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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9/07/22 12:31:09
Name aurelius
Subject [역사]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의 자발적 부역자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는 어이없게 쉽게 무너지고 항복했습니다.


전쟁에서 패한 프랑스 공화국은 국명을 "프랑스 공화국(Republique Francaise)"에서 "프랑스 국가(Etat Francais)"로 개칭하고

독일의 전쟁수행에 협력하는 종속국으로 전락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전쟁에 패배해서 어쩔 수 없이 협력한 것일까요?

실상은 보다 복잡합니다. 

 

프랑스의 당시 우파는 프랑스 공화국의 붕괴를 진심으로 환영했습니다.

그들 입장에서 프랑스 공화국은 좌파적이고, 퇴폐적이며, 지나치게 자유주의적이며, 도덕도 전통도 없는 근본없는 것들의 소굴이었습니다. 

 

1789년 프랑스 혁명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이야기입니다. 공화주의자들과 왕당파들은 서로를 죽이고 죽였습니다. 공화주의자들은 방데의 학살을 저질렀고, 대혁명 이후 왕정복고 시절에는 공화파들이 백색테러에 시달렸습니다.  

 

자유주의자들, 공화주의자들은 왕당파와 전통주의자들을 미신에 빠진 사람들, 사회의 진보를 억압하는 자들, 대다수 인민들에 기생하는 착취자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반대로 왕당파(그리고 후에 보수주의자들)들은 공화주의자들을 종교를 부정하는 사탄, 유대인 집단, 국가의 전통과 사회의 공중도덕을 파괴하는 사악한 족속들이라고 보았고, 이 배후에는 교사, 언론인, 유대인 자본가들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대혁명 이후 왕정복고, 또 다시 혁명과 공화국, 그리고 다시 왕정복고와 쿠데타 등 여러 우여곡절을 겪었고 1871년 프랑스-프로이센(독일) 전쟁 이후 왕정이 최종적으로 폐지되고 공화국이 탄생했습니다. 공화국이 탄생하고 정치가 안정화되었지만 이면에는 캐캐묵은 갈등이 여전히 미해결 상태로 남아있었습니다. 

 

하지만 단기적으로 해외팽창, 아프리카와 동남아 등지에서 식민지 확보, 산업화와 비약적인 경제성장 등으로 갈등이 당분간 수면 아래에 남아있었고 공화국은 일정한 안정감을 유지했습니다. 그런데 제1차 세계대전의 참상을 겪고, 그리고 이후 경제대공황을 겪으면서 갈등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신문을 연달아 장식한 부정부패 스캔들, 주가조작, 온갖 종류의 초대형 비리에 대한 뉴스가 터지면서 

프랑스란 무엇인가. 

공화국이란 무엇인가. 

왜 이렇게 사는게 힘든가. 

삶의 이유가 무엇인가. 프랑스의 부정부패의 원인이 무엇인가를 두고 나라가 완전히 분열되었습니다. 

 

극좌파는 러시아의 모범을 따라 프롤레티리아 혁명이 답이라고 외쳤고, 반대로 극우파는 교회와 지주들의 지지에 힙입어 사회정화 운동, 반유대주의 운동을 벌였습니다. 좌파 정치인이 암살당하고, 또 우파 시위대는 경찰과 충돌하여 수십명이 죽고...

사회가 그렇게 분열된 와중 전쟁이 터졌고, 이미 국가일체감을 상실한 프랑스는 아주 쉽게 항복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항복후 새로 탄생한 프랑스 정부는, 대혁명 이후 미완상태로 남았던 과제를 수행하고자 했습니다.

좌파척결, 공화주의자 척결, 가족과 전통 그리고 종교의 부활 말이죠. 

이는 독일이 강요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프랑스인들이 스스로 선택한 것이었고, 그들은 대혁명의 유산과 이의 악영향을 모조리 없애고자 했었습니다. 

많은 프랑스인들의 질서의 회복을 환영하였으며, 

독일을 이길 수 없다면 독일이 주도하는 질서에서 상석을 차지하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프랑스는 연합군에 의해 해방되고 또 독일은 전쟁에서 패배했습니다. 

드골은 개선장군처럼 파리에 입성하였고 그는 레지스탕스를 이끌던 공산주의자들과도 손을 잡았습니다.

여기서 드골이 돋보이는 게 드골은 독실한 가톨릭 신자이며 전통주의적이고 왕당파였던 부모 밑에서 자란 군인이었으나 그는 대혁명의 유산을 존중했고, 프랑스 공화국에 대한 무한한 충성심과 존경을 표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프랑스의 위대함을 회복하기 위해서 좌파와도 손을 잡았고, 또 프랑스의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 과거의 동지였던 부역자들을 숙청하는 것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중심으로 하여 새로운 신화를 만들어냈죠. 우파든, 좌파든 모두 "위대한 프랑스"를 위해 봉사하는 "애국자"라는 신화. 부역자는 거의 없었다는 신화. 심지어 있었다 하더라도 개과천선했다는 신화. 다수의 프랑스인이 레지스탕스였다는 신화. 


드골 본인은 굉장히 권위주의적이고 때로는 무모한 사람이었지만, 그 덕분에 오늘날 프랑스가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미국의 루즈벨트는 원래 프랑스에도 연합군의 군정을 실시할 계획이었으나, 

드골의 고집과 처칠의 만류 덕분에 프랑스는 온전한 주권을 회복할 수 있었으며,

게다가 주권을 회복하는 것을 넘어 심지어 UN 상임이사국 자리를 차지하였고 

또 독일을 상대로 결사항전을 외쳤던 드골 본인이 독일과의 화해를 주도하여 프랑스-독일 우호조약을 체결하였고

궁극적으로는 미국과 영국의 견제에도 불구하고 막무가내로 핵무기를 개발하여 프랑스의 운신을 넓혔습니다. 


프랑스의 내부적 갈등은 드골이 추구했던 영광[Grandeur] 덕분에 봉합되고 가라앉았었는데

프랑스가 더 이상 [위대하지 않게] 되니 다시 캐캐묵은 갈등이 되살아나는 듯합니다.

물론 이민자 이슈와 유럽연합에 대한 태도 등 양상은 조금 달라지고 있지만 말이죠. 


마크롱 대통령은 다시 [위대한 프랑스], [영광스러운 프랑스]를 재건하고자 하는데,

그의 대담한 도전이 과연 성공할지, 계속 지켜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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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언 덕후
19/07/22 12:35
수정 아이콘
장발장을 보면서 놀란게 분량이 정말 많다는 것과
왕당파와 공화파의 분열이 심각했다는걸 알았는데

어째보면 스페인 내전 이전에 프랑스 내전이라는 역사를

세계사에서 배울수도 있지 않았나 했는데 어째 잘

넘어간 모양이더군요
aurelius
19/07/22 12:46
수정 아이콘
1930년대 프랑스 정부는 원래 스페인 내전에 개입하고 싶어했습니다. 그런데 스페인 내전에 反프랑코 진영으로 개입하면 국내의 우파들을 자극하고 도리어 프랑스에 내전이 터질까봐 지원하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있죠.
라이언 덕후
19/07/22 13:00
수정 아이콘
(수정됨) 뭐 이미 보불전쟁때 왕은 항복하고 국민방위군이 우린 항복 인정 못해 했을때부터 프로이센 나폴레옹 3세 엿먹어 할때부터 분열이 심했다는걸 알아챘어야 하는데
그당시엔 배우고도 유럽 킹왕짱이 2류국가에게 그냥 쳐발렸다 이 정도로만 알고 있었으니.. 너무 역사의 단편만 보고 배운것 같네요.
19/07/22 12:59
수정 아이콘
이미 프랑스는 혁명의 시기로 거의 100년을 투쟁심으로 지내왔다보니 내전 아닌 내전을 어느 정도 겪어왔죠.
그런데 무엇보다도 독일이라는 강력한 적이 1870년대부터 등장했다는 것이 정말 큽니다.
프랑스 입장에서 육상에는 아무리 해도 적이 없던 시절과는 완전히 달라졌으니까요.
aurelius
19/07/22 14:01
수정 아이콘
통일독일의 등장이 프랑스 입장에서는 대단한 충격이었죠. 1871년부터 생긴 열등감이 현재 2019년에도 진행중이니까요.
빠따맨
19/07/22 13:37
수정 아이콘
드골처럼 타협하고 포용하는게 정말 중요하죠
역사라는걸 보니까 결국 세상이라는 그렇게 돌아가고 발전하더군요
하지만 지금 한국의 분위기에서는 용납못할거에요
서로 너만 없으면 된다의 극단적 분위기라서 타협하는건 결코 있어서는 안될 짓이라고 보니까요
애초에 그런게 가능하지도 않지만 서로가능하다고 믿고 있으니 원..
DownTeamDown
19/07/22 14:39
수정 아이콘
아마 한국은 6.25 이후에 타협과 포용이 없어졌죠
전쟁이 났으니 우파는 신나게 좌파를 학살하고
나중에는 중도정도여도 자기맘에 안들면 좌파로 몰아서 죽이고
그러다보니 결국 나중에는 좌파 말리기가 실패했고
이제 어느정도 화해하려고 했는데 그걸 다시 우파가 좌파 죽이기 해서 또 망가졌죠
결국 마지막에 망친사람은 이명박이라고 봐야
시나브로
19/07/22 14:43
수정 아이콘
국가사회 내부분열의 아찔함이 느껴지는 유익한 글이네요. 위에 빠따맨님 댓글에도 절로 공감되고요.
metaljet
19/07/22 15:51
수정 아이콘
만약 나치에 끝까지 저항했으면 전국이 다 초토화 되어 전후에도 그냥저냥한 삼류국 신세를 전전했을텐데 페텡이 위대한 프랑스를 위해 죄악을 다 짊어지고 순교한셈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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