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봐도 좋은 양질의 글들을 모아놓는 게시판입니다.
Date 2018/06/09 20:46:37
Name 시드마이어
Link #1 https://brunch.co.kr/@skykamja24/151
Subject 남은 7%의 시간
"우리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부모님과 보낼 수 있는 시간의 93%를 사용한다."
- 티모시 페리스 '타이탄의 도구들'

지난 2월 11일 할머니가 하늘나라로 가셨다. 편안하게 돌아가셨다. 당일 아침에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크게 놀라지 않았다. 그저 '이제야 편안하시겠구나' 하는 마음이었다.

할머니는 10년 넘게 치매를 앓으셨다. 새벽 3시에 아프다고 하시기도하고, 분노하시기도 했다. 새벽에 괴성을 지르는 할머니로 인해 다들 잠에서 깨곤 했는데, 가장 힘들었던 분은 아버지였을 것이다. 평생을 함께해온 어머니가 무너지는 모습을 보는 아들은 어떤 심경일까.

다행이도 할머니는 아름답게 떠나셨다. 돌아가시기 전날 아버지는 할머니와 함께 TV도 보고, 같이 배도 잡수시고, 웃기도 하셨다. 손톱도 잘라드렸다. 아버지와 할머니를 위한 마지막 선물같은 순간이었다.

나 역시 할머니와 많은 시간을 보냈고, 할머니를 사랑했지만 눈물은 거의 나지 않았다. 관에 넣기 전 몸을 천으로 감쌀 때 갑자기 마음이 아팠다. 할머니의 표정은 지금이라도 눈을 뜰 것 같은데, 그저 자고 있는 것 같은데, 몸은 차가운 돌덩이였다. 그제서야 현실이 무엇인지 알게 됐다. 사람은 모두 이렇게 굳어가고, 떠나는구나. 나의 부모님도, 내 가족들도, 나 역시도.


티모시 페리스의 책 '타이탄의 도구들'에서는 "우리 모두 끝자락에 서있다."고 표현한다. 우린 어느새 부모님과의 시간을 거의 써버렸다. 붙잡고 싶어도 이미 늦었다. 남은 7%의 시간만 있을 뿐이다. 그러나 부모님의 얼굴을 보기보다 스마트폰을 보고 있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점점 나이들어 약해지는 부모님을 도리어 몰아붙이던 모습이 생각난다.



부모님은 나보다 더 많이 고생하셨다. 나보다 훨씬 못배우셨다. 영어를 읽으실 수도 없고, 요즘 나오는 건 잘 모르신다. 몸은 훨씬 약해지셨다. 밝던 눈은 이제 안경을 써야 한다. 가장 많은 사랑을 주신 분이 이젠 가장 약해졌다. 그런데도 왜 그 분을 사랑하지 않았을까. 왜 나는 보답할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사람은 모두 사랑을 받고 자란다. 그러나 마치 사랑받은 적이 없는 것처럼 기세등등하게 살아간다. 나 혼자 성장한 것처럼 부모님을 미워하기도 했다. 마음 속으로 저주하기도 하고, 더 많은걸 받아야한다고 요구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약해지고 약해지셨을 때, 이제야 생각해본다. 나는 과분한 사랑을 받은 사람이었다는걸. 이제야 알게 된다.

* 라벤더님에 의해서 자유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8-09-07 17:54)
* 관리사유 : 좋은 글 감사합니다.



18/06/09 21:13
수정 아이콘
아들이 태어나고나서 부모님이
제 아들보면서 좋아하시는거 보면
조금이라도 기분이 좋아지기도 하고
부모님이 계속 건강하셔야 되는데
하는 생각이 많이 드네요.....
18/06/09 21:21
수정 아이콘
정말 좋은 글이고 반성하게 되는 글이네요

저도 부모님께 안 그래야지 하면서도 항상 투정과

짜증을 많이 부렸는데 이제라도 잘 해야겠어요

점점 부모님이 약해지시는 걸 보니 마음이 아픕니다
교육공무원
18/06/09 22:07
수정 아이콘
그래서 일찍 결혼하고 손자 재롱 보여드리고 일찍 취업해서 부모님 어깨 펴고 다니시게 하는게 중요합니다
나이먹어 보니 알겠더군요
18/06/09 22:25
수정 아이콘
누구보다도 더 그런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지만 뜻대로 되지 않더라구요

결혼은 포기각입니다
아점화한틱
18/06/09 22:40
수정 아이콘
결혼은 선택입니다. 이런말하면 시대착오적이라고 비난받을 줄은 알지만, 625 전쟁통에도 결혼하고 애낳고 다했습니다. 달라진건 기대치 뿐이예요. 솔직히 우리나라가 언제 잘살아봤습니까. 결혼할 환경, 아이를 키울 환경이라는 것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졌을 뿐이지 객관적인 환경은 매년 좋아지고 있을겁니다.
18/06/10 09:21
수정 아이콘
그럴 수 있으면 좋지만 그럴려고 사는 것도 아니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부모님의 기대를 충족하려 사는 게 아니에요. 올바른 삶을 사는 것 정도면 족하지 서로가 서로의 욕망에 얽메이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서로 기대치와 행동이 들어 맞는다면야 참 좋겠지만 안 그렇다고 비판할 수 없지요.
코메다
18/06/10 16:31
수정 아이콘
머리로는 부모님이 늙었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아직 가슴으로는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더군요.
핸드폰에 중요한 문자가 도착했어도 돋보기가 없다며 집에 가서 봐야겠다고 겸연쩍게 말씀하시거나,
수십년 째 똑같은 요리를 만드시지만, 점점 맛의 일정함이 사라지는 원인에 대해서 늙어서 그렇다고 말씀하시거나,
젊었을 때부터, 매우 건강하신 편인데도, 이제 살짝만 다치셔도 그 증상이 매우 오래 지속되는 것을 지켜보노라면, 세월에 대한 짜증과 더불어 죄스런 마음이 매우 커집니다.
내가 늙은 만큼 부모님도 늙은 것이 정상인데 말이죠.
아케이드
18/06/10 18:06
수정 아이콘
내 아이를 낳고 육아를 시작하면서 비로소 깨닫게 되더군요.
부모님도 나를 이렇게 힘들게 그리고 애지중지 키우셨구요.
율리우스 카이사르
18/06/11 01:06
수정 아이콘
가치관의 문제지 옳고 그름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자기 가치관을 남에게 강요하면 안되죠. 누군가는 자신을 의해 결혼하고 누군가는 부모님을 위해 살수도 있는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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