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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9/06/12 10:20:36
Name 서양겨자
Subject 황석영이 말하는 이문열
내가 이문열을 처음 만난 것은 1982년 대구에서 였다. 당시에 고은 시인이 광주항쟁 이후 이른바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의 연루자로서 대구교도소에서 복역중이었다. 사건은 별게 아니었지만 일반면회가 금지되어 있던 당시에 동료를 격려한다는 차원에서 문인들과 언론인, 교수 등이 어울려 대구에 몰려갔다.

마침 대구에는 영남대학교를 비롯해 계명대 경북대 등지에서 교수직을 하는 지인들과 문인들도 많아서 형식적인 재판이 끝난 뒤에 술집에 모여보니 삼십 명이 넘었다. 나도 광주에서 송기숙과 함께 갔었고 마침 석방되어 있던 김지하와 이시영 조태일 박태순 이문구 염무웅 김종철 등등 여럿이 있었다. 이튿날까지 술자리가 계속되었는데 오후 뒤늦게 이문열이 대구의 기자들과 함께 찾아왔다.

나는 그가 민음사에서 '사람의 아들'을 냈다는 것은 들어 알고 있었지만 그 이상의 활발한 창작을 하고 있는 줄은 몰랐다. 나는 지금도 그렇지만 문단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다른 작가들의 작품에 대해서 무심하게 지나쳐버리는 버릇이 있었다.

술자리가 질펀해지고 있었는데 이문열 청년이 술이 올라서 김지하와 더불어 이야기를 했다. 이문열은 '삼국사기의 역사적 관점이 글렀다고 그러는데 문장은 고문 중에서 가장 좋다'라고 말했다. 무슨 얘기인지 들으면 대충 뜻을 알 만한 말이었다. 거기에 덧붙여 서예 얘기를 나누다가 이문열이 '이완용은 매국노였지만 당대의 명필이었다는 점은 인정해야 한다'고 했다.

듣다 못하여 나도 취한 김에 '야 이 사람아 그러면 일본군 총 맞아 죽은 동학농민군 돌쇠가 죽으면서 이완용은 명필이다 외치고 죽겠냐' 그랬던 기억이 난다. 김지하가 '니가 서예에 대하여 뭘 아냐'고 하자 나는 홧김에 '니가 배웠다는 미학이 경성제대 창설 이래 가장 쓰잘데기없는 학문이라는 건 안다'고 대꾸했고 술자리는 파장이 되었다.

나는 이문열에게 '이제 시작하는 모양인데 모든 건 자기 선택의 문제' 라고 말했다. 나는 애초에 논쟁적인 사람이 아니다. 공격받고 오해되는 일이 있어도 그냥 흘려버리고 잊는다. 이문열이 80년대 이래로 치열한 상황이 벌어질 때마다 체제의 편에 서서 여러 가지 주장을 하는 것에 대하여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곤 했다. 솔직히 게을러서 그의 작품들은 거의 읽을 인연도 없었다.

내가 방북하고 베를린 거쳐서 뉴욕에 체류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아마도 1992년이었다. 어느날 이문열이 뉴욕에 왔다면서 내게 전화를 했다. 나는 외롭던 시절이고 문인이 해외에서 나를 찾은 것도 오랜만이라 반가웠다. 그래서 부근에 사는 동창에게 천 불을 꿔가지고 맨해튼으로 나갔다. 아무리 망명자 신세라지만 내가 선배이니 마땅히 술은 내가 한잔 사야겠다는 허세였다.

술이 몇 잔 돌아간 뒤에 이문열이 언제 귀국할 거냐고 물어 왔고 나는 그냥 때를 보고 있는 중이라고 대답했다. 이문열은 동구권의 붕괴와 함께 북한체제의 불합리성에 대해 격렬하게 얘기를 꺼냈다. 나는 무덤덤하게 듣고 있다가 나도 이형과 같은 생각이라고 대꾸했다. 북한은 사회주의의 본질에서 멀어졌고 실상 군사파시즘의 모습을 띄는 독재체제라고.

이문열이 물었다. 그럼 왜 방북했냐고. 나는 언제나처럼 '민주화와 통일은 한몸이다. 우리 사회의 민주화가 성숙되는 것이 북한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 되며 그것이 평화적 통일의 길이다' 라고 대답했다.

우리가 피차 술이 좀 취하고 나서 이문열이 문득 월북한 아버지 얘기를 꺼냈다. 나에게 북한을 통해서 좀 알아봐 줄 수 있겠냐고 부탁했다. 나는 생각한 바가 있어서 언제 뉴욕에 다시 오느냐고 물었더니 일주일 뒤에 온다고 했다. 그럼 그때 연락하라고 일어둔 뒤 뉴욕 UN으로 파견된 북한대표부에 전화를 걸어 이문열 부친의 월북 시기와 인적사항을 적어서 팩스를 넣었다.

좀 기다려보라더니 사흘 뒤에 답변하는 팩스와 전화가 차례로 왔다. 팩스에는 이문열 부친의 간단한 이력과 가족관계가 적혀 있었고 생존해 있는 현주소도 나와 있었다. 일주일 후에 이문열이 뉴욕에 왔을 때 그 팩스를 보여 주었다.

나는 지금도 기억한다.

이문열의 부친 이원철은 북한에 가서 전공을 농업경제사가 아닌 수리공학으로 바꿨다. 그는 남로당에 대한 숙청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을 정도로 대단히 유능한 지식인이었다. 원산의 어느 공업대학에 직을 얻었고 재혼하여 오 남매를 두었다. 종이에는 이문열의 배 다른 아우들 이름과 직업과 나이가 길게 나열되어 있었다. 그것을 들여다보고 있던 이문열은 고개를 돌리더니 갑자기 무너지듯이 허리를 굽히고는 흐느끼기 시작했다. 나는 그 처절한 모습을 차마 보지 못하여 고개를 돌리고 눈시울을 닦았다.

한참 뒤에 격정의 파도가 가라앉고 이문열은 술 한 잔을 넘기고는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영감쟁이, 우리 어머니는 진작 당신이 재혼할 줄 알고 있습디다'

나는 베이징 북한대사관에 오면 아버지와 통화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북한의 낚시일 수도 있다. 라고 말해주었다. 이문열은 힐난조로 '황선생, 그러다가 어떻게 귀국하려고 그럽니까. 왜 월북 권유를 하고 다니쇼?'라고 말했다. 나는 그런 일도 없고 그럴 사람도 아니라고 대답할 뿐이었다. 그러고는 이 모든 분단의 억압에서 놓여나고 싶었다. 문학에 대한 노심초사도 벗어버리고 익명의 망명자로 살아가고픈 생각도 들었다. 그때까지 나는 미국의 망명 권유를 마다하고 무국적자로 체류하고 있었다. 그 이후부터 이문열의 모든 상처와 그늘은 내 것처럼 받아들여졌다.

누가 의도적으로 이문열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내게 물으면 나는 대답했다. '그는 전쟁 때 폭격으로 불바다가 된 거리에서 손을 놓친 아우 같다' 라고. 아, 그리고 나는 뉴욕에서 이문열과 헤어지기 전에 말했다.

이제는 당신 아버지를 용서하라고.
그때 아버지는 당신의 아들뻘이었고 훨씬 미숙했던 젊은이었다고.

내가 한국에 와서 구속되었을 때 이문열은 나의 석방 촉구 성명서에 서명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집회에 나와 연설하는 일에도 흔쾌히 나서 주었다. 이문열이 그러한 종류의 일에 동참한 것은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없었다. 이문열은 면회 올 때마다 자신의 책들을 한 아름씩 들여주고 갔었다. 그래서 나는 그제서야 이문열의 작품들을 읽었다.

사람의 아들.
젊은 날의 초상.
영웅 시대 등.

내가 석방된 뒤에 이문열은 논객이 되어 좌충우돌 논쟁을 벌이고 홍위병 사건으로 그의 책들이 화형대에 오르기도 했다. 나는 분노하여 반문화적 처사라고 입장을 밝혔지만 그래도 이문열에게 전화를 걸어 정치 칼럼은 그만 쓰고 소설만 쓰자고 했다.

언제부턴가 언론에서는 진보 보수를 갈라서 선정적으로 이문열과 나를 나란히 올려서 상징화했다. 나는 그것이 불편했고 이문열과 정치적인 맞수로 취급당하는 게 싫었다. 나는 이문열이 그놈의 물귀신 같은 '이념의 덫'에서 놓여나 자유롭게 휴머니즘의 대 벽화를 완성하기를 바랐다. 우리는 나름대로 한 시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고 우리가 누린 모든 영욕도 그들이 준 것이 아니었던가.

나는 이문열의 관념 과잉인 듯한 계열의 작품들보다는 그의 자전적 요소가 엿보이는 '하구'같은 성장소설에 끌린다. 솔직하고 풋풋하며 잔잔한 감동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그 소설의 '인생파'다운 수수함이 여운을 길게 남긴다. 언제나 그러기를 바랄 수는 없지만 가끔씩은 이렇게 순정하고 비틀리지 않은 사람 사는 이야기가 담긴 소설을 읽고 싶다.


이문열은 원래 그런 사람일 것이다.



*출처 문학동네 네이버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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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 단편 중에 '아우와의 만남'이 이 에피소드를 기반으로 쓰여진 소설입니다. 본문의 황석영 글에서는 팩스로 전달된 종이만 읽어보는 데서 그치는데 소설에서는 연변 교포에게 돈을 주고 북한에 선을 대서 베이징에서 배다른 아우와 만납니다. 원망스러웠던 아버지가 다른 여자와 결혼해서 낳은 아우와의 짧은 만남에서 온갖 갈등과 화해가 이루어지는데... 뭐 이런 내용입니다. 이문열의 통일관, 북한관도 얼추 드러나고 분단의 비극도 느낄 수 있고 좁은 남한 땅 내에서조차 좌좀수꼴 나뉘어져서 싸우는 당대의 현실이 참 안타깝게 그려집니다. 

현재로 돌아와서, 부적절한 타이밍에 김원봉이 소환되었고, 야당 대표의 찐따 대응 때문에 백선엽도 테이블에 놓였네요. 이 두사람이 같이 올라가는 구도 자체가 정말 우스운 것이죠. 새삼스러운 일은 아닙니다만. 머릿속 기억을 재고해보고 이 두분이 테이블 위에 올라갔던 옛날을 떠올려 봅니다. 그래서 제가 하고 싶은 말은요,

그렇다. 갑자기 모든 것이 선명하게 보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 가지 헛된 믿음에 빠져 있다. 기억(사람, 사물, 행위, 민족 등에 대한 기억)의 영속성에 대한 믿음과 (행위, 실수, 죄, 잘못 등을) 고쳐볼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한 믿음이 그것이다. 이것은 둘 다 마찬가지로 잘못된 믿음이다. 진실은 오히려 정반대이다. 모든 것은 잊혀지고, 고쳐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무엇을(복수에 의해서 그리고 용서에 의해서) 고친다는 일은 망각이 담당할 것이다. 그 누구도 이미 저질러진 잘못을 고치지 못하겠지만 모든 잘못이 잊혀질 것이다. - 밀란 쿤데라, '농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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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12 10:28
수정 아이콘
사람이란게 참 복합적인 존재죠

당연한건데, 당연한걸 다들 잊어버리고 평가하죠

그게 더 편하기 때문에
복슬이남친동동이
19/06/12 10:47
수정 아이콘
뭐 원봉씨 선엽씨 나오는 문제는 차치하고 확실히 이념이나 사고방식에 있어서 "저 사람은 답이 없네. 소통이 안 된다. 하고 싶지도 않다" 싶게 여겨졌던 사람들이 좀 더 본인, 우리들의 삶의 이야기를 하고 미시적인 관점에서 얘기를 들어보면 갑자기 이해가 가는, 다가오는 경험들이 있습니다.

현실에서도 그렇고 피지알 같은 인터넷에서도 그렇고. 그래서 언제부턴가 그런 얘기가 더 좋더군요.
참돔회
19/06/12 10:51
수정 아이콘
비극입니다.
상처를 입고, 그 상처에 의해 몸부림치고.
19/06/12 10:52
수정 아이콘
저도 말씀하신 부분에 동의합니다.
삶이란게 선악구도로 명확하게 그어지는 경우가 거의 없더라고요. 정작 내가 그 입장에 처하게되면 어떤 선택을 하게되었을지도 생각해보게 되고..
저도 이제는 이념의 이야기보다는 삶의 이야기가 더 좋습니다.
홍승식
19/06/12 11:01
수정 아이콘
내전은 그 상처가 정말 오래가고 누구나 휩싸일 수 밖에 없어 더 아픕니다. ㅠㅠ
어느새아재
19/06/12 11:03
수정 아이콘
간결하고 명료한 글이네요. 역시 조선의 글쟁이 글 잘쓰십니다.
19/06/12 11:14
수정 아이콘
어떤 의미에서는 이문열 입장을 가장 잘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이 황석영이고.
어떤 의미에서는 황석영 입장을 가장 잘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이 이문열이고.

대한민국 근대 역사 비극의 수많은 단면 가운데 하나네요.
한종화
19/06/12 11:18
수정 아이콘
아우와의 만남도 허구가 아니라 있었던 일을 소설로 옮긴 거였을 겁니다. 나중에 kbs에선가 이문열과 그의 형(남한에 남은 친형)이 연변으로 가서 아버지와 연락을 취하려 하는 내용의 다큐를 방송했었습니다. 황석영을 통해서 알아봤을때만 해도 살아있었던 부친이 이미 사망했다는 소식을 거기서 듣게 됩니다. 전화로 사망 소식을 듣자마자 형님은 그 자리에서 오열이 터지는데 이문열은 실감이 안나는지 어쩔줄 몰라하는 표정을 짓던게 기억나네요.
부친이 월북할때 이문열은 걸음마를 겨우 하는 정도였고, 형은 조금 커서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있었다고 합니다.
다크 나이트
19/06/12 11:20
수정 아이콘
당연하지만 가장 어려운면이죠.
근데 어떻게 보면 타인을 평가하는건 그게 한계 인것 같아요.
다크 나이트
19/06/12 11:21
수정 아이콘
그런데 그렇게 보면 변명없는 사람없고 삶이 없는 사람도 없죠. 솔직히 저는 그런 삶의 이야기도 이제는 별로 와닿지는 않습니다. 변명처럼 들리니까요.
cienbuss
19/06/12 11:30
수정 아이콘
이념에 매몰되면 스스로를 연역적이라 생각하게 되기 쉬운데 사람은 귀납적인 존재죠. 강경한 태도는 공부에 기한 강한 신념에서 나오기 보다 어떤 강렬한 경험, 특히 어릴 때 한 경험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은 것 같고요.

주장 뒤에 있는 경험을 얘기해야 서로 이해 할 수 있는데, 기대와 달리 인터넷은 그런 소통에 생각보다 도움이 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현실에서 소외되고 커뮤니티로 도피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이들은 사람들로부터 더 멀어지면서 실체가 불분명한 추상적인 대상에 대한 분노만 키워가고.
복슬이남친동동이
19/06/12 11:34
수정 아이콘
저는 딱히 그 사람에 대해 면죄부를 줄 거냐 말거냐보다는 그냥 미시적이고 개인적인 관점에서 그저 감상을 느낍니다. 다가온 이후에도, 어떤 특정한 주제들에 대한 논지나 판단은 달라지지가 않아요. 그 사람이 달라지지 않는 것처럼. 차이는 여전한데, 그래도 서로가 덜 toxic하게 변하더군요.
다크 나이트
19/06/12 11:37
수정 아이콘
그 미시적이고 개인적인 감상이 거시적인 전체적 평가와 별개로 놓을수 있냐에 저는 의문이 있어서요...
뭐 덜 독해진다는건 좀 이해가 갑니다. 다만 차이가 여전하다는건 전 아닌것 같아서요. 사람의 평가를 완전 뒤집을 정도가 아닌거지 차이가 변하는건 맞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뭐 근데 이거야 제 개인적인 의견이고 이런 이야기는 개개인이 다 다를테니까요.
Judas Pain
19/06/12 11:37
수정 아이콘
예술과 문학하는 사람들 본인들의 욕심이 어떻간에 대개는 거시사 보단 미시사 다루는데 여러모로 능숙하기 마련이지요
복슬이남친동동이
19/06/12 11:43
수정 아이콘
그렇죠. 결국 어느새 원점회귀하는 이야기라서 재밌군요.
메가트롤
19/06/12 11:44
수정 아이콘
잘 보고 갑니다
다크 나이트
19/06/12 11:46
수정 아이콘
뭐 결국에는 개개인이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다르고 이게 정답을 정해야하는 문제도 아닌지라 이정도 선이 딱 맞는것 같습니다.
청자켓
19/06/12 11:49
수정 아이콘
요즘 이런저런 논란을 보면서 한국전쟁은 너무 큰 비극이라는걸 새삼 느끼네요.
19/06/12 11:52
수정 아이콘
맞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유전적인 영향일 수 있고 어릴 적 받았던 강렬한 경험, 혹은 교수 방식의 영향에 이미 가치관이 고정되는 것 같더군요. 그리고 이후에는 정보를 수용할 때 확증편향으로 자신의 기준점을 더욱 강화하거나 혹은 양비론적으로 침식 시키는 과정으로 나뉘는 거 같고.
김연아
19/06/12 11:58
수정 아이콘
제가 뇌졸중 환자를 많이 접합니다.
이 분들은 혈관성 치매인 경우가 많죠.
치매가 오면 시간, 장소, 사람 순으로 기억력이 떨어지게 됩니다.

모여대 영문과 교수였던 이제는 80이 되었을 환자 분이 생각이 납니다.
혈관성 치매 때문에 날짜를 깜빡깜빡하시는 분이었어요.
그래서 뵐 때마다 날짜를 묻고 기억하게끔 했죠.
그래도 계속 며칠 차이로 틀리기도 하고 어떤 날은 달을 틀리고...

근데 어느날 아주 정확하게 날짜를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놀라며, 와 오늘은 정확하게 기억하시네요 잘 하셨어요 했더니...
아니 6.25를 어떻게 모르나요? 하시더군요.

그 이후로, 전쟁을 겪은 세대들에 대한 제 생각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그 분들의 정치성향이라든가 여러 가지가 뭔가 한꺼풀을 벗고 보게 되고, 이해하려고 하게 되더군요.

물론 전쟁을 겪었다고 다 같지 않다는 건 압니다만,
치매 중에도 기억날 정도로 그들 가슴에 전쟁은 아로새겨져있는 것이었습니다.
세인트루이스
19/06/12 12:06
수정 아이콘
저도 술술 읽히는게, 역시 문인의 글은 다르다 싶었습니다.
CapitalismHO
19/06/12 12:33
수정 아이콘
표현이 너무 멋있습니다. '스스로를 연역적이라 생각하기 쉬운데 사람은 귀납적인 존재다'... 사실 어떤 사람이 가지고 있는 대부분의 이념이나 사고관이라는건 합리적인 생각과 고찰에 기반해서 형성됐다기 보다 어떤 우연적인 요소로 생기고 그 다음에 온갖지식을 동원해서 합리화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똑똑하고 배운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이상한 주장을 하는경우가 많이 보이죠. 다만 더 배운사람일수록 더 자기합리화를 잘하는 차이는 있지만요.
해맑은 전사
19/06/12 12:44
수정 아이콘
담담하게 쓰여진 무거운 글이네요.
율리우스 카이사르
19/06/12 13:30
수정 아이콘
와... 좋은글 감사합니다.
19/06/12 13:46
수정 아이콘
좋은글 좋은댓글 잘 보고 갑니다
19/06/12 13:55
수정 아이콘
황석영작가가 모아놓은 한국단편 100선이던가 거기에 들어있던 글이죠

작가하나하나 뽑고 그 작가의 대표단편 하나 뽑고 이에 대해 황석영이 코멘트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문동연재시절 챙겨봤는데

아쉬운점은 확실히 00년대 이후작가들의 대한 작품평은 좀 많이 아쉬웠던 크크 물론 뽑은 단편들은 의외로 꽤나 감각적인 작품들이었습니다.
사악군
19/06/12 14:00
수정 아이콘
예전에도 읽었지만 참 좋은 글이죠.
바보소년
19/06/12 14:06
수정 아이콘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글이었습니다.
감사의 마음을 담아 추천 꾹 누르고 갑니다.
19/06/12 14:36
수정 아이콘
그게 더 편하기 때문에 라는 말이 참 아프게 공감가네요.

그래서 인물평가 또한 평면적으로 단정짓지 않고 싶어요. 어떤 사건 하나로 낙인찍어놓고 뭔 일 나올때마다 그전 사건 '하나때문에' 거릅니다 하는 분들 보면 세상 편하게 사려 하는구나, 라는 생각이 갈수록 들게 됩니다.
사악군
19/06/12 15:19
수정 아이콘
주장 뒤에 있는 경험을 이야기하려면 상대에 대한 신뢰가 필요하지요. 주장은 부정당해도 감정이 깊게 상하지 않지만 경험은 부정당하면 상처가 크거든요. 그래서 인터넷 공간도 화자 본인경험의 이야기에는 보통은 조심합니다만, 익명의 많은 사람이 있는 공간이다보면 보통이 아닌 자들도 있기 마련이니까요.

경험을 나눌 수 있는 신뢰가 있는 공간은 아무래도 규모가 더 작을수밖에 없지 않나 합니다.
새강이
19/06/12 16:09
수정 아이콘
좋은 글 감사합니다 추천하고 갑니다
예나내딸
19/06/12 17:23
수정 아이콘
멋집니다...역시 역시 황 선생님입니다. 그리고 이문열 선생님도 안타까운 마음이 드네요.
재즈드러머
19/06/12 17:39
수정 아이콘
글쓰는 폼이… 역시 레전드는 다르네요.
Chandler
19/06/12 18:17
수정 아이콘
정치이념이나 성향은 종교라고 생각합니다.

타종교인이라고 안섞여 살것도 아니고 친구가 안될것도 아니잖아요.

다만 (각자가 자신의 종교에 심취했다는 전제에선)종교주제에선 대화가 절대안되겠죠
유쾌한보살
19/06/12 18:54
수정 아이콘
역시...대작가의 글은, 글자가 수정체를 통과하자마자 요점이 바로 뇌에 입력되어버리는구먼유.
이문열이나 황석영이나 ... 평생 이념에서 자유롭지 못한 채, 양쪽 끝에 서 있으면서도...
통일 문제에 있어서는 서로가 문학적 사명감으로써 통했던 것 같습니다.
cienbuss
19/06/12 20:18
수정 아이콘
말씀하신대로 교육도 크고, 나이 먹어서는 반대되는 정보를 얻어도 생각을 바꾸려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다양한 경험이 중요한 것 같아요.
cienbuss
19/06/12 20:19
수정 아이콘
그래서 보편인류애는 너무 어려운 것 같습니다. 인터넷도 그나마 깨끗해 지려면 소규모 폐쇄형이 나은데. 잘못하면 친목질과 작은 사회 문제로 터져버릴 수도 있고. SNS도 진정한 소통이 이루어지는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일 수 밖에 없는 것 같아요. 유의미한 관계를 위한 시작점을 제공하는 정도가 한계고.
cienbuss
19/06/12 20:20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확실히 똑똑하고 잘 배운 사람이 엇나가기 시작하면 합리화는 더 잘 하고, 그래서 더 위험한 것 같습니다.
태엽없는시계
19/06/12 21:29
수정 아이콘
추천합니다. 생각이 깊어지네요.
강미나
19/06/13 00:33
수정 아이콘
누군가는 평생 5.18을 새기고 누군가는 세월호를 새기듯이, 6.25도 누군가에겐 지금도 생생한 현실인거죠. 저도 좋은 글 감사합니다.
The Special One
19/06/13 03:42
수정 아이콘
글 진짜 잘 읽힙니다.
의지박약킹
19/06/13 06:48
수정 아이콘
제가 몇 년전에 피지알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 황석영 작가의 똑같은 글이 올라오고 똑같은 반응이 나왔던 것 같은데...크크크
야부키 나코
19/06/13 07:49
수정 아이콘
https://pgr21.co.kr/?b=8&n=53766
검색해보니 똑같은 제목으로 5년전에 올라왔었네요. 이 글 말씀하시는거죠??
5년전 댓글 보는것도 재밌네요.흐흐
19/06/14 13:17
수정 아이콘
좋은 글 공유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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