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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8/04/22 08:52:39
Name happyend
Subject (역사,다시보기)상인의 나라,그 허무한 종말.
제목을 수정했습니다.
처음 붙인 제목은 '실용의 끝'이었는데,본문이 그다지 제목과 연관관계가 드러나지 못해보여서요.양해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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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는 훗날 통일신라시대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지금으로 치면 광역시와 비슷한 5소경중의 하나인 ‘김해소경’이라 불린 것이 그 기원이었지요. 신라통일에 가장 큰 공을 세운 김유신장군이 이곳 왕족의 후예이기 때문에 그만한 대접을 받은 것입니다.

김해는 남해바다에서 낙동강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었기 때문에 ‘쇠와 바다’의 마을인 金海라고 불렸습니다. 김해소경은 다른 말로 ‘금관경’이라고 하는데 쇠를 관리하는 도시란 뜻입니다. 쇠와 바다는 그래서 김해의 운명을 결정하며 영광도 그것 때문이었고, 멸망도 또한 그것 때문이었습니다.

<삼국유사>란 책에는 김해가 ‘여뀌 잎 같이 좁아서’ 농사를 지을 만하지 않다고 써있습니다. 농사가 유일한 부의 수단이었던 고대사회에서 그것은 치명적입니다. 하지만, 그곳에 김수로라는 뛰어난 영웅이 도착하면서 모든 것이 변했습니다.그는 그곳에 변한 12개 소국 가운데 하나인 가락국을 세웠습니다.

김수로는 바다를 통해서 들어왔고, 쇠를 다루는 기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쇠를 다루는 사람’이란 뜻을 가진 김(金:쇠금이 성으로 되면서 김이라고 부르게 된 것)씨를 성씨로 한 최초의 인물이 됩니다. 김해의 운명은 그와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김수로는 바다의 가치,그리고 김해의 가치를 잘알았습니다. 그로부터 1800년 뒤의 조선 영조임금시대의 이중환이 택리지에서 밝힌 그대로를 김수로는 알고 있었던 것이지요.

(택리지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로 해운의 이익이 많다고 하면서,
'배로 장사하는 자의 이익은 반드시 바다와 강이 만나는 곳에서 얻어진다.경상도에서 낙동강이 바다로 들어가는 곳이 바로 김해의 칠성포로 북으로 상주까지 거슬러 오를 수 있고,서쪽으로 진주까지 갈 수 있으니,오직 김해만이 그 출입구를 관할한다.김해는 경상도의 입구에 위치하면서 남북의 바다와 육지의 이익을 모두 차지한다.특히 공과 사의 모든 소금을 판매해 큰 이익을 얻고 있다.'
고 하였습니다.)

철기시대는 ‘바다의 시대’이기도 합니다. 배를 만드는 기술이 가장 비약적으로 발전한 시기이기 때문이죠. 쇠도끼와 대팻날, 그리고 쇠못을 가지고 만든 철기시대의 배는 돌도끼로 만들어진 배와는 비교조차 안 됩니다. 그러므로 철기시대야 말로 바다로 바다로 나가고 싶었던 모험가들의 시대였습니다.
일본과 중국을 비롯해서 필리핀, 베트남은 물론 인도까지도 바닷길을 통해 각국에서 나온 문물이나 보물을 사고팔기 바빴습니다. 김해는 이런 상인들이 가장 많이 찾았습니다. 낙동강을 따라 좌우로 빠르게 성장하는 소국들이 즐비했으니 사는 사람도 넘치고, 파는 사람도 넘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가락국은 이 틈바구니에서 빠르게 성장했습니다. 평야가 없어도 가락국엔 재물이 넘쳤습니다. 게다가 시대는 바야흐로 철기시대,바로 정복전쟁의 시대였습니다.천운이 그들과 함께 한 것이지요.

철기시대로 접어들어 동아시아는 온통 전쟁터였습니다. 고구려와 낙랑군, 대방군을 비롯해 크고 작은 부족들이 쉴 새 없이 전쟁을 벌였습니다. 일본이나 중국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전쟁이 벌어지면 이웃나라가 군수품을 팔아먹고 부자나라가 되는 것은 지금이나 그때나 마찬가지입니다.

철광석은 우리 지구에 흔한 돌입니다. 시커멓고 무거운 이 돌은 누구나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걸 쇳덩이로 만들어 내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없습니다. 아프리카에는 지하자원이 많지만 결국 돈을 버는 것은 그걸 가공할 줄 알았던 유럽의 나라였습니다. 나라를 부강하게 하는 것은 자원보다 기술이라는 것은 오래된 진리입니다.

쇠를 다룰 줄 아는 김수로왕에 의해 가락국을 비롯한 변한지역만이 가장 질 좋은 쇳덩이를 만들어낼 수 있었습니다.동아시아 최고의 제철공업단지가 변한지역에 만들어졌고, 그 무역항이 김해였습니다.

지금은 석유가 나오는 유전을 가진 나라가 떵떵거릴 수 있듯이 이 시대엔 철광석 광산을 가진 나라라면 먹고 살 걱정은 없었습니다. 가야의 연맹왕국들은 철광석 광산을 가지고 있었고 모두 제철공업을 통해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가야인들은 때를 잘 타고 났고,그 기회를 잘 누렸습니다. 오늘날 김해 뒤편에 있는 물금은 대표적인 철광석 광산으로 고대 가야왕국의 부귀영화를 볼 수 있는 곳입니다.

이런 꿈같은 시대의 중심에 있었던 가야는 어째서 나라를 세우지 못한 것일까요? 고구려,신라,백제만이 삼국시대 속에 있을 뿐 가야를 끼워주지 않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김해에는 신라나 백제,고구려에 비해 무덤의 크기가 작은 고분들만 있습니다. 왕의 힘이 크면 클수록 무덤의 크기가 커집니다. 그토록 번성했던 무역도시의 귀족들은 서로 견제하느라 힘센 왕이 나타나는 것을 꺼려했습니다.

6가야는 힘이 팽팽했지만 마음만 먹었다면 소국끼리 손을 잡고 통일을 이루고 고대국가로 발전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장사를 통해 이득을 보면 충분하다고 생각한 것일까요? 상업국가 가락국은 다른 소국을 정복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강력한 왕이 나타나 간섭하기보다 자유롭기를 선택하는 것은 상인의 운명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것이 가야에겐 슬픈 일이 되었습니다. 세상이 빠르게 변하면서 가야의 철은 점점 매력이 없어지고 있었습니다. 가장 많은 철수입국이던 낙랑군은 고구려에 의해 멸망했습니다. 철을 사가던 고객명단에서 신라와 왜국마저 빠졌습니다. 신라는 기술과 자원을 갖춘 철의 나라로 변신했습니다. 왜국도 우수한 철기기술을 가진 백제에서 기술을 전수받아 풍부한 철광석 자원을 바탕으로 기술자립을 선언했습니다.

불운은 계속되었습니다. 남해안지역에 자리 잡은 작은 소국들인 ‘포상8국’이 반기를 들어 가락국이 독점하던 무역로를 빼앗아버렸습니다. 고립된 가락국은 결국 더 버티지 못했습니다. 서기 532년에 김유신의 증조할아버지인 구해왕이 신라에 항복하면서 역사에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가락국은 다른 나라를 정복해야만 살아남는 삼국시대 규칙의 희생국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실용을 선택했던 상인의 나라의 끝은 허무했습니다.고대 그리스 도시국가의 운명처럼....


그리고...현대에 이르러 성공한 상인출신 지도자는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도....어쩌면,금관가야와 그리스 도시국가가 남긴 메세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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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가야에는 건국신화가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금관가야라고 하는 가락국 김수로왕의 신화이고, 또 하나는 대가야를 건설한 이진아시왕의 신화입니다. 신화가 있었다는 것은 그만큼 강력한 나라가 있었단 뜻입니다. 삼국과 같은 고대국가로 크지는 못했지만 상당히 번성한 왕국이 있었던 것이죠. 금관가야의 김해의 고분에 비할바없이 큰 고분군이 대가야의 고령에 존재한다는 것도 이것을 뒷받침합니다.

그 힘은 제철기술에 있었습니다. 제철기술을 배경으로 6개의 가야가 세워진 만큼 대가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가락국이 무너졌지만 대가야가 세워진 고령의 야로면에서 새로운 철광석 광산을 개발함으로써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되었습니다.
대가야는 꽤 규모 있는 왕국으로 변했습니다. 가락국의 악사인 우륵을 통해 옛 변한의 12개 소국의 민요를 정리해 노래를 부르게 한 것이 우리나라 최초의 가야금곡입니다.

이 대가야는 신라와 백제의 틈바구니에서 백제와 가까워집니다. 이시대 가야토기를 보면,백제토기와 유사합니다. 금관가야의 토기가 신라토기와 닮은 것과 비교해보면 흥미롭습니다.
(혹시 관심이 있으신 분들 위해,박물관에서 이 토기를 구분하는 방법을 써드린다면,
신라는 엇갈려 구멍을 내었지만 가야는 가지런한 모양입니다. 신라토기는 네모난 구멍이지만 가야의 토기는 네모와 세모 두가지가 있습니다. 신라쪽에 가까운 곳에서는 네모난 구멍이, 백제와 가까운 곳의 구멍은 세모모양입니다. 백제의 굽다리 접시에 난 구멍도 세모모양입니다.)

지리적인 점이 가장 큰 요인이겠지만,신라가 그토록 강성해져서 삼국을 통일할 줄은 꿈에도 몰랐던 대가야의 비극이겠지요.상인의 나라 금관가야가 금관경으로 우대받게 된데 비해,대가야의 운명은 철저히 잊혀짐으로써 신라의 복수를 당한 셈입니다.실용성은 부귀영화를 누리는데는 더 없이 좋은 방식인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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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제주 여행을 계획하신다면....적어도 바가지는 안당할 렌트카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 라벤더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8-04-27 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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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파지마
08/04/22 09:03
수정 아이콘
밑에와 관련있는 글이었네요.
morncafe
08/04/22 09:12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님의 역사다시보기는 반짝반짝 빛나는 작은 보석 같은 글 입니다. :)
다시금 요즘의 한국을 생각하게 되네요.
The MAsque
08/04/22 09:24
수정 아이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도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기분이 좋은 글이 많네요^^
콜록콜록
08/04/22 09:45
수정 아이콘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글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08/04/22 10:33
수정 아이콘
좋은 내용 감사합니다.
손진만
08/04/22 10:58
수정 아이콘
항상 재밋게 잘보고 있습니다. 너무나 감사합니다.
백마탄 초인
08/04/22 13:36
수정 아이콘
자주 써 달라고 하면 실례일까요?

좋은 글 너무나 감사합니다. ^^
재수니
08/04/22 23:33
수정 아이콘
가야의 유물을 보면 갑옷이나 무기 따위의 철기가 엄청나든데요 중세유럽의 풀아머에 못지 않든데 신라와는 자주 전쟁도 치른것으로 알고있는데요 사다함이야기 같은 강력한 왕이 없이 어찌 전쟁을 수행하는지 그리고 6가야 연맹의 왕들의 성씨는 다 다른건가요 예전 고령박물관 갔을적에 이진아시왕 이씨의 시조인가 하는 말을 본거 같은데.
08/04/23 00:47
수정 아이콘
오..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
happyend
08/04/23 16:03
수정 아이콘
재수니님//가야의 힘의 배경에는 중국의 선진문물을 습득한 '부여계 유민'들의 힘이 있습니다.이들은 부여가 쪼개지면서 남하할 때,일부는 무리에서 이탈하여 배를 타고 김해로 들어온 것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그리고,그 일부는 청주지역에 은거하다,후에 경주 계림으로 이주한 김알지 가문입니다. 김수로계와 김알지계는 모두 제철가문이란 공통점이 있고요.

가야의 연맹국가가 6개였는지는 불분명합니다.다만,변한지역 12개의 소국 중,비교적 대등한 규모로 성장한 6개 가문의 연합체가 가야입니다.신라도 사로국이 6개 가문연합으로 출발했지만,이들은 통합된 왕을 선출하는 화백회의라는 귀족회의가 실권을 가지고 왕권과 대립함으로써 비교적 빨리,중앙집권국가와 정복국가로 변신합니다만,6가야의 가문들은 연맹국 이상의 결합을 거부했고요(이유는 위,제 본문에 있고요)

당연하게도,6개의 가문이므로 성씨가 다르고요,각각의 연맹왕들은 자신의 군대를 가지고 있었고,더러는 용병을 쓰기도 하였을 것입니다.가야6국은 그 형태적 유사성으로는 그리스의 폴리스(도시국가)와 가장 닮은 것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고령은 대가야국은 김해의 가락국이 신라에 투항한 뒤,가야연맹의 새로운 맹주로 성장하였던 국가로,따라서 자신을 하늘의 아들로 정당화하는 시조설화가 존재했습니다만,불행하게도 3국시대의 틈바구니에서 백제와의 동맹을 선택했다가 멸망하는 비운을 겪습니다.삼국사기에 의하면,사다함과 이사부의 군대가 대가야에 도착했을 때....매우 쉽게 함락했다고 합니다.지형적 이점을 이용해 오래 버텼을 뿐,군사적으로는 강력하지 못했고요,중세유럽의 풀아머급의 갑옷이나 무기는 부여계의 전통으로 여겨지나,오로지 귀족들의 자기 과시용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Operation_Man
08/04/29 00:58
수정 아이콘
순간 베네치아를 생각했다는........
포셀라나
08/04/29 16:56
수정 아이콘
가야에 신라등에 비해서 크기가 작은 고분만 있는 이유는 너무도 간단합니다.

가야는 소위 고분시대 이전에 망했으니까요. 김수로왕릉이 진짜 수로왕릉도 아니며, 그 당시에 만들어진 것도 아니란 사실을 아시는지?

수로왕릉은 가야가 망하고도 한참뒤에,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이후, 삼국통일에 가장 큰 공이 있었던 김유신장군의 조상.. 이라는 이유로 그렇게 크게 만들어 진 것입니다.

가야에 큰 고분이 없는 것은, 왕권이 약했다거나, 약소국이었다거나, 그런 것이 아니라, 그 시대에는 크게 봉분을 쌓는 풍습자체가 없었습니다.
포셀라나
08/04/29 17:03
수정 아이콘
그리고 가야6국이 과연 연맹왕국이었는 지에 관해서도 논란이 많습니다. 아니.. 왜 연맹설이 등장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증거자료조차 없는 실정입니다. 적어도 당시의 문헌이나 기록이나, 기타 고고학적 증거로 볼 때는 가야6국이 연맹으로 단결.. 혹은 최소한 신라나 백제, 고구려에 비해서는 가야6국이 조금이라도 더 친했다거나, 같은 국가나 하다못해 이웃이라는 그런 것 조차 없습니다.

정복하려 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가야6국은 서로간에 수도 없이 싸웠고, 땅도 뺏기고 빼앗기고를 반복 했습니다. 분명한 사실은 가야6개국의 많은 나라들은 다른 5국을 정복하든, 혹은 신라나 백제를 정복하든, 차이를 두지도 않았다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초기 연맹의 맹주, 금관가야, 후기연맹의 맹주 대가야 라고하지만, 나머지 가락국들이 그 밑에 들어갔거나, 혹은 맹주를 따랐다거나 하는 일도 전혀 없었습니다. 초기에 금관가야가 번성했고, 후기에 대가야가 번성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은 맹주도 무엇도 아니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가야연맹설이라는 것은 증명된 적도 없고, 증거자료조차 전혀 없는 허구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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