Pompidou, Paris
왼쪽은 몬드리안의 대표작 브로드웨이 부기우기입니다. 그는 뉴욕이 가진 다이내믹하고 왕성한 에너지와 화려함을 좋아했습니다. 도시의 야경속 네온사인 같은 화려한 리듬이 느껴집니다.
아래에 보이는 카지미르 말레비치의 그림은 추상성을 더욱 밀어붙인 작품입니다.
Kasimir Malevich, Kasimir Malevich,
Black Square Black Circle
1923, Oil on canvas, 106.2 x 106.5 cm Oil on canvas, 105.5 x 105.5 cm
State Russian Museum, St. Petersburg State Russian Museum, St. Petersburg
사각형과 원을 통해 형태의 단순화를, 검은색과 흰색을 통해 색채의 단순화를 이루었고 결국 추상의 극한점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Kasimir Malevich, Kasimir Malevich,
Black Square and Red Square Suprematism: Self-Portrait in Two Dimensions
1915, Oil on canvas,71.4 x 44.4 cm 1915, Oil on canvas, 80 x 62 cm.
The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Stedelijk Museum, Amsterdam
그리고 여기서 더 나아가 이제는 캔버스 전체를 하나의 색으로 환원해버리는 모노크롬까지 등장하게 됩니다. 아래 그림은 이브 끌랭이라는 예술가가 스스로 개발했다며 I.K.B(International Klein Blue)라 부르는 파란색을 사용한 모노크롬입니다. 추상의 극한으로 캔버스에서 모든 것이 다 사라지고 색채만이 남았습니다.
Yves Klein
Untitled blue monochrome (IKB 82), 1959.
Dry pigment in synthetic resin on canvas, mounted on board, Solomon R. Guggenheim Museum
또 2차 세계대전 후 미국에서는 잭슨 폴록과 마크 로스코로 대표되는 추상표현주의가, 유럽에서는 프랑스를 중심으로 앵포르멜(Informel, 비정형)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Jackson Pollock
Number 8,
1949, Oil, enamel, and aluminum paint on canvas; Neuberger Museum,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미국의 추상표현주의를 대표하는 잭슨 폴록은 화가에게서 물감을 해방시킨다며 캔버스를 바닥에 놓고 물감을 흩뿌리거나 이동하면서 떨어뜨리는 식으로 작품을 제작했습니다. 그림이 그려지는 과정을 화가의 의지에서 독립시켜 우연에 맡기는 방법입니다. 물감뿌리기를 통해 표현의 극한을 추구한 것이죠. 그래서 액션 페인팅(Action painting)이라고도 불립니다.
마크 로스코의 경우는 색채를 통한 순수하게 추상적이며 사색적인 느낌을 주는 작품들로 인간의 근본적인 감정을 탐구하는 색면추상의 세계를 선보였습니다.
Mark Rothko Mark Rothko
Untitled Untitled (Violet, Black, Orange, Yellow on White and Red)
1955, the National Gallery of Art 1949. Oil on canvas, Solomon R. Guggenheim Museum
2차 대전 후 프랑스에서 기하학적 추상에 대한 반발로 일어난 엥포르멜은 충동적이고 격정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벽에 시멘트를 바르는 것처럼 물감을 화면에 두껍게 발라 마띠에르(질감)만 남기기도 합니다.
Jean Fautrier
Body and Soul, 1957, Gift of The Glenstone Foundation
Joan Miró.
Blue II. 1961. Oil on canvas. 270 x 355 cm. Musée National d'Art Moderne, Centre Georges Pompidou, Paris, France
단순한 색과 형태를 통해 초현실주의 미술을 선보였던 호앙 미로의 작품입니다.
블루3부작중 2번째 작품인데 퐁피두센터 특별전으로 이번에 한국에 왔습니다. 전시일정이 3월22일까지인데 오래전에 표를 구해놓고도 아직 못 갔습니다. 빨리 다녀와야 겠네요. 저 대형캔버스에 펼쳐진 눈부신 블루를 볼 생각을 하니 설레입니다.
추상화, 어떻게 볼 것인가?
칸딘스키가 추상화의 문을 열어젖힌 후에 많은 예술가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현대추상미술을 전개해왔습니다. 현대미술은 과거 고전적인 표현방법으로 제작된 작품들에 비해 난해한 것이 사실입니다. 저런 그림들을 볼 때 마다 도대체 뭘 그린거야 하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죠. 그렇다면 우리는 추상미술을 만날 때 어떻게 맞이해야 할까요?
저 같은 사람이 횡설수설 하는 것보다는 조선 후기의 지성을 대표했던 연암 박지원선생을 통해 그 방법을 찾아보고자 합니다. 뚱딴지 같이 서양화얘기를 하다가 왜 옛 선비를 모셔오냐고요? 한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소개할 글은 연암의 불이당기(不移堂記)인데, 이야기속에 이야기가 들어있고 그 속에 또 다른 이야기가 포함된 중층 액자구조로 되어있어 좀 복잡합니다. 한양대 정민 교수님의 책 <비슷한 것은 가짜다 - 연암 박지원의 예술론과 산문미학>에 나오는 글입니다. 그대로 소개하자니 너무 길어서 요약해봤는데 그 의미가 충분히 전달될지 자신이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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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의 친구 하나가 죽원옹(竹園翁)이라 호를 짓고, 집에는 불이당(不移堂)이라는 편액을 걸고는 연암에게 그 기문을 지어달라고 청했습니다. 연암이 그 집에 가보니 대나무 동산은커녕 한그루의 대나무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연암은 그 명실상부하지 않음에 대해 물었고 친구는 그저 대나무 같은 절개를 지니고 변치 않을 정신을 지켜가고 싶어 그리 정했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연암은 대나무 하나 없는 집에 사는 ‘죽원옹’과 어떤 역경에도 옮기지 않을 뜻을 기르는 ‘불이당’을 위해 자신의 처숙부 되는 이양천(李亮天)의 이야기를 해줍니다.
어느 날 이양천이 매화에 관한 시를 짓고 그 앞머리에 얹기 위해 당대의 유명화가에게 그림을 그려달라고 보냈는데 얼마 후 돌아온 그림을 보고 매화와 너무 똑같이 그렸다면서 불평하더랍니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연암은 사물을 똑같게 그렸다면 훌륭하다 할 것이지 어찌 비웃냐고 물었습니다. 이에 이양천은 연암에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해줍니다.
한번은 이양천이 시,서,화에 능했던 이인상(李麟祥)이라는 사람에게 그림을 부탁한 적이 있었습니다. 두보(杜甫)의 시 <촉상(蜀相)>에 나오는 제갈공명 사당 앞의 잣나무를 그려달라는 주문이었죠. 그런데 얼마 후에 이인상은 전서체로 중국의 시인 사혜련(謝惠連)의 <설부(雪賦)>를 써서 보내왔습니다. 이상히 여긴 이양천은 왜 잣나무를 그려주지 않았냐고 물었고 , 이인상은 잣나무는 이미 그 <설부>속에 있다고 말합니다. 바람서리 모질고 온갖 초목들이 다 시들어 버린 모진 추위 속에서도 푸르름을 변치 않는 것은 오직 잣나무 뿐이니 잣나무를 그 눈 속에서 찾아보라고 말이죠. 이에 이양천은 글씨속에 숨어있는 잣나무를 보라니 그가 말하는 그림의 도라는 것이 자뭇 황당하다며 불평을 했습니다.
이후 이양천이 죄를 짓고 위리안치의 벌을 받아 귀양을 가는데 사약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소식도 들려오고, 날은 춥고 눈이 펑펑 내려 앙상한 나무와 무너진 벼랑이 자꾸만 길을 막아 험난한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바위 앞에 늙은 나무가 거꾸러져 가지를 아래로 드리웠는데 그것이 이양천의 눈에는 이상하게도 대나무처럼 보였습니다. 그제서야 이양천은 예전 이인상의 그림생각이 나면서 그가 써준 잣나무가 바로 이런 경계가 아닐까 깨달았답니다. 그렇게 눈보라속에서도 꼿꼿한 대나무의 절개를 만나게되자 호연지기가 발동하였고, 나중에 험한 흑산도 유배지에서 태풍이 불어 모두가 무서워하는 와중에도 옥루에 계신 임금께서 춥지 않을까 걱정하는 시를 담담히 읊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얼마 후 이양천이 세상을 뜨고 연암이 처숙부인 그의 문집을 엮으려고 원고를 정리하다가, 편지 하나를 찾아냅니다. 자기의 석방을 탄원하는 움직임이 있자, 바닷가에서 썩어 죽을망정 청탁하여 구차하게 목숨을 빌지는 않겠다는 내용이었죠. 이에 연암은, 선비가 궁하게 되면 평소 품은 본바탕이 드러나는 법인데 이양천이 환난 속에서도 절조를 변치 않고 뜻을 굽히지 않은 것은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드러나는 눈 속 잣나무의 푸르름과 같다고 감탄했다고 합니다.
연암은 이야기를 마치며 친구에게 그대는 참으로 대나무를 아는 사람이구나, 대나무 한 그루 없이도 그 가슴 속에 대나무를 지니고서 상황에 따라 흔들리지 않는 불이(不移)의 기상을 지킨다면 죽원옹을 일컫기에 부끄러움이 없으리라는 말을 해줍니다. 그리고 넌지시 한마디를 던지죠. 여보게, 추운 겨울이 되면 내 장차 자네 집에 올라보고 동산을 거닐면서 눈 속에서 대나무를 구경해도 좋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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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 교수님은 이 이야기를 다음과 같이 평합니다.
대나무 집에 살면서 호를 죽원옹이라 하는 것은 매화를 쓴 시를 보고 매화 그림을 그린 것과 같은 것이다. 하등 이상할 것도 없고 신기할 것도 없다. ~~~ 형체를 보고 사실과 꼭 같게 재현해 내는 것은 손끝의 재주만으로도 충분하다. 그것은 다만 형사(形似)일 뿐이다. 그러나 천지 가득한 눈 속에서 홀로 푸르름을 간직하고 서 있을 승상 사당 앞의 잣나무를 떠올릴 수 있다면, 그는 마음으로 잣나무를 그려낸 것이니, 이것은 분명 심사(心似)가 된다. 연암은 이양천의 입을 빌어 그것을 ‘몰골도(沒骨圖)’ 로 표현한다. 뼈대가 없고 보니 형체도 없다. 그러나 그 몰골무형(沒骨無形) 속에 그림의 참 정신이 깃들어 있다.
연암은 이렇게 말한다. “좋은 그림은 그 물건과 꼭 닮게만 하는 데 있지 않다. 정신이 깃들어 있지 않고는 훌륭한 그림이랄 수 없다. 잣나무를 그리려거든 잣나무의 형상에 얽매이지 마라. 그것은 한낱 껍데기일 뿐이다. 마음 속에 푸르른 잣나무가 서 있지 않고는, 천 그루 백 그루의 잣나무를 그려 놓더라도 잎 다 져서 헐벗은 낙목과 다를 바가 없다. 정신의 뼈대를 하얗게 세워라. 마음의 눈으로 보아라.”
어떻습니까? 앞서 이야기했던 추상화에 대한 칸딘스키의 정신과 상통하지 않습니까. 연암이 말한 형체없는 몰골도는 서양화로 말하면 추상화에 비할 수도 있겠죠. 껍데기는 중요하지 않다. 그 안에 담겨 있는 정신의 실질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연암은 또 녹천관집서(綠天館集序)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대저 어찌하여 비슷함을 구하는가? 비슷함을 추구한다는 것은 진짜는 아닌 것이다. 천하에서 이른바 서로 같은 것을 두고 반드시 ‘꼭 닮았다’ 고 하고, 구분하기 어려운 것을 또한 ‘진짜 같다’ 고 말한다. 무릇 진짜 같다고 하고 꼭 닮았다고 말할 때에 그 말 속에는 이미 가짜라는 의미와 다르다는 뜻이 담겨 있다. ~~ 마음이 비슷한 것(心似)은 뜻이고, 겉모습이 비슷한 것(形似)은 피모(皮毛)일 뿐이다.”
윗 글은 고문을 답습하여 모방하는 사대부들의 글쓰기에 대한 일침이지만 그림그리기에도 마찬가지로 적용할 수 있다고 봅니다. 연암은 자기의 말과 뜻이 아닌, 옛 성현들의 글을 모방하여 짓는 글이 어찌 생명력이 있을수 있는가를 일관되게 지적한 바 있습니다. 그런 연암이라면 기존의 그림그리기 방식을 답습하여 사물의 재현을 추구하는 그리기는 이제 하고 싶지 않다는 현대화가들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지 않았을까요?
예술에 있어 ‘고심(苦心)’ 이란 작가의 고민과 현실에 대한 입장, 삶과 세계에 대한 감정을 두루 포괄하는 말입니다. 예술가는 바로 이 고심 때문에 창작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음악의 , 글의 , 그림의 가장 밑바닥에 놓여진 작가의 고심을 읽어 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렇다고 연암의 글을 들어 제가 말하고자 한 취지가 작가가 그림을 그릴때의 심정과 작가만이 가졌던 느낌을 똑같이 찾아내야 한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작가가 마주한 세계와 우리 각자가 대면하는 세계는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작가의 진정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있을때 서로의 진심은 통하지 않을까요. 그런 노력을 통해 자신의 가치관으로 한 작품을 이해한다면 그 작품은 온전히 자신의 사유속으로 녹아들겁니다. 바로 그것이 작가의 의도일 것입니다.
칸딘스키는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옅은 파랑은 플루트와, 짙은 파랑은 첼로와 비슷하다. 더 짙은 파랑은 콘트라베이스를 연상시킨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말해 파랑은 파이프오르간의 저음부의 울림과 닮았다.”
Wassily Kandinsky
Yellow, Red, Blue
1925, Oil on canvas, 127x200cm; Centre Georges Pompidou, Paris
Wassily Kandinsky
Composition VIII
1923 , Oil on canvas, 140 x 201 cm , Solomon R. Guggenheim Museum, New York
어떤가요? 칸딘스키가 점, 선, 면 으로 작곡한 교향곡이 들리십니까?
* OrBef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1-09-14 2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