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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02 19:05
옆에서 모신 동시대의 숙련된 군사전문가 고위 귀족들이 '진짜 이상하고 신기해요 어떻게 그럴 수 있죠?' 라는 증언을 남겼을 정도면 뭔가 있었겠죠.
본문 내용은 일반론인데 그게 잔다르크가 고위 귀족들 사이에서 군사적 천재를 과시했다는 증언에 대한 반박이 되기는 힘들고 실제 군사교육을 전혀 받지 않은 중세의 소녀가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에 대한 사람들의 경외심을 해소해 주기에는 부족한 듯 합니다. 다음 내용은 번역하기까지는 너무 귀찮아서 그냥 복붙합니다. 죄송합니다. 대충 '잔이 (백년전쟁의 최후의 분수령이었던) 랭스 진군을 위해 샤를의 참모와 장군들과 싸워 설득해야 했고, 잔의 포병 활용에서의 혁신이 전쟁 양상에 큰 변화를 가져왔으며 ('The artillery revolution') 알랑송 공작이 잔다르크의 군재와 포병 활용에 대해 찬탄하는' 내용입니다. "Jeanne immediately wanted to march on Reims to have the Dauphin crowned and consecrated as King. However, again, she had to do battle with Charles's advisers and generals, who counselled him to attack the enemy-held area of Normandy. Jeanne's argument ultimately won out; had it not, France would have been lost. ... Jeanne's use of cannon artillery revolutionized the science of warfare and changed the fate of nations. She was especially skillful in placing her artillery. Although, before Jeanne took command, the French had had cannons and artillery, it was her genius in deploying them, that altered the course of the warfare so dramatically, for it was well-placed artillery that had enabled the French to defeat the famous English archers. As the Duke of Alençon testified: "In everything that she did, apart from the conduct of the war, Joan was young and simple; but in the conduct of war she was most skillful, both in carrying the lance herself, in drawing up the army in battle order, and in placing the artillery. And everyone was astonished that she acted with such prudence and clear-sightedness in military matters, as cleverly as some great captain with twenty or thirty years experience; and especially in the placing of artillery, for in that she acquitted herself magnificently." https://larouchepub.com/eiw/public/2000/eirv27n45-20001117/eirv27n45-20001117_064-the_military_genius_of_jeanne_da.pdf
24/02/02 20:15
일단 알랑송 공작은 다른 지휘관들이 모두 반대한 파리 공격을 혼자 지지했을 정도로 잔 다르크와 가까운 사이라, 20년 뒤의 증언을 있는 그대로 믿기는 어렵습니다.
랭스 진군은 제정신 박힌 장군이라면 당연히 반대할 만한 위험한 도박이었고, 반대 의견에 대한 잔의 반박이라고는 '샹파뉴의 도시들은 주님의 선택을 받은 프랑스 국왕에 맞서지 않고 성문을 열 것이다'가 전부였고요. 랭스 입성 이후 잔 다르크가 강행한 파리 공격은 실패로 끝났고 오히려 다른 지휘관들이 주장한 센 강과 마른 강을 봉쇄하는 전략이 성공했죠. 잔 다르크의 지휘관으로서의 전적을 종합해 보면 초기의 성공은 상식을 벗어난 천재적인 전략이라기보다는 행운과 기세를 잘 탄 것이라는 해석이 더 합리적으로 보입니다. 제가 말한 잔 다르크의 기본적인 사려분별이라는 건 마름쇠 밟고 부상 입었을 때 후방으로 물러나서 치료받으라는 지휘관들의 말을 따른 것이나, 성문 밖으로 출격해서 포위군 진영을 기습할 때 긴장이 풀어진 새벽 시간을 고른 것, 이런 겁니다. 랭스 진군이라는 무리한 요구를 샤를 7세와 장군들이 받아들인 건 결국 잔 다르크가 기적을 입증한 처녀 예언자라는 사실 때문인데, 그 기적인 오를레앙 해방도 전략보다는 대담성과 운빨의 승리였죠. 대포 럭키샷으로 도개교가 무너져서 적 지휘관 몰살...
24/02/02 20:23
PGR 서버가 이상한 모양이네요. 어쨌든. 잔다르크가 실제로 그 얘기만 했다면 평범한(?) 광신 소녀이지 본문에서 말씀하신 합리적인 조언을 무시하지 않을 정도의 사리분별력을 가진 군사지휘관은 아니었을 것이고 그 시기의 뛰어난 군사지휘관들을 설득하지도 못했겠죠. 대외적으로 남은 것은 프랑스 왕이 주님의 선택을 받았다는 프로파간다에 적절히 부합하는 논리였을 것이고 실제로 장군과 참모들을 개별적으로 설득한 논리는 달랐다고 보는 게 더 그럴싸하지 않나요?
그리고 알랑송 공작 외에도 잔다르크가 포병 사용에 능숙했으며 크게 의존했다는 증거는 풍부하고 강하다고 합니다. 다음에 인용하는 글에 있어서는 잔다르크의 성공과 몰락을, 성공 때에는 그의 포병 사용에 있어서의 능숙함과 혁신이 크게 기여했지만 거꾸로 포병에 대한 과한 의존이 정치적 이유로 지원이 끊기자 독으로 돌아왔다고 이해합니다. 뭐 이게 전부는 아니겠지만 최소한 광신자의 기세와 행운이 다하자 몰락 이라는 해석보다는 좀 더 '재미있지' 않나요. 교육받지 않은 시골처녀가 역사적인 포병 혁명에서 중심적 역할을 하고 20년이나 지난 뒤에도 공작쯤 되는 사람으로부터 열렬한 찬탄의 기억을 간직하게 한다는 것부터가 기세와 행운만으로는 가능하겠냔 거죠. https://scottmanning.com/content/joan-of-arc-military-successes-and-failures/#toc-3 The evidence for Joan’s skill with artillery is strong. ... One experienced French commander observed that the “positions she took up were so admirable that even the two or three most famous and experienced captains would not have made as good a plan of battle.” ((Pernoud, The Retrial of Joan of Arc, 143.)) At another battle, Joan demonstrated an even stronger understanding of cannons. ... Cannon was a common theme in Joan’s sieges. From May until the Siege of Paris on September 7, 1429, Joan never lost a battle and cannon played a major role. At all of her successful sieges, Joan always had superior firepower. The downside of being so reliant on artillery meant that when it was not there, the chances of success diminished. At her four losses–Paris, La Charité, Choisy-au-Bac, and finally Compiégne–Joan was outgunned. The political mess in France directly attributed to Joan’s lack of supplies.
24/02/02 19:22
본문 내용은 중세인에 대한 편견이 문제가 아니라, 과학적 합리주의가 지배하는 현대사회의 군대를 기준으로 생각해도 비현실적일 정도로 민주적이고 합리적으로 작전계획이 수립되는 느낌입니다. 군대 내부의 의사결정이 얼마나 불합리하게 이루어지는지, 대부분의 대한민국 남성들이라면 적잖은 경험이 있을텐데요. 수많은 사료를 통해 교차검증이 끝난 2차대전사를 봐도 그렇고요. 위 작품은 교육적인 목적으로 씌여진 픽션이니만큼, 어디까지나 픽션으로 봐야하지 않을까요.
24/02/02 19:16
일단 중세 지휘관들이 전략을 결정하기 전에 토론을 자주 한 것은 많은 기록들에서 확인되는 사실입니다.
조괄 같은 사례도 있지만, 이상적인 상황을 구체적으로 상상하고 글로 표현할 수 있으려면 어느 정도 실제 능력이 받쳐줘야겠죠. 그리고 이상은 높은데 현실이 시궁창인 거야 상대편도 마찬가지이니, 기본을 잘 숙지하고 상대방보다 실수만 덜 해도 뛰어난 리더가 아닐까요
24/02/02 20:06
그렇다면 굳이 픽션을 가져오실게 아니라, 그런 사료상의 기록을 인용하시는게 중세 군대의 의사결정 과정을 묘사하는 보다 설득력있는 자료였을 것 같습니다.
24/02/02 20:41
아.. 그 점에서는 목적을 충분히 달성하셨습니다. 재미있게 읽었고, 출처의 원저자분 (혹시 본인이실지?) 께서 쓰신 백년전쟁 시리즈도 읽어보려 합니다. 좋은 글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
24/02/02 20:34
저도 그게 컸을거라보는게 양치기소녀가 이룩한 위업들을 보면 신이 우리의 편이라 믿었을거고 성전이 되는순간 사기는 말도 안되게 올라가죠
24/02/02 20:36
이런 구체적 행위 위주의 서술은 좀 부럽습니다. 임용한 박사님도 아쉬움을 토로했듯이 동양은 문학적으로 프로토콜화해서 숨기는 서술을 좋아해서 "벽력같은 기세로 달려들어 적을 베다보니 시체가 산을 이루었다." 라고만 써놔서 전투 경과를 잘 모르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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