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다시봐도 좋은 양질의 글들을 모아놓는 게시판입니다.
Date 2018/12/11 17:38:19
Name 야누수
Subject 귀소본X
자게글 "79224 지각을 할 것 같다."을 읽고 나름 해피하게 맞이한 결말을 보다보니 예전에 겪었던 일이 생각나서 글을 적어봅니다.


************************************************************

나는 집에서 나서는 순간, 화장실을 잘 안가게 되는 생리적 증상을 가지고 있다.

정확한 의학용어는 아니지만 여행성변비라는 단어로도 정리가 되는데,

1박2일이든 2박3일이든 집밖으로 나들이를 하는 순간 큰일을 보는 기능이 일시 정지된다.

문제는 이 때 발생된 일시정지기능이 언제 풀리냐라는 것이다.

집으로 가까워 질 수록 정기기능이 해제되기 시작하면서 집도착이 임박했을 때,

바리케이트 저지력의 한계가 임계점을 맞이하게 된다.

흔히 알고 있듯이 동물들은 자기가 살던곳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도

집으로 돌아올 수 있는 본능이나 성질을 가지고 있는데,

간단하게 말해서 귀소본능이라고 한다.

인간도 동물이고, 나라는 인간도 동물이다.

당연히 나라는 인간도 귀소본능을 가지고 있을 수 있으며,

내 생리적 특성과 결합하여 이 증상을 "귀소본똥"이라고 명명했다.

네이x, x글, 나xx키 에 검색해도 이런 단어가 없으며,

최소 20년전부터 생각했던터라 작금에 이르러서는 최초 명명자라는 일말의 자부심도 있다.


********************************************************


중학교 3학년때 처음으로 이사간 우리집은 아파트 14층이었다.

아파트 단지내 최고층은 23층이었지만 우리동만은 옆동네 일조량을 방해한다는 이유로

라인별로 층수가 달랐으며, 우리집 라인은 최고층이 19층이었다.

14층에서 1층으로 내려오는 시간은 28초, 

19층에서 1층으로 내려오는 시간은 넉넉잡아도 1분이 걸리지 않았다.


고등학교 1학년 여름, 당시 학교의 파격적인 결단으로

토요일이 4교시에서 3교시로 줄어들었던 그 날.

귀가중의 버스안에서 귀소본똥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지금이야 귀소본똥에 대해서 산전수전을 겪은 베테랑이지만

당시는 아직 풋풋한 신입사원과도 같았던지라 귀소본똥에 대한 마땅한 대비책도 없었던 노비스였다.


가까스로 도착한 아파트 단지입구, 우리단지를 알리는 머릿돌을 보며 나와바리에 왔다는 각인과 함께

그 본능은 강해졌고 걸음걸이와 학문의 불규칙적인 줄다리기를 시작했다.

(네x버 지도검색이라는 편리한 기능을 이용해보니 당시 아파트 입구에서
우리라인 입구까지거리는 214M인데, 아마 평생을 통틀어 가장 길었던 214M 였었지 않았나 싶다.)


도착한 우리라인의 1층에서 보니 엘레베이터는 19층에서 사용중인 상태였다.

사람이 내리던지 타던지 앞으로 1분만 기다리면

엘레베이터가 올것이라 마음을 놓았던것이 화근일까...


엘레베이터는 1분이 넘고 2분이넘고...

5분이 넘어도 내려오지를 않았다.

하염없이 19층 표시등과 역삼각형 표시등만 떠 있을 뿐 미동조차 없었고

그 극한상황에서 5분여를 더 기다려줬었던 괄약근이 대견했을 따름이었다.



등교 전,후 몸뚱아리의 전체무게는 비슷했겠지만 몸밖과 몸안의 무게는 달라졌다.

그나마 다행이었던건 그 날 입은 팬티가 삼각팬티였던것뿐.

그덕에 하반신에 걸친 의류중 양말은 건졌다.


왜 조금만 더 참지 못참았냐고 물어보는 사람이 있다면,

속사정이 어찌됐었든간에 이미연씨가 명성황후를 100화 이후 

하차했던 이유와 동일하다고 답을 할 수 밖에 없다.


더 이상 시간싸움과 줄다리기가 의미없어진 가운데 내려오는 엘레베이터를 보며,

탑승자에게 원망과 증오, 미움, 그 모든것이 한데 섞인 눈빛을 보낼것인가,

수치심과 부끄러움에 도망을 갈 것인가를 고민하기 시작했지만

딱히 걸음걸이를 크게 땔 수도 없는 관계로 1분은 금방 지나갔고

마침내 엘레베이터 문이 열렸을 때 탑승자는 아무도 없었다.

************************************************************


* 노틸러스님에 의해서 자유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9-06-18 09:52)
* 관리사유 : 피지알스러운 글 감사드립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타카이
18/12/11 17:40
수정 아이콘
왜 댓글도 없는데 추천이 박혀있죠...?
왜 글이 중간에 잘린 듯한 엔딩인가요...
Zoya Yaschenko
18/12/11 17:47
수정 아이콘
싸셨답니다.
데낄라선라이즈
18/12/11 17:40
수정 아이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18/12/11 17:44
수정 아이콘
라임을 살려 귀소변능 추천합니다.
체리사과배포도
18/12/11 17:50
수정 아이콘
진한 느낌이네요... 고층은 이래서 무섭습니다...
허브메드
18/12/11 17:53
수정 아이콘
손에 땀을 쥐면서

읽었습니다.

어쩐지 축축 합니다
foreign worker
18/12/11 17:56
수정 아이콘
고소공포증이 좀 있어서 고층아파트를 싫어하는데, 이런 문제도 있었군요....
고무장이
18/12/11 17:58
수정 아이콘
캬 필력이라고 하나요 흡입력 죽이네요 크크
현곰완둥옒
18/12/11 18:02
수정 아이콘
지리셨군요..
켈로그김
18/12/11 18:08
수정 아이콘
지리네요 크크크
유자농원
18/12/11 18:36
수정 아이콘

와아아
강동원
18/12/11 18:51
수정 아이콘
추천 이야기는 일단 똥이야!
철철대왕
18/12/12 09:09
수정 아이콘
흡입력이 대단하여 내 일마냥 읽고 있었는데.. 누수(?)된 부분에서 하마터면 같이 누수될뻔 했습니다.
리니시아
18/12/12 13:05
수정 아이콘
[등교 전,후 몸뚱아리의 전체무게는 비슷했겠지만 몸밖과 몸안의 무게는 달라졌다.]
박수....
LnRP_GuarDian
19/06/18 09:57
수정 아이콘
필력 너무 좋아요 킄크크크크 오늘 출근하고 처음으로 웃었네요
야누수
19/06/18 12:09
수정 아이콘
으아니 챠~!! 몇달전 글에 답글이....??
다시 한번 피지알스러운 사유에 감사드립니다.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3559 [리뷰] 피식대학 05학번 시리즈 - 추억팔이에서 공감 다큐로 [20] 라울리스타4256 22/08/08 4256
3558 어제 달려본 소감+다이어트진행상황 (아무래도 우주전쟁님이 날 속인거 같아!) [19] Lord Be Goja3576 22/08/06 3576
3557 늘 그렇듯 집에서 마시는 별거 없는 혼술 모음입니다.jpg [30] insane3421 22/08/06 3421
3556 [역사] 괴뢰국가 만주국의 최고 학부 건국대학의 조선인 유학생들 [13] comet213613 22/08/05 3613
3555 쉬지 않고 40분 달리기에 성공했습니다... [36] 우주전쟁3507 22/08/04 3507
3554 (풀스포) 탑건: 매버릭, '친절한 매버릭 투어' [28] Farce4264 22/08/04 4264
3553 특전사의 연말 선물 [37] 북고양이4278 22/07/31 4278
3552 폴란드 방산기념 이모저모2 [45] 어강됴리3943 22/07/29 3943
3551 보행자가 무시당하는 사회 [94] 활자중독자4280 22/07/26 4280
3550 중학교 수학과정을 마쳤습니다... [50] 우주전쟁4288 22/07/25 4288
3549 [역사] 일제 치하 도쿄제대 조선인 유학생 일람 [60] comet211753 22/07/24 1753
3548 MCU의 '인피니티 사가' 후속, '멀티버스 사가' 윤곽이 공개되었습니다. [164] 은하관제2020 22/07/24 2020
3547 [역사] 이순신은 정말 무패(無敗)했는가? (2) [15] meson1402 22/07/20 1402
3546 KF-21 초도 비행 기념 T-50/FA-50 이야기1 [24] 가라한639 22/07/19 639
3545 대한민국 출산율에 이바지 하였습니다!! [110] 신류진872 22/07/12 872
3544 [테크 히스토리] 다이슨이 왜 혁신적이냐면요 [33] Fig.12555 22/07/12 2555
3543 설악산에 다녀 왔습니다. [33] 영혼의공원888 22/07/11 888
3542 [기타] 히오스는 너무 친절했다. [138] slo starer1212 22/07/10 1212
3541 스포有. 탑건 매버릭. 미국에 대한 향수 [35] 지켜보고있다980 22/07/10 980
3540 단면 [12] 초모완520 22/07/09 520
3539 (스포) 단 1화 만에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빠진 이유 [80] 마스터충달2588 22/07/06 2588
3538 소소한 취미 이야기 - 은하수 촬영 [52] 시무룩890 22/07/06 890
3537 관심의 한계는 내 세계의 한계 - 구글 시트 공유합니다 [28] Fig.11030 22/07/06 1030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