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좋아한다는 고백에는 당신도 나를 좋아해주길 바란다는 요구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일기장에 쓰거나, 웅얼웅얼 혼잣말로 주워 섬기는 게 아니라 상대를 마주 대하고 말하는 것이겠죠. 그러하기에 상대방도 나와 같은 심정이지 않은 이상, 저런 고백은 상대에게 부담을 주게 됩니다. 가깝게 지내던 사람에게 저런 말을 들어도 당황스러운데, 오가면서 잠깐씩 보던 사람에게 저런 요청을 들으면 어떤 기분이 들까요. 가두에서 광고 전단 나눠주는 것도 받기 귀찮아서 피해가는 게 보통 사람들인데, 고백이라는 건 그런 사람들을 붙들어놓고 지금부터 나를 좋아해 달라고 부탁하는 겁니다. 절대 무리무리죠.
자, 냉정히 생각해 봅시다. 당신이 상대방의 무엇을 좋아하는 건지. 외모, 목소리, 스타일, 때로는 겉으로 드러나보이는 재능같은 것일수도 있습니다. 결국에는 그렇게 밖으로 드러나보이는 손톱만한 단편적인 정보를 모아서 상대방에 대한 자기 나름대로의 이미지를 구축하고는 그걸 좋아하고 있는 건 아닌가요?
심한 말로 짝사랑이라는 건 상대방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상대방을 좋아하는 내 모습을 사랑하는 것 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런 맥락에서 직설적으로 짝사랑은 자아도취일 뿐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죠.
그러니 사실 잘 모르는 사람에겐 고백 같은 건 안하는 게 좋습니다. 상대가 같은 단체에 소속된 사람이라면 가까워 지기 위한 계기를 만든다던가, 아니면 대놓고 데이트 신청이라도 하는 게 낫죠. 그러면서 친분을 쌓고, 환상 속의 그대와 현실 속의 상대방을 일치 시키면서 연애까지 한걸음 나아가는 거죠.
그런데 고백 같은 형태가 아니면 가까워 지기 힘든 경우도 있긴 합니다. 데이트 신청도 어느 정도 기본적인 인간관계가 형성된 다음에나 하는 것이죠. 같은 조직에 속해 있다고 해도 자연스럽게 말한번 섞기 힘든 경우도 있구요. 그런 경우에 어떻게 해야할 지 생각해 보자는 것이 이 글을 작성한 모티브가 되겠습니다. 가뜩이나 낮은 성공 확률 이지만 조금이라도 끌어 올려봐야 되지 않겠습니까.
일단 여러분은 상대방에게 무엇인가를 요구할 수 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여기서부터 사고를 전개시켜 보죠.
요구, 요청을 할 때 효과적으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원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드러내야 하고, 상대방이 받아들일 수 있는 범주의 것을 내밀어야 합니다. 말하는 입장에서는 가급적이면 아슬아슬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이 좋겠지만 치킨 게임도 아닌데 너무 무리할 필요는 없어요. 무난한 것이 좋습니다. 처음부터 데이트까지 바라는 건 과도한 욕심입니다. 잠깐 커피 마실 시간 정도라도 이야기하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 무난합니다.
이 때 여러분은 상대방에게 이해와 동의를 구해야 하고, 그러자면 납득할만한 동기부터 말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선은 상대방의 어떤 점을 좋아하는 건지 파악해 봅시다. 외모인가요? 목소리 인가요? 또는 스타일 인가요.
다 좋은데 제발 성격이라는 말은 하지 마세요.
성격은 욕구를 실현하기 위해 습관화 된 말투나 행동 방식을 의미합니다. 상대방이 무얼 좋아하고 무얼 싫어하는지, 또 왜 그런지 대여섯 가지 정도의 예시를 들어가면서 설명할 수 있나요? 보통은 힘들 겁니다. 그러니 성격이라는 편한 말로 포장하려 들지 마세요.
그보다는 디테일한 특정 행동을 보고 마음에 들었다고 하세요. 제가 들어본 것 중 기억에 남는 것은 담배꽁초를 아무데나 버리지 않고 끝까지 들고다니다가 쓰레기통에 버리는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던가, 동아리방에 있는 테이블이 지저분했는데 다른 사람들이 귀찮아서 방치하고 있는 걸 나서서 치우고 걸레로 닦기까지 한 모습을 보고 반했다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아울러 상대방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확보한 정보 이외의 모습을 상상하지 마세요. 세상에는 밖에서 밥을 한 톨씩 깨작깨작 먹다가 집에 들어가서 밥통채로 끌어안고 김치냉장고 뚜겅 여는 여자도 많고, 대중들 앞에서는 요조숙녀였다가 친한 친구들 앞에서는 헐크로 변하는 여자들도 많습니다. 제가 사귀었던 사람 중에는 평소에는 육두문자 비슷한 소리만 들어도 어머어머 하다가 고교 동창들 앞에만 가면 모든 호칭을 "이年아, 저年아" 로 통일했던 사람도 있었습니다. 나중에 친해지니 남자들도 움찔해 할만한 음담패설도 서슴치 않더군요 -_- 그러니 그냥 키 몇에, 외모는 어떻고, 자주 입는 옷은 어떻고, 목소리는 어떻고 그런 식으로 상대방을 객관화 해서 파악하세요. 혼자서 망상의 나래를 펼쳐 봤자 그게 현실과 부합할 가능성은 정치인이 진실만을 말할 가능성과 맞먹을 뿐입니다.
자, 상대방의 어떤 점이 좋았는지 마음속에 정리가 되었다면 일단 그 이야기를 시작으로 말을 건넵시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심각하지는 않다는 것을 밝힌 뒤 (적어도 거절할 때의 부담은 덜어주는 것이 좋겠죠) 요구사항을 말하는 겁니다. 구체적으로 예시를 들자면 이를테면 강의 시간에 교수님의 질문에 막힘 없이 술술 대답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몇 번 그런 모습이 반복되다 보니 관심이 가게 되더라. 그래서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 졌다. 괜찮다면 잠시 이야기를 해볼 수 있겠느냐. 같은 식이 되겠죠.
이 때, 제발 상대방을 직접 보고 말하세요. 메일, 문자, 전화 이런 건 세상에 없는 겁니다. 헌팅의 성공률은 자신감에 비례한다고 합니다. 거절 당하는게 대수인가요? 제가 13년 동안 이 여자 저 여자에게 걷어 차여 보면서 깨달은 건 세상엔 여자가 정말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상처 입어 너덜너덜해진 몸뚱이를 가지고도 연애 잘만 하면서 살았습니다. 만화 H2에 나오는 대사대로 고물 물총도 여러 발 쏘다 보면 적중합니다.
물론 결과가 좋지 만은 않을 겁니다.
이런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죠. 하지만 당신을 좋아한다고 입술 떨면서 말하는 것이나, 당신에 대해서 알고 싶다면서 쪽지, 편지, 문자 보내는 것 보다는 훨씬 낫습니다. 자신에게 돌아오는 데미지도 적구요. 한 가지 조언을 더 드리자면 크리티컬 데미지를 예방하기 위해서 남자친구가 있는지 정도는 조사해 두는 게 좋습니다.
자, 너무 겁먹지 마세요. 저는 최근에 마음에 든 사람이 한국인도 아니고, 더불어 해외에 거주 중이며, 심지어는 명함을 주고받았지만 제 이름조차 기억 못할 그런 사람입니다. 그래도 한번은 부딪쳐 보자고 남자친구 있는지 여부, 나이, 전공 같은 기본적인 정보들을 모으고 있습니다. 상대방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 포인트는 외모, 특히나 웃는 모습이었고 거기에 더불에 한국어가 유창하다는 점에 끌렸습니다. 구체적인 목표는 올해 이내에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편지나 메일을 주고받는 사이가 되는 것이고, 내년 5월 이전까지 도쿄에 있는 레인보우 브릿지를 같이 걸어보는 것입니다. 연애나 이런 건 별 생각 없습니다. YWCA 에서 발간한 책자에 나올법한 건전 고교생 이성 교제 스토리라도 본인들만 즐거우면 그걸로 되는 거니까요.
아마도 겨울이 올 무렵에 도일해서 위에 적힌 대로 하고 싶은 말을 하고는 미안하다는 말만 듣고 멋지게 차이고 귀국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 까지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스스로의 행동에 후회가 없다면, 남이 나에게 어떻게 대했든 후회는 남지 않았었습니다. 되려 한 번 말해볼 걸 그랬어라고 소심하게 고민하다가 하다가 때를 놓친 사람들이 후회를 하기 마련이죠. 이건 저한테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라고 봅니다.
요약하자면 자신의 입장을 객관화해서 생각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상대방이 받아들일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상대방을 배려하며) 진심을 전하세요. 그리고 나서 잘되면 빙고! 를 외치시면 되는 것이고 잘 안되더라도 할 말은 다 했으니 잠시간 속이 쓰릴 지언정 후회는 없을 겁니다. 적어도 저는 그러했습니다. :)
* OrBef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1-09-02 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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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축구선수들이 돈에 따라, 우승실현 가능성에 따라, 명성에 따라 혹은 매력적인 제안 조건에 따라 이 클럽, 저 클럽을 옮겨 다니듯이 연애또한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정말로 성공하고 싶으면, 그녀가 나를 좋아할만한 매력을 우선 만드는 게 우선입니다. 그게 아니면 토트넘처럼 이리저리 찔러 봐야죠. 그래서 모~두 거절당하고도 나름 A급 스트라이커인 아데바요르를 얻지 않았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