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다시봐도 좋은 양질의 글들을 모아놓는 게시판입니다.
Date 2011/09/05 00:05:59
Name 크로우
Subject 지하철 그녀
오랜만에 다시 찾은 집. 내가 없는 동안 많은 것이 변했으리라 생각했지만, 변한 건
나 자신 뿐.. 다른 모든 것들은 내가 떠나기 전 그 날 그대로이다.



집안 구석구석 바뀐 건 없나 살펴보았지만 별다른 건 없다. 그저 지긋지긋 한 이 옷가지들을
벗어버리고 빨리 다른 옷 으로 갈아 입고 싶은 마음 뿐이다.



어젯밤 있었 던 일들 때문에 피곤했는 지, 샤워를 마치고 옷을 갈아입으니 잠이 쏟아진다.
그렇게 곤히 잠들어 있던 중 오래전엔 익숙했던 소리가 들린다.



"위~잉"



핸드폰 진동소리다. 액정에는 반가운 친구의 이름이 보인다.
오늘 내가 여기 있으리라고 당연히 예상이나 했는 지 그냥 무턱대고
나오랜다. 나는 얼굴에 씨익 미소를 지으며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친구를 만나러 나갔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회포를 풀고 겨우 소주 세 잔에 얼떨떨해진 나는 아슬아슬하게
막차 시간에 맞추어 지하철을 탔다. 막차였지만 지하철 안에 사람은 별로 없었다.


내 앞 쪽 에는 이쁘장한 외모에 빨갛게 상기된 볼이 귀엽게 느껴지는, 새내기 처럼 보이는 여학생이 있었다.
그녀는 필시 새학기 개강에 맞춰 개강파티나 혹은 간단한 술자리를 가지고 집에 늦게 들어가는 것이다.



집에 있는 부모님이 걱정되는 지 그녀의 얼굴에는 근심이 한 가득이었다. 이럴 때 자정이 넘는 시간에도
집에서 전화 한 통 오지 않는 내 자신을 웃어야 하는 지 울어야 하는 지 고민스럽게 느껴졌다.



어느덧 지하철안에는 그녀와 나 둘 만이 남았다.
갑자기 그녀는 어디서 내릴 지 몹시 궁금해졌다.



드디어 우리집에서 오 분거리에 있는 역에 도착했고
문이 열리자 그녀가 내렸다.



그녀를 따라 재빨리 내리며. 괜한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 그녀를 앞지르며 빠른게 걸음을 옮겼다.


그때 뒤에서 그녀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저기요"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나는 내심 피어오르는 웃음을 참으며 그녀를 향해 무슨일이냐고 물었다.
그녀는 남동생이 역 앞 으로 데리러 오기로 해서 전화를 해야하는데
자기 휴대폰이 배터리가 다 됐단다. 나보고 전화 한통화 만 빌려달란다.



나는 얼마든지 쓰라며 선뜻 내 휴대폰을 건내주었고,
다음에 무슨 멘트로 말을 이어가야 할 지만 머리속에 가득찼다.



그녀는 뒤돌아서서 간단하게 통화한 뒤 나에게 휴대폰을 건내주었다.








"고마워요 군인 아저씨"



그리고 나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종종걸음으로 어디론가 빠르게 사라졌다.



9월 어느날 나의 휴가 첫 날은 이렇게 지나갔다.


* OrBef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1-09-06 12:25)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테란의 횡재
11/09/05 00:08
수정 아이콘
재밌는데요?!크크크크
신봉선
11/09/05 00:16
수정 아이콘
20대 초반일텐데 군인아저씨라니...ㅠ
11/09/05 00:47
수정 아이콘
아흑... 재밌네요!!!! ..크크크... 사복을 입어도 왜..군인은 티가 날까요..하하핫!
28살 2학년
11/09/05 00:53
수정 아이콘
글쓴이를 안보고 읽었더니 love&hate님인줄 알았습니다.
정말 좋네요. 역시 결말이 훈훈해야 되요. [m]
진리는망내
11/09/05 09:51
수정 아이콘
완전 훈훈한데요
DavidVilla
11/09/05 13:00
수정 아이콘
오늘 몇 초간의 웃음을 제게 주셨으므로 추천!
군인 아저씨 파이팅!!

이 글을 읽고 나니, 제가 1년차 휴가 복귀하려고 수원역 앞에서 버스 기다리는데, 어떤 여중(여고?)생들이 군복 예쁘다고 제 사진 찍던 기억이 나네요. 완전 X팔려서 자꾸 뒤로 돌아선 관계로 아마 옆모습 정도만 찍혔겠지만, 고맙다고 인사하고 가던 그 애들이 생각나네요. 분명히 군복이 예뻐서 찍힌 건 아닐텐데, 대체 왜 찍었을까요.. 하하;;
11/09/05 13:05
수정 아이콘
완전 훈훈해! 추천!
크로우
11/09/05 13:22
수정 아이콘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복귀하는 날이네요.
남은 군생활 건강하게 잘 마치고 오겠습니다.
Love&Hate
11/09/05 14:02
수정 아이콘
건강하게 전역하시길..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1397 (09)어제의 MSL의 조지명식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메세지... [28] 피터피터8013 09/01/09 8013
1396 (09)테저전 메카닉의 트릭... (테란 메카닉의 새로운 패러다임) [7] 피터피터6180 09/01/01 6180
1395 (08)제2멀티로 보는 향후 관전 포인트 [22] 김연우6683 08/11/28 6683
1394 (08)관대한 세금, 인정넘치던 나라 이야기 [38] happyend6416 08/11/14 6416
1393 (08)[서양화 읽기] 우키요에와 서양미술의 만남 1편 [15] 불같은 강속구9529 08/10/20 9529
1392 딸아이의 3번째 생일 [20] 영혼의공원4944 11/09/08 4944
1391 (08)그때는 몰랐던 것들 [7] 탈퇴한 회원5027 08/10/18 5027
1390 (08)임진왜란은 화약전쟁 [52] happyend7796 08/09/19 7796
1389 [경제이야기?] 복지는 세금으로한다. 그런데 우리는 세금을 낼 준비가 되어 있는가. [19] sungsik5435 11/09/06 5435
1388 후배가 결혼하다. [7] 헥스밤9418 11/09/05 9418
1387 지하철 그녀 [10] 크로우7508 11/09/05 7508
1386 (08)천재(天才)가 서역(西域)으로 떠나기 이틀 전... [42] The xian8181 08/11/07 8181
1385 (08)소소한 답사이야기)잊혀진 신화를 찾아 익산으로 [10] happyend4316 08/08/31 4316
1384 [잡담] 글쓰기 버튼에 관한 잡설 [2] 28살 2학년3363 11/09/04 3363
1383 레바논 전 보고 느낀 점 적어봅니다 [38] 생선가게 고양이7047 11/09/03 7047
1382 [연애학개론] 밀당의 기본 [35] youngwon6963 11/09/02 6963
1381 단종애사 - 4. 숙부와 고립무원의 조카 [26] 눈시BB4042 11/09/02 4042
1380 SKY92님 불판 모음집 [11] OrBef4231 11/09/04 4231
1379 lol, 리그 오브 레전드)euphoria의 챔프 가이드 이모저모 #1 Range AD편 (2/2) [18] Euphoria4256 11/08/22 4256
1378 [해외축구]아스날, 클럽의 구심점과 치고 나갈 타이밍. [63] 대한민국질럿6413 11/09/02 6413
1377 고백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분들을 위한 조언. [15] 凡人6094 11/08/31 6094
1376 (08)너의 '무기'가 되어줄 수 있어 기쁘다! [23] 네로울프7514 08/06/27 7514
1375 (08)1100만원짜리 광고를 사고 싶습니다. [124] 분수8880 08/05/29 8880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