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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7/08/18 08:14:32
Name minyuhee
Subject 피라미드의 지하에서
다양한 교육기관에서 장기간의 교육을 마친 젊은이들은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모험가들이 활동하는 황야로 나갈 것인가, 직장이란 피라미드에 진입할 것인가. 황야에는 무수한 자들이 떠돈다.
모두가 경외하는 신선, 놀라운 실력을 자랑하는 사냥꾼, 성을 쌓아올리고 영주가 된 귀족, 캐러반을 이끄는 대상, 용병단을 이끄는 무인이라면
성공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많은 이들은 이리저리 휘둘린 끝에 여비를 모두 잃게 되고, 비바람을 피하기 위해선 토굴에 모여드는
인내를 겪을 수밖에 없다.
피라미드는 황야를 두려워하는 자, 황야에서 실패를 겪은 자, 피라미드의 상층에 도전하려는 자, 그리고 모든 시민들에게 열려있으니,
시민들은 자연히 모여든다.

상층에는 우아한 자들이 산다. 뛰어난 실력을 갖춘 위인들, 그리고 위인이 끌어올려준 친지들이다.  그들은 황야에서 성공한 실력가들와
교류하여 이득을 나눈다. 상층의 아래에는 많은 시민들이 거주하는 일반 구역이다. 구역에 정착하기는 어렵지 않다.
어느 정도의 능력이나 어느 정도의 행운 중에 하나라도 있으면 충분하다. 많은 시민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지 못한 소수의 불행한 이들만은 피라미드의 지하로 내려가니, 이들에겐 다양한 명칭이 주어지며, 명칭 중 하나는 비정규직이다.
지하에서도, 아니 지하이니만큼 더욱 강렬한 상호간의 갈등과 계층이 존재하지만  지하를 벗어나기 위한 방법은 몇 가지 있다.

첫째는 승리이다. 승리의 대가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유리공장의 비정규직이었던 강민은 스타크래프트 대회에서 승리하여 역대연봉에
이를 수 있었다. 헐리우드의 거물 해리슨 포드와 실베스터 스탤론은 생활비를 벌기위해 부업을 멈출 수 없었고, 마이크 타이슨이나
데니스 로드맨은 빈민가의 불량한 흑인에 불과했다. 또한 특별하지 않아도 공무원이란 길이 있다.
물론 지하의 생활을 병행하면서 승리를 준비하는 것은 크나큰 약점이다.
나의 친구는 노동 1년, 공부 1년을 5회를 반복한 끝에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였다. 그것만으로 지하를 벗어나 일반 구역으로 직행할 수 있다
경쟁을 돌파했다면 누구든지 영예를 누릴만하지만 어디까지나 개인적이다. 사회적인 숫자는 동일한 것이다.
나의 다른 친구는 10년이 다 되어간다. 최근 2평짜리 고시원에 방을 잡았다.
승자가 딛고온 사다리는 패배자의 척추이며, 부서진 등뼈가 널려있는 사회는 유약해지고, 때로는 사악해지기도 한다.

둘째는 행운이다. 양파밭을 팠는데 현금뭉치가 발견될 수도 있고, 주유소의 쓰레기통에서 은행강도가 묻어놓은 달러뭉치가 발견될 수도 있고,
해변에서 억대의 용연향을 주울 수도 있다. 모두가 현실이다. 당장 매달마다 30여명의 로또 1등이 탄생하니, 그들은 막대한 거금을 획득한다.
생산직 비정규직으로 구박받는 청년과 경쟁을 돌파한 유능한 신입사원은 비교할 수 없다. 그런데 비정규직 청년의 부모가 그룹의 회장이
맹수에 몰렸을 때 구해준 사냥꾼이었다는 과거가 있다면 어떨까. 당장 그룹의 임원을 손짓으로 부리는 권력이 주어져도, 은혜를 갚은
미담으로 권장된다.  유능한 사원이 되는 것과 부모의 과거를 뒤바꾸는 것 중에 무엇이 가능한지는 논할 것이 없다.
태어나 피라미드의 지하로 내몰리기까지 행운을 가질 수 없던 사람이라면, 지하에서도 행운을 가질 수 없을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 행운이란 개인의 인지를 넘어선 것이다.

셋째는 합법도 불법도 아닌, 비범죄의 무언가이다. 재능과 놀라운 절제가 필요하다. 미성년 시절 카림 벤제마 등 유명스타를
에스코트한 사건으로 유명세를 얻고, 그 유명세를 기반으로 성공한 인생으로 도약한 프랑스 미녀의 예도 있다.
그러나 절제를 벗어나, 금단과 범죄의 영역에 들어선다면 몰락은 한순간이다.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였던 고영태는 이권을 확보했지만 한순간에 안전을 위협받는 도망자가 되었다.
비범죄란 재능과 절제까지 갖추고도 안전을 답보할 수 없는 일, 누구에게도 권장할 수 없다. 보상이 높지만, 위험도는 더욱 높다.

승리, 행운, 비범죄를 제외하면 남는 것은 결국 노동이다. 지하의 시민들은 애초에 행운과 능력의 부족으로 내몰린 것이기 때문에
대개의 경우 노동을 통해 자본금을 마련하려 한다.  이것이 비정규직이다.
비정규직은 급여, 인권, 안전 이 3가지의 부족에 시달리는데 급여의 부족은 행운과 능력이 없으니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정규직에게 당한 경험이 없는 비정규직은 없다,  필연이다. 선량한 간부 휘하의 병사들도 병사의 주적은 간부라는 일설에
감히 반론할 수 없으니, 내 위의 간부는 정의롭다고 해도 다른 간부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정규직에겐 비정규직의 인권을 무시할 수 있는 권한이 있으며, 권한을 행사하지 않아도 그 권한의 소유권은 변치 않는다.  

모든 안전규격을 준수하는 경우에 0.1%의 확률로 작은 사고가 발생한다고 가정하자. 작은 사고는 담당자 선에서 쉽게 해결할 수 있다.
0.01%의 확률로 중간 사고가 발생한다. 여기까진 담당자가 고생하면 해결한다. 0.001%의 확률로 대형사고가 발생한다. 이 경우엔
담당자는 막대한 책임을 지게 된다. 사항을 준수하지 않는 경우엔 사고확륭이 10배가 된다고 가정하자. 1%, 0.1%, 0.01%다.
사항을 준수하려면 4명의 인원으로 8시간, 그렇지 않는다면 2명의 인원으로 4시간으로 충분한 상황을 가정하면 인력비는 4배가
되는데 이 경우 담당자는 안전규격을 지킬 수 있는가? 불가능에 가깝다. 4배의 인력을 투입한 담당자가 불이익을 받을 확률은 낮지 않다.
1%로만 잡아도 0.01%의 100배에 이른다. 대형사고를 당한 노동자의 소식은 한 줄의 기사로 끝나고, 가족은 보상금을 받고, 담당자는 처벌을
받는 순환은 계속된다.
내가 한 공장에 있을 때였다. 언제나 멈추지 않던 공정이 길게 멈추었다. 20분 - 30분? 이 지나서 아무밀 없었다는 듯이 다시
작업이 시작되었다. 차후에야 소문을 들어 그 이유를 알았다. 비정규직 청년의 손가락 4개가 절단된 것이다. 그만한 중상이 발생했는데도
반시간 후에는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공장은 움직인다.  

과도한 노동은 급여, 인권, 안전에 더해 건강과 생활을 빼앗아간다.
나는 가까운 공단에서 월 250 + 상여금 별도를 제안받은 적이 있는데, 이 정도면 일반 구역의 시민들과 견줄만하겠지.
조건은 월 1-2회 휴뮤, 주야 2교대. 장기간을 일할 경우 정규직으로 승진할 기회가 있을 가능성도 있다.
그렇지 않더라도 벌어들이는 수입은 크다. 하지만 나는 거부하였다. 두렵기 때문이다,  
한 공익서적에서 가세가 몰락하여 대학을 자퇴하고 가세를 세운 훌륭한 청년의 이야기가 소개되었는데,
청년은 서울의 시장에서 새벽 4시-5시에 출근하여 자정까지 장사하기를 수년을 계속하였다고 한다.  그 자본금으로 자영업을 시작하여
성공했다는 이야기다.  이런 이야기를 공익서적에 기록한 인간은 근본이 없는 자다. 수억의 부채를 짊어졌던 한 가장이 하루 4시간
수면과 18시간 이상의 노동을 통해 채무를 해결한 이야기가 방송에 오른 적이 있다. 그리고 다음해 다시 찾아갔으나, 그 가장은 이미 없었다.
대장암으로 숨진 것이다.  
내 어머니의 남동생, 나의 외삼촌은 새벽 3시에 돌아와 라면을 끓였는데 그게 마지막 식사였다. 쓰러진 삼촌은 일주일 이후에 화장터의
재로 화했다. 많은 청년들이 공무원이 되기를 원해 경쟁에 뛰어들지만, 매년 공무원의 과로사는 끊임없이 보도된다. 누구에게나 목숨이란
최고의 가치이며, 하물며 막중한 신념이 아닌 노동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음에도 매번 이렇다.
과디힌 노동은 몸과 정신 양면에 해악이기 때문이다. 쉬지 않으면 죽는다는 경고가 있다면 누구나 휴식하지만, 육체의 경보장치는
망가져 있다. 언제 죽을지 모른다면 오늘도 일할 수밖에 없다. 과도한 업무 때문에 자살이라는 건 일반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당장 그만두면 될텐데? 하지만 무너진 정신은 퇴직이라는 간단한 수단조차 인식할 수 없게 만든다.
과하지 않은 노동에서의 급사는 누구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없는 당사자, 그리고 유전자의 책임이지만 과다한 노동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죽기살기로 노력하면 진짜로 죽을 수 있다.

경쟁에서 승리하지 못했고, 행운을 얻지 못했으며, 비범죄에 도전할 자제력이 없고, 과다한 노동을 두려워한다면 피라미드의 지하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인가? 언제나 그렇지만은 않다. 피라미드 전체가 대격변에 휩싸일 때가 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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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군-
17/08/18 12:37
수정 아이콘
권력자들은 언제까지나 이 체제가 공고할 것이라 믿고 싶겠지만,
억압과 핍박에 지친 자들에게는 인류 역사의 영원한 해결책 "복수"가 있습니다.
살아나갈 구멍을 찾지 못한 자들이 결국 손에 쥐게 되는 것은, 일하기 위한 연장이 아닌 "죽창" 이죠.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두려워 하지 않은 자들의 최후를 잘 알고 있습니다.
전광렬
17/08/18 19:59
수정 아이콘
대격변이란 없다. 하층주민을 위해서 싸워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과거의 피라미드는 능력있는자들도 상층에 올라가지 못했기 때문에 능력있는 자들이 하층주민과 결합하여 대격변을 일으켰디만
지금은 능력있는자들은 상층으로 올라간다. 다만 그 문이 좁아지고 있을 뿐이다.
하층부의 주민은 그저 행운을 바라거나 또는 노오력을 해야 한다. 대격변이란 없다.
앙골모아대왕
17/08/19 02:51
수정 아이콘
영화에 나오는 좀비 바이러스나
혹은 핵전쟁 아니면 대격변은
현대 사회에서는 힘들것 같아요

자본의 힘이 너무 막강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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