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19/05/08 22:51:27
Name 히힛
Subject [일반] [8] 내 아빠
솔직히 돈이 최고인것 같다.
오늘도 내 앞에서 돈자랑을 늘어놓는 이 사람을 보고 있자면 그랬다.
이 사람은 4개월 전 다른 사업을 해야 한다며 급전이 필요하다고 회사에서 근저당으로 잡아둔 담보 2억 가량을 보증보험으로 변경했다.
그리고 오늘 아침 대출을 다 갚았다며 담보를 다시 근저당으로 바꿔달라고 한다.
대화가 이렇게만 진행됐으면 괜찮았었을텐데 뒤이어 나오는 자랑을 듣고 있자면 속이 쓰리다.
설명해주지 않아도 알고 있다. 4개월 만에 2억을 갚았을테니.
대화가 끝나고나면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보잘것 없는 내 벌이에 퇴근 생각이 밀려온다.
"하... 부럽다."


어릴 적 얘기를 하자면 구차하지만, 지금도 폰이 잘 안터지는 촌구석에서 태어나 집안은 보수적이고 가부장적이었다.
부모님은 거기서 평생 살 수 없다며 고향을 나왔지만 살림살이가 빡빡한 탓에 아버지, 어머니는 내가 기억도 잘 못하는 시절부터 맞벌이를 하셨다.
하나 있는 형은 유치원을 다녔고 나도 매우 가고 싶어했지만 돈이 없어 못 가고 혼자 방안에서 매일같이 울었다.
그 시절 기억은 그것 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4살짜리 딸과는 친구처럼 사는게 내 바람이다. 하지만, 매일 퇴근 시간이 되면 몸 가누기도 힘들어지고 어떻게하면 딸아이를 조금이라도 빨리 재울까 고민한다.
왜 내 옆에 선배 유부남들이 매일같이 술을 마시고, 술 상대가 없으면 야근한다며 거짓말을 하며 피시방을 갔던지 요즘 깨닫는다.


오늘도 퇴근을 하고 지하1층에 주차하고 의자를 젖혀 잠깐 누웠더니 왜 안올라오냐며 카톡이 왔다. 시대가 너무 좋아진 탓이다.
엘레베이터에 타 버튼을 누르고 잠시 후 1층에서 문이 열렸다. 얼핏 봐도 중,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통화하며 올라섰다.
금세 문이 닫히고 아이는 통화가 끝났는지 핸드폰을 든 손을 내려 놓는 장면에서 보려했던건 아닌데 액정이 보였다.
'내아빠' 세글자였다.
별 거 아닌것 같았는데 뭉클해졌다. 아이가 아버지를 얼마나 아끼는지 느껴진다.
그 아버지 참 부럽네.

다행이다. 이게 더 부러운걸 보니 돈이 최고인줄 알았는데 그건 아닌가 보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펠릭스30세(무직)
19/05/09 01:09
수정 아이콘
그래도 많은 경우에는 돈보다는 가족이지요.

그 행복을 위해서 필요한게 돈이구요.

잘읽었습니다.
metaljet
19/05/09 18:20
수정 아이콘
4살짜리 딸이라니 세상에서 제일 부러운 분이군요!
머리가 굵어진 저희집 딸은 이제 아빠에겐 용돈 달라 소리 할때 이외엔 애교를 안부립니다.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01343 [일반] 다윈의 악마, 다윈의 천사 (부제 : 평범한 한국인을 위한 진화론) [19] 오지의1713 24/04/24 1713 6
101342 [정치] [서평]을 빙자한 지방 소멸 잡썰, '한국 도시의 미래' [14] 사람되고싶다1281 24/04/24 1281 0
101341 [정치] 나중이 아니라 지금, 국민연금에 세금을 투입해야 합니다 [38] 사부작2228 24/04/24 2228 0
101340 [일반] 미국 대선의 예상치 못한 그 이름, '케네디' [50] Davi4ever5276 24/04/24 5276 2
101339 [일반] [해석] 인스타 릴스 '사진찍는 꿀팁' 해석 [6] *alchemist*2594 24/04/24 2594 6
101338 [일반] 범죄도시4 보고왔습니다.(스포X) [28] 네오짱4090 24/04/24 4090 5
101337 [일반] 저는 외로워서 퇴사를 결심했고, 이젠 아닙니다 [17] Kaestro4034 24/04/24 4034 10
101336 [일반] 틱톡강제매각법 美 상원의회 통과…1년내 안 팔면 美서 서비스 금지 [30] EnergyFlow3570 24/04/24 3570 2
101334 [정치] 이와중에 소리 없이 국익을 말아먹는 김건희 여사 [16] 미카노아2901 24/04/24 2901 0
101333 [일반] [개발]re: 제로부터 시작하는 기술 블로그(2) [14] Kaestro2747 24/04/23 2747 3
101332 [정치] 국민연금 더무서운이야기 [125] 오사십오9327 24/04/23 9327 0
101331 [일반] 기독교 난제) 구원을 위해서 꼭 모든 진리를 정확히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86] 푸른잔향4018 24/04/23 4018 8
101330 [일반] 교회는 어떻게 돌아가는가:선거와 임직 [26] SAS Tony Parker 2881 24/04/23 2881 2
101329 [일반] 예정론이냐 자유의지냐 [59] 회개한가인3656 24/04/23 3656 1
101328 [정치] 인기 없는 정책 - 의료 개혁의 대안 [134] 여왕의심복6015 24/04/23 6015 0
101327 [일반] 20개월 아기와 걸어서(?!!) 교토 여행기 [30] 카즈하2594 24/04/23 2594 8
101326 [일반] (메탈/락) 노래 커버해봤습니다! [4] Neuromancer753 24/04/23 753 2
101325 [일반] 롯데백화점 마산점, 현대백화점 부산점 영업 종료 [38] Leeka5654 24/04/23 5654 0
101324 [일반] 미 영주권을 포기하려는 사람의 푸념 [48] 잠봉뷔르8164 24/04/23 8164 96
101323 [일반] [개발]re: 제로부터 시작하는 기술 블로그(1) [14] Kaestro3662 24/04/22 3662 8
101321 [일반] [서브컬쳐] 원시 봇치 vs 근대 걸밴크 vs 현대 케이온을 비교해보자 [8] 환상회랑2823 24/04/22 2823 5
101320 [일반] 이스라엘의 시시한 공격의 실체? [20] 총알이모자라27355 24/04/22 7355 3
101319 [일반] 작년 이맘때 터진 임창정이 연루된 주가조작사건을 다시 보다가 이런 게시글을 발견했습니다 [22] 보리야밥먹자11031 24/04/22 11031 1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