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다시봐도 좋은 양질의 글들을 모아놓는 게시판입니다.
Date 2015/11/25 10:41:46
Name Secundo
Subject 3935
2010년 구정

외할머니댁에 미리 도착한 가족들이 도란도란 앉아서 간만의 담소를 나눈다.
띵동 소리와 함께 도착한 작은이모네 가족.
시댁에 다녀와서인지 피곤한 기색이 역력하다.
초등학교 2학년이 될 사촌동생도 함께 왔다.

다같이 둘러앉아 세배를 나누고 덕담을 주고받으며 따뜻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세뱃돈은 부모님께 맡겨라, 내가 쓰고싶다, 얼마들었냐 등의 이야기가 오가고 한껏 웃으면서 점심식사를 준비한다.

식탁에 머무는 적당한 웃음기와 안부인사들이 끝나갈때 즈음 사촌동생이 방에서 달려나왔다.
"할머니 나 이번에 세뱃돈 엄청 많이 받았어~!"

"그랴? 너 좋은 것 많이 사먹고 꼬까옷 사달라 햐. 좋것네 좋것어..."

"이거 할머니 줄라고 다 모았어 되게 많아. 이거 있으면 할머니 개성 갈 수 있어?"

정적이 흘렀다.
갑작스레 아이가 던진 한마디에 모두가 숙연해졌다.
몇년 째  이산가족 상봉에 탈락했기에 속상해하는 할머니 앞에서는
어느 누구도 이북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었는데 말이다.






자꾸 몸이 안좋아지셔서 아기처럼 되어버려 매일같이 동생을 찾으신다
혹시 찾아오신다면 못들어 오실까 싶으셨을까.
오늘 두드릴 할머니댁 비밀번호는 3935이다.
동생은 상구. 할머니는 상옥.

* 라벤더님에 의해서 자유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6-03-11 12:45)
* 관리사유 : 좋은 글 감사합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광개토태왕
15/11/25 12:15
수정 아이콘
아.... 정말 숙연해질 수 밖에 없는 한 마디네요....
Neanderthal
15/11/25 13:26
수정 아이콘
글이 낯이 익어서 누구신가 검색해 봤더니 피지알 10대 명문 가운데 하나인 "니끄가?"를 쓰셨던 분이셨군요...^^
오늘도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도들도들
15/11/25 13:45
수정 아이콘
확실히 글을 잘 쓰시네요. 간결하면서도 글의 구성이 정말 좋습니다.
사악군
15/11/25 14:11
수정 아이콘
결국 이산가족 상봉을 못해보고 가신 할아버지 할머니 생각이 나네요..
16/03/11 15:06
수정 아이콘
먹먹해서 추천만 넣었던 기억이 나는 글이 추게로 왔네요.. 다시 읽어도 참 감정이 복받치게 하는 글입니다.
16/03/11 22:30
수정 아이콘
아이의 순수한 말이 때로는 어른들에게는 굉장히 잔인하게 들려올 때가 있지요..
주여름
16/03/16 17:02
수정 아이콘
좋은 글 감사합니다.
설현보미팬Vibe
16/03/18 05:13
수정 아이콘
좋은 글이네요 감사합니다
칠리쿠우
16/03/21 16:10
수정 아이콘
이런 글 때문에 피지알 합니다. 감사합니다.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3399 [NBA] 현대 농구의 역사적인 오늘 [27] 라울리스타4058 21/12/15 4058
3398 그들은 왜 대면예배를 포기하지 못하는가 (1) [75] 계층방정7446 21/12/13 7446
3397 위스키 도대체 너 몇 살이냐 [부제] Whiskey Odd-It-Say. 3rd Try [40] singularian3155 21/12/11 3155
3396 수컷 공작새 깃털의 진화 전략 [19] cheme4007 21/12/10 4007
3395 가볍게 쓰려다가 살짝 길어진 MCU 타임라인 풀어쓰기 [44] 은하관제4399 21/12/07 4399
3394 고인물들이 봉인구를 해제하면 무슨일이 벌어지는가? [66] 캬라10286 21/12/06 10286
3393 [역사] 북촌한옥마을은 100년도 안되었다?! / 한옥의 역사 [9] Fig.14285 21/12/06 4285
3392 굳건함. [9] 가브라멜렉3587 21/12/02 3587
3391 로마군의 아프가니스탄: 게르마니아 원정 [57] Farce4399 21/12/01 4399
3390 올해 국립공원 스탬프 마무리 [20] 영혼의공원4071 21/11/29 4071
3389 꽤 행복한 일요일 오후였다. [15] Red Key3797 21/11/23 3797
3388 [도시이야기] 경기도 수원시 - (3) [12] 라울리스타3310 21/11/16 3310
3387 신파영화로 보는 기성세대의 '한'과 젊은세대의 '자괴감' [23] 알콜프리4992 21/11/15 4992
3386 <1984 최동원> 감상 후기 [23] 일신5265 21/11/14 5265
3385 김밥 먹고 싶다는데 고구마 사온 남편 [69] 담담11322 21/11/11 11322
3384 [스포] "남부군" (1990), 당황스럽고 처절한 영화 [55] Farce4097 21/11/10 4097
3383 나의 면심(麵心) - 막국수 이야기 [24] singularian3356 21/11/05 3356
3382 신해철, '해'에게서 '소년'에게 (1) [26] 글곰3979 21/11/03 3979
3381 일본 중의원 선거에 관련된 몇 가지 이야기들 [78] 이그나티우스6785 21/11/03 6785
3380 [NBA] 영광의 시대는? 난 지금입니다 [28] 라울리스타6561 21/10/22 6561
3379 [도로 여행기] 대한민국에서 가장 높이 올라가는 도로, 만항재와 두문동재 [19] giants4766 21/10/30 4766
3378 [역사] 이게 티셔츠의 역사야? 속옷의 역사야? / 티셔츠의 역사 [15] Fig.13761 21/10/27 3761
3377 우리가 이곳에 있는 이유는 우리가 이곳에 있는 이유는 우리가 [12] Farce3575 21/10/24 3575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